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삼성 라이온즈 왕조 마운드의 기틀을 만들었던 오치아이 에이지 코치가 돌아왔다. 6년 전 팀을 떠날 때와 비교하면 많은 게 달라진 삼성의 상황이다. 하지만, 오치아이 코치는 진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때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오치아이 코치는 인터뷰 내내 진지한 표정과 차분한 어조로 삼성 마운드 구상을 얘기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오치아이 코치는 인터뷰 내내 진지한 표정과 차분한 어조로 삼성 마운드 구상을 얘기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오키나와]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야 아름다운 법이다. 한번 성공한 자리를 떠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코치는 왕조의 기틀을 만들었던 그 추억의 장소로 6년 만에 돌아왔다.
물론 왕조 재건에 대한 부담감은 분명히 있다. 오치아이 코치도 삼성 팬들의 높아진 기대치를 잘 알기에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 캠프 첫날부터 매서운 눈으로 투수진을 지켜봤다. 삼성 투수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삼성 투수 심창민은 “오치아이 코치님이 어떤 분인지 나나 베테랑 투수 선배님들이 잘 안다. ‘무한 경쟁’은 캠프 첫날부터 곧바로 시작인 셈”이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캠프 훈련 내내 오치아이 코치의 표정엔 좀처럼 감정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웃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명성대로 ‘냉정하게’ 투수진을 분석하고 평가한 오치아이 코치였다. 다행히 부담감보단 기대감이 더 크다는 게 오치아이 코치의 말이었다. 어쩌면 6년 전 삼성과는 완전히 다른 팀을 맡은 셈이다. “이번이 진짜 내 실력을 발휘할 때”라고 강조한 오치아이 코치를 ‘엠스플뉴스’가 캠프 현지에서 직접 만났다.
“넌 삼성의 가족이다” 오치아이 코치의 마음속에 새겨진 한마디

2012년 한국시리즈 우승 뒤 오치아이 코치가 축승회에 참가해 선수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오치아이 코치는 2012시즌을 끝으로 삼성을 떠났다(사진=삼성)
2012년 한국시리즈 우승 뒤 오치아이 코치가 축승회에 참가해 선수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오치아이 코치는 2012시즌을 끝으로 삼성을 떠났다(사진=삼성)

얼굴에 고민이 많아 보인다.
어떤 팀에서든 걱정되는 부분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 투수들에게 2월 1일 캠프 첫날부터 불펜 투구를 하니까 몸을 잘 만들어오라고 강조했다. 불안감도 있었지만, 다행히 투수 대부분이 몸을 잘 만들어온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사실 성공을 거둔 뒤 떠난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다.(오치아이 코치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 투수코치를 맡은 뒤 일본으로 돌아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일본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스의 투수코치를 역임했다)
삼성은 내가 코치 생활을 처음 시작한 팀이자 나에게 소중한 기회를 준 팀이다. 6년 전 삼성을 떠날 당시 구단 김인 사장님이 ‘이제 넌 삼성의 가족이니까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와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마음속에 항상 남아 있었다. 또 지난해 지바롯데를 떠나게 되면서 타이밍도 잘 맞아서 삼성 복귀가 가능했다.
삼성을 떠난 뒤 코치로서 어떤 성장을 이뤘나.
지바롯데 코치 경험은 나에게 큰 교훈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지바롯데 마운드가 좋지 않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면 승·패가 갈리는구나’라는 경험이 많이 쌓였다. 리그가 다시 바뀌지만, 야구는 똑같다. 지바롯데 시절 얻은 경험이 삼성 승리에 도움 되도록 잘 활용하겠다.
삼성에 처음 있었을 때와 지난해 삼성으로 복귀했을 때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8년 전 삼성에 처음 왔을 땐 전체 투수진의 기량이 정말 대단했다. 솔직히 그 당시 나는 큰일을 하는 게 없었다. 그저 투수들이 편안하게 던지도록 놔두면 저절로 좋은 성적이 나왔다. 옛날 왕조 시절을 추억하기보단 이제 새로운 선수들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다만, 심창민과 정인욱을 신인 시절에 더 잘 키웠어야 했는데 그게 한으로 남는다.
왕조 구축 시절 당시 큰일을 한 게 없다니 너무 겸손한 얘기 아닌가.
(고갤 내저으며) 진심이다. 예전엔 투수진의 기량이 너무 좋아서 내가 한 게 없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내 실력을 발휘할 때다. 마운드를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어야겠단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올 시즌 성적에 따라서 나를 향한 진짜 평가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잡고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다.
오치아이의 눈에 들어온 신인 양창섭·최채흥

