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혁의 가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달려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았다(사진=두산)
류지혁의 가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달려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았다(사진=두산)

[엠스플뉴스]

류지혁의 가을 야구 첫 선발 출전은 아쉽게 마무리됐다. 그래도 여전히 류지혁을 믿어야 할 두산이다. 류지혁의 가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차전의 아쉬움을 만회할 능력을 지닌 선수가 바로 류지혁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어렵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잘하려고 마음먹을수록 일은 더 안 풀리기 마련이다. 긴장하지 말고 평소대로 하자고 마음으로 되뇌어도 정작 현실로 다가오면 몸이 굳는다. 그리고 그 실수 속에서 ‘다음’을 위한 교훈을 얻는다. 바로 두산 베어스 내야수 류지혁의 상황이 이렇다.

10월 17일은 류지혁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포스트시즌이라는 큰 무대에서 생애 처음으로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상치 못한 기회였다. 어깨 부상으로 이탈했던 주전 유격수 김재호가 조기 복귀하면서 류지혁의 위치는 다시 백업 유격수로 가는 듯 보였다. 최근 플레이오프를 대비한 팀 훈련에서 류지혁도 “(김)재호 형이 돌아와서 다행이다. 내 마음이 편해졌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김재호의 몸 상태가 선발 출전이 가능할 정도까진 올라오지 못했다. 당연히 류지혁이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발 유격수라는 중책을 맡았다. 중요한 일전을 앞둔 훈련에서 류지혁의 서글서글한 미소는 그대로였다. 가장 먼저 그라운드로 나온 류지혁은 타격 훈련과 번트 훈련, 그리고 수비 훈련까지 마치고 나서야 가장 늦게 발걸음을 라커룸으로 옮겼다.

옅은 미소 뒤에 숨겨진 류지혁의 긴장감은 취재진과 대화 속에서 새어 나왔다. 전날 자정에 잠을 청했지만, 류지혁은 2시간 넘게 몸을 뒤척였다. 어쩌면 1994년생의 어린 내야수에겐 당연한 불면의 밤이었다.

이런 류지혁을 다른 누구보다도 걱정스럽게 바라본 이는 김재호였다. 자신의 빈자리를 잘 채워줘야 할 류지혁에게 김재호는 따뜻하면서도 냉철한 조언을 건넸다. 김재호는 “(류)지혁에게 물어보니 조금 긴장된다고 하더라. ‘긴장하면 진다. 네가 긴장 안 해야 이길 수 있다. 정규시즌 가운데 한 경기라고 생각하고 뛰어라. 긴장되면 몰래 욕이라도 하면 된다’고 전했다. 지혁이 같은 어린 선수가 이런 큰 무대를 경험한단 건 미래에 큰 자산이 될 거다”라며 고갤 끄덕였다.

팀 훈련이 끝난 뒤 심호흡을 한 차례 가다듬은 류지혁은 떨리면서도 기대되는 마음을 내비쳤다. 류지혁은 “(김)재호 형의 조언대로 특별하게 무얼 준비하고 신경 쓰기보단 평상시대로 훈련했다. 재호 형은 내 나이 때 한국시리즈(2008년)에 나갔다고 하더라. (오)재원이 형도 공을 한 번 잡거나 1회가 끝나면 긴장은 다 풀릴 거라고 말했다. 형들도 다 ‘나가서 하고 싶은 대로 뛰어라’고 응원해주셨다”며 애써 미소 지었다.

연이은 실수와 불운, 류지혁의 꼬인 하루

10월 17일 류지혁의 하루는 꼬여도 너무 꼬였다(사진=두산)
10월 17일 류지혁의 하루는 꼬여도 너무 꼬였다(사진=두산)

다행히 1회는 무사히 넘겼다. 선발 마운드에 오른 더스틴 니퍼트의 호투로 2회까지 류지혁에게 위협적인 타구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3회부터가 문제였다. 3회 초 1사 뒤 김태군이 유격수 왼쪽 방면으로 깊숙한 땅볼 타구를 날렸다. 김태군의 내야 안타성 타구를 잘 잡아낸 류지혁은 1루로 힘껏 공을 던졌다. 송구가 조금 짧았다. 1루수 오재일이 원바운드 송구를 잡지 못하면서 공이 뒤로 빠졌다. 그사이 타자 주자 김태군은 2루까지 내달렸다.

