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연안부두 잠수함' SK 와이번스 박종훈은 한국을 대표하는 언더핸드 선발투수로 진화 중이다. 박종훈은 올 시즌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10승 투수'로 우뚝 서면서 규정 이닝까지 채웠다. 만족스러운 시즌을 뒤로하고, 더 나은 2018시즌을 준비하는 박종훈을 엠스플뉴스가 만났다.

한국을 대표하는 언더핸드로 성장 중인 SK 박종훈(사진=엠스플뉴스)
한국을 대표하는 언더핸드로 성장 중인 SK 박종훈(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SK 와이번스 잠수함 투수 박종훈은 ‘홈런의 시대’를 이겨낼 대안이 될까.

2017시즌 KBO리그에선 무려 1,547홈런이 터졌다. 1982년 KBO리그 출범 이래 단일 시즌 최다 홈런이었다. 그야말로 '홈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MBC SPORTS+ 김선우 해설위원은 “어퍼 스윙이 타격의 대세로 자리 잡은 가운데, 언더핸드 투수가 ‘홈런의 시대’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은 “언더핸드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과 어퍼 스윙의 궤적은 ‘결’이 맞지 않아 타자들이 힘들어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2017시즌 SK 잠수함 투수 박종훈은 기록을 통해 ‘홈런의 시대’의 대안이 될 만한 자격을 증명했다. 박종훈은 29경기(28선발)에 등판해 151.1이닝을 소화하며, 12승 7패 평균자책 4.10/ 9이닝당 홈런 0.95를 기록했다.

KBO리그 내국인 투수 평균자책 TOP 5(표=엠스플뉴스)
KBO리그 내국인 투수 평균자책 TOP 5(표=엠스플뉴스)

내국인 투수 가운데 리그 평균자책 5위, 9이닝당 최저 홈런 3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박종훈은 극단적인 ‘타고투저’ 시대에 자신의 잠재력을 활짝 꽃피웠다.

SK 구단 관계자는 “박종훈은 투구폼 하나만으로 스타성이 충분한 투수”라며 “놀라운 성장속도를 바탕으로, SK 선발진의 한 축이 됐다”고 흐뭇해했다.

박종훈은 2018시즌 더 좋은 성적을 내려고, 한참 개인 훈련을 진행 중이다.

‘홈런의 시대’에 빛난 언더핸드 박종훈

박종훈은 '홈런의 시대'라 불리는 극심한 타고투저 상황에서 수준급 투수로 발돋움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박종훈은 '홈런의 시대'라 불리는 극심한 타고투저 상황에서 수준급 투수로 발돋움했다(사진=엠스플뉴스)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합니다.

11월엔 회복 훈련에 주력했어요. 지금은 웨이트와 파워 트레이닝을 병행하고 있어요. 남는 시간엔 배드민턴과 등산을 즐기고 있습니다(웃음).

상당히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습니다. '에이스' 김광현이 돌아오는 2018시즌에도 ‘박종훈은 당연히 SK 붙박이 선발투수’란 예상이 지배적인데요.

그래요? 전 항상 불안한데요(웃음). 아직 저 자신을 완전히 믿지 못해요. 그렇다고,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닙니다. 2018시즌 더 좋은 활약을 하려면 준비를 잘 해야할 거 같아요.


겸손함은 여전합니다.

중학교 다닐 때 감독님이 “만족하는 순간 끝”라고 말씀하셨어요. 늘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저 자신을 채찍질해왔습니다. 평소 말할 때도 ‘만족’이란 단어를 잘 쓰지 않아요.

2017시즌 박종훈 주요성적(표=엠스플뉴스)
2017시즌 박종훈 주요성적(표=엠스플뉴스)

KBO리그 트렌드인 ‘어퍼 스윙’을 이겨낼 대안으로 언더핸드·사이드암 투수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언더핸드가 던지는 공과 어퍼스윙의 궤적이 엇갈리는 건 사실이에요. 저 역시 홈런 타자를 상대할 때 마음이 더 편해요.

더 편하다?

‘어퍼 스윙’을 하는 타자들과 궁합이 더 잘 맞는 걸 느껴요. 홈런 타자와 상대할 땐 잃을 게 없어서 정신적으로도 편안합니다. 예를 들어 이대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전 ‘안타 맞아도 본전’이란 생각으로 던지거든요. ‘홈런’만 맞지 않으면, 제가 이긴 거로 생각합니다(웃음).

올 시즌 9이닝당 홈런 0.95를 기록했습니다. KBO리그 내국인 투수 가운덴 세 번째로 적은 피홈런입니다.

