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8월의 무더위. 그런데도 무거운 장비를 착용하고, 한여름 땡볕 아래 앉은 이들이 있다. 바로 포수다. 포수들의 속사정을 엠스플뉴스가 취재했다.

그라운드의 파수꾼 '포수'(사진=엠스플뉴스)
그라운드의 파수꾼 '포수'(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포수(捕手)는 할 일이 많다’.

타격은 물론이고 내야 수비와 포구, 블로킹, 도루 저지 등 신경 쓸 일이 산더미다. 투수를 리드하고, 팀 분위기를 이끄는 일도 포수 몫이다. 포수를 가장 힘든 포지션으로 꼽는 이유다.

‘포수는 힘들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9회 세 번째 아웃 카운트까지 잡아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무거운 포수 장비에 기본 3시간 이상을 쭈그려 앉는 건 기본이다. 한여름 무더위엔 온몸이 땀 천지다.

‘포수는 팀에 없어선 안 될 존재다.’

포수들은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이를 자신의 숙명으로 알고, 받아들인다. 투수와 함께 상대 타자를 잡아내고, 최후의 수비수로서 달려오는 주자를 온몸으로 막아낸다. 이는 포수들이 헌신이 만들어 낸 숭고한 행위다.

KBO리그 최고의 포수들이 말하는 ‘홈플레이트 위의 삶’을 엠스플뉴스가 물었다.

그들이 포수를 선택한 이유

넥센 히어로즈 주전 포수로 자리 잡은 박동원(사진=엠스플뉴스)
넥센 히어로즈 주전 포수로 자리 잡은 박동원(사진=엠스플뉴스)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하소연이 있다. ‘괜찮은 포수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최근 KBO 신인드래프트만 봐도 안다. 상위 지명자 가운데 포수 포지션은 2, 3명 안팎이다. 통상적으로 다른 포지션보다 포수 자원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완성된 포수를 육성한다는 좋은 포수 재목을 지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포수 포지션을 꺼리는 학생 선수가 많았다. 이런 분위기는 가까운 일본도 다르지 않았다. KIA 타이거즈 나카무라 다케시 배터리 코치는 일본 야구계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 야구계에도 포수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사실 포수가 그렇게 재미난 포지션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재미없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조지마 겐지(전 한신 타이거즈)와 아베 신노스케(요미우리 자이언츠) 같은 공격형 포수들이 등장하면서 포수 포지션에 붐이 일어났습니다. 두 선수의 공이 정말 컸다고 봐야할 겁니다.”

그렇다면 KBO리그를 대표하는 포수들은 어떻게 험난한 '안방마님'의 길을 걷게 된 걸까.

나카무라 다케시 코치와 함께 대화 중인 KIA 타이거즈 포수들(사진=엠스플뉴스)
나카무라 다케시 코치와 함께 대화 중인 KIA 타이거즈 포수들(사진=엠스플뉴스)

롯데 자이언츠 주전포수 강민호는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초교 때 야구부 친구가 포수 장비를 입고서 경기를 지휘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어요. 그걸 보고 저도 무작정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됐습니다(웃음).”

강민호가 '자의'로 포수가 됐다면 두산 베어스 양의지는 '타의'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듬직한 체구가 감독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전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보다 덩치가 컸어요. 그 때문인지 감독님이 포수를 권하셨어요. 어찌 보면 그냥 시켜서 맡게 된 포지션이죠. 하지만, 지금은 절 상징하는 포지션이 됐습니다(웃음).” 양의지의 말이다.

넥센 히어로즈 박동원은 어쩔 수 없이 포수가 된 케이스다. 박동원은 송구 부담감을 극복하려다 포수가 됐다.

“처음엔 멀티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어요(웃음). 하지만, 제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송구 정확도나 캐칭 능력이 떨어졌던 거죠. 그러다 보니 다른 포지션을 맡게 되면 겁부터 났어요. 야구는 계속하고 싶고,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다 포수를 선택했어요. 마스크를 쓰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고.” 박동원의 말이다.

‘국가대표 포수’ NC 다이노스 김태군은 “포수를 선택하고서 후회가 많았다. 프로에 지명된 뒤에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성과는 없어 '왜 포수를 했나' 후회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포수의 진짜 매력을 느끼고 있다”며 해맑게 웃었다.

