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미남, 최초의 타이완 출신 KBO 선수. NC 다이노스가 새로 영입한 왕웨이중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하지만, 왕웨이중은 야구 외적인 요소가 아닌 야구 실력 그 자체로 평가받길 원한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타이완과 한국 사이에 야구적으로 더 많은 교류가 생기길 바란다.

왕웨이중이 한국 팬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왕웨이중이 한국 팬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애리조나 투산]

올겨울, 타이완에서 불어온 거대한 태풍이 KBO 스토브리그를 강타했다. KBO리그 37년사에서 최초로 기록될 타이완 국적 외국인 선수, 좌완 왕웨이중이 그 태풍의 주인공이다.

왕웨이중은 NC 계약 소식이 처음 알려진 뒤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한류스타를 닮은 잘 생긴 외모, 최초의 타이완 출신 KBO리거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경력, 심지어는 이름의 정확한 표기법까지(왕웨이중이냐 왕웨이첸이냐),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NC의 한 선수는 왕웨이중의 실물을 본 뒤 “이제 외모는 포기하고, 야구에 전념하겠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NC 관계자는 “벌써 타이완 현지 매체에서 마산구장 취재 문의가 오고 있다. 스프링캠프에서도 매일 여러 건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그만큼 최초의 타이완 출신 선수를 향한 관심이 뜨겁단 증거다.

이런 열기를 바라보는 왕웨이중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야구 외적인 면보다 야구 실력으로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외모나 국적이 아닌 자신의 야구로 평가받고 싶단 얘기다.

NC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NC 관계자는 왕웨이중 영입 발표 당시 “외모나 마케팅 요소가 아닌, 실력과 가능성만 보고 뽑았다”고 밝혔다. 외모는 거들 뿐, 가장 중요한 건 야구 실력이다. 그리고 왕웨이중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기량과 재능, 무엇보다 야구 열정이 뜨거운 선수다.

이제는 미남 스타나 타이완 출신이 아닌, 한 사람의 야구 선수 왕웨이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다. 엠스플뉴스는 NC 다이노스 스프링캠프가 한창인 2월 3일(현지 기준) 미국 애리조나 투산 에넥스 필드를 찾아, '야구 선수' 왕웨이중의 야구 이야기를 들었다.

“NC가 준 기회,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팀 NC 다이노스에 온 걸 환영한다. NC 소속으로 훈련을 함께 한 소감을 듣고 싶다.

아직 적응해 가는 중이다. 대학교 1학년까지 타이완에서 야구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프로 생활을 해 왔다. 아시아 프로팀에서 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야구 스타일과는 다른 면이 있어 조금씩 적응하려 노력 중이다.

캠프 이틀째인 어제(미국 기준 2일) 첫 불펜 세션을 소화했다. 사실 미국 기준으로 치면 불펜 피칭 시기가 다소 이른 편이다. 그런데도 지켜본 구단 관계자들의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현재 몸 상태는 나쁘지 않다. 물론 미국에선 스프링캠프를 준비하는 1월부터 운동을 시작해, 컨디션을 서서히 끌어올린다. 하지만, 이제는 KBO리그 선수가 된 만큼, 이곳 일정에 맞춰 몸을 만들고 시즌을 준비할 생각이다.

첫 불펜 피칭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첫 피칭치곤 괜찮은 것 같다. 올해 들어 처음 불펜에서 공을 던졌는데, 나쁘지 않았다.

마이너리그에서 유망주였다. 짧은 기간이지만, 메이저리그 무대도 밟아봤다. 아직 나이도 25살로 젊다. 어떻게 KBO리그에 올 결심을 했는지 궁금하다.

실은 NC 제안을 받고서 진로를 결정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제안받고 하루 이틀 만에 결정했다. 이유를 들자면, 일단 한국에서 내게 주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기회? 어떤 의미인가.

KBO리그에서 선발투수로 던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인생에서 큰 결심을 하게 됐고, 그 결심을 한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 KBO리그에 온 만큼 열심히 운동하고, 주어진 기회에 감사해 하면서 더 좋은 선수가 되게끔 노력하겠다.

NC 제안을 받기 전까지 KBO리그에 대해 알고 있었나.

인터넷에서 하이라이트 영상을 종종 봤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오게 될 줄은 몰랐다(웃음). 보통 타이완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선수들은 나중에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난 KBO리그에서 뛰게 됐고.

그것도 최초의 타이완 출신 KBO리그 선수다.

최초 주인공이 돼 영광이다. 그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웃음).

