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상군 감독대행의 한 시즌이 끝났다. 내년 시즌 그가 있을 자리는 어디일까(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의 한 시즌이 끝났다. 내년 시즌 그가 있을 자리는 어디일까(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

한화 이글스 이상군 감독대행의 2017년은 파란만장했다. 시즌 도중 전임 감독이 갑작스럽게 팀을 떠나며 지휘봉을 잡아야 했던 이 감독대행은 '성적'과 '육성' 그리고 '팀 시스템 정상화'란 세 마리 토끼마저 잡아야 했다. 야구계는 "이 감독대행이 제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감독대행의 거취는 불투명하다. 과연 그의 내년 시즌은 어떻게 될까.

한화 이글스 이상군 감독대행은 ‘감독실’을 사용하지 않는다.

감독대행이 되고서도 여전히 감독실 대신 코치실에 머물렀다. 주변의 권유에도 "난 감독실을 쓸 만한 그릇이 못 된다"며 한사코 손을 흔들었다. 예외가 있다면 중요한 손님이 구장을 찾았을 때다. 그땐 어쩔 수 없이 감독실을 잠시 썼다. 하지만, 이때도 그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감독대행은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지도자다. 평소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매서운 질타보단 따뜻한 말 한마디로 격려하는 걸 선호한다. 이것이 그가 추구하는 리더십의 핵심이다.

이런 이 감독대행의 리더십은 8월 이후 진가를 발휘했다. 한화는 8월 1일부터 10월 3일까지 치른 48경기에서 23승 1무 24패를 기록했다. 이 기간 성적만 놓고 보면 리그 5위였다. NC 다이노스, 넥센 히어로즈보다 더 좋은 성적이었다. 특히나 '주포' 김태균, 정근우 등 주전선수 대부분이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거둔 성적이라, 더 의미가 있었다.

올 시즌 이 감독대행에게 맡겨진 임무는 10월 3일 시즌 마지막 경기로 모두 끝났다. 이젠 신임 감독이 한화를 이끌 차례다. 무겁고, 부담스러웠던 감독대행직. 하지만, 팀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이 대행의 2017시즌을 엠스플뉴스가 물었다.

'감독대행' 이상군, "후반기 가장 큰 성과? 절박함으로 무장한 젊은 선수들의 성장"

늘 환한 미소로 사람들을 반기는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 그는 낡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움과 소통을 추구하는 지도자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늘 환한 미소로 사람들을 반기는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 그는 낡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움과 소통을 추구하는 지도자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한 시즌이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감독대행직도 이제 종료됐습니다.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웃음). 제게 맡겨진 경기가 101경기나 됐지만,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어요. 기억에 남는 경기가 많고, 행복한 기억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성적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큰 게 사실이에요.

전임 감독이 떠난 5월 23일 이후 한화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당시엔 경황이 없었어요. 정말 뜬금없이 맡게 된 감독대행직이었으니까요(웃음).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서 여유가 생겼고, 지금까지 낙오없이 시즌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구단, 무엇보다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처음 감독대행을 권유받았을 때, 기억나십니까.

전임 감독께서 팀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당연히 김광수 수석코치께서 감독대행직을 맡으실 것으로 생각했어요.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이 되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박종훈 단장께서 제게 오시더니 “김 수석이 대행직을 고사했다”면서 “감독대행직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당황스러웠겠습니다.

정말 당황스러웠죠. (잠시 침묵하다가) 하지만, 누구든 맡아서 그날 경기를 치러야 했습니다. 팀을 위해 누군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면, 이글스로부터 많은 걸 받았던 제가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정신 바짝 차리고 한 번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감독대행이 되고서 처음 주재한 선수단 미팅에서 ‘책임감’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의미였습니까.

선수들에게 “이번 일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했어요. 당시엔 그렇게 하는 게 ‘팀 안정화’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줬어요.

감독대행을 맡았을 당시 한화는 리그 9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육성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시즌 초반엔 팀 성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팀의 미래를 위해 ‘육성’이라는 토끼까지 잡아야 했어요. 하지만 선수, 코칭스태프 할 거 없이 모두 지쳐 있던 시기였죠. 네, 성적에 대한 부담이 정말 만만치 않았어요.

그러다 ‘대반전’이 찾아왔습니다.

(쑥스럽게 웃으며) 8월 이후요?

