화순초등학교 야구부는 아픈 폭력의 상처를 이겨내고, 올 시즌 좋은 성적과 함께 밝은 팀 분위기로 ‘지역의 자랑’으로 변신했다. 웃음을 되찾은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귀한 변화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화순초등학교 야구부는 아픈 폭력의 상처를 이겨내고, 올 시즌 좋은 성적과 함께 밝은 팀 분위기로 ‘지역의 자랑’으로 변신했다. 웃음을 되찾은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귀한 변화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엠스플뉴스]

전임 감독 폭력으로 신음했던 화순초 야구부 아이들.

새 감독 취임 후 폭력은 사라지고, 웃음꽃 넘치는 야구부로 변신

가장 강력한 훈육은 ‘동기부여’와 ‘목표의식’ 그리고 ‘즐기는 야구’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라팍)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았다. 전남 화순초등학교와 서울 강남초등학교 학생선수, 학부모, 코칭스태프가 주인공들이었다. 이들을 초대한 건 삼성 라이온즈 구단이었다.

‘KBO리그 최고의 마케터’로 불리는 삼성 박재영 마케팅팀장은 “화순초와 강남초는 한국 초교야구를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팀들”이라며 “홍준학 단장이 누구보다 두 학교 아이들의 라팍 방문을 환영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삼성은 연고지 학교들도 아닌 화순초와 강남초 야구부를 라팍으로 초대한 것일까.

힌트는 박 팀장이 언급한 ‘한국 초교야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는 팀들’이라는 말에 숨어 있다.

‘라팍’을 찾은 ‘야구 소년들’

해맑은 표정으로 프로선수들의 경기를 관전하는 화순초 아이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해맑은 표정으로 프로선수들의 경기를 관전하는 화순초 아이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전남 화순초는 전국 유일의 군(郡) 단위 팀이다. 김선빈‧홍건희(이하 KIA), 정진기(SK), 이승현(삼성) 등 많은 프로선수를 배출한 전남 지역의 명문야구 초교이기도 하다.

라팍에서 만난 화순초 야구부 아이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프로선수들의 수준 높은 경기를 관전했다. 경기가 지루할 땐 삼삼오오 모여 또래 아이들처럼 농담과 장난을 주고받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화순초 야구에서 이런 밝은 표정을 본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임 감독의 폭력 때문이었다.

화순초 심00 전(前) 감독은 훈련 중 아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스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린 초교생에게 공을 집어 던지고, 발길질하는 게 다반사였다.

심 씨에게 폭행당해 온몸에 멍이 들고, 발목 깁스까지 해야 했던 한 학생선수 가족의 용기 있는 고발이 없었다면 전임 감독의 폭력은 지금도 계속 됐을지 모른다. 결국 학교폭력위원회 조사와 검찰 기소가 이어지며 심 씨는 지난해 5월 화순초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화순초 심00 전임감독의 야구부 아이들 폭행사건과 관련한 광주가정법원의 결정문 내용. 화순초 심00 전 감독은 지난해 여러 아이들을 상대로 폭력을 가했다. 이는 법원도 인정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내린 결정은 '상담 40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아동을 '훈육'이란 이름 아래 무자비하게 폭행하고도 '상담'만 받으면 죄가 면제되는 세상.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화순초 심00 전임감독의 야구부 아이들 폭행사건과 관련한 광주가정법원의 결정문 내용. 화순초 심00 전 감독은 지난해 여러 아이들을 상대로 폭력을 가했다. 이는 법원도 인정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내린 결정은 '상담 40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아동을 '훈육'이란 이름 아래 무자비하게 폭행하고도 '상담'만 받으면 죄가 면제되는 세상.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사진=엠스플뉴스)

문제는 심 씨가 남기고 간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야구부를 괴롭혔다는 데 있다. 심 씨의 폭력 탓에 많은 야구소년이 화순초 야구부를 떠난 터였다. 심 씨가 학교를 떠날 때 남은 야구부원은 10명도 되지 않았다. 야구부가 존폐 위기에 몰린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날 라팍에 모인 화순초 야구부원은 23명이나 됐다. 1년 사이 화순초 야구부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제가 화순초 새 감독으로 왔을 때 남은 야구부원이 6학년 졸업생을 제외하면 6명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 사건(전임 감독 폭력 사건)’으로 많은 아이가 떠난 뒤였죠. 대회 참가는 고사하고, 정상적인 야구부 운영도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가뜩이나 선수가 없으니까 팀 분위기도 많이 침체돼 있었어요. 네, 도저히 팀을 꾸려갈 여건이 안됐습니다.” 지난해 8월 화순초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 신해수 감독의 회상이다.

화순초 젊은 코칭스태프의 야구 철학 "누구나 ‘좋은 야구선수’는 못 되더라도 ‘좋은 사람’ ‘예의 바른 사회인’은 될 수 있습니다."

