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라는 별명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가 있을까. 현역시절 타이거즈를 이끈 투수, 그리고 수석코치에 이어 구단 최초의 선수 출신 단장까지 올라섰다. KIA 조계현 단장의 숨 가빴던 한 달과 그가 바라보는 타이거즈의 미래를 들어봤다.

조계현 단장은 이제 단장 업무가 재밌어졌다고 말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조계현 단장은 이제 단장 업무가 재밌어졌다고 말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싸움닭’과 같이 거칠면서도 공격적인 승부와 동시에 ‘팔색조’와 같은 능수능란한 변화구 구사로 상대를 제압하던 한 투수가 있었다. 1980년대 군산상고와 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끈 주인공이기도 하다. 별명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는 이 인물의 이름은 KIA 타이거즈 조계현 단장이다.
어쩌면 ‘싸움닭’보단 ‘팔색조’라는 표현이 지금의 조 단장에 더 어울릴 듯하다. 1989년 해태에 입단한 조 단장은 선수와 수석코치를 거쳐 지난해 12월 구단 최초의 선수 출신 단장 자리에 올랐다. 수석코치에서 곧바로 단장에 오른 KBO리그 최초의 사례키도 했다.
갑작스러운 단장 부임에 ‘준비되지 않은 게 아닌가’라는 우려의 시선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조 단장은 비시즌 가장 큰 과제였던 양현종과 김주찬과의 협상을 깔끔하게 매듭짓는 수완을 발휘했다. 연이어 베테랑 정성훈의 영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면서 조 단장을 향한 의문이 차차 해소됐다.
칭찬이 쏟아지는 분위기 속에서 조 단장은 비시즌 성과에 대해 “나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오히려 단장 업무를 보면서 그간 구단 직원들이 해온 고생에 더 감사함을 느꼈다”며 오히려 겸손함을 내비쳤다. 숨 가쁜 겨울을 보낸 조 단장은 이제 타이거즈의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미래를 ‘엠스플뉴스’가 조 단장에게 직접 들어봤다.
첫 단추를 잘 꿰맨 조계현 단장 “일이 재밌습니다.”

양현종은 조계현 단장을 향해 “항상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사진=KIA)
양현종은 조계현 단장을 향해 “항상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사진=KIA)

이젠 정장이 제법 잘 어울립니다.
(옷매무시를 고치며) 이제야 조금 익숙해지네요(웃음). 단장이 된 뒤 매일 입었으니까요.
정장을 입고 찍힌 사진을 보셨나요. 주위의 평가가 좋습니다(웃음).
제가 제 사진을 보면 무언가 어색합니다(웃음). 그래도 주위에선 잘 어울린다고 얘길 많이 해주더라고요. 그간 살을 뺀 게 통한 것 같습니다.
다이어트를 독하게 하셨나 보군요.
지난해 스프링 캠프가 끝나니 몸무게가 93kg까지 쪘더라고요. ‘이건 안 되겠다’고 싶었습니다. 시즌 동안 자전거를 매일 타고 다니니 8kg이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단장이 된 뒤 운동을 안 해서 다시 2kg이 쪘네요(웃음).
그 말대로 최근 운동할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을 것 같습니다. 단장으로서 한 달여를 넘게 보낸 소감이 어떤지요.(조계현 단장은 지난해 12월 6일 KIA 단장으로 부임했다)
갑작스럽게 부임했으니 처음엔 당연히 힘들고 낯설었지요. 배워야 할 게 많으니 힘들단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허영택 대표이사님과 구단 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하나하나씩 배워가니까 괜찮아졌어요. 이젠 ‘단장 일이 재밌구나’라고 느낄 때도 있네요(웃음).
무엇보다 가장 큰 난제였던 양현종과 김주찬과의 협상을 잘 매듭지었습니다.
(고갤 내저으며) 사실 제가 아니더라도 꼭 잡아야 할 계약이었습니다. 옆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이지 저 혼자 그런 큰일을 다 한 게 아니니까요.
너무 겸손한 말씀 아니신가요(웃음). 선수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현역 때 계약을 수없이 많이 경험해봤습니다. 수석코치로서도 그 선수들을 오랫동안 지켜봤고요.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에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얘길 주고받으니 만나서 조절하면 해결될 분위기였습니다.

