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통산 기록 전산화, KBO-스포츠투아이

“전산 작업 끝내고, 검수 작업 중”

+기록위원, 투아이 전직 관계자

“전산 작업 미완료. 10년째 검수가 말이 되나”

+KBO의 모순 “투아이와 별도계약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산 기록 판매수익의 절반은 투아이 몫, 투아이 외

다른 업체는 KBO 기록지를 사용할 수 없다.“

KBO는 이미 통산 기록 전산화 입력 작업이 2009년 이전에 끝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완료 시점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산화 작업 결과물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KBO는 이미 통산 기록 전산화 입력 작업이 2009년 이전에 끝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완료 시점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산화 작업 결과물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2008년 5월, 많은 야구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소식이 들렸다. 당시 KBO(한국야구위원회) 윤병웅 기록위원장은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프로 원년(1982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경기 기록지를 전산화로 바꾸는 방대한 작업을 완료했다”며 “2004년 시작한 작업이 3년여가 걸린 끝에 모두 끝났다”고 전했다.

이는 굉장한 소식이었다. 윤 위원장의 말대로라면 기록지에만 남아 있던 과거 야구 기록이 드디어 체계적으로 전산화됐다는 걸 의미했다. 미국, 일본야구처럼 더욱 상세한 세부 야구통계를 산출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만, 윤 위원장은 “경기 기록지를 전산화했다는 것만으로 일이 모두 끝난 건 아니다. 전산입력 후 최종 검증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전산화한 기록이 일반 대중에 공개되기까진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KBO 통산 기록' 전산화 소식은 2009년 12월 한 매체 보도를 통해 다시 알려졌다. 당시 기사에서 KBO 관계자는 “통산 기록 전산화 작업은 이미 입력을 마쳤다. 현재는 일일이 대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늦어도 내년(2010년) 말까진 모든 경기 기록의 전산화가 완료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윤 위원장의 글에선 불분명했던 작업 완료 시점이 KBO 관계자의 입을 통해 ‘2010년 말’로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2010년 말’이 됐지만, KBO 통산 기록 전산화가 완료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2011년 7월, 한 매체의 야구 기록 특집기사를 통해 다시 한번 기록 전산화 상황이 언급됐다.

이 기사에서 KBO는 “현재 전산화한 프로야구 30시즌의 기록지를 최종 검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빠르면 내년(2012년)께 프로야구 30년 전체 기록을 다양한 방식으로 야구팬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말’로 예상한 작업 완료 시점이 ‘2012년 말’로 다시 한번 늦춰지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2012년 말에도 ‘약속의 날’은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7년 11월에도 ‘KBO 통산 기록 전산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2007년 완료해 검증 절차만 남겨 뒀다’던 36년간의 KBO 통산 기록 전산화는 어째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성되지 않은 것일까.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이 그 어두운 이면을 취재했다.

KBO 기록위원의 증언 “KBO 통산 기록 전산화, 실제론 완성되지 않은 상태”

1987년 4월 12일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과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의 맞대결이 기록된 프로야구 공식 기록지. 두 투수는 프로야구 최고의 레전드로 꼽히지만, 두 투수의 기록은 대략적인 통산 기록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프로야구 전체 통산 기록이 전산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진=엠스플뉴스)
1987년 4월 12일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과 롯데 자이언츠 최동원의 맞대결이 기록된 프로야구 공식 기록지. 두 투수는 프로야구 최고의 레전드로 꼽히지만, 두 투수의 기록은 대략적인 통산 기록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프로야구 전체 통산 기록이 전산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진=엠스플뉴스)

2000년은 KBO리그 기록 역사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온 해다. 이해부터 현장 기록원의 컴퓨터를 이용한 온라인 경기기록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경기 상황의 실시간 문자중계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2인 1조로 짝을 이룬 KBO 기록위원 가운데 한 명이 기록지에 수기 기록을 할 때, 나머지 한 명이 온라인 기록을 담당하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2002년 KBO는 프로야구 통계 전산화 및 공식기록업체로 ‘스포츠투아이(이하 투아이)’를 선정, 경기기록과 데이터베이스 관리작업을 ‘투아이’에 맡겼다. 투아이는 자체 개발한 야구 기록 입력 프로그램 ‘이지 스코어북’을 도입해, 구장의 KBO 기록위원이 현장 상황을 입력하면 곧장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도록 했다.

기록지로 입력한 기록과 전산으로 입력한 내용을 대조해 곧장 틀린 부분을 찾게 되면서 KBO 공식 기록의 오류 가능성은 현저히 줄었다.

