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완벽한 베테랑'의 대명사 박용택을 엠스플뉴스가 만났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원숙해지고, 지혜를 더하는 LG 최고참 박용택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박용택은 LG를 '내 팀'으로 부른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박용택은 LG를 '내 팀'으로 부른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애리조나]

LG 트윈스 박용택은 가장 이상적인 베테랑 선수의 대명사다.

2002년 LG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이래 올해로 17년째. 박용택은 오로지 LG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다. 그 흔한 구설수 하나 없이 모범적이고 프로페셔널하게 17년을 보냈다. 대부분의 선수가 하향 곡선을 그리는 30대 이후 오히려 더 원숙한 기량을 발휘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박용택은 항상 인터뷰 때마다 LG 걱정에 여념이 없다. 팀의 성적은 물론, 장기적인 미래까지 넓은 관점에서 고민하는 진심이 묻어난다. 후배들을 물심양면으로 챙기고, 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다.

그래서 LG 팬들은 박용택을 사랑한다. 박용택 기사엔 그 흔한 악플조차 달리지 않는다. 요즘 말로 ‘영구 까방권’을 얻은 몇 안 되는 선수가 바로 박용택이다.

하지만 그런 박용택도, 지난겨울 스토브리그에서 베테랑들이 겪은 ‘한파’를 보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어려운 처지에 몰린 선수들을 보며 화도 나고, 자신을 더 다잡는 계기로 삼았다고 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마흔 살. 신인 시절 흔히 말하는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각오’가 이제 박용택에게도 조금씩 현실로 다가온다.

그래도 박용택은 여전히 야구가 즐겁다. 잘 될 때나, 잘 안 될 때나 야구를 통해 즐거움과 재미를 찾는다. 후배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호흡하는 지금이 행복하다. 그리고 지난 16년간 이루지 못한 단 하나의 목표, ‘내 팀’ LG의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엠스플뉴스는 미국 애리조나 파파고 LG 트윈스 스프링캠프에서 ‘캡틴’ 박용택을 만나 팀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이번 캠프 목표, 베테랑의 역할에 대한 그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봤다.

“‘올해가 마지막’ 각오, 내게는 ‘실화’다”

프로 데뷔 후 17번째 시즌에 맞이하는 17번째 스프링캠프다. 박용택에게 올해의 스프링캠프는 어떤 의미인가.

캠프는 항상 똑같다. 늘 올해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 거야, 잘 할 수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기대 반 설렘 반,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캠프에 온다.

‘불안감’이 있나.

물론이다. 항상 인터뷰할 때는 자신 있게 얘기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항상 조금씩 불안감이 있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그렇다.

의외다.

어린 선수들이 흔히 하는 말 있잖나.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뛰겠습니다’. 근데 그거는 그냥 생각이고, 나 같은 경우엔 ‘실화’다 실화. 30대 중반 넘은 뒤부턴 항상 올해가 정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시즌을 시작했다.

신년회 당시 인터뷰 때는 ‘FA(자유계약선수) 4년 더’를 선언하기도 했는데, 진심이 아니었나.

물론 진심이다. 진심이지만,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그만한 다짐을 하면서 시즌을 시작하지만, 사실 속으로 들어가면 내 안에서는 항상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베테랑’으로 분류되는 나이에 접어든 뒤부터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단순히 성적만이 아니라 더 원숙해지고 경지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을 받는데, 속으로는 그런 고민이 있는 줄은 몰랐다.

물론 말씀하신 그런 쪽으로 자신을 갖고 있지만, 내가 로봇은 아니니까. 분명히 나이 드는 건 피할 수 없고, 그걸 커버하기 위해 나름대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지금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갖고 있어도 구단의 분위기나 구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 여러 사정 때문에 내 생각대로 상황이 풀리지 않는 경우도 많이 봤다. 뭐 그런 것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올해 캠프에는 어떤 목표를 갖고 왔나.

어릴 때는 캠프에서 많은 훈련을 소화해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많은 연습량이 나에게 첫 번째로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캠프 때도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슬픈 얘기지만, ‘한 해 한 해가 다르다’는 선배들의 말이 이제는 조금씩 실감 날 것 같다.

나이 얘긴가. 사실 야구하고 운동하는데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크지 않다. 다만 딱 하나 느끼는 게 있는데, 바로 회복력이다. 회복하는 시간이 예전보다 오래 걸린다.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같은 시간이라도 좀 더 잘 쉬려고 노력하고, 몸만 아니라 정신까지 함께 ‘리프레쉬’하려고 한다. 그런 게 굉장히 중요하다.