누가 협상왕인가(사진=KIA)
누가 협상왕인가(사진=KIA)

결국, 양현종과 김주찬 모두 단장과 만난 자리에서 옵션 조율을 마무리했습니다.
처음에 제시한 총액에서 변화는 없었어요. 옵션과 관련해 가져갈 수 있는 항목에 대해 많이 얘기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너무 쉽지도 않고 너무 어렵지도 않은 수준의 옵션이 필요했죠. 이 정도면 팀 공헌도도 생기고 구단에서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설득했습니다. 이해해준 선수들에게 너무 고마울 따름이죠.
오히려 조 단장이 ‘협상왕’인 것 같습니다(웃음).
(손사래를 치며) 저는 협상왕이 아니에요. 우리 구단 나름대로 선수에 대한 고과 평가를 정확하게 매기는 과정이 있습니다. 물론 선수가 100% 만족은 못 하겠지만,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큰 틀을 제시하는 거죠. 연봉 재계약도 최대한 잘 챙겨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단은 밀고 당기기 싫어해요. 화끈하게 가야죠. 단장 성격도 그렇고(웃음).
그렇다면 현역 시절에도 ‘협상왕’이 아니었습니까.
그때도 협상왕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웃음). 1990년대에도 구단 고과 평가가 있었지만, 연봉 상승 상한선(25%)이 존재했어요. 어느 정도 불이익은 감수해야 했던 시대였죠. 당시 저도 나름 자료를 준비해서 드린 뒤 ‘저는 이렇게 제 성적을 평가합니다. 성적에 걸맞게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주로 보너스 관련해서 몇백만 원 수준의 밀고 당기기가 심했어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5,000만 원 이상 KBO리그 고액 연봉자에겐 25%라는 연봉 상승 상한선이 존재했다)

당시에도 단장과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았나요.
저는 주로 단장님들과 협상을 했어요. 보통 팀장급 직원들과 협상을 하는데 약간 연봉 규모가 큰 선수들은 단장님과 직접 앉았죠. 당시엔 주로 구단이 선수들에게 이해를 많이 구하는 편이었습니다. 선수들도 구단 사정을 잘 알았기에 수긍을 잘했어요. 그때 FA(자유계약선수) 제도가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웃음).
얘길 계속 들으면 ‘협상왕’이 맞는 것 같습니다(웃음).
사실 계약을 단순히 오래 끈다고 해서 협상왕이 아니에요. 무턱대고 난 이 정도 수준은 무조건 받아야 한단 건 옛날 방식이죠. 자기 성적과 구단 사정, 그리고 주위 환경을 고려해서 그에 걸맞은 규모를 영리하게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협상왕에게 필요합니다. 선수도 자기 성적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해요. 구단도 선수가 공헌한 만큼의 프리미엄을 잘 붙여야죠.
조계현 단장 “이제 화수분 야구는 기본입니다.”

정장이 잘 어울리나요(사진=KIA)
정장이 잘 어울리나요(사진=KIA)