무엇보다 전산화 시스템 구축 덕분에 더욱 상세하고 다양한 세부 통계를 가공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엔 이승엽의 '수요일 경기 타율'을 파악하려면, 수요일에 삼성이 치른 모든 경기 기록지를 일일이 뒤져 계산해야 했다.

하지만, 전산화가 된 뒤엔 ‘수요일’을 조건 검색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 현재 KBO 홈페이지에선 2010년 이후 선수 개인 기록에 대해선 ‘투·타 유형’ ‘날짜’ ‘상황’ 등 세부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역대 기록 역시 원하는 기록으로 ‘정렬’하는 것만으로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상태다. 하지만, 1982년부터 2009년까진 이 같은 세부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

만약 프로야구 초창기 기록까지도 이처럼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면 ‘1986년 장효조의 좌투수 상대 타율’이나 ‘1984년 최동원의 삼성전 피안타율’ 같은 기록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KBO가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전체 통산 기록을 모두 전산화한다면 특정일의 경기 기록까지 모두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문제는 KBO가 2007년 과거 기록 전산화 작업을 ‘완료’했다고 밝혔음에도, 10년이 지나도록 공개는커녕 전산화가 실제로 이뤄졌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2009년에도, 2010년에도, 2012년에도 매번 KBO는 ‘내년까진 완료할 것’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엠스플뉴스 취재팀이 접촉한 일부 KBO 기록위원과 야구 관계자들은 ‘KBO의 통산 기록 전산화 완료’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모 KBO 기록위원은 엠스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KBO가 외부에 홍보했던 것과 달리 실제론 기록 전산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안다. 솔직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조차 없다”며 “만약 기록 전산화가 이뤄졌다면 KBO 기록위원들이 모를 리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야구 관계자도 “KBO가 기록 전산화 작업을 위해 공식 기록지를 전부 특정 외부 업체인 투아이에 넘겼다. KBO가 야구 역사가 담긴 소중한 자산인 기록지를 특정 업체에 넘겨주고 손을 놓았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일부 기록지가 유실됐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며 “유실된 기록지들 때문에 KBO 통산 전산화 작업이 몇 년째 차질을 빚고 있다는 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KBO·스포츠투아이의 10년째 같은 소리 “통산 기록 전산화는 다 됐다. 입력을 다 한 다음에 대조하는 작업 하고 있다.”

KBO 경기 기록은 2인 1조다. 기록지에 수기로 입력하는 기록위원과 전산 입력하는 기록위원이 함께 경기 기록을 책임진다. 야구 역사를 기록하는 중요한 업무인 만큼, 자격을 갖춘 기록위원만 이 업무를 원활하게 할 수 있다(사진=엠스플뉴스)
KBO 경기 기록은 2인 1조다. 기록지에 수기로 입력하는 기록위원과 전산 입력하는 기록위원이 함께 경기 기록을 책임진다. 야구 역사를 기록하는 중요한 업무인 만큼, 자격을 갖춘 기록위원만 이 업무를 원활하게 할 수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과연 프로야구 전체 통산 기록 전산화는 미완성된 상태일까.

KBO 문정균 홍보팀장은 “1982년부터 2017년까지 통산 기록은 모두 전산화돼 있다. 단지 홈페이지를 통해 부분적으로 공개했을 뿐”이라며 일부의 ‘미완성 의혹’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강조했다.

스포츠투아이 김봉준 부사장도 8월 엠스플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입력한 기록을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산 입력을 종이 기록지와 비교 중이다. 기록이 다른 부분이 많이 나오고, 사람은 한정돼 있다 보니 힘든 점이 있다. 지금도 계속 하는 중”이란 말로 통산 기록 전산화 작업은 이미 끝났고, 지금은 검수 작업을 하고 있다고 알렸다.

‘통산 기록 전산화 작업을 끝내지 못했다’와 ‘끝냈다’란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엠스플뉴스가 접촉한 전직 투아이 직원들은 전자의 주장에 손을 들었다. 전직 투아이 직원 A 씨는 “퇴사한 지 몇 년 지나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이란 단서를 달고서 “재직 당시만 놓고 보면 과거 기록이 모두 전산화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다른 전직 투아이 직원 B 씨도 “재직 당시 투아이에서 기록 전산화 입력 작업을 진행하는 걸 본 기억이 있다”며 “하지만, 내가 근무할 때까지도 전산화 작업은 미완료된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A, B 씨는 KBO가 ‘전산화가 완료됐다’고 주장한 2009년 이후에도 투아이에서 일했던 이들이다.