박용택이 끊임없이 ‘LG 걱정’을 하는 이유는?

박용택은 여전히 야구가 즐겁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박용택은 여전히 야구가 즐겁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지난 오프시즌 LG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류중일 감독이 부임하고, FA로 김현수가 합류했다. 외국인 선수도 2명이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캠프 분위기도 활기를 띠는 것 같다.

지금 살짝 걱정되는 게 있다. 후배들이 너무 의욕적으로 해서 걱정이다. (웃음) 원래 감독이 바뀌면 선수들이 의욕적으로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류중일 감독님 같은 경우, 시즌 중에는 라인업에 크게 변화를 주지 않는 분이란 걸 선수들이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시즌 전에 눈도장을 많이 받아야 하니까, 그 때문에 후배들이 예년보다 더 의욕적이지 않나. 물론 굉장히 밝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

류중일 감독은 선수들에게 강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승을 4번이나 해본 감독이라 그런지, 자기 확신도 강하고 말에 설득력도 있다.

맞다. 감독님은 자신이 있는 분이다. 류 감독님의 자신감을 선수들이 잘 소화해서 좋은 결과로 만들었으면 한다.

나이 마흔에 최고령 캡틴이 됐다. 짐이 너무 많은 건 아닌가.

(고개를 저으며) 사실 그런 것 없다. 원래 최고참은 주장을 안 해도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다. 결국엔 주장이 하는 일도 비슷한 일이니까,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유니폼에 C자를 빼달라고 한 것도 그래서다. 그냥 우리 팀 큰형 같은 느낌의 주장을 하고 싶다.

주장이 아닐 때도 항상 각종 인터뷰를 통해 팀의 미래를 걱정하곤 했다. ‘우리 LG가 잘 돼야 하는데’, ‘LG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같은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다.

당장 우리 팀이 잘해야 내게도 좋은 일 아닌가. 내가 유니폼을 입고 뛴 유일한 팀인데, 이 팀이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한 얘기다.

그래도 일반 선수 인터뷰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거시적’인 안목의 얘기를 종종 들려주곤 한다. 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단호하게) 내 팀이니까. 나에겐 LG가 유일한 ‘내 팀’이다. 나보다 한 팀에서만 오래 선수 생활한 사람이 몇 안 된다. 송진우 선배 한 분 정도인 것으로 안다. 그러니 팀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우승이라도 몇 번 해봤으면 간절함이 조금 덜할지 모르겠는데... (한숨을 쉰 뒤) 이제 17년째인데 아직 우승 한 번을 못 해봤다. 그래서 더 아쉬운 마음이 큰가 보다.

팬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박용택 기사에는 그 흔한 악플 하나 달리지 않는다. 하나같이 감사와 찬양의 말뿐이다. 팬들에게 ‘까방권’을 받는 몇 안 되는 선수가 됐다.

불쌍한가 보죠. (웃음) 17년 동안 유니폼 입고 있으면서 우승 한 번 못했다는 게. 사실 난 프로야구 선수라면 팬에게 비판받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다만 잘할 때도 욕하면 그건 좀 이상하고. (웃음) 잘할 때 잘한다 하고, 못할 때 못한다 하면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생각한다.

우승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LG도 이번 오프시즌 전력을 많이 보강했다. 올해 LG가 어떤 성적을 낼지 팬들 사이에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캡틴 생각엔 어떤가. 올해 LG, 우승 가능성 있을까.

사실 야구가 가능성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프로야구 선수는 결과를 내야 하는 사람들인데, 어떤 결과를 내고 싶다고 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게 아이러니한 점이다. 결국 우리가 어떤 결과를 얻으려면 뭘 해야 할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각자 잘 생각하고 추구하고. 그런 것들이 하나로 잘 모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베테랑 한파 지켜본 베테랑 박용택의 감정 변화는?

박용택은 리그에서 가장 모범적인 베테랑 선수로 꼽힌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박용택은 리그에서 가장 모범적인 베테랑 선수로 꼽힌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올겨울엔 유독 베테랑 선수들이 시장의 냉대를 받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몇 안 남은 1970년대생 선수로서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사실 좀 화가 났다. 솔직히, 많이 화났다.

그랬나.

베테랑 선수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이 많다. 그런 건 어디 야구 기록 사이트에 나오지 않는다. 그게 WAR(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 계산에 들어가진 않는다. 하지만 거기 반영되진 않아도 베테랑의 여러 가지 역할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평가는 거의 이뤄지지 않으니까.

동의한다.