“힘든 재활 기간, 더 강해지려는 의지로 버텼다”

미국 애리조나 투산 캠프에서 김경문(사진 왼쪽부터)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왕웨이중(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미국 애리조나 투산 캠프에서 김경문(사진 왼쪽부터)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왕웨이중(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NC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뒤 온갖 자료를 다 찾아봤지만, 메이저리그 진출 이전에 관한 내용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소년' 왕웨이중이 어떻게 야구선수로 성장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좀 듣고 싶다. 우선 야구는 처음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원래 우리 가족이 다 야구를 좋아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처음엔 야구에 그렇게 큰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그러다 형이 학교 야구부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한 뒤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다. 형이 연습하고, 경기하는 걸 따라다니며 보다가 점차 흥미를 갖게 된 거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투수였나.

투수를 보면서 중견수도 소화했다. 야구를 계속하다 보니까,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는 데 좀 더 흥미를 느꼈다. 그래 내 야구 진로를 투수로 결정했다.

고교 시절까지 인정받는 좌완 유망주였다. 그런데 프로 진출은 타이완 프로야구가 아닌 미국 메이저리그를 택했다.

처음 미국 진출 꿈을 갖게 된 건 고교 시절이다. 고교 야구를 하면서 '메이저리그에서 뛰면 어떨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엔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후 대학에 진학해 야구를 계속하다가, 감사하게도 1학년 때 기회가 찾아오면서 미국에 진출하게 됐다.

처음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계약한 2012년엔 스무 살로 나이가 아주 어렸다. 어린 나이에 혼자 미국 생활을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듯싶다.

처음 미국에 가서는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었다. 마이너리그에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 선수는 많아도 아시아 출신 선수는 수가 많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같은 타이완 출신 친구 한 명도 피츠버그와 계약을 맺고 함께 미국에 왔다는 건데(포수 쟝진데), 그래도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은 여전했다.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이 결국 '부상'이란 악재로 찾아왔다. 계약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수술대에 오르는 시련을 겪었는데.

피츠버그와 계약하기로 하고, 메디컬 체크를 받았다. 그때 팔꿈치 인대 손상이 발견돼 수술을 받게 됐다. 지금도 파이어리츠 구단에 감사한 마음이다. 수술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가진 가능성을 믿어주고, 수술을 받게 도와줬다.

미국이란 낯선 환경에서, 기약 없는 재활 운동을 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다. 처음엔 자신감이 있었다. 재활을 얼마든지 잘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정말 힘들었다. 수술하고 한 달 정도 지난 뒤엔 너무 지루하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꼭두새벽부터 치료실을 찾아가는 게 특히나 힘 들었다.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나.

더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무조건 재활에 성공해 다시 마운드에 서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런 각오로 버텼던 게 재활에 성공한 비결인 것 같다.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 빠른 속도로 페이스를 찾았다. 특히 속구 구속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수술 이듬해인 2013년 초반만 해도 패스트볼 구속이 140km/h를 밑돌았는데, 시즌 끝날 때쯤엔 평균 148km/h까지 스피드를 끌어올렸다. 이듬해엔 152km/h 강속구를 던졌고, 지난 시즌엔 156km/h를 스피드건에 찍은 적도 있다. 비결이 뭔가.

(잠시 생각한 뒤) 매일 매일 꾸준하게 연습한 것 외엔 없다. 나만의 루틴으로 매일 열심히 훈련하다 보니까, 복귀 후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공이 점차 빨라졌다.

마이너리그 경력 초기엔 커브와 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유망주였다. 지금은 어떤 구종이 가장 자신 있는 무기인지 궁금하다.

슬라이더, 그리고 체인지업을 던진다. 그 두 가지가 가장 자신 있는 변화구다.

큰 기대를 받고 미국에 진출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마이너리그에선 꾸준히 좋은 기록을 냈는데, 메이저에선 다소 기회가 부족했단 느낌을 받는다. 아쉬움은 없나.

처음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을 때가 2014년이다. 그때는 스스로 아직 '성장 과정'이라 생각했고, '배우는 중'이라고 여겼다. 아쉬운 건 연습과 실전이 다르다는 걸 처음 기회를 얻었을 때 생각지 못했다는 거다. 불펜에서 연습구를 던질 때와, 실제 구장 마운드에 올라가 던질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정작 실전에 나가서는 불안정한 투구를 했다. 그게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야구 외적인 요소보단, 야구 실력으로 사랑받고 싶다”

왕웨이중의 NC 유니폼 '옷'피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왕웨이중의 NC 유니폼 '옷'피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한국의 경우, 미국 무대에 진출해 활약하는 한국 선수에 대해 야구팬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도 관심이 큰 편이다. 류현진이 잘 던진 날엔 온종일 사람들의 화제가 야구에 집중되곤 한다. 타이완도 많은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뛰고 있다. 타이완에서도 자국 선수의 맹활약상을 보면 한국 야구팬들처럼 반응하는지 궁금하다.

