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유소년야구의 성지’에서 입찰 물건으로 전락했던 장충 리틀야구장이 다시 어린이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장충 리틀야구장을 입찰 물건으로 내놨던 서울시가 돌연 입찰을 취소한 까닭이다. '입찰 참여 단체가 많다'고 큰소리쳤던 서울시는 왜 입찰을 취소한 것일까.

장충 리틀야구장은 ‘한국 유소년야구의 성지이자 역사’다. 수많은 어린이가 이곳에서 ‘대선수’의 꿈을 키웠다(사진=엠스플뉴스)
장충 리틀야구장은 ‘한국 유소년야구의 성지이자 역사’다. 수많은 어린이가 이곳에서 ‘대선수’의 꿈을 키웠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서울 장충 리틀야구장. ‘한국 유소년야구의 성지’다. 1971년 개장 이래 수많은 야구소년이 ‘대선수’의 꿈을 키워온 곳이다.

하지만, 장충 리틀야구장은 거의 해마다 철거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엔 ‘남산 르네상스 사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철거가 확정되다시피 했다. 몇몇 이가 나서 철거를 막지 않았다면 지금쯤 장충 리틀야구장은 동대문야구장처럼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전설의 야구장’이 됐을 것이다.

한동안 평온했던 장충 리틀야구장이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든 건 최근이다. 구장 관리를 담당하는 서울시 중부 공원녹지사업소(소장 이춘희)가 최근 장충 리틀야구장을 입찰 물건으로 내놓으면서다.

9일 엠스플뉴스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사업소는 “여기저기서 장충 리틀야구장과 관련해 민원이 많이 접수됐다. 구장 활용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에서라도 공개 입찰이 필요하다”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개 입찰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중부 공원녹지사업소 "입찰 취소? 외부에서 말이 많아서"

국가 공매사이트 ‘온비드(www.onbid.co.kr)에 공시된 ‘장충 리틀야구장 사용에 대한 공개 입찰권’ 게시물. 공고 상태가 '일반 공고'였으나 지금은 '취소'로 돼 있다(사진=온비드)
국가 공매사이트 ‘온비드(www.onbid.co.kr)에 공시된 ‘장충 리틀야구장 사용에 대한 공개 입찰권’ 게시물. 공고 상태가 '일반 공고'였으나 지금은 '취소'로 돼 있다(사진=온비드)

그간 장충 리틀야구장은 한국리틀야구연맹이 운영했다. 서울시는 열악한 연맹 재정을 고려해 구장 사용료를 면제해줬다. 그렇다고 리틀야구연맹이 무일푼으로 구장을 사용한 건 아니다. 전기료, 수도료, 청소비, 검사비 등 각종 관리비를 리틀연맹에서 부담했다.

그러던 지난해. 리틀야구연맹은 구장 운영 주체인 서울시 중부 공원녹지사업소로부터 퇴거 명령을 받았다. “리틀야구연맹이 장충 리틀야구장을 독점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 민원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리틀야구연맹은 서울시 명령에 따라 장충 리틀야구장에 있던 사무실을 비워줘야 했다. 리틀야구연맹이 떠나자 서울시는 “장충 리틀야구장의 새 운영권자를 찾겠다”며 지난해 연말부터 ‘장충 리틀야구장 사용권 입찰’을 준비했다.

그리고 결국, 3월 9일 국가 공매사이트 ‘온비드(www.onbid.co.kr)’를 통해 ‘장충 리틀야구장 사용에 대한 공개 입찰’을 공시했다.

입찰을 앞두고 서울시는 “입찰에 참여할 단체가 많을 것으로 파악했다”며 “최저 입찰가인 7천779만310원이 부담될 만한 돈은 아니란 생각”이란 입장을 내놨다. 서울시 말대로라면 많은 단체의 참여 속에서 불꽃 튀는 입찰전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모든 입찰 일정이 끝났음에도 최종 낙찰자는 발표되지 않았다. '유찰 됐다'는 소식 역시 들리지 않았다. 취재 결과 서울시가 입찰을 전격 취소하면서 '없던 일'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장충 리틀야구장 입찰건을 담당한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 한 선 팀장은 엠스플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외부에서 말이 많아서 내부 검토 끝에 ‘입찰 취소’를 결정했다”며 “장충 리틀야구장 입찰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팀장의 '외부에서 말이 많아서'란 답변은 논란의 소지가 큰 발언이었다. '외부'가 리틀야구계와 체육계 그리고 장충 리틀야구장을 이용하는 학생과 이들의 보호자인 학부모들이기 때문이었다.