만약 속구로 좀 더 적극적으로 승부했다면, 홈런을 지금보다 덜 맞았을 겁니다. 올 시즌 커브, 포크볼, 체인지업을 던지다 홈런을 맞는 경우가 잦았어요. 속구 던졌을 때 홈런 맞은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홈런을 적게 맞다 보니, 자연스레 평균자책도 낮아졌습니다. 극단적인 ‘타고투저 시대’에 평균자책 4.10을 기록하며, KBO 내국인 투수 평균자책 5위에 올랐는데요.

아, 그래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요? (스마트폰으로 기록을 살펴본 뒤 혼잣말로) 오, 정말이네! 내가 국내파 투수 중에 5위네!(웃음).


‘오버핸드 전향’ 생각했던 청년, 최고의 언더핸드를 꿈꾸다

'10승 투수'가 된 언더핸드 박종훈에게도 시련은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10승 투수'가 된 언더핸드 박종훈에게도 시련은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거둔 성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게 있다면 그게 뭘지 궁금합니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채운 거죠. 규정 이닝을 채우고 나니, 야구 보는 시야가 확실히 넓어지는 거 같아요.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을 밟은 느낌입니다.

디딤돌?

고교에서 프로로 넘어왔을 때나, 군대 갔을 때 장애물에 부딪힌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장애물을 밟고 올라서는 순간, 그 장애물이 알고 보면 디딤돌이더라고요. 규정 이닝을 채운 것도 그래요. 더 좋은 ‘선발 투수’가 되기 위한 디딤돌로 작용할 게 분명합니다.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하면서, 어느덧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언더핸드 투수로 진화했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아직 한국을 대표하는 언더핸드 투수까진 아니에요. 아직 한참 배워야 해요. 언더핸드 선발투수로 성공해서, SK ‘영구결번자’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그때까지 ‘만족’하지 않고, 열심히 달리겠습니다(웃음).

언더핸드가 선발 투수로 활약한다는 것. 언제부터인가 국내 야구계에도 편견 같은 게 생겼습니다. 언더핸드는 선발감으론 부적당하다는 편견인데요.

‘언더핸드는 중간계투’란 편견이 있죠. 트레이 힐만 감독님도 처음엔 절 중간 투수로 기용하려고 하셨어요.

따지고 보면 고교 시절부터 그런 편견과 싸워오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고교 때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어요. 그때 ‘오버핸드로 던질까?’ 진지하게 고민했죠. 당시에 오버핸드로 던지면, 최고 구속이 142km/h까지 나왔거든요. 오버핸드로 투구 폼을 바꾸면, 왠지 더 잘 던질 것 같은 '이유 없는 자신감' 같은 것도 있었어요. 군대 가서도 ‘오버핸드’에 대한 미련이 계속 절 괴롭혔어요.

어떻게 극복한 겁니까.

주위에서 “네 공이 어떤 공인데, 그 좋은 걸 포기하느냐”라는 식의 응원과 격려를 계속 들려주셨어요. 상무 박치왕 감독님도 제게 기회를 아낌없이 주셨고요. 박 감독님이 "오늘 (박)종훈이 나가면,이기겠네. 외야수들은 오늘 좀 쉬어라”라고 얘기하곤 하셨죠(웃음).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상무 입대가 또 다른 디딤돌이 된 거군요.

맞아요. 역시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해요(웃음). 상무에서 얻은 게 참 많아요. ‘언더핸드’에 대한 자신감이 완전히 생겼죠. 군대에서 깨달은 게 많다 보니, 후배들에게도 "군대는 꼭 상무로 가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웃음).

연안부두 잠수함 “미국의 홈런 타자들을 상대해보고 싶다”

2017시즌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포스팅 입찰을 신청한 일본 사이드암 투수 마키타 가즈히사(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7시즌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포스팅 입찰을 신청한 일본 사이드암 투수 마키타 가즈히사(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KBO처럼 MLB(메이저리그)에서도 ‘홈런 광풍’이 부는데요. 이 때문에 메이저리그가 아시아의 언더·사이드 투수를 주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습니다. 일본 사이드암 투수 마키타 가즈히사가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요.

정말 부러워요. 더 큰 무대에서 기량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선수에겐 본능이에요. 저도 먼 훗날 기회가 된다면, MLB 무대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요. 미국 야구가 왜 세계 최고인지 경험으로 느껴보고 싶습니다.

가즈히사를 알고 있었습니까.

당연하죠. 틈날 때마다 영상을 통해 전 세계 언더핸드·사이드암 투수들을 살펴보거든요. 저와는 확실히 다른 유형의 투수예요. 릴리스 포인트가 낮지만, 사이드암에 해당하는 투수죠.


일본 언더핸드·사이드암 투수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일본은 선수층이 두껍잖아요. 참고할 만한 언더핸드·사이드암 투수가 주변에 많다는 게 부러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 특이한 유형’이란 말을 자주 들었어요. 제가 참고할 만한 데이터 자체가 많지 않았죠.