물론이다. 타이완에서도 한국과 비슷하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자국 선수에 대한 관심이 크다. 사람들이 응원도 많이 하고, 신문에 기사도 많이 나온다. 한국과 다르지 않다.

NC와 계약한 뒤 ‘한류스타 이민호, 지창욱 닮은꼴’로 화제가 됐다. 한국 팬들은 왕웨이중이 타이완에서 엄청난 여성 팬을 몰고 다닐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그런가(웃음).

(멋쩍은 듯 웃으며) 하하. 나는 그런 것보단 야구적인 측면에 사람들이 주목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야구장 밖에서 생기는 일보다는, 야구장 안에서의 일로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한다. 야구 외적인 일보다는 야구 실력 때문에 화제가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야구 실력보다 외적인 부분이 화제가 되는 게 불편한가.

그런 건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좋지 않게 받아들이진 않는다. 다만, 나는 열심히 운동하고, 구장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내 할 일에 더 충실하려고 한다.

이것도 야구 외적인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을 NC가 영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확실히 타이완 야구팬 사이에서 한국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또 한국 팬들 사이에서도 그동안 잘 몰랐던 타이완 야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 모든 게 당신의 한국행 소식이 전해진 뒤 생긴 변화다.

확실히 그렇다. 한국에 오게 되면서 친구들을 통해 인터넷 반응이 어떤지 전해 들었다. 이전까지는 타이완 팬들이 접하는 해외야구는 주로 미국이나 일본 프로야구였다. 타이완 선수가 뛰지 않던 한국야구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 얘기론, 이제는 한국야구도 챙겨 봐야겠다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한다. 내가 타이완과 한국의 중간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야구와 무관한 질문 하나만 더 하겠다. 트와이스의 쯔위를 아는가.

누군지 안다. 타이완에서도 굉장히 인기가 많다.

많은 팬이 궁금해 하길래 대신 물어봤다. 자, 다시 야구 얘기로 돌아가자. 지난 시즌 주로 불펜투수로 등판했기 때문에, 일각에선 선발투수로서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해 NC에서 활약한 제프 맨쉽도 '불펜투수 출신'이라 긴 이닝과 장기 레이스에서 선발로 던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일단 맨쉽은 나와는 다른 선수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 타자들의 동영상을 많이 찾아보며 공부했다. 보니까 타격 기술이나 힘 좋은 타자가 많은 것 같았다. 영상을 보면서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좋은 타자들을 이기는 게 내 역할이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타이완과 한국 사이에 야구적으로 더 많은 교류가 생긴다면 기쁜 일"

1984년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 입단해 맹활약을 펼쳤던 고 쉬셩밍(서생명)의 현역 시절 역투 장면(사진=쉬셩밍 야구발전위원회 제공)
1984년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 입단해 맹활약을 펼쳤던 고 쉬셩밍(서생명)의 현역 시절 역투 장면(사진=쉬셩밍 야구발전위원회 제공)

팀에선 당신이 매 경기 6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이닝 이터 역할을 해주길 원한다.

내 생각도 같다.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지는 투수가 되고 싶다.

KBO리그에서 뛰는 첫 시즌인 올해, 이것만큼은 반드시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지 궁금하다.

건강이다. 건강하게 한 시즌을 던지는 게 내 목표다. 부상 당하면 아예 다음 경기에 나올 수 없지 않나. 시즌 내내 건강을 유지하면서, 꾸준하게 던지는 게 목표다.

'최초의 타이완 출신 KBO 선수'라는 타이틀은 한편으론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잘해야 앞으로 더 많은 타이완 선수가 KBO리그에 진출할 수 있고, 또 타이완의 많은 야구팬이 당신의 활약을 지켜볼 것이다. 어깨에 짊어진 짐이 꽤 무겁다.

사실 그런 부담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그간 타이완 야구는 일본이나 미국과의 왕래는 있었어도, 한국야구와는 교류가 많지 않았다. 만일 나로 인해 타이완과 한국 사이에 야구적으로 더 많은 교류가 생긴다면 기쁜 일이 될 거다. 내 희망사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또 나 이후 한국 선수가 타이완 야구에 진출하고, 타이완에서 다른 선수가 한국에 오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될거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하지만, 야구는 어디까지나 야구다. 내가 야구를 잘 하지 못하면 그런 희망사항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야구선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좋은 활약을 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타이완과 한국 야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엠스플뉴스는 1월 31일부터 미국 애리조나·플로리다, 일본 오키나와·미야자키, 타이완 가오슝 등으로 취재진을 보내 10개 구단의 생생한 캠프 현장 소식을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많은 야구팬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