수석코치에서 단장, 무엇이 가장 달라졌습니까.
정말 다릅니다. 수석코치 땐 현장의 일만 생각하면 됐어요. 김기태 감독님의 생각을 코치진과 선수단에 잘 전달하면서 융화되게 만드는 게 먼저였죠. 단장이 되니 구단 일을 맡으면서 현장 일도 챙겨야 합니다. 단장을 하면서 하나 느낀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전임 단장님이신 허영택 대표이사님과 구단 팀장들이 정말 일을 잘하셨다고 느꼈습니다. 이 얘긴 처음 하는데 정말 어려운 부분들을 슬기롭게 잘 풀면서 현장과 소통을 잘하셨다고 생각해요. 단장이 되고 나니 그런 부분이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동행’이라는 단어가 어떤 팀보다도 잘 어울리는 구단 같습니다.
현장부터 ‘동행’이 잘 이뤄지고 있는 게 첫 번째 원동력이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하지만 기분이 상하지 않는 단어 선택이 중요합니다. ‘선수들이 왜 그렇게 똑바로 못 하냐’라는 말이랑 ‘팀 분위기 좋은데 조금씩 쳐지는 게 있다. 그럴 때일수록 선참들이 토닥토닥해줘라. 잘 부탁한다’라는 말이랑은 완전히 다른 거죠. 코치진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지도하세요’가 아닌 ‘감독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선수들하고 함께 소통해봅시다’가 더 좋은 방향입니다.
단장이 되신 뒤에도 더 말을 조심하시나요.
(고갤 끄덕이며) 물론이죠. 더 조심하게 됩니다. 우리 팀은 코치도 선수에게 공식적인 자리에선 반말을 거의 안 해요. 명령조의 말을 최대한 피하고자 노력합니다. 감독님이 지향하는 색깔이기도 하고요. 감독님께서 가장 선수들하고 편하게 얘기하니까(웃음).
이제 타이거즈의 미래를 얘기해볼 시간입니다. 최근 함평-챌린저스 필드에 새 야구장을 건립하기로 발표하셨습니다. 육성에 중점을 둔 과감한 투자로 보면 될까요.
솔직히 지금 있는 시설도 매우 좋습니다. 굳이 하나 더 만들려는 이유는 야간 경기가 가능한 야구장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2군 선수들의 경우 갑자기 1군에 올라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 야간 경기에 잘 적응하는 것도 분명히 필요해요. 더 좋은 환경에서 육성에 집중하고자 하는 선택입니다.
사실 최근 모든 팀이 육성을 외치는 추세입니다.
예전부터 육성에 중점을 두는 ‘화수분 야구’는 특정 팀의 모토와도 같았습니다. 물론 팀마다 다르겠지만, 화수분 야구는 이제 기본이 돼야 합니다. 1군과 2군은 환경이 완전히 다릅니다. 세대교체 시점이 자연스럽게 올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죠.
그렇다면 KIA만의 육성 전략이 있을까요.
방망이가 괜찮아서 1군에 올렸는데 수비를 원래 포지션과 완전히 다르게 서는 상황이 종종 있어요. 장래성이 있는 선수는 수비 포지션까지 생각해서 장기적으로 육성 방향을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베테랑 선수가 빠지는 자리를 자연스럽게 채워주는 그림이 필요해요. 또 수비 유틸리티에 특화된 선수는 말 그대로 수비에 집중해서 육성하도록 해야 합니다.
“세대교체는 시끄러울 필요가 없습니다.”

조계현 단장과 김기태 감독의 동행은 계속 이어진다(사진=KIA)
조계현 단장과 김기태 감독의 동행은 계속 이어진다(사진=KIA)

최근 ‘리빌딩’이라는 단어에 대한 논란도 많습니다. KIA도 ‘리빌딩’의 시기가 다가온단 얘기가 종종 들립니다.
‘리빌딩’은 구단과 현장의 세밀한 소통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현장에서 리빌딩을 하고 싶어도 구단의 사정을 고려해서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반대로 구단이 현장의 동의 없이 선수단 구성을 마음대로 바꿔도 안 되는 거죠. 당분간 우리 팀에 확 바꾸는 ‘리빌딩’ 기조는 없을 거라고 보면 됩니다. 주전 선수들을 중심으로 젊은 선수들이 밑에서 조금씩 도와주는 방향으로 가야죠.
정성훈 영입도 있었지만, 베테랑 선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주는 구단이 바로 KIA 같습니다. 김기태 감독의 성향도 그렇고요.
(목소릴 높이며) 누구나 다 나이를 먹어갑니다. 베테랑 선수는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을 모두 풍부하게 겪은 고급 인력입니다. 그저 나이가 많단 이유로 내보낼 필요는 없죠. 물론 능력이 모자라면 대체 선수가 필요하지만, 능력이 아직 남았으면 야구장에서 최대한 그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 아닐까요.
구단이 능력 있는 베테랑 선수들을 제대로 인정하고 대우를 해줘야죠. 그래야 후배들이 좋은 선배들의 활약을 보면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후배들도 ‘나도 저런 선배가 돼야지’라고 생각하는 선순환의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그게 팀 분위기를 가장 좋게 만드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세대교체의 시기는 피할 순 없습니다. 2~3년 뒤 그 시점이 오지 않을까요.
세대교체는 항상 진행된다고 봅니다. 부상 선수가 나와서 젊은 선수가 경험을 짧게 쌓는 것도 세대교체죠. 굳이 특정 시점을 잡기보단 자연스럽게 리빌딩이 되는 분위기가 나와야 합니다. ‘리빌딩’이나 ‘세대교체’라는 말을 전면으로 꺼내는 순간 기존 선수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어요. 시끄러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2018년에도 우승팀 단장이 되고픈 조계현

