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소년 야구의 성지’ 장충 리틀야구장이 입찰 물건으로 나왔다. 서울시는 입찰 배경으로 ‘민원과 업무 효율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리틀야구계는 “서울시가 특정 야구단체의 민원과 그 특정단체의 회장인 유력 시의원의 압력에 굴복해 장충 리틀야구장을 입찰 물건으로 내놓은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 장충 리틀야구장은 한국 유소년 야구의 전당이자 성지다. 그러나 입찰 결과에 따라 상업 야구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서울 장충 리틀야구장은 한국 유소년 야구의 전당이자 성지다. 그러나 입찰 결과에 따라 상업 야구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엠스플뉴스]

서울 장충 리틀야구장. 한국야구의 요람(搖籃)이다. 1971년 개장 이래 수많은 ‘야구 꿈나무’가 이곳에서 뛰었다. 현역 선수론 박용택(LG), 박병호(넥센), 김광현(SK)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엠스플뉴스는 한 제보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 제보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가 한국야구의 뿌리인 장충 리틀야구장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공개 입찰에 부쳤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킨 장충 리틀야구장이 상업화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한국 유소년 야구의 상징인 장충 리틀야구장이 상업 야구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장충 리틀야구장을 떠나야 하는 한국리틀야구연맹

서울 장충 리틀야구장 건립에 사재까지 털었던 고 김종락(사진 맨 오른쪽) 대한야구협회 회장(사진=대한야구협회)
서울 장충 리틀야구장 건립에 사재까지 털었던 고 김종락(사진 맨 오른쪽) 대한야구협회 회장(사진=대한야구협회)

장충 리틀야구장은 1971년 세워졌다. ‘한국야구가 항구적으로 발전하려면 리틀야구 저변 확대가 필수’라고 판단한 대한야구협회 고 김종락 회장이 건립을 주도했다.

그 후, 장충 리틀야구장은 50년 가까이 한국 유소년 야구의 상징이자 야구소년들의 성지로 인정받아왔다. 많은 프로야구 선수가 장충 리틀야구장에서 배출됐고, 세계리틀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리틀야구팀이 3회 우승하는데도 장충리틀야구장이 절대적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해까지 장충 리틀야구장은 한국리틀야구연맹이 운영했다. 예산이 부족한 리틀연맹 사정을 고려해 서울시는 구장 사용료를 받지 않았다. 대신 리틀야구연맹이 전기료, 수도료, 청소비, 각종 세금 등을 부담하면서 전체적인 구장 관리를 맡도록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변했다. 리틀야구연맹은 3월 31일까지 장충 리틀야구장을 비워줘야 한다. 구장 관리 주체인 서울시 중부 공원녹지사업소(소장 이춘희)가 ‘장충 리틀야구장 사용권을 공개 입찰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장충 어린이야구장 운영자 선정 일찰공고문’에 따르면 서울시 중부 공원녹지사업소는 장충 리틀야구장의 구장, 더그아웃, 관중석, 전광판, 펜스 등의 사용권을 공개 입찰을 통해 4월 1일부터 새 운영자에 넘길 예정이다.

계약 기간은 3년으로, 1년 구장 사용료의 최저 입찰액은 7천779만310원이다. 구장 사용료엔 전기료, 수도료, 청소비, 여타 세금 등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리틀야구계 "서울시가 의도적으로 '리틀야구연맹'을 입찰에서 제외하려고 꼼수 부렸다."

입찰 물건으로 올라온 장충 리틀야구장(사진=엠스플뉴스)
입찰 물건으로 올라온 장충 리틀야구장(사진=엠스플뉴스)

야구계는 장충 리틀야구장을 공개 입찰하려는 서울시 행정에 강한 아쉬움과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리틀야구팀 감독은 “‘소통이 시정 목표’라던 서울시가 장충 리틀야구장 입찰과 관련해선 일방통행식 행정만을 고집하고 있다”며 “기회만 되면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겠다’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과는 반대로 오히려 서울시가 앞장 서 아이들의 꿈의 무대인 장충 리틀야구장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고 목소릴 높였다.

야구계가 장충 리틀야구장 공개 입찰에 반발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장충 리틀야구장이 과연 공개 입찰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리틀야구연맹 관계자는 “장충 리틀야구장은 프로야구장이 아니라 리틀야구 전용구장이다.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라 유소년 선수들이 마음껏 뛰놀도록 지어진 곳이다. 특히나 장충 리틀야구장은 한국 유소년 야구 역사가 숨 쉬는 곳이다. 서울시가 이런 장충 리틀야구장을 어떻게 다른 상업 체육시설과 똑같이 평가해 공개 입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두 번째 반발 이유는 사용료 책정이다.

리틀야구연맹 측은 “지금껏 장충 리틀야구장은 상업적으로 운영된 바 없다. 그 흔한 바자회 한 번 연 적도 없다. 가뜩이나 모든 대회가 ‘무료 관전’으로 진행된다”며 “빡빡한 연맹 살림살이를 고려할 때, 서울시가 한해 1억 원이 넘을 수도 있는 구장 사용료를 내라는 건 ‘이제 리틀야구는 떠나라’는 일방통보와 같다”고 주장했다.

가장 큰 반발은 입찰 자격이다.

서울시의 입찰 공고문에 따르면 ‘주 사무실의 소재지가 서울’인 비영리단체에만 입찰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리틀야구연맹은 지난해 3월 경기도 화성에 있는 ‘화성 드림파크’로 주 사무실을 옮겼다. 장충 리틀야구장의 사무실 공간이 턱없이 협소한 까닭도 있었지만, 서울시가 “장충 리틀야구장을 더는 사무실로 쓰지 마라”고 통보한 게 가장 큰 이전 이유였다.

