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이 전지훈련 시작과 함께 길렀던 수염을 깎았다. '초보 감독' 한용덕은 왜 수염을 밀었을까.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사진=한화)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사진=한화)

[엠스플뉴스=오키나와]

2월 15일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 구장. 이날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은 최근 길렀던 수염을 말끔히 정리한 채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한동안 한화 전지훈련장에선 한 감독의 덥수룩한 수염이 화제였다. 부드러운 외모의 한 감독이 수염을 기르자 '낯설다'는 반응과 함께 '색다른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사실 한 감독이 수염을 기른 덴 이유가 있었다. 한 감독은 지도자의 고뇌를 선수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전지훈련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선수들에게 '감독도 공정하고, 정직하게 선수들의 노력을 열심히 평가 중'이라는 메시지를 수염을 통해 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15일 고친다 구장에서 한 감독을 만났을 때 그의 수염은 사라지고 없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연습 경기를 앞둔 한 감독에게 수염을 민 이유에 대해 물었다.

"수염을 조금 더 길러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반대를 많이 하더라고요(웃음). 특히나 아내가 '흰 수염이 많다'면서 '당장 자르라'고 하지 뭡니까. 그래 이틀 전에 밀었어요." 한 감독이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흰 수염이 잘 어울리는 한용덕 감독(사진=엠스플뉴스)
흰 수염이 잘 어울리는 한용덕 감독(사진=엠스플뉴스)

하지만, 수염을 민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한화는 12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첫 연습경기에서 0대 6으로 졌다. 올해 첫 연습경기에서 1안타 빈공 끝에 영봉패를 당한 것이었다. '초보 사령탑' 한 감독에겐 부담이 될 법한 패배였다.

한화 관계자는 "감독님이 '다시 팀을 잘 정비해보자'는 마음에서 면도를 통해 기분 전환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뒤 "어느 감독이나 징크스가 있듯 앞으로 한 감독님의 징크스가 '면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농담 섞인 전망을 내놨다.

사실 주니치전은 영봉패에 큰 의미를 둘 경기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젊은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줄 요량으로 주전 대부분을 뺐다.

한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첫 연습경기였음에도 최선을 다했다. 일본 프로팀과의 경기가 젊은 선수들에겐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라며 "연습경기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만큼 젊은 선수들의 경기 경험과 주전 선수들의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감독님 수염이 멋져 보였는데 깔끔히 밀고 오셔서 아쉽다”고 말한 한화의 한 베테랑 선수는 “감독님이 선수들을 위해 신경쓰시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다. 덕분에 캠프 분위기가 정말 좋다"며 "선수들 사이에 '감독님을 봐서라도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내자'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선수단 전체가 감독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상태"라고 전했다.

1년 전, 한화 오키나와 캠프는 자타가 인정하는 '지옥훈련장'이었다. 강도 높은 훈련이 쉴 새 없이 진행됐다. 선수들이 유일하게 마음 놓고 쉬는 점심 시간도 길어야 20분이었다.

하지만, 올해 한화 오키나와 캠프는 '정말 이 팀이 한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게 변했다. 한화 선수들은 오후 2시 이전에 모든 훈련을 마친다. 이후엔 선수들이 알아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등 자율 훈련에 돌입한다. 점심 시간도 충분한 소화를 고려해 40분으로 늘렸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고, 지도자는 선수 몸을 끌고 가는 게 아닌 의지를 끌어내는 사람'이라는 한 감독의 지도관이 반영된 결과다.

올 시즌 중, 한 감독은 수염을 길렀다가 밀었다가를 반복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지도관마저 수시로 바꾸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한화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엠스플뉴스는 1월 31일부터 미국 애리조나·플로리다, 일본 오키나와·미야자키, 타이완 가오슝 등으로 취재진을 보내 10개 구단의 생생한 캠프 현장 소식을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많은 야구팬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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