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마산야구장 외야가 이호준으로 가득 찼다(사진=NC)
9월 30일 마산야구장 외야가 이호준으로 가득 찼다(사진=NC)

[엠스플뉴스]

| 9월 30일 열린 이호준 은퇴경기는 눈물과 웃음, 재미와 의미로 가득한 역대 최고의 은퇴 행사로 기억될 만하다. 특히 야구장 외야를 비롯해 구장 내 모든 곳을 이호준으로 가득 채운 NC의 아이디어가 빛났다. 이호준 은퇴경기를 준비한 지난 6개월간의 숨은 노력을 NC 관계자들의 말을 통해 들어봤다.

NC 다이노스 이호준의 은퇴경기가 열린 9월 30일. 창원 마산야구장은 그 자체로 이호준이 됐다. 야구장 곳곳이 온통 이호준으로 가득했다. NC 선수단 전원이 등번호 27번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섰고, 공수가 바뀔 때마다 이호준의 현역 생활 추억이 담긴 영상이 전광판을 수놓았다.

1만 1천 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이호준 은퇴경기 기념 티셔츠를 입고 ‘인생은 이호준처럼!’이 쓰인 응원용 클래퍼를 흔들었다. 이호준 엠블럼을 프린트한 깃발 22기가 야구장 곳곳에 나부꼈다. 애국가 제창은 이호준의 지인 모임이 맡았고, 시구 및 시타-시포는 이호준과 두 아들이 나섰다.

무엇보다 이날 관중들의 시선을 잡아끈 건, 마산야구장 외야 잔디 전체를 수놓은 대형 이호준 캐리커처였다. 이호준이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과 등번호 ’27’이 마산구장 외야 중앙에 자릴 잡았다. 마치 잔디 위에 대고 그린 것처럼 세밀하면서도, 야구장 꼭대기에서 내려다봐야 온전한 형태가 보일 만큼 거대한 이 대형 그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대형 이호준 초상화, 미국에서 건너온 최신 기술

미국 뉴 그라운드 테크놀로지 사에서 제작한 터프 프린터. 잔디를 좌표 따라 누르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사진=NC)
미국 뉴 그라운드 테크놀로지 사에서 제작한 터프 프린터. 잔디를 좌표 따라 누르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사진=NC)

NC 다이노스 관계자는 “밤샘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전날(29일) 경기가 끝난 뒤 미국에서 온 전문가들과 운영팀 박치희 매니저가 새벽 1시까지 작업했다. 은퇴경기 당일 오전에도 다시 한번 작업하는 과정을 거쳤다.” NC 관계자의 말이다.

NC는 이 작업을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재 업체인 ‘뉴 그라운드 테크놀로지(New Ground Technology)’와 손을 잡았다. 이 회사에서 지난해 자체 개발한 ‘터프 프린터(Turf Printer)’ 기계를 이용해 말 그대로 잔디 위에 ‘프린트’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잔디 위에 스프레이로 색을 칠하는 방식이 아니다. 잔디를 눕히고, 세우는 방식으로 음영 차이를 만드는 방식이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이 데이비드 오티즈(David Ortiz) 은퇴경기 때 펜웨이 파크에 썼던 기술입니다.” NC 운영팀 박치희 매니저의 설명이다. 지난해 9월 보스턴이 공개한 외야의 오티즈 그림은 SNS에서 220만 명이 공유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2016년 펜웨이 파크 외야를 수놓은 대형 오티즈 그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6년 펜웨이 파크 외야를 수놓은 대형 오티즈 그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작업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다. 터프 프린터는 잔디깎기 기계 하단에 롤러를 부착한 기계로, 작업자는 여기 탑승해 외야에서 이동하며 잔디를 ‘누르는’ 작업을 한다.

“이번 작업을 위해 미국 나사(NASA) 출신 엔지니어 두 명이 마산야구장에 왔습니다. 그라운드에 깃발을 꽂아서 경계를 짓고, 그리길 원하는 이미지 파일에 따라 2차원 좌표를 미리 컴퓨터에 입력합니다. 그리고 터프 프린터에 탑승해 광파기가 보내주는 좌표를 따라 잔디를 ‘누르는’ 작업을 진행하게 됩니다.” 운영팀 박치희 매니저의 말이다.

박 매니저는 “25일에 터프 프린터 기계가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이번 이호준 은퇴경기를 통해 한국에 첫선을 보이고, 한 달간 홍보와 테스트를 한 뒤 다시 미국에 가져갈 예정”이라 전했다. 1경기 이벤트를 위해 미국 업체를 데려오는 수고와 정성을 아끼지 않은 NC다.

