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마지막 등판을 치른 한화 이글스 외국인 투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올 시즌 마지막 등판을 치른 한화 이글스 외국인 투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대전]

한화 이글스 외국인 투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가 올 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을 치렀다. 9월 28일 KIA 타이거즈전에 선발 등판한 비야누에바는 6.2이닝 3실점(2자책)으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다. 상대 에이스 헥터 노에시 못지않은 투구였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비야누에바의 등판을 엠스플뉴스가 취재했다.

“오늘(28일)은 정말 원 없이 던지라고 했습니다.”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의 말이다. 올 시즌 마지막 등판을 앞둔 비야누에바에게 이 대행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였다.

28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한화의 경기. 이날 선발 투수로 나선 비야누에바는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비야누에바의 고별전은 쉽지 않았다. 7회 로저 버나디나와 최형우를 삼진 처리한 비야누에바는 이후 나지완(볼넷)과 안치홍(안타)을 내보내며 2사 1, 2루 위기를 맞았다. 후속 타자 이범호를 만나 풀 카운트 접전을 벌였지만, 끝내 통한의 적시타를 허용했다.

비야누에바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마운드를 김경태에게 넘기고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비야누에바는 아쉬움이 남았는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한화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야누에바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에 화색을 되찾은 비야누에바는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속엔 팬들에 대한 존중과 진심어린 감사가 담겨 있었다.

'선생님' 비야누에바가 '제자' 박상원에게 글러브를 선물한 이유는?

경기 종료 후,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는 비야누에바와 박상원(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경기 종료 후,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는 비야누에바와 박상원(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마지막 등판을 마친 비야누에바는 29일 고국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간다. 마지막까지 팀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아내의 출산일이 임박해 발걸음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날 비야누에바는 경기를 마치고, 선수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몇몇 선수들은 서운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한화 투수 박상원은 비야누에바 옆을 떠나지 못했다.

박상원은 비야누에바를 자신의 또 다른 ‘야구 선생님’이라고 했다. “전 비야(비야누에바의 애칭)를 항상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 마치 학교 선생님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여러 가지 경험을 들려줬습니다. 제가 등판하는 날이면 투구 내용을 꼼꼼히 체크해 자기 생각을 말해줘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제겐 정말 둘도 없는 멘토였죠.” 박상원의 말이다.

3월 31일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한 카를로스 비야누에바는 이날 최고의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투구를 선보였다(사진=엠스플뉴스)
3월 31일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한 카를로스 비야누에바는 이날 최고의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투구를 선보였다(사진=엠스플뉴스)

비야누에바는 박상원에게 ‘마운드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박상원은 “비야는 마운드에 섰을 때, 항상 신중하라고 했다. 모든 일엔 의미가 있고, 구단이 날 등판 시킨 이유가 있을 테니 그것을 알고 던지란 것이었다. 공 하나라도 쉽게 던져선 안 된단 것이 비야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박상원은 최근 비야누에바에게 글러브를 선물 받았다. 비야누에바도 동료 선수에게 글러브를 선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제자' 박상원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사실 오늘 비야가 선물한 글러브를 끼고 올라가려 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냥 간직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살짝 아깝기도 했고요. 저는 비야에게 뭘 해줄까 고민하다 큰 사인볼을 준비했습니다. 경기 전, 미리 선수들의 사인을 받아놨거든요. 오랫동안 보고 싶을 겁니다. 어떤 외국인 선수도 비야만큼은 생각나진 않을 거예요.” 끝내 눈시울을 붉힌 박상원이다.

그리고 박상원은 다짐했다. 야구를 더 잘해서 비야누에바를 다시 만나겠노라고 말이다.

“이젠 더 잘 해야겠단 생각뿐이에요. 비야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지금 제 자리에서 최선 다할 겁니다. 제가 잘해야 비야도 TV에서 절 볼 수 있잖아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상원뿐만이 아니다. 비야누에바는 팀 내 젊은 투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팀의 리더이자 선수들의 진전한 멘토였다.

한화 선수단 이구동성 "비야누에바는 최고의 외국인 투수였다."

비야누에바에겐 언제나 동료가 1등이다. 동료들을 위해선 벤치클리어링도 불사한 그다(사진=엠스플뉴스)
비야누에바에겐 언제나 동료가 1등이다. 동료들을 위해선 벤치클리어링도 불사한 그다(사진=엠스플뉴스)

비야누에바는 확실히 보통 외국인 선수와는 달랐다. 구단 관계자들도 ‘이런 선수는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다.

윌린 로사리오와 비야누에바 영입을 주도한 한화 석장현 운영팀장은 “비야는 자기 삶을 설계 할 줄 아는 선수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철학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날엔 온 종일 젊은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길래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MLB에 있을 때 선배들에게 많은 걸 보고, 배우고 들었다. 그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이젠 나도 그걸 돌려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며 괜찮다고 하더라. 그때 큰 감동을 받았다”고 옛 기억을 회상했다.

