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야구협회 차명계좌 및 비자금 조성 사건, 이번엔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사진=MBC)
대한야구협회 차명계좌 및 비자금 조성 사건, 이번엔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사진=MBC)

- 야구용품 비리로 실형 받은 사건과 차명계좌 횡령이 '포괄일죄'?

- 차명계좌 발견한 경찰, 입금자 조사는 왜 제대로 안 했나

- 불기소 처분한 검찰, 차명계좌 존재 정말 몰랐나

- 수사 경찰과 불기소 검사의 답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인해줄 게 없다."

[엠스플뉴스]

차명계좌를 동원한 대한야구협회(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비자금의 실체가 이번엔 제대로 밝혀질까.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4월 3일 대한야구협회 전·현직 임직원 7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체육 정상화 특별전담팀(TF)’을 꾸려 3억 원 가까운 야구협회 자금이 차명계좌로 흘러간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철저한 사실 규명을 위해 사건을 수사기관의 손에 넘겼다.

문체부 관계자는 “수사기관의 엄정한 수사를 통해 비자금 사건의 실체가 명백하게 드러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야구계에선 수사기관이 야구협회 관련 사건을 제대로 다룰지 의문을 제기한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 의지만 있었다면 이미 2015년과 2016년 고발 때 실체를 밝혀내고 처벌이 이뤄졌을 것'이란 강한 아쉬움 때문이다. 어째서 경찰과 검찰은 야구계로부터 '날림 수사'란 비판을 받았던 것일까.

첫번째 의문: 윤 부장과 양 팀장의 ‘포괄일죄’ 미스터리

대한야구협회 전현직 직원 2명은 2014년 횡령으로 법원 판결을 받았다(사진=MBC)
대한야구협회 전현직 직원 2명은 2014년 횡령으로 법원 판결을 받았다(사진=MBC)

시계를 3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5년 3월, 나진균 당시 대한야구협회 사무국장은 윤00 이사, 김00 부회장, 윤00 부장, 양00 팀장 등 전·현직 협회 인사 4명을 업무상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협회도 박상희 당시 회장 명의로 2016년 3월 이들을 같은 이유로 고소했다.

나 국장과 협회가 전·현직 협회 인사 4명을 고소한 건 이들이 만들었다고 추정되는 '차명계좌'가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차명계좌엔 3억 원 가까운 돈이 수시로 입출금 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혐의가 확실해 해를 넘지 않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결론이 나기까진 '2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결과 역시 딴판이었다.

2017년 3월, 나 사무국장이 고소한 사건을 다룬 검찰은 윤00 부장과 양00 팀장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김00 부회장과 윤00 이사에 대해선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협회의 고소 역시 같은 해 7월 불기소로 결론 났다.

그렇다면 어째서 검찰은 윤00 부장과 양00 팀장을 불기소 처분한 것일까. 검찰은 '2009년 9월 11 경부터 2012년 12월 18일 경까지 총 75회에 걸쳐, 업무상 보관하고 있던 고소인 협회 자금 중 합계 4억 3천만 원가량을 고소인 협회 계좌에서 무단 인출 또는 이체한 뒤, 사적 용도에 임의 사용했다'며 두 이의 공동 범행 사실을 인정했다.

또 '양00 팀장이 74회에 걸쳐 협회 자금 3억 1천만 원을 무단 인출해 사적 용도로 횡령한 혐의'에 대해서도 사실로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검찰은 범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두 이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 결정문에서 그 이유를 '두 이의 범행이 앞서 2014년 8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판결한 범죄사실과 포괄일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적시했다.

검찰 불기소 결정문. '포괄일죄' 개념이 등장한다(사진=엠스플뉴스)
검찰 불기소 결정문. '포괄일죄' 개념이 등장한다(사진=엠스플뉴스)

포괄일죄’는 여러 차례의 범죄 행위가 포괄적으로 1개의 구성요건에 해당해 일죄를 구성하는 경우를 말한다. 쉽게 말해 같은 범죄행위가 수차례 반복되거나 연속해서 이뤄진 경우, 이 범죄들을 하나의 범죄행위로 간주해 처벌한다는 개념이다.