오치아이 코치가 칭찬한 신인 양창섭(왼쪽). 오치아이 코치가 뒤에서 불펜 투구를 지켜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오치아이 코치가 칭찬한 신인 양창섭(왼쪽). 오치아이 코치가 뒤에서 불펜 투구를 지켜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마음을 다잡은 만큼 투수진의 훈련량이 대단하다(웃음). 특히 로프·타이어를 이용한 체력 훈련이 정말 힘들어 보인다.
일단 지난해 내가 처음 투수들을 봤을 때 체력이나 자기 몸을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1년을 버틸 체력을 강하게 키워야겠단 생각에 강도 높은 훈련 지시했다.
캠프 초반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투수들이 있나.
신인 투수인 양창섭과 최채흥이 던지는 걸 봤는데 공이 정말 좋았다. 1군에 통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 깊었다. 지난해 마무리 캠프 때부터 좋은 공을 던지는 김시현도 몸 상태가 괜찮다. 확실히 투수들을 직접 지켜보니 불안감보단 기대감이 점점 커진다.
지난해 삼성은 팀 평균자책 5.88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특히 선발진으로만 좁히면 팀 평균자책은 6.02까지 치솟는다. 지난해 리그 유일한 평균자책 6점대 선발진이 바로 삼성이었다. 당연히 팀 선발 투구이닝 기록도 최하위(718이닝)였다.
선발진이 불안하단 얘기가 나오는 걸 잘 안다. 다른 곳에서 갑자기 선발 투수를 데려오는 방법은 비현실적이다. 우리 팀 스스로 젊은 선발진을 키워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또 윤성환-장원삼 등 베테랑 투수들이 앞에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줘야 한다.
다행히 불펜에선 지난해 마무리 장필준의 재발견이 큰 수확이었다.(장필준은 2017시즌 56경기에 등판해 4승 8패 21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 4.68 82탈삼진을 기록했다)
장필준은 지난해 리그에서 마무리 경험을 착실하게 쌓아서 올 시즌 더 기대된다. 여기에 심창민도 장필준에게 지지 않으려고 덤비면 팀으로선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다.
예전과 달리 오승환은 없다(웃음).
(살짝 미소 지으며) 6년 전엔 오승환이라는 걸출한 마무리 투수가 있어서 마음 편하게 불펜을 운영했다. 장필준은 아직 오승환과 비교하면 많이 모자라다. 정말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 발끝도 못 따라가는 느낌이지만, 오승환의 수준까지 올라갈 잠재력이 보이는 투수가 바로 장필준이다. 지켜보겠다.
오치아이가 그리는 2018년 삼성 ‘도망가지 않는 마운드’

오치아이 코치가 매의 눈으로 불펜 투구하는 투수들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오치아이 코치가 매의 눈으로 불펜 투구하는 투수들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리그를 대표하는 포수인 강민호의 영입도 마운드에선 호재다.
강민호는 정말 좋은 포수다. 하지만, 좋은 포수라도 요구한 대로 공이 안 날아오면 소용없다. 일단 포수가 요구하는 공을 던지도록 투수들의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강민호의 마음도 편할 것 같다.
김한수 감독이 따로 주문한 사항은 없었나.
감독님께선 한 선수 한 선수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말씀하셨다. 투수들도 감독님과 같은 생각으로 마운드 위에 올라가야 한다. 감독님이 추구하는 야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하고픈 마음뿐이다.
2018년 어떤 삼성 마운드를 만들고 싶은지 궁금하다.
(망설이지 않고) 도망가지 않는 삼성 마운드다. 삼성은 지난해 평균자책(5.88)과 볼넷 허용(548개) 수치가 좋지 않았다. 공격적으로 타자들과 승부할 준비가 잘 되면 우리 팀 투수들에게도 경쟁력이 다시 생길 거다. 캠프를 알차게 잘 보낸다면 개막전부터 안정적인 마운드를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올 시즌 우승을 목표로 삼성 왕조 재건이 가능하다고 보나.
우승이라는 큰 목표는 모든 선수가 하나로 뭉쳐야 가능하다. 우승하려면 평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와 시즌 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선수들이 이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어야 우승할 수 있다. 우선 삼성 선수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오치아이 코치 복귀 소식에 삼성 팬들의 기대가 상당히 커졌다.
삼성 팬들의 큰 기대는 기쁘면서 설레는 일이다. 한편으론 책임감이 느껴지면서 부담감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삼성 마운드를 다시 일으키는 게 내 의무다. ‘이 선수는 꼭 응원해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투수들을 많이 만들어서 마운드로 올리겠다. 열심히 노력해보겠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엠스플뉴스는 1월 31일부터 미국 애리조나·플로리다, 일본 오키나와·미야자키, 타이완 가오슝 등으로 취재진을 보내 10개 구단의 생생한 캠프 현장 소식을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많은 야구팬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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