화순초 코칭스태프. 사진 맨 왼쪽이 신해수 감독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화순초 코칭스태프. 사진 맨 왼쪽이 신해수 감독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2007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에 2차 4라운드 지명을 받은 신 감독은 프로선수 출신의 지도자다. 비록 1군 출전 기록은 단 두 경기뿐이었지만, 프로에서 5년간 뛰며 착실히 선진야구를 배웠다. 화순초-화순중-화순고를 졸업한 ‘오리지날 화순인’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신 감독은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모교 감독을 맡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제가 화순초 감독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화순초 야구부를 이렇게 놔뒀다간 당장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모교 야구부가 없어진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전임 감독이 물러났다는 이야길 듣고, 고민 끝에 감독직에 도전했습니다.” 신 감독의 말이다.

화순초는 신 감독의 진정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에게 아이들 지도를 맡겼다. 모교 야구부 사령탑이 되고서 신 감독은 곧바로 ‘야구부 살리기’에 착수했다. 그런 신 감독을 보며 학교와 지역사회에서도 적극 ‘야구부 살리기’에 동참했다.

화순초 김성호 교장, 구충군 화성군수, 화순군의회 윤영민 의원, 화순군야구협회장 손주현 회장은 두 팔을 걷어 올려 누구보다 열심히 야구부 회생을 도운 이들이다. 특히나 화순군은 야구부 발전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화순초 야구부는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을 만큼의 환경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엠스플뉴스 주선으로 화순초 야구부를 찾아 아이들에게 특별 레슨과 함께 용기를 주고 있는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엠스플뉴스 주선으로 화순초 야구부를 찾아 아이들에게 특별 레슨과 함께 용기를 주고 있는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지역민들이 ‘창단 20년 역사의 야구부이자 우리 지역의 자랑인 화순초 야구부가 사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덕분에 저와 야구부 아이들 전체가 큰 힘을 얻었습니다. 저도 전국을 발로 뛰면서 야구 유망주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팀원들을 한 명씩 모으다 보니까 지금 스물세 명까지 늘어나게 됐어요(웃음).”

신 감독이 신경 쓴 건 야구부원 모집만이 아니었다. 기자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신 감독은 잠시 양해를 구하고서 손나팔을 만들어 학생선수들을 향해 조용히 “다른 분들에게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관전하자”고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아이들에게 가장 강조한 게 있어요. 협력과 예의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기에 강훈련보다 인성교육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요. 누구나 ‘좋은 야구선수’는 못 되더라도 ‘좋은 사람’ ‘예의 바른 사회인’은 될 수 있으니까요.”

인성교육이 팀 성적 향상으로 이어진 건 행운 이상이었다. 5월에 열린 제46회 전국소년체전 전남지역 예선에서 화순초는 무려 11년 만에 1위에 올랐다. 여기다 7월에 진행된 제2회 이천시장기 양준혁 청소년야구대회에선 4강에 올라 ‘베스트팀 상’을 거머쥐는 경사를 누렸다.

‘폭력 피해’ 초교 야구소년, “이제 꿈이 생겼어요.”

불과 11살 학생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 화순초 전 감독 심00 씨는 최근 야구계로부터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사진=엠스플뉴스)
불과 11살 학생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 화순초 전 감독 심00 씨는 최근 야구계로부터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사진=엠스플뉴스)

“제가 그 피해자예요.”

해맑은 얼굴의 한 소년이 기자 옆으로 다가와 그렇게 말했다. 바로 전임 감독 심00씨에게 폭행 당한 뒤 이 사실을 용기 있게 지역 교육계와 사회에 알렸던 화순초 야구부 피해 학생 A군이었다.

‘엠스플뉴스’에서 이 피해 학생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기자는 기사 안의 피해 학생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공익 제보자나 내부 고발자의 신원 보호를 위해 담당 기자를 제외한 다른 기자들이 제보자와 고발자가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하는’ 엠스플뉴스의 취재 시스템 때문이었다.

이 학생선수는 “작년보다 야구가 훨씬 더 늘었어요. 밝은 분위기에서 친구들과 재밌게 야구하고 있어요”하며 기자를 향해 밀크커피처럼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

친구들 앞에서 전임 감독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며 이 학생선수는 극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한 소년의 인생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는 강한 수치심이었다. 하지만, 이 학생선수는 어느덧 아픔에서 벗어나 지금은 ‘꿈’을 꾸고 있었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절 보면서 ‘참 야구 잘 한다’고 칭찬해줬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해서 정말 그런 칭찬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게 제 가장 큰 꿈이에요(웃음).”