터프 프린터에 부착한 터치패드. 여기 표시된 좌표를 따라 기계를 이동해서 작업한다(사진=NC)
터프 프린터에 부착한 터치패드. 여기 표시된 좌표를 따라 기계를 이동해서 작업한다(사진=NC)

완성된 대형 이호준 그림(사진=NC)
완성된 대형 이호준 그림(사진=NC)

터프 프린터 기술은 미국에선 오티즈 은퇴경기를 비롯해 각종 스포츠 이벤트와 행사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은퇴식처럼 의미 있는 용도로도 쓰일 수 있고, 광고로도 활용할 수 있다. 외야 잔디는 일반 광고보다 노출효과가 크기 때문에 구단 수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NC 협력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NC 손성욱 마케팅팀장은 “은퇴경기를 준비하면서 직원들이 낸 좋은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며 “처음 잔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도 쉽진 않겠지만, 미국 업체 측과 잘 이야기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적극적으로 추진한 덕분에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6개월의 고민과 정성이 만든 최고의 은퇴 행사

이호준으로 하나가 된 야구장(사진=NC)
이호준으로 하나가 된 야구장(사진=NC)

외야의 대형 그림 외에도 이날 이호준의 은퇴경기는 모든 면에서 ‘역대 최고의 은퇴 행사’였다는 호평을 끌어냈다. 이날 은퇴경기를 보러 마산야구장을 찾은 한 야구인은 “최고의 은퇴식 행사를 본 것 같다. NC 구단이 정말 많이 고민하고 애쓴 것 같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오랜 기간에 걸친 치밀한 준비와 구단의 정성이 더해진 결과다. 손성욱 마케팅팀장은 “준비를 시작한 건 6개월 전부터”라고 밝혔다. “이호준 선수의 은퇴가 결정된 뒤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구단 사상 처음 하는 은퇴경기인데 어떻게 우리만의 것을 만들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오티즈 은퇴식 같은 국외 사례도 참고했다.”

손 팀장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취합했고,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라면 선수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의미에서 가능한 다 시도해 보려고 했다. 영상제작팀, 구장관리팀 등 다양한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고 모두의 마음이 잘 담긴 것 같다”며 흡족함을 전했다.

앞서 손민한 은퇴 때 시작한 ‘다이노스 아너스 클럽 가입식’과 ‘NEXT CLASS(부제: 신사의 품격)’라는 주제로 진행된 은퇴행사도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도 레전드 선수를 향한 NC 구단의 존경과 예우가 담겨 있다.

손 팀장은 “은퇴는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이다. 또 은퇴한다고 우리 구단과의 인연이 완전히 끝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만의 색깔을 찾자는 의미에서 아너스 클럽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아너스 클럽은 선수가 은퇴 뒤에도 구단의 일원으로 지속적 관계를 이어간다는 보증이다. 손 팀장은 “아너스 클럽 가입 선수는 은퇴 뒤에 구단에 방문하면 예우를 하고, 새 구장이 생기면 마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처럼 ‘아너스 클럽’ 가입자들을 계속해서 늘려갈 것”이라 설명했다.

경기 후반 1루수로 나선 이호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사진=NC)
경기 후반 1루수로 나선 이호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사진=NC)

외야를 바라보는 이호준(사진=NC)
외야를 바라보는 이호준(사진=NC)

김경문 감독과 포옹하는 이호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사진=NC)
김경문 감독과 포옹하는 이호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사진=NC)

이날 은퇴경기를 보러 1만 1천 명의 만원 관중이 마산야구장을 찾았다. 또 NC는 은퇴경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경기 초반부터 집중력을 발휘해 넥센에 11-4 대승을 거뒀다. 3위 롯데와 준플레이오프 직행을 놓고 치열한 순위 싸움 중인 NC에겐 은퇴경기만큼이나 승리도 중요했다. 경기에서 승리한 덕분에, 경기 후 열린 은퇴행사는 더 즐거운 잔치 분위기 속에 성대하게 열릴 수 있었다.

NC 김명식 관리본부장은 “경기 전에 걱정도 했는데, 만원 관중이 찾아와 주셨고 경기도 승리했다. 오늘 모든 게 다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며 미소 지었다. 손성욱 팀장도 “팬들이 많이 와주신 덕분에 준비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만원 관중의 응원 덕에 경기 분위기도 살아났고, 그 덕분에 승리도 거둔 것 같다”며 기쁨을 표했다.

치열한 6개월의 준비 기간과 노력 덕분에, 이호준의 은퇴경기는 KBO리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은퇴 행사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웃음과 눈물이 공존했고,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만원 관중의 열렬한 응원 속에 은퇴하는 선수도 멀티히트로 활약했고, 팀도 중요한 경기에 승리를 거뒀다. ‘인생은 이호준처럼, 은퇴도 이호준처럼’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은퇴경기였다. 그 자신의 표현대로, 이호준은 정말로 복 받은 사람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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