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사진=삼성)
이승엽이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사진=삼성)

[엠스플뉴스=대구]

이승엽, 23년의 위대한 여정 마쳤다. 이승엽 “‘국민타자’란 단어의 무게감에 짓눌리기도 했다. 하지만 참 행복했다.”

영원한 ‘국민타자’ 이승엽이 ‘전설의 길’로 떠났다.

10월 3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이승엽의 은퇴식 및 영구결번식이 열렸다. 삼성은 넥센 히어로즈에 10-9로 승리, 2017 시즌을 기분좋게 많았다.

하지만 눈물을 쏟은 이들이 많았다. 바로 이승엽이 우리 곁에서 떠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연타석 홈런으로 건재를 과시, 은퇴를 더욱 아쉽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삼성 라이온즈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 꿈을 이뤘다. 또 우승했고, 은퇴식 자리에 설 수 있어 영광스럽다.프로야구 23년을 뛰면서 정말 기뻤던 날, 슬펐던 날, 행복했던 날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슬픔과 슬럼프는 이젠 잊어버리고 싶다. 정말 감사하다.” 이승엽은 마이크를 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정중한 인사를 전한 이승엽(사진=삼성)
정중한 인사를 전한 이승엽(사진=삼성)

“이제 야구선수 이승엽은 사회로 돌아간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엔 많은 후배가 있다. 이들에게 격려를 보내주면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23년간 힘들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성원해준 모든 분께 '정말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승엽은 ‘선수 이승엽’의 작별을 고하면서도 ‘삼성을 응원해 달라’는 당부도 전했다.

끝으로 이승엽은 “지금 이 여러분들의 이 함성을 기억하겠다. 잊지 않겠다. 언젠가는 여러분께 보답할 수 있도록 사회에 나가서 싸우고, 또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이어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23년의 여정을 끝내고 현역 유니폼을 벗는 이승엽은 그 어느 때보다 인간적이었다. 그리고 행복해 보였다.

이승엽 “고마운 분들 생각나, 어머니 생각 났다.”

이승엽은 어머니 故 김미자 씨를 떠올리며 오열했다(사진=삼성)
이승엽은 어머니 故 김미자 씨를 떠올리며 오열했다(사진=삼성)

생각보다 많이 안 울었던 것 같다(많은 눈물을 쏟은 이승엽을 배려한 취재진의 농담).

(쑥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많이 울었다. 이수빈 구단주를 보고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2012년) 삼성에서 복귀를 허락해주지 않았다면 돌아올 수 없었다. 당시 삼성 김인 전 사장과 류중일 감독님께서도 많이 신경 써 준 덕분이다.

음.

그런 분들의 도움 덕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고마운 분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났다. 류중일 전 감독님은 경기 전에 뵀다. 상황이 좀 그래서(류중일 감독은 이날 LG 신임 감독으로 취임했다.) 은퇴식엔 못 왔지만 류중일 감독께도 정말 감사드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이 뭐였나.

(숙연한 표정으로) 어머니가(돌아가신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본인의 병을 챙기지 않고 막내아들이 야구하는 걸 뒷바라지 하다 돌아가셨다. 모든 부모님의 마음이야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어머니를 내가 보살펴주지 못해서 더 일찍 돌아가신 것 같다.

(일동 침묵)

‘어머니’란 단어를 잠깐 잊고 살았다. 그러다 예전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조금만 성숙한 아들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계셨을 텐데’란 생각에 후회도 들었다. (그게) 가슴에 맺힌다.

(이승엽은 가족들의 과거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보며 오열했고, 그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도 함께 눈물을 쏟았다.)

유니폼을 벗어 구단에 전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삼성에 입단해서 15시즌을 뛰었다. 팀에 도움이 된 적도 있었겠지만 해가 됐던 때도 있었을 거로 생각한다. 나 때문에 온전히 집중해서 뛰지 못했던 이들이 있다면 그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이젠 가장으로 살겠다."

이승엽의 얼굴과 모습이 담긴 그래피티가 라팍 구장에 새겨졌다(사진=삼성)
이승엽의 얼굴과 모습이 담긴 그래피티가 라팍 구장에 새겨졌다(사진=삼성)

공언한 대로 홈런을 쳤다. 그것도 연타석 홈런이다.

아버지(이춘광 씨)도 오셨고, 아들들(은혁, 은준 군)도 왔고 연휴에도 불구하고 2만 4,000명의 팬도 오셨다. 그들에게 송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이제 삼성 선수단에선 빠지지만, 내년 시즌엔 '희망이 생길 것'이란 긍정적인 마음이 든다.