‘타격과 수비’,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강민호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수다. 통산 218개의 홈런이 이를 증명한다(사진=엠스플뉴스)
강민호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수다. 통산 218개의 홈런이 이를 증명한다(사진=엠스플뉴스)

현대 야구는 포수에게 많은 걸 요구한다. 안정된 수비는 기본이고, 정확한 타격

메이저리그엔 버스터 포지(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나 야디어 몰리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같은 포수들이 ‘완성형 포수’로 꼽힌다. 타격이면 타격, 수비면 수비 못하는 게 없다. KBO리그에선 강민호와 양의지 등을 완성형 포수로 평가한다.

타격과 수비를 모두 잡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베테랑’ LG 트윈스 정상호는 시대의 흐름을 강조했다. “예전엔 포수가 수비만 잘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주 였죠. 포수란 포지션이 워낙 체력 소모가 많고, 부담이 크다 보니 공격까진 바라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이젠 시대가 바꼈습니다. 최근엔 타격이 안 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로 가고 있어요.”

강민호는 KBO리그에서 몇 안 되는 완성형 포수다. 타석에서 KBO리그 통산 218개의 홈런을 때려냈고, 수비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저도 어려움 많았죠. 공격 신경 쓰랴, 수비 신경 쓰랴. 도무지 한 곳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 무엇보다 포수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옛날엔 포수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잖아요. 그러던 차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게 됐습니다. ‘이젠 포수도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하게 됐죠.” 강민호의 말이다.


양의지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에 성공했다. 강민호와 함께 KBO리그를 대표하는 완성형 포수로 평가받는다(사진=엠스플뉴스)
양의지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에 성공했다. 강민호와 함께 KBO리그를 대표하는 완성형 포수로 평가받는다(사진=엠스플뉴스)

양의지도 비슷한 생각이다. “포수에게도 공격과 수비가 모두 중요합니다. 제 경우엔 두 가지 상황에서 최대한 집중력을 유지하려는 편이에요. 집중력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면 작은 실수라도 최대한 줄일 수 있었습니다. 보통 수비 집중력이 유지되면 공격 집중력도 올라갔고요.”

kt 위즈 장성우는 포수가 타석에 섰을 때, 오히려 장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포수가 타석에 서면 유리한 점이 많아요. 상대 팀 포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상황에선 어떤 식의 리드를 가져갈지’ ‘어떤 공을 던질지’하는 식의 예측 말이죠. 제겐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반면, 김태군은 두마리 토끼보단 자신의 강점인 ‘수비’에 집중하겠단 뜻을 밝혔다.

“(단호하게) 전 공격엔 부담을 가지지 않습니다. 수비와 공격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건 특출난 포수들이나 가능한 일이에요. 아주 소수죠. 공격과 수비를 모두 잘하긴 정말 힘들어요. 전 타격에서 부족한 부분은 다른 작전으로 만회하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수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김태군의 다짐이다.

‘달콤, 씁쓸, 짜릿’ 포수의 맛

kt 위즈 포수 장성우는 투수들과의 대화를 중시한다. 서로 엇갈린 부분이 있다면 대화로 꽉 막힌 상황을 탈출한다(사진=엠스플뉴스)
kt 위즈 포수 장성우는 투수들과의 대화를 중시한다. 서로 엇갈린 부분이 있다면 대화로 꽉 막힌 상황을 탈출한다(사진=엠스플뉴스)

포수는 육체적으로만 힘든 게 아니다. 매경기 상대 전력을 분석하고, 상황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한 경기가 끝나면 이내 녹초가 된다.

장성우는 포수가 남들보다 많은 땀을 흘리지만, 그만큼 값진 것을 얻는다고 말한다.

“포수는 경기에 이겼을 때 큰 희열을 느껴요. 특히 점수를 많이 주지 않고, 팀이 이긴다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무더운 날씨와 4kg이 넘는 포수 장비, 쭈그린 자세 등으로 몸이 힘들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힘든 건 1회부터 9회까지 아웃 카운트 27개를 잡아내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한단 점이에요. 포수는 경기 중에 조금도 쉴 새가 없습니다. 수비 하지 않을 땐 더그아웃에서 다음 회를 분석해요. 힘들긴 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정상호는 포수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이겼을 때를 ‘짜릿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기에 이겼을 땐 팀을 구했단 쾌감에 짜릿함마저 느낀다. 포수에겐 ‘내가 리드하고 이끈 경기에서 승리한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정상호의 말이다.