2018년에도 우승의 감격을 다시 누리고픈 조계현 단장이다(사진=KIA)
2018년에도 우승의 감격을 다시 누리고픈 조계현 단장이다(사진=KIA)

지난해 많은 KIA 팬이 광주-챔피언스 필드를 찾았습니다. 성적과 흥행을 모두 잡은 한 해였습니다.(KIA는 지난해 102만 4,830명의 홈 관중을 기록하면서 구단 최초 100만 홈 관중을 돌파했다. 2016년 KIA의 총 홈 관중 숫자는 77만 3,499명이었다)
지난해 야구장을 찾아주신 많은 팬에게 큰 힘을 얻었습니다. 올 시즌에도 그만큼 오시길 기대하고 잘 준비해야죠. 마케팅과 팬 서비스를 여러모로 연구해서 야구장에 오시는 돈이 아깝지 않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팬들을 위해 투자하는 돈은 아깝지 않습니다.
물론 성적이 최고의 마케팅이자 팬 서비스긴 합니다(웃음).
하하. 그렇죠. 성적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많은 팬이 오시겠지만, 그와 별개로 야구장에 오고 싶어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즐길 거리가 많고 야구장에서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고민해보겠습니다.

지난해 우승으로 팬들의 기대치가 꽤 올랐습니다.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부담감도 없진 않을 텐데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솔직히 부담감이 전혀 없다곤 말씀 못 드리죠. 통합 우승을 달성했기에 이젠 지켜야 할 위치입니다. 다행히 지난해 우승 전력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감독님도 올 시즌 선수들의 부상을 가장 큰 변수로 보고 계시더라고요. 부상을 최소화하면서 시즌을 잘 이끌어 가면 좋은 성적을 또 기대해볼 만 합니다. 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휴식기(8월 16일~9월 3일)도 우리 팀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 좋겠습니다.
기존 외국인 선수 3명과 잡음 없이 빨리 재계약을 마친 것도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헥터 노에시와 팻딘이 선발 마운드를 정말 단단히 지켜줬습니다. 특히 팻딘은 한국시리즈에서 호투로 자신감을 확실히 키웠을 겁니다. 로저 버나디나도 초반에 부진했지만, 이후 한국시리즈까지 꾸준하게 활약해줬어요. 팀 분위기가 좋으니까 외국인 선수들도 사건·사고 없이 융화가 잘 됐죠. ‘이 팀은 이런 걸 중시 하는구나’라는 걸 다들 아니까.
다만, 지난해 유일한 약점으로 꼽힌 불펜진의 반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불펜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정말 중요한 경기에선 막았단 게 중요하다고 봐요. 내 개인적인 경험도 그렇고 우승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큽니다. 기존 불펜진이 우승 과정에서 배운 거나 느낀 게 많았을 겁니다. 지난해보다 불펜진이 더 발전하리라 믿어요.
2018년에도 우승팀 단장이 될 수 있을까요.
다른 팀들의 전력 보강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제 우리 팀은 공공의 적이 될 거라 절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우승은 항상 새로운 희망을 줍니다. 선수들에게도 그렇지만, 자꾸 해도 좋은 게 우승이죠. 당연히 2018년에도 우승팀 단장이 되고 싶습니다(웃음).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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