젊은 선수들뿐만이 아니다. 비야누에바는 팀 내 외국인 선수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그는 내국인 선수들을 먼저 배려하라고 강조한다.

석 팀장은 “비야는 알렉시 오간도와 로사리오에게 상대방을 먼저 존중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가 KBO리그 선수들을 먼저 존중해야 그들도 우릴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메이저리거 11년 차 베테랑이지만, 먼저 고개를 숙이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5월 21일 삼성과 한화의 벤치클리어링 장면(사진=한화)
5월 21일 삼성과 한화의 벤치클리어링 장면(사진=한화)

또 다른 한화 관계자는 5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전 벤치클리어링을 떠올렸다. 당시 비야누에바는 로사리오에게 연속 빈볼이 날아들자 거칠게 항의하며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벤치클리어링 이후 였습니다. 상벌 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이었죠. 하루는 비야가 찾아오더니 대뜸 ‘내가 다 책임지겠다. 구단에 피해를 줘서 정말 미안하다’는 거예요. 자기가 공식 사과든 인터뷰든 다 할 테니 맡겨만 달라고 해서 겨우 진정시켰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문제든 자신이 직접 책임지겠단 태도가 돋보였어요. 수많은 외국인 선수가 대개 자신의 이익만 생각했지 비야처럼 책임지려는 자세는 본 적이 없었거든요.”

현역 최다승(135승) 투수 배영수는 비야누에바를 ‘똑똑한 외국인 선수’라고 했다. 베테랑의 눈에도 비야누에바는 평범한 외국인 선수가 아니었다.

“비야는 정말 똑똑해요. 저도 수많은 외국인 선수를 만나 봤지만, 생각하는 것 자체부터 달랐습니다. 경기 안이나 밖이나 늘 한결같아요. 시즌 초반엔 승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중반엔 부상도 있었습니다. 건강하게 한 시즌 소화했다면 성적도 최고였을 거예요.” 배영수의 말이다.

윤규진은 올 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갔다.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선수 본인에겐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비야누에바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비야의 조언이 큰 힘이 됐습니다. 투구법에 관한 노하우나 메이저리그식 운동법도 많이 배웠어요. 비야는 뭔가 가르쳐 주는 것에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그 때문인지 젊은 선수들은 1이닝 마치면 비야에게 와서 묻고, 또 묻고 하는 식이에요. 돈만 받고 그냥 가는 외국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비야누에바 "내 거취 아직 결정된 것 없다."

비야누에바의 다음 행선지는 과연 어디일까?(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비야누에바의 다음 행선지는 과연 어디일까?(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이날 한화는 비야누에바의 호투에도 KIA에 4대 7로 역전패했다. 이로써 비야누에바의 KBO 레코더는 5승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적어도 현재까진 그렇다.

경기 후 비야누에바를 다시 만났다. 그는 ‘마지막’이란 말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비야누에바는 “선수들이 오늘(28일) 날 위해 최선을 다해줬다. 비록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이걸로 만족한다”며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다. 마지막 등판이란 점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선수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때 슬픔이 차올랐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고 말했다.

비야누에바는 마운드를 내려올 때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팬들을 가리켰다. 팬들에게 보내는 비야누에바만의 감사 인사였다. “그간 많은 팬이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행히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팬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어요.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한 건데 알아채셨을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유명인들처럼 ‘손 하트’를 그릴 걸 그랬나 봐요(웃음).”

한국에서의 보내는 마지막 밤. 한화 유니폼을 처음 입은 미야자키 스프링캠프 때부터 지금까지 비야누에바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화행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일본 미야자키 기요타케 구장에서 훈련 중인 카를로스 비야누에바. 벌써 8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일본 미야자키 기요타케 구장에서 훈련 중인 카를로스 비야누에바. 벌써 8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미야자키에 도착했을 때 첫날은 긴장을 엄청 했죠. 국외에 나와서 야구를 하는 게 처음이었습니다. 다행히 구단에서 적응에 큰 도움을 줬어요. 아쉬운 게 있다면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단 점이죠.” 비야누에바의 말이다.

비야누에바의 투철한 마인드 때문인지 최근 MLB 몇몇 구단으로부터 ‘프런트 영입 제의’를 받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은퇴설까지 나돌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즌 후반이라 몸이 다소 지쳐있어요. 당분간은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낼 겁니다. 앞으로 제 모든 선택은 가족들에게 달려있어요. 전 가족들의 의견을 존중할 겁니다. 제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올 시즌은 분명 제 인생에 있어 최고의 추억으로 남을 거예요. 여러분 모두를 기억하겠습니다.”

비야누에바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외국인 선수가 아니었다. 어떤 이에겐 스승이자, 어떤 이에겐 친구였다. 우린 기억할 것이다. 비야누에바는 한화 이글스의 훌륭한 선수였다고 말이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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