코칭스태프에게 조언을 많이 받지 않나요?

코치님들이 저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사이드암 투수 출신인 조웅천 코치님조차 “너는 좀 특별한 언더핸드 투수야”하면서 고개를 가로저었죠(웃음).

그레요?

한번은 SK에서 일본 사이드암 전문 인스트럭터를 초청한 적이 있었어요. 그분도 “내가 알려줄 게 없다. 내가 괜히 널 잘못 건드리면, 네 장점이 사라진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셨어요(웃음).

박종훈은 “메이저리그를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박종훈은 “메이저리그를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울 곳이 마땅치 않다는 단점이 있지만, 타자들은 굉장히 까다로워하는 유형의 투수입니다. 그건 정말 큰 장점일 텐데요.

많은 타자가 절 까다롭게 느끼는 걸 알아요. 몸에 맞는 공이 자주 나와 절 까다로워할 수도 있고(웃음).

특히나 외국인 타자들이 박종훈과 상대할 때마다 무척 힘들어하는 게 보입니다.

외국인 타자들은 대부분 황당해해요. KIA 타이거즈에서 뛰던 브렛 필은 제가 공을 던지면, 거의 타석 밖으로 나가 있었어요. NC 다이노스에서 뛰던 에릭 테임즈도 평소와 다른 위치에서 타격했죠. 제가 마운드에 있으면, '칠 의사가 없는 건가' 싶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곤 했어요(웃음).

수준급 외국인 타자들이 당황하는 걸 보면, 메이저리그 타자들도 박종훈을 쉽게 공략할 수 없을 듯한데요.

정말 그럴까요? 궁금하긴 해요. 130km/h를 조금 넘는 느린 공으로 세계 최고 타자들을 잡아내는 걸 상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짜릿해요.

만약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가장 중점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을 뭐라고 봅니까.

아직 메이저리그에 진출을 논하기엔 시기상조입니다. 부족한 게 많아요. 그래도 가장 먼저 보완하고 싶은 부분을 꼽자면, 역시 ‘컨트롤’입니다. 느린 공으로 메이저리그 타자를 상대하려면, 원하는 곳에 공을 찔러 넣는 제구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메이저급 팬서비스 박종훈 “팬에게 사랑을 돌려드리는 건 당연하다”

'메이저급 팬서비스'를 자랑하는 박종훈. 박종훈의 팬서비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메이저급 팬서비스'를 자랑하는 박종훈. 박종훈의 팬서비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메이저리그 진출은 시기상조라고 했는데요. 팬서비스는 이미 ‘메이저급’이란 칭찬이 자자합니다.

제가 선행을 베푼 것도 아니고, 불우이웃을 도운 것도 아닌데, 그런 칭찬을 들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저는 프로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프로 선수에게 ‘팬 서비스’는 의무니까요.

박종훈만의 '팬 서비스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마 저한테 사인을 받으려 야구장을 찾는 팬은 없을 거예요(웃음). 팬들이 원하는 선수의 사인을 받지 못했을 때,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돕는 게 제 임무입니다.

어린이 팬을 향한 박종훈의 사랑은 유별나다(사진=엠스플뉴스)
어린이 팬을 향한 박종훈의 사랑은 유별나다(사진=엠스플뉴스)

팬 가운데서도 어린이 팬을 향한 사랑이 유별나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제가 어린이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린이 팬을 보면, 먼저 찾아가서 사인을 해주는 편이에요(웃음). 그 아이들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진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야구계 후배가 될 수도 있고,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가능성이 무한한 어린이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어린이 팬들에게 인기가 많겠습니다.

아닙니다. 어린이 팬들은 사실 제가 누군지도 잘 몰라요(웃음). 제가 사인을 해주면서, “아저씨는 박종훈이야”라고 홍보합니다. 이름도 모르는데 사인을 받으려고 줄 서 있는 아이들을 보면 귀여울 따름이에요(웃음).

결국, 짝사랑이었군요(웃음).

짝사랑이 제겐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됩니다. 더 열심히 해서 이름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야구를 몰라도, 박찬호는 안다”는 말이 있잖아요. 제 꿈은 그런 투수가 되는 거예요. 제 사인을 받은 어린이들이 자라서 자랑스럽게 사인을 꺼내볼 수 있는 투수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어린이 팬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제 딸이 감기에 걸렸거든요. 어린이 여러분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손 잘 씻고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조금만 줄이세요(웃음).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야구’를 사랑하는 어린이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SK나 박종훈보다 ‘야구’를 사랑해주세요. 어린이 여러분 늘 감사합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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