다시 웃음을 되찾은 화순초 아이들. 이 웃음이야말로 '퍼팩트 게임'에 해당하는 기적이다(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다시 웃음을 되찾은 화순초 아이들. 이 웃음이야말로 '퍼팩트 게임'에 해당하는 기적이다(사진=엠스플뉴스 강윤기 기자)

경기에 나갈 부원조차 꾸리지 못했던 화순초를 불과 1년 만에 전남지역 강팀으로 변화시킨 신 감독은 학생선수들을 보며 “초심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 감독의 초심은 “절대로 아이들을 때리면서 운동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저도 야구하면서 ‘지도’를 빙자한 많은 폭력을 경험해봤어요. 예전엔 그걸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젠 시대가 변했습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지도자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해요. 화순초 야구부에선 교육을 빙자한 폭력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래서 꼭 ‘학교 엘리트 야구는 힘들고, 괴롭다’는 오해를 깨고 말겁니다.”

신 감독이 ‘매’ 대신 꺼내든 게 있다. 바로 ‘당근’이다. 당근은 동기부여와 목표의식 그리고 즐기는 야구다.

“훈련 직후 먹는 아이스크림이 진짜 꿀맛이에요. 훈련을 집중력 있게 잘 끝내면 ‘아이스크림 파티’를 합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훈련을 일찍 끝마쳐 줄 때도 있어요. ‘러닝 면제권’ 등 사소한 당근을 제시하기도 하죠. 그럼 아이들이 정말 즐겁게 운동해요. 무엇보다 ‘어떤 훈련을 하면 어떻게 변한다’는 걸 최대한 자세히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는 게 제가 학생선수들을 이끄는 방식입니다.”

신 감독은 ‘건강하고, 훌륭한 명문 화순초 야구부를 부활시키겠다’고 다짐했다.

“화순초, 화순중, 화순고로 이어지는 야구부는 화순군의 자부심이었고 자랑이었습니다. 이제 그 뿌리가 다시 정상화 되고 있어요. 바르고 건강한 사고를 하는 협동하는 팀을 만들겠습니다.”

끝으로 신 감독은 화순초 야구부 홍보를 잊지 않았다.

“요즘 학생선수들을 둔 지역의 학부모들은 ‘좋은 선수가 되려면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화순초는 학교와 화순군과 탄탄한 지원을 받아 어느 학교보다 더 좋은 시설과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열정이 가득한 젊은 지도자들이 있어요. 단기간에 화순초가 다시 전국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 가능성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화순초에 아이를 보내신다면 후회 없는 결정이 되실 겁니다.”

삼성 박한이, 박해민(사진 가운데)와 함께 라팍 로비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화순초 아이들. 삼성은 10개 구단 가운데 아마추어 야구계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구단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삼성 박한이, 박해민(사진 가운데)와 함께 라팍 로비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화순초 아이들. 삼성은 10개 구단 가운데 아마추어 야구계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구단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원익 기자)

+취재 후 : 엠스플뉴스가 화순초, 서남대, 청주고 폭력 감독 문제를 차례로 다뤘을 때 적지 않은 야구인은 “그렇게 해봐야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 야구협회에서 폭력 감독들을 구명해줄 게 뻔하고, ‘동업자 의식’으로 똘똘 뭉친 야구인들이 앞뒤에서 폭력 논란 감독들의 재기를 도울 것”이라며 “폭력 감독을 고발하거나 비판한 아이들만 야구인들에게 찍혀 험난한 선수생활을 하게 될 것”이란 말로 못마땅해했다.

한술 더 떠 자신을 '조폭 출신'이라고 소개한 한 이는 엠스플뉴스 기자에 전활 걸어 "우리 형님(폭력 감독)을 건드리면 기자들 가족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다"며 "정말 폭력이 뭔지 맛 보고 싶냐"는 협박을 일삼았다. 일부 매체 역시 엠스플뉴스의 보도 신뢰성을 떨어트리려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대와 달리 화순초, 서남대 전임 감독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각각 무기한 자격정지와 10년 자격정치 처분을 받았다. 청주고의 경우는 폭력 감독이 물러난 뒤 새로운 폭력 감독이 팀을 맡는 ‘동업자 정신’이 현실화했으나, 이후 감독이 바뀌면서 지금은 새 감독 지도 아래 ‘건강하고, 비전있는 야구부’로 변신했다.

이는 화순초, 서남대도 같아 두 학교는 빠르게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뛰고 있다.

엠스플뉴스는 앞으로도 학교 운동부에 만연한 폭력과 각종 비리를 추적 보도할 예정이다. 그것이 언론의 당연한 책무이자 스포츠 언론의 존재 이유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엠스플뉴스는 기자들을 협박한 자칭 '조폭 출신의 인사'를 사법기관에 수사의뢰할 예정이며 일부 매체의 근거 없는 '메신저 공격'에 대해선 앞으로도 취재를 통한 정론직필로 맞설 계획이다.

박동희, 김원익, 배지헌, 김원익, 전수은, 김근한, 이동섭 기자

one2@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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