연타석 홈런을 칠 것이란 예상은 했었나.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솔직히 안타 1개와 볼넷 1개 정도만 예상했다. 10월 1일(잠실 LG전) 선발 출전했던 게 타격 컨디션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덕분에 은퇴하는 당신을 보내는 마음이 더 안타까워진 것 같다.

(웃으며) 그건 아닌 것 같다. '은퇴할 때'를 잘 잡았다. 물론 사실 굉장히 아쉽다. 하지만 ‘야구를 더 잘 할 수 있는데, 더 길게 할 수 있는데’란 생각은 아니다. ‘이제 야구를 할 수 없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이젠 정말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 선수단에 더 큰 일을 해야 할 이들이 많다. 그들이 더 집중하길 바란다. 하나 된 응집력을 발휘해서 2년간 망가진 팀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길 기대하겠다.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아쉬워한다.

나 또한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은퇴식 단상에 서니까 멍해서 말을 제대로 못 했다. 프로 23년 간 수많은 지도자를 거쳤다. 또 함께했던 많은 동료들도 많았다. 그분들을 다 꼽진 못 하지만 정말 모두 감사하다. 23년 간 힘든 때도 많았지만 정말 행복했다. 야구선수가 됐고, 삼성 라이온즈의 선수로 마무리 할 수 있어 ‘정말 영광스럽고 행복했다’는 말을 또 한 번 드리고 싶다.

타자 전향‧해외진출‧국내복귀 등의 많은 선택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택은 뭐였나.

야구를 시작한 것 자체가 최고의 선택이었다. 부모님께서 많이 반대했는데 고집으로 하게 됐다. 그 때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 이후도 없었을 것이다. 중‧고교 진학, 프로 진출, 일본 진출, 한국 복귀는 모두 내 의지로 결정했다. 지금까진 그 선택이 맞았던 것 같다.

‘이승엽 응원가’가 울려퍼질 때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아 이게 마지막 함성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누가 지었는진 모르겠지만 참 잘 지은 응원가란 생각을 했다. 또 언제 이런 함성을 또 받아볼 수 있겠나. 은퇴식이 열린 2017년 10월 3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오늘 잊을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정말 행복하다. 내일부턴 무직이 되는데(웃음),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 드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내일 가장 하고 싶은 게 뭔가.

일단은 조금 쉬고 싶다. 그리고 집에서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웃음) 모레부턴 골프를 좀 치고 싶다.

둘째 아들 은준 군이 영상에서 ‘매일 학교를 데려다 달라’고 하던데, 이제 실천 할 것인가.

‘아직 7세라서 철이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다(웃음). 원래도 쉬는 날엔 항상 등하교를 도와줬다. 큰 아들(은혁 군)은 사정상 서울에서 생활을 했다. 나도 아들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갈 것 같다. 그러면 더 자주 등하교를 도와줄 것 같다.

"'국민타자'로 사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행복했다."

인생 제 2막을 시작하는 이승엽(사진=삼성)
인생 제 2막을 시작하는 이승엽(사진=삼성)

구장에 유니폼이 걸린 경우는 있지만, 등번호가 얼굴과 함께 ‘그래피티’로 새겨진 건 최초다.

사실 (영구결번이 된) 36번을 싫어했다. 신인 때 계약하고 남은 등번호가 2개였다. 당시엔 투수였고 낮은 숫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2년차 까지도 계속 바꿔 보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3년차(1996년)에 프로야구 MVP(최우수선수)가 되면서 ‘36번이 나와 맞는 번호구나’란 생각이 처음으로 들게 됐다.

그리고 이제 36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번호가 됐다. 다신 이런 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정말 ‘행복이란 단어는 이런 때 쓰는 것 이구나’란 생각을 많이 한다.

‘국민타자’로 사는 게 힘들진 않았나.

정말, 힘들었다. 공인은 아니지만 우리가 유명인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 유명인으로 산다는 게 행복했지만 어떤 순간엔 굉장히 불행하기도 했다. ‘국민타자’란 단어의 무게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기분 좋은 말이다. ‘국민’이란 수식어가 들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국민타자’로 불린 이후 나 역시 많이 성장하고 성숙한 사람이 됐다. 이젠 적응이 돼서 기분이 좋다. 물론 아픙로도 그만큼 생활을 더 조심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정말 수고했고, 고생이 많았다.

나 또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언제 다시 만날 진 모르겠지만 반드시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겠다.

김원익 기자 one2@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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