공식 기록은 유격수 왼쪽 내야 안타 뒤 유격수 송구 실책으로 2루 진루였다. 두산의 상황은 계속 꼬이기 시작했다. 이어진 1사 1, 3루에서 1루 주자 김준완이 도루를 시도했고, 포수 양의지가 2루로 송구했다. 아웃 타이밍이었지만, 이번엔 류지혁의 글러브와 주자가 충돌하면서 제대로 된 포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만약 실점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류지혁으로선 전화위복이 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니퍼트가 박민우에게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맞으면서 1-2 역전을 허용했다. 류지혁의 아쉬움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17일 적시타를 기록한 뒤 팀 벤치를 향한 류지혁의 세리모니 장면. 남은 경기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오길 기대하는 두산이다(사진=두산)
17일 적시타를 기록한 뒤 팀 벤치를 향한 류지혁의 세리모니 장면. 남은 경기에서도 이런 장면이 나오길 기대하는 두산이다(사진=두산)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류지혁은 팀이 3-2로 역전한 4회 말 2사 1, 3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팀이 달아날 기회에서 류지혁은 상대 선발 장현식과의 풀카운트 승부 끝에 1타점 우전 적시타를 날렸다. 포스트시즌 첫 안타가 중요한 순간 나오자 류지혁은 두산 벤치를 손으로 가리키는 세리모니를 선보였다. 수비 실수를 짜릿한 적시타로 만회하자 저절로 나온 몸짓이었다.

하지만, 그 짜릿한 기분은 얼마 가지 않았다. 두산은 5회 초 곧바로 재비어 스크럭스에게 역전 만루 홈런을 맞고 4-6 재역전을 당했다. 6회 초 수비에서도 손시헌의 유격수 방면 땅볼 타구가 불규칙 바운드되는 불운을 겪은 류지혁이었다. 그렇게 류지혁의 포스트시즌 첫 선발 출전도 찜찜하게 마무리됐다. 류지혁은 6회 말 타석에서 삼진을 기록한 뒤 7회 초 수비 직전 김재호와 교체됐다.

여전히 두산은 류지혁을 믿는다

1차전을 앞둔 류지혁의 얼굴에선 긴장감이 다소 엿보였다. 1차전의 아쉬움을 만회해야 할 류지혁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1차전을 앞둔 류지혁의 얼굴에선 긴장감이 다소 엿보였다. 1차전의 아쉬움을 만회해야 할 류지혁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결국, 아쉬움만 가득 남은 류지혁의 가을 야구 첫 선발 출전이 됐다. 류지혁에게 주어진 6이닝의 임무는 예상보다 짧았지만, 선수 자신에겐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팀도 5-13으로 패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1차전 승리를 NC에 내줬다. 이렇게 첫 단추가 어긋났지만, 그래도 류지혁을 믿어야 할 두산이다. 김재호는 여전히 선발 출전으로 타격 소화가 힘든 상황이다. 2차전에서도 류지혁의 선발 유격수 출전이 유력하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경기 뒤 “(류지혁이) 긴장했는지는 자신만이 잘 알지 않겠나. (김태군의 타구는) 잘 잡았는데, 송구하는 동작에서 흔들린 것 같다. 김재호의 선발 출전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태다. 내일은 (류지혁이)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잘할 거로 믿는다”며 류지혁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류지혁의 심리적인 회복 여부가 관건이다. 이미 지나간 1차전 결과는 씁쓸한 패배로 마무리됐다. 이 한 경기로 류지혁의 가을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남은 경기에서 류지혁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처음으로 크게 넘어진 만큼 일어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과거 팀 동료였던 김현수도 가을 야구의 트라우마를 떨쳐내기 위해 노력을 거듭해 극복에 성공했다. 좌절만 하고 있기에는 류지혁의 나이는 너무나도 젊다.

류지혁은 이 위기를 극복할 만한 실력과 ‘멘탈’을 충분히 지닌 선수다. 분명히 정규시즌에서 보여준 류지혁의 활약은 대단했다. 팬들도 단 한 경기로 너무 쓴소리만을 전하기보단 류지혁의 향후 수없이 많이 남은 가을 야구를 위해 위로와 격려를 먼저 보내주면 어떨까. 류지혁의 가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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