야구란 게 숫자상으로 뛰어난 애들 조합해서 한 팀에 모아놓는다고 해서, 꼭 그 팀이 우승하는 게 아니다. 확률은 올라가겠지만, 반드시 그 팀이 우승한다는 법은 없다. 중간중간에 빈칸을 채우는 역할을 고참이나 베테랑들이 해줘야 하는데, 요즘엔 그런 요소를 너무 간과하는 것 같다.

나이 많은 선수는 비용 대비 가치가 떨어진다는 계산의 결과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스프링캠프 보이콧 얘기도 나오지 않았나. 그것도 비슷한 면이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 생각은 그런 거다. ‘에이징 커브’를 보니 20대 후반이면 슬슬 기량이 떨어지는데, FA가 되려면 최소 6년은 지나야 한다. 그러면 나이가 벌써 20대 후반이고 그때 장기 계약을 시작하면 먹튀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대신 나이 어리고 떡잎 괜찮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만든다. 미국은 워낙 선수 자원이 풍부하니까, 그런 친구들을 2, 3년만 써도 팀 전력이 된다. 그렇게 몇 년 쓰다가 FA 되면 다 팔고, 다시 또 시작하고. 그런 것 아닌가.

굉장히 비즈니스적인 발상이다.

물론 새로운 스타를 원하는 팬도 많다. 하지만 팀에서 오랫동안 뛰면서 활약한 스타를 보고 싶어 하는 팬도 많다. 야구팬이 다 세이버메트리션은 아니지 않나.

팀마다 각자의 길이 있다. 운영의 효율성을 추구해야 하는 스몰 마켓 구단도 있고, 스타를 영입해서 많은 관중을 불러들여야 하는 팀도 있다. 아무튼 베테랑 한파를 지켜보면서, 같은 베테랑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얘기로 이해하겠다.

팀을 못 구한 친구들 입장에서 얼마나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심정일까 생각하니 화가 나더라. 또 한편으로는 그런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나 자신이 더 다짐을 하게 되는 면도 있다.

베테랑 선수들은 후배들을 보며 양면적인 감정을 갖는다고 한다. 후배들이 빨리 성장해서 팀의 주축으로 올라오길 바라는 마음과, 그런 후배들에게 지기 싫고 자리를 내주기 싫은 마음이다. 같은 마음인가.

당연하다. 내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는 계속 내가 만족하는 야구를 하면서 위치를 잘 지키고 있는데, 후배 중에 그걸 뛰어넘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그건 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못해서 후배에게 자리를 뺏긴다면 그건 좀 슬플 것 같다. 또 나는 멀쩡한데 팀 사정과 여러 이유로 나보다 떨어지는 선수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면, 그때는 선수가 납득을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야구, 그동안 참 오래 했다. 그래도 여전히 야구가 즐거운가.

물론이다. 야구하는 건 항상 즐겁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재미있다. 잘 안 돼서 화가 나도, 그걸 잘 되게 만드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그렇게 해서 잘 되면 기분이 좋고 재밌고, 안 되면 왜 안되는지 연구하고 다시 해보고. 실패를 거듭하다 성공하면 거기서 쾌감을 느끼고. 그래서 야구가 재미있다.

지칠 때는 없나.

아주 가끔이지만 시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지친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선배들은 ‘나이를 먹으면 몸이 아니라 정신이 지친다’고 하더라. 똑같은 야구선수 생활을 거의 20년 가까이 하다 보니 회의감 같은 게 들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걸 극복하려면, 뭔가 구체적인 목표 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

17년째 선수 생활을 하면서 계속 목표의식을 갖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아직도 더 이룰 게 남아 있나.

팀의 우승이 첫 번째다. 그 외엔, 내가 앞으로 10년을 더 선수 생활할 건 아니니까... (잠시 생각을 고른 뒤) 몇 년이 남았든 남은 시간 동안 부상 없이 지금 하는 만큼만 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LG 팬들에게 올 시즌 이것만큼은 반드시 지킬 수 있다, 약속 하나만 한다면.

약속, 그거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웃음) 우리 선수들이 정말 하나가 되어 이기고 싶은 마음, 우승하고 싶은 마음, 한마음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게 주장으로서 역할을 하겠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겠다. 그것 하나만은 약속할 수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엠스플뉴스는 1월 31일부터 미국 애리조나·플로리다, 일본 오키나와·미야자키, 타이완 가오슝 등으로 취재진을 보내 10개 구단의 생생한 캠프 현장 소식을 '엠스플 in 캠프'란 이름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많은 야구팬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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