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웅의 꿈은 ‘박세웅’이란 이름으로 최고가 되는 것이다. “그 정도 욕심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자신감을 보인 박세웅이다. 롯데 에이스다운 당찬 각오다(사진=엠스플뉴스)
박세웅의 꿈은 ‘박세웅’이란 이름으로 최고가 되는 것이다. “그 정도 욕심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자신감을 보인 박세웅이다. 롯데 에이스다운 당찬 각오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 에이스는 언제나 외롭다. 고독한 그 길을 홀로 걸어야 한다. 고(故) 최동원이 그랬고, 염종석도 그랬다. 마운드에 선 그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던 이유다. 이제 한 청년이 그 길에 도전한다. 이번에도 안경을 꼈다. 눈매 역시 날카롭다. 선배들의 그것과 닮았다.

‘안경 에이스’ 박세웅이 첫 포스트시즌 등판에 나선다. 롯데 조원우 감독은 4차전 선발투수로 박세웅을 예고했다. 이보다 더 극적일 순 없다. 생애 첫 가을 야구. 그것도 양 팀의 운명을 쥔 5차전에 그가 등판한다.

애초 박세웅의 선발 등판은 10월 12일 NC 다이노스와의 4차전 경기였다. 하지만, 이날 오전부터 내린 비로 경기는 우천 취소됐고, 조 감독은 다음 날 선발투수로 박세웅 대신 조시 린드블럼을 내세웠다. 롯데 한 관계자는 “린드블럼의 컨디션이 ‘최상’이란 점도 있었지만, (박)세웅이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한 코칭스태프의 배려가 있던 것”으로 풀이했다.

박세웅에겐 아쉬움이 컸다. 박세웅은 이날 더그아웃에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생애 첫 포스트시즌 등판이 이렇게 끝나버리진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올 시즌 박세웅은 비와 인연이 깊다. 박세웅이 선발 등판하는 날이면 비가 내리다 그치거나, 계속 쏟아져 경기가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도 안경 에이스의 등판을 시기하듯 빗줄기는 더욱 더 거세졌다.

그리고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롯데의 4차전 승리로 5차전 등판 기회를 잡은 것이다. 박세웅에겐 절호의 기회다. 이번에야 말로 가을 야구의 진짜 재미를 즐길 차례다.

'안경 에이스'에겐 가을을 즐길 권리가 있다.

박세웅은 어려움을 즐길 줄 안다. 그간 마운드에서 겪었던 수많은 역경과 부담감을 견뎌왔기 때문이다. 이젠 가을 무대에서 이를 또 한 번 증명할 시간이 왔다. ‘안경 에이스’의 대관식은 이미 시작됐다(사진=엠스플뉴스)
박세웅은 어려움을 즐길 줄 안다. 그간 마운드에서 겪었던 수많은 역경과 부담감을 견뎌왔기 때문이다. 이젠 가을 무대에서 이를 또 한 번 증명할 시간이 왔다. ‘안경 에이스’의 대관식은 이미 시작됐다(사진=엠스플뉴스)

박세웅은 올 시즌 NC전에 3경기 선발 등판해 2승 무패 평균자책 4.50을 기록했다. 사직구장에선 올 시즌 2번 만나 1승 평균자책 4.84를 거뒀다. 7월 1일 6이닝 3실점, 8월 31일 7이닝 4실점으로 비교적 나쁘지 않은 투구였다.

최근 3년간(2015-17) 박세웅과 NC 중심 타자들의 상대 전적을 살펴보면 나성범에게 15타수 3안타로 강했고, 박민우에겐 19타수 4안타, 모창민은 5타수 1안타, 손시헌을 11타수 2안타로 막았다. NC 외국인 타자 재비어 스크럭스와의 승부에선 두 번 만나 모두 무안타로 돌려세웠다. 5차전 극적인 승리를 기대하는 이유다.

박세웅은 올 시즌 최고의 투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평균자책 3.68로 리그 상위 10명 가운데 이름을 올렸고, 생애 첫 두 자릿수 승리(12승)에 성공했다. 170이닝(171.1) 이상을 소화한 투수 가운데서도 가장 어렸다. 투수 WAR(대체선수 승리기여)에선 4.49로 전체 6위를 기록했다.

1995년생. 아직 만 21세의 불과한 박세웅이지만 수많은 역경을 홀로 견뎠다. 어린 시절부터 쏟아졌던 기대감과 프로 데뷔 이후 찾아온 ‘안경 에이스'란 부담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전반기 롯데 선발진이 흔들릴 땐 마운드를 이끌었고, 후반기엔 치열한 순위 다툼에 쉼 없이 공을 던져야 했다. 그때마다 ‘팀을 위해 더 잘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한 박세웅이다. 만 21세 에이스의 헌신은 롯데를 가을로 이끈 자양븬이었다.

야구계 일부에선 시즌 막판 ‘박세웅 위기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는 박세웅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는 지금까지 기대치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충분히 제 몫을 다했단 이야기다. 한 코치는 “(박)세웅이는 올 시즌 충분히 잘해줬고, 마운드 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포스트시즌 어떤 상황에 등판해도 이상할 게 없는 투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세웅에게 이제 필요한 건 부담감을 내려놓는 일이다. 에이스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생애 첫 가을 야구를 마음껏 즐겨야 한다. 그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최동원도, 염종석도 그러지 못했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LA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도 가을만 되면 부담감에 흔들리곤 했다. 모두가 가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까닭이다.

‘안경 에이스’의 대관식은 끝났다. 박세웅은 이미 '에이스'다.

올 초, 그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내가 등판하는 날엔 부산 팬들이 '오늘은 이기겠네'하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5차전에 임하는 박세웅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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