그렇습니다. 8월 이후 한화는 전반기와 비교해 전혀 다른 팀이 됐습니다. 주전 선수 대부분이 부상으로 빠졌지만, 8월 1일부터 시즌 종료까지 팀 성적만 따지자면 23승 1무 24패로 5할 승률에 가까운 호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팀엔 확실히 악재였어요. 하지만, 젊은 선수들에겐 오히려 그게 기회였을지 몰라요. 전 우리 팀 젊은 선수들의 간절함이 후반기 한화에 큰 '활력소'가 됐다고 봐요. 그 젊은 선수들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기회였어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젊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결과가 팀 성적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한화의 달라진 팀 분위기

이상군 감독대행 "즐겁지 않으면 야구가 아니다."

'이글스 레전드'들. 사진 좌로부터 강석천, 한용덕, 이상군, 송진우, 장종훈(사진=한화)
'이글스 레전드'들. 사진 좌로부터 강석천, 한용덕, 이상군, 송진우, 장종훈(사진=한화)

언제부터인가 한화 선수들을 보면 그라운드나 더그아웃에서나 즐겁게 야구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선수들에게 항상 “즐겁게 하자”고 합니다. 처음 팀을 맡았을 때, 선수들에게 가장 먼저 한 말도 “눈치 보지 말라”였어요. 눈치 보고, 주눅 들어 있는데 어떻게 즐겁게 야구할 수 있겠습니까. 힘들어도 웃고, 즐겨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가진 걸 모두 사용하고, 보여줄 수 있어요.

하지만, 정작 감독대행은 더그아웃에서 좀체 웃질 않던데요.

솔직히 더그아웃에선 표정 관리가 쉽지 않아요. 경기 상황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제각각입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화가 날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죠. 하지만, 제가 표정 관리를 하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요. 항상 그 점에 유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표정 변화가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거 같아요(웃음).

좋은 팀 분위기가 만들어졌음에도 주전 선수 대부분이 시즌 내내 ‘서산 퓨처스 훈련장’을 오갔습니다. 가장 답답해 했던 사람을 굳이 꼽는다면 이 감독대행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어디 저만 답답했겠습니까. 구단도 그렇고, 선수, 코칭스태프 할 거 없이 모두 비상이었죠. 분명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모두 잘 이겨냈습니다. 젊은 선수들이 부상 선수들의 빈 자릴 잘 메워줬어요. 다시 한번 우리 선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부상자가 있다면 그게 누구였을지 궁금합니다.

(김)범수 부상이었죠. 범수는 (김)재영이와 함께 우리 팀 선발진을 이끌어 가야 할 선수예요. 재영이는 나름 자기 자릴 찾고 있어요. 범수가 부상 없이 꾸준히 등판했다면 어떤 활약을 보여줬을까, 정말 궁금합니다.

언급하신 것처럼 올 시즌엔 김재영의 성장세가 돋보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재영이가 더그아웃을 보지 않더군요. 예전엔 볼넷이나 안타를 맞으면 더그아웃만 쳐다봤어요. 그런데 시즌이 흐를수록 그런 게 사라졌어요.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단 뜻입니다. 기회를 줘도 못 잡는 선수가 많아요. 재영인 스스로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잡았어요.

감독대행 이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투수 가운데 한 명입니다. 젊은 투수들에게 주로 어떤 점을 강조합니까.

특별한 건 없어요. 젊은 투수들은 마운드에 올라가면 무조건 잘 던져야 한다는 생각만 해요. 그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거죠(웃음). 전 투수들에게 볼넷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맞더라도 상대 타자를 겁내선 안 돼요. 끝까지 맞붙어야 합니다. 투수는 깨지면서 성장하는 포지션이니까요.

‘건강야구’ 외친 이상군 감독대행

“당장 눈앞의 성적에 연연하면 결국 피해는 선수들이 입게 됩니다.”

이상군 감독대행은 결코 흥분하지 않는다. 조용하지만, 논리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항의한다(사진=엠스플뉴스)
이상군 감독대행은 결코 흥분하지 않는다. 조용하지만, 논리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항의한다(사진=엠스플뉴스)

야구계에선 올 시즌 이 감독대행의 야구를 ‘건강야구’로 부르곤 했습니다.

저도 들었습니다(웃음).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 전 ‘건강’이라고 생각해요. 건강해야 멋진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습니다. 어디가 좋지 않으면 멋진 플레이를 기대할 수 없어요. 이걸 팬들이 먼저 아세요. 물론 시즌을 치르다 보면 부상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저와 구단이 할 일은 그걸 최소화하는 겁니다.