한 팀장의 답변 내용을 들은 현직 리틀야구 감독은 “많은 사람의 반대와 우려에도 입찰을 강행할 땐 우리들의 목소리를 그렇게 무시했던 서울시가 뜻대로 입찰이 잘 되지 않으니 지금 와 ‘외부에서 말이 많아서’란 핑계를 대고 있다”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이 감독은 “서울시가 말하듯 리틀야구 아이들과 학부모, 지도자들이 ‘외부자’면 서울시 공무원은 ‘내부자’란 뜻이냐”며 “어떻게 시 공무원이 시민을 '외부자'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분개했다.

서울시 27개 리틀야구팀 감독자가 서울시에 보낸 청원서(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서울시 27개 리틀야구팀 감독자가 서울시에 보낸 청원서(사진=엠스플뉴스 전수은 기자)

여기서 주목할 건 한 팀장의 발언의 진위다. 한 팀장은 ‘외부에서 말이 많아서’란 이유를 댔지만, 실제 서울시가 온비드에 명기한 취소 사유는 ‘장충 어린이야구장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운영자 참여 확대 및 예정가격의 조정 검토 필요’였다.

사업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이는 서울시가 내세운 취소 사유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업소는 ‘입찰 참여 단체가 많다’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입찰 참여를 확정한 단체는 거의 없었다. 최저 입찰가 역시 지나치게 높게 책정돼 매력이 떨어졌다. 만약 사업소의 예상대로 ‘입찰 참여 단체가 많고, 최저 입찰가가 적정했다’면 ‘운영자 참여 확대 및 예정가격의 조정 검토’를 입찰 취소의 사유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외부에서 말이 많아서’는 모든 책임을 말 그대로 외부로 떠넘기려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시 "입찰은 신중한 검토 끝에 내린 결론. 입찰에 참여할 단체 많다."

그러나 현실은 입찰 참여 업체 전무.

2016년 리틀리그월드시리즈에서 준우승을 거둔 한국리틀야구팀(사진=엠스플뉴스)
2016년 리틀리그월드시리즈에서 준우승을 거둔 한국리틀야구팀(사진=엠스플뉴스)

장충 리틀야구장 입찰이 취소됐다고, 서울시가 입찰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다. 실제로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 한 선 팀장은 “아직 완전히 취소된 거라곤 볼 수 없다. 잠시 보류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팀장은 정확한 재입찰 시기나 추후 계획에 대해선 “난 잘 모르겠다. 모두 위에서 하는 일”이라며 “지금으로선 시기에 대해 확답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입찰 전까지만 해도 서울시는 “구장 사용권 입찰은 신중한 검토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모든 과정이 신중한 검토 끝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애초부터 ‘신중한 검토’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리틀야구계의 중평이다. 실제로 서울시 사업소 관계자는 ‘예상 입찰 참여 단체’의 실사는 고사하고, 이 단체들의 홈페이지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이렇듯 부실하게 입찰을 추진하다 보니 ‘입찰할 단체가 많다’는 서울시의 예상과 달리 입찰 하루 전까지 ‘입찰에 참여하겠다’는 단체는 단 한 곳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되레 서울시가 ‘유력 입찰 참여 단체’로 지목했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한국보이스야구연맹, 한국유소년야구연맹은 입찰 하루 전 “입찰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며 “모든 단체가 뭉쳐 리틀야구의 성지를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체육시민단체 관계자는 “‘사업소 직영으로 구장을 운영하자니 귀찮고, 그대로 두자니 민원이 귀찮고’가 지금 서울시 사업소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과연 이런 사업소에 시민이 애용하는 체육시설을 맡겨도 될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라며 “장충 리틀야구장처럼 보존 가치가 높고, 전국에 몇 안 되는 국제 규격을 갖춘 어린이 야구장일 경우, 서울시가 보다 적극적으로 구장 보호와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취재 후 :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는 입찰 취소 과정을 묻는 취재진에게 답변 대신 “자꾸 전화하지 말라. 전화를 끊겠다”는 발언을 반복해 들려줬다.

사업소 이춘희 소장과의 인터뷰 역시, 사업소 측은 ‘바쁘다’, ‘출장 중이다’, ‘나중에 다시 연락 달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 소장은 6월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전수은 기자 gurajeny@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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