기록 입력 작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검수 작업만 하고 있다는 해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KBO 기록위원은 “입력 작업이 완료된 지가 벌써 10년이 돼 간다. 그동안 계속해서 검수 작업을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인 업체가 '계약한 업무를 10년째 완료하지 못하고 있다'면, 정상적인 계약 관계에선 일찌감치 계약이 해지됐을 일”이라며 “통산 기록이 완료됐다면 최종 검수를 KBO 기록위원들이 담당해야 할 텐데, 지금까지 그와 관련해 KBO나 투아이로부터 어떤 이야기도 들은 바가 없다”고 밝혔다.

"투아이와 통산 기록 전산화를 위해 별도의 계약 하지 않았다“는 KBO. 그러나 통산 기록 판매수익의 절반은 투아이 몫, 투아이 아닌 다른 업체는 통산 기록지 전산화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KBO

엠스플뉴스는 8월 처음 이 문제를 취재하며 투아이 측의 답변을 요청했고, 전화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이후 다른 의문점에 대해 대면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으로 답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투아이 측에선 연락을 받지 않고 답변을 미뤘다. 경기도 성남시 투아이 사무실을 찾자, 투아이 김봉준 부사장은 “메일로 질문해 달라“며 취재진을 내보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는 8월 처음 이 문제를 취재하며 투아이 측의 답변을 요청했고, 전화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이후 다른 의문점에 대해 대면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으로 답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투아이 측에선 연락을 받지 않고 답변을 미뤘다. 경기도 성남시 투아이 사무실을 찾자, 투아이 김봉준 부사장은 “메일로 질문해 달라“며 취재진을 내보냈다(사진=엠스플뉴스)

이런 지적에 대해 KBO 관계자는 “기록 전산화 작업을 위해 별도 계약을 체결하진 않았다”는 의외의 답변을 들려줬다.

이 관계자는 처음 전산화 작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KBO와 투아이가 서로 기록 전산화의 필요성을 느껴 시작했다. 우리가 투아이에게 (전산화 업무를) 돈 주고 시키는 건 아니다. 투아이가 (기본 업무와) 병행해서 하는 거다. 따라서 무조건 (빨리 하라고) 채근할 순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KBO의 역대 기록지를 전산화하는 중요한 사업을 별도 계약 없이, 특정 업체가 ‘가외 업무’식으로 진행하도록 맡겼다는 뜻이다.

별도 계약조차 없으니 ‘기록 전산화로 완성한 기록의 소유권’ 역시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KBO 관계자는 “데이터는 KBO가 가진다. 단, 그걸 가공해서 판매할 수 있는 건 투아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KBO가 돈을 주고 한 게 아니라, 투아이가 본인들의 비용을 들여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기록을) 판매할 권한이 있다. 판매수익은 KBO와 투아이가 5대 5로 나누는 것으로 안다.”

‘별도의 계약이 없다’면서도 기록의 소유권은 KBO와 투아이가 반반씩 나누어 가진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은 다음이었다.

KBO 관계자는 ‘그렇다면 다른 업체가 전산화된 1982년 이후 기록을 사용하려면 어디에 문의해야 하는가’라는 엠스플뉴스의 질의에 “당연히 투아이에 돈을 주고 사야 한다”고 답했다.

또 ‘만일 다른 업체가 전산화 사업을 하겠다고 KBO에 기록지 제공을 요청할 경우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그건 안 된다. 우리와 계약관계인 업체는 투아이”라고 못을 박았다.

결국 1982년 이후 역대 통계자료를 이용하려면, 벌써 10년째 진행 중인 투아이의 전산화 작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투아이에게 돈을 주고 구매해 이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엠스플뉴스의 법률자문에 응한 한 변호사는 "이런 구조는 투아이에 지나친 독점 특혜를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구 기록은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미국에선 ‘기록지에 적힌 단순 야구 기록은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국내 저작권법상으로도 단순한 ‘사실 전달’엔 저작권이 없다. 특히나 1982년부터 2017년까지 KBO리그 경기를 실제 현장에서 기록한 건 특정 업체가 아닌 KBO 기록위원들이다. 전산화가 이뤄진 2000년 이후론 기록위원들이 컴퓨터에 기록을 입력하면, 프로그램을 통해 그 기록이 투아이에 전송되는 방식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쌓았다. 그런데도 KBO 역대 기록지를 전산화할 권리, 기록지를 입력해 만든 ‘로 데이터’를 판매할 권리를 투아이에게만 준다는 건 지나친 특혜 이상임이 틀림없다."

[2편 : '숫자로 하나된 유착, 야구 기록과 골프 접대'에서 계속]

엠스플뉴스 탐사보도팀

박동희, 배지헌, 김원익, 전수은, 김근한, 이동섭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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