체육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리틀야구연맹 주 사무실이 화성에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입찰참가 자격에 ‘주 사무실의 소재지가 서울’이란 제한을 둔 건 리틀야구연맹의 입찰 참여를 원천봉쇄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리틀야구연맹이 입찰에 참여하려면 위장전입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혀를 찼다.

문제가 되는 입찰 자격. 서울시 중부 공원녹지사업소는 “서울에도 장충 리틀야구장 입찰에 뛰어들겠다는 업체가 많아 입찰 자격을 전국으로 확대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취재 결과 서울시가 언급한 '입찰에 뛰어들겠다'는 곳 가운데 실제 입찰에 뛰어들 곳은 한 두 곳 정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야구계가 실체를 인정하는 곳은 한 곳 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의 입찰 자격 제한으로 경기도 화성에 사무실이 있는 한국리틀야구연맹은 입찰 참여가 원천봉쇄됐다(사진=엠스플뉴스)
문제가 되는 입찰 자격. 서울시 중부 공원녹지사업소는 “서울에도 장충 리틀야구장 입찰에 뛰어들겠다는 업체가 많아 입찰 자격을 전국으로 확대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취재 결과 서울시가 언급한 '입찰에 뛰어들겠다'는 곳 가운데 실제 입찰에 뛰어들 곳은 한 두 곳 정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야구계가 실체를 인정하는 곳은 한 곳 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의 입찰 자격 제한으로 경기도 화성에 사무실이 있는 한국리틀야구연맹은 입찰 참여가 원천봉쇄됐다(사진=엠스플뉴스)

야구계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건 장충 리틀야구장의 상업화다.

서울시에 구장 사용료를 내려면 반드시 한해 7천790만 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 7천790만 원이 최저입찰액이니 그 이상의 사용료를 내야 할 수도 있다. 구장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최소 1억 원 이상의 수익을 내야 적자를 모면할 수 있다는 게 리틀야구계의 중평이다.

많은 리틀야구 지도자는 “리틀야구의 엄혹한 현실을 볼 때 그만한 수익을 내려면 구장을 연중 상업화할 수밖에 없다”며 “장충 리틀야구장이 ‘유소년 야구의 전당’에서 유소년 야구를 이용한 ‘돈벌이의 장’으로 변질되는 건 이제 시간 문제”라고 걱정하고 있다.

서울시 “입찰, 적법한 절차에 따라”

리틀야구계 “입찰, 외부 압력에 의한 결정” 의혹 제기

2014년 미국에서 열린 리틀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한국 리틀야구 선수들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은 장면. 이 아이들은 장충 리틀야구장에서 꿈을 키웠고, 그곳에서 훈련한 뒤 세계대회에 참가했다. 서울시는 “그간 리틀야구연맹으로부터 장충 리틀야구장 관리비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확인 결과 리틀야구연맹이 전기료, 수도료, 각종 검사비, 청소비 등의 전체적인 관리비를 책임져왔던 것으로 밝혀졌다(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대표 기자)
2014년 미국에서 열린 리틀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한국 리틀야구 선수들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은 장면. 이 아이들은 장충 리틀야구장에서 꿈을 키웠고, 그곳에서 훈련한 뒤 세계대회에 참가했다. 서울시는 “그간 리틀야구연맹으로부터 장충 리틀야구장 관리비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확인 결과 리틀야구연맹이 전기료, 수도료, 각종 검사비, 청소비 등의 전체적인 관리비를 책임져왔던 것으로 밝혀졌다(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대표 기자)

그렇다면 어째서 서울시는 장충 리틀야구장 공개 입찰을 강행한 것일까.

3월 9일 입찰 공고문을 낸 서울시 중부 공원녹지사업소 이춘희 소장은 엠스플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여기저기서 장충 리틀야구장과 관련해 민원이 많이 접수됐다. 구장 활용 효율성을 높이려는 차원에서라도 공개 입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개 입찰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이 소장은 장충 리틀야구장 입찰 자격을 ‘주 사무실 소재지가 서울’로 제한한 것에 대해 “장충 리틀야구장을 사용할 만한 업체가 서울에도 많아 굳이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지 않았다. 나 혼자 결정한 게 아니라 서울시 푸른 도시국, 재무국 등과도 협의해 결정한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외부 압력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리틀야구계와 서울시 체육계 인사들의 반응은 다르다. 서울시 체육계 인사는 “중부 공원녹지사업소가 모 야구 단체의 민원을 받아 장충 리틀야구장을 공개 입찰한 것”이라며 “그 야구 단체의 회장을 맡은 모 유력 시의원이 서울시에 ‘공개 입찰을 하도록 압박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서울시가 입찰 자격에 ‘주 소재지를 서울’로 제한한 것도 “모 야구 단체의 민원과 모 유력 시의원의 압박에 의한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취재 중 충격적이었던 건 모 프로야구 단체가 장충 리틀야구장을 '접수해' 유소년 야구사업을 계획 중이라는 얘기였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선배 야구선수들'이 '꿈나무 야구선수들의 무대'를 차지하는 꼴이 된다.

야구계의 무관심 속에서 리틀야구계는 '실체 불명의 모 야구 단체와 프로야구 단체가 한국 리틀야구의 성지인 장충 리틀야구장을 접수해 상업화하는 걸 막겠다'며 단체 행동을 준비 중이다. 엠스플뉴스는 이와 관련해 추가 취재를 진행 중이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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