어느 야구해설가가 그러더군요. “최근 한화 경기를 보면 선수들을 무리하게 가동하지 않으면서도 경기에서 이긴다”고. 어느 감독이나 혹사와 거릴 두고 싶어하지만, 당장의 승리가 더 달콤하기에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곤 합니다.

(잠시 침묵하다가) 제가 현역 시절엔 선발투수면 무조건 완투해야 했어요. 제 현역 시절 별명이 ‘고무팔’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원체 나오면 오래 던졌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릅니다. 지금은 보직의 분업화가 확실한 시대에요. 옛날 기억만 떠올리고서 팀을 운용해선 안 됩니다. 많이 던진 선수가 있으면 최대한 쉬게 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정확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저도 감독대행을 하고서 참 조바심 날 때가 많았어요.

어떻게 이겨내셨습니까.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조바심이 생길 때가 정말 많아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지도자가 반드시 참아내야 합니다. 어떻게 이겨낼 것도 없습니다. 그건 무조건 이겨내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게 정말 힘들었어요.

감독대행으로 한 시즌을 보내면서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고 들었습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여러 어려움이 한 번에 몰려왔어요.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여태껏 많은 감독님을 옆에서 봐왔습니다. 이제야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의 삶도 조금은 달라졌을 듯합니다.

‘확’ 달라졌죠. 일단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어요(웃음). 경기가 끝나도 집이나 숙소에 들어가면 밤새 야구 생각에 빠집니다. 생활 패턴도 달라졌어요. 제가 원래 어딜 가든 아침만큼은 꼭 챙겨 먹는 편인데, 요샌 거르는 게 일상이 됐어요.

밤새 어떤 야구 생각에 빠졌을지 궁금합니다.

당일 경기와 다음 날 경기 내용을 비교하면서 여러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다 보면 보통 새벽 3, 4시를 넘기기 일쑤예요. ‘다음 날 상대 투수는 누굴까. 타순은 어떻게 짤까’하는 생각부터 시작해 다양합니다(웃음)

감독대행직을 수락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까.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당시엔 누구든 이 자릴 맡아야 했어요. 제안이 왔을 때도 크게 두렵거나 걱정되진 않았습니다. ‘그냥 한번 부딪혀 보자’하는 마음이 더 컸어요. 당시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대행직 때문에 전전긍긍하진 않았습니다.

한화 이글스에 대한 애정이 큰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연하죠. 전 이글스가 창단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이 팀에만 있었습니다. 은퇴 이후 잠시 다른 구단 프런트로 외도한 적이 있지만, 늘 이글스에 있거나 그 주변을 맴돌았어요. 제가 이글스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많은 팬도 같은 마음이시리라 봅니다.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항상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상군 "감독이요? 하늘이 정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한화 팬들은 이상군 감독대행을 ‘마음씨 좋은 감독님’이라고 부른다. 이 대행은 팬들의 요청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대행에게 그 이유를 묻자 “여태껏 자신이 받은 사랑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한화 팬들은 이상군 감독대행을 ‘마음씨 좋은 감독님’이라고 부른다. 이 대행은 팬들의 요청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대행에게 그 이유를 묻자 “여태껏 자신이 받은 사랑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다소 민감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네, 얼마든지(웃음).

감독대행으로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앞으로의 거취,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주위에서 그런 이야길 자주 하시는데. 솔직히 말하면 전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마음이 편하다?

정식 감독을 해본 적이 없어요.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한 시즌을 이끌 수 있던 거 같아요. 조급함보단 긍정적인 마음으로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절대 후회하지도 않아요. 올 시즌 팀이 조금 변했단 점에서 나름 만족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앞선 질문의 연장 선상입니다. 한화 새 감독 자릴 놓고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화 감독에 대한 열망, 있지 않으실까 봅니다.

일단 올 시즌 팀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구단에서 제게 101경기를 맡겨주셨지만, 만족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어요. 프로는 성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감독 선임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남겨진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감독 자리의 매력,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매력보단, 글쎄요. 참 외로운 자리였어요. 감독은 모든 걸 안고 가는 사람이에요. 어디 가서 제 안에 있는 걸 다 털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감독대행을 하면서 한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결국 ‘소통’이라는 겁니다. 현장은 늘 프런트와 사소하게라도 부딪히게 돼 있어요. 그걸 막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걸 최소화할 순 있어요. 바로 소통을 통해서입니다. 지금 한화는 ‘소통하는 구단’이 됐다는 생각입니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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