‘수비형 포수’ 김태군은 올 초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수비만 놓고 본다면 KBO리그를 대표하는 포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진=엠스플뉴스)
‘수비형 포수’ 김태군은 올 초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수비만 놓고 본다면 KBO리그를 대표하는 포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진=엠스플뉴스)

김태군은 올해 초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 선발됐다. 대표팀 발탁은 김태군에겐 특별한 의미였다.

“감독님이 기회 주셔서 운 좋게 대표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제일 뿌듯한 건 이제 우리나라 야구도 ‘수비로 포수를 평가하는 시대’가 왔구나 하는 것이었죠.” 김태군의 말이다.

포수는 그라운드의 사령관이다. 늘 동료들과 호흡하고, 새로운 탈출법을 찾는다. 그런 의미에서 박동원의 소감은 조금 특별했다.

“경기에 자주 나가지 못할 땐, 선수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경기 출전 시간이 길어지면서,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됐고, 속마음까지 털어놓게 됐어요. 그 후부턴 경기 중에 서로 마음이 통하더라고요. 전 그런 과정이 포수만이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홈플레이트 위 안방마님’으로 살아간다는 것.

강민호는 포수를 ‘자신의 그림자’라고 표현했다(사진=엠스플뉴스)
강민호는 포수를 ‘자신의 그림자’라고 표현했다(사진=엠스플뉴스)

절대 쉽지 않은 길을 스스로 선택한 포수들. 그들에게 포수의 삶은 어떤 의미일까.

강민호에게 포수란 포지션은 떼려야 뗼 수 없는 단어다. “포수요? 마치 제 그림자와 같아요. 제가 가는 곳엔 언제나 ‘포수’란 단어가 따라다니거든요.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쭈욱 함께 할겁니다.” 강민호의 속내다.

양의지는 포수 마스크를 쓰고 정상을 누볐다. 포수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포수는 제 인생을 바꿔준 포지션입니다. 아마 제가 다른 포지션의 선수였다면 야구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포수는 절 여기 있게 해준 고마운 포지션입니다. 어렸을 땐 정말 지독하게 싫었는데. 이젠 제 입으로 고맙단 말을 하고 있네요(웃음).”

나카무라 코치는 ‘마무리 캐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정한 포수라면 9회 마지막 이닝까지 홈플레이트 위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단 뜻이다.

“일본에선 포수를 평가할 때 ‘마무리 캐치’를 강조합니다. 마무리 캐치란 결국, 경기 마지막까지 홈플레이트 위를 지키는 것을 말해요. 그러기 위해선 수비란 무기를 갖춰야 하고,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합니다. 포수로 롱런하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죠.” 나카무라의 말이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 포수 박경완. 날카로운 눈초리로 후배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KBO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 포수 박경완. 날카로운 눈초리로 후배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SK 와이번스 박경완 배터리 코치는 현역 시절 KBO리그를 대표하는 포수였다. 타석에선 314홈런을 기록했고, 수비에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야구계 일부에선 ‘포수계의 살아있는 교과서’로 통한다.

박 코치는 “KBO리그에서 포수 마스크를 쓴다는 건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현역 시절 늘 감사한 마음으로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더욱 노력했다. 요즘 포수 구하기가 정말 힘들단 소릴 들었다. 그럴 때일수록 선배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도 수많은 포수 지망생들이 우릴 바라보고 있다. 가벼운 블로킹 동작 하나에도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프로의 자세”라고 당부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포수들은 무거운 장비를 입고, 홈플레이트를 향한다. 무섭게 날아드는 공에 아랑곳하지 않고 글러브를 내민다. 동료 선수들을 향해 내지르는 구호엔 포수들의 희생이 숨어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포수없인 야구를 즐길 수 없단 점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2017시즌 아낌없이 온몸을 내던진 포수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이유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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