정재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는 “횡령이 단일하고도 계속된 범의 아래 일정 기간 반복하여 저질러졌고, 그 피해 법익도 같다면 포괄일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과거 대법원 판례"라며 "검찰이 2014년 윤00 부장과 양00 팀장이 실형 선고를 받았던 범행과 '차명계좌 횡령건'을 같은 범죄행위로 봐 '이미 처벌받은 사안이니 또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법조인들은 2014년 두 이가 실형 선고를 받은 범행과 2015, 2016년 고소된 '차명계좌 횡령건'을 하나의 범죄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범행 기간과 범행 방식이 다른 만큼 전혀 다른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00 부장과 양00 팀장이 2014년 실형 선고를 받은 사건은 두 이가 야구공 등 장비 구매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이뤄졌다. 두 이는 2009년 12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야구용품 업체 B사 등과 짜고서 야구공 등 장비 구입비용을 B사 등에 과다 지급한 뒤 업체들로부터 돈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협회 자금을 횡령했다.

또 허위로 물품을 주문한 뒤 부가세를 제외한 나머지 대금을 돌려받는 수법도 사용했다. 공소사실이 대부분 인정되면서 윤00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양00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고서 2014년 9월 6일 판결이 확정됐다.

반면 2015, 2016년 고소건은 장비 구매업무와는 다른 영역에서 이뤄진 혐의를 다뤘다. 여기선 협회 자금, 보조금 등을 직접 협회 계좌에서 무단 인출해 차명계좌로 이체한 뒤 사적 용도로 사용한 게 문제가 됐다. 횡령 액수도 총 3억 원 이상으로 2014년 실형 선고를 받은 사건보다 훨씬 큰 규모의 횡령이 이뤄졌다.

협회 전직 관계자 A 씨는 “2015, 2016년 고소건은 윤00, 양00 등이 기소된 뒤인 2014년 6월에 공식 회계감사를 통해 찾은 새로운 혐의에 대한 것이다. 처벌이 이뤄진 물품대금, 부가세 횡령과는 별도의 범행을 발견해 고소한 건데 검찰에선 이를 ‘같은 죄’로 판단했다”고 아쉬워했다.

‘포괄일죄’를 적용한 검찰 판단을 백 번 존중한다손 쳐도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다. '이 차명계좌 횡령건은 2015년 3월 나진균 사무국장이 검찰에 고소한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증거'라는 것이다.

박지훈 변호사(법무법인 태웅)는 “포괄일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주관적으로는 범의의 단일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객관적으로는 피침해 법익의 동일성, 범행의 방법의 유사성 등이 인정되어야 한다”차명계좌를 이용한 횡령은 개인계좌를 이용한 것과는 범행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고, 범의의 단일성도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두번째 의문: 차명계좌 수사 제대로 했나

2014년 당시 사건을 수사한 서울 수서경찰서(사진=엠스플뉴스)
2014년 당시 사건을 수사한 서울 수서경찰서(사진=엠스플뉴스)

문제는 검찰 뿐만이 아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대한야구협회 나진균 전 사무국장은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발견한 새로운 증거인 차명계좌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서울 수서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선 차명계좌에 명의를 도용당한 전 프로야구단 트레이너 B 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 조사를 통해 차명계좌를 양00 팀장이 개설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차명계좌는 그 자체로 금융실명제법 위반에 해당하는 중죄다. 또 B 씨 증언으로 미뤄볼 때 B 씨 외에도 다른 피해자의 명의를 도용해 더 많은 차명계좌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실제로 B 씨는 "나말고 또 다른 트레이너의 명의가 차명계좌로 사용된 것으로 안다"는 얘길 들려줬다. 이는 야구협회 비리를 파헤치는 데 중요한 ‘스모킹 건’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차명계좌 명의자만 불러 조사했을 뿐, 차명계좌로 돈을 보낸 이들에 대해선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돈을 주고받은 사람을 직접 불러 조사하는 건 차명계좌 수사의 기본이다. 차명계좌로 야구협회 자금은 물론 KBO 돈까지 총 3억 원대 거액이 오간 증거가 뚜렷했지만 후속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차명계좌 입금내역서. 신원 확인 가능한 이름이 많지만, 이들을 불러 조사하는 절차는 이뤄지지 않았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가 입수한 차명계좌 입금내역서. 신원 확인 가능한 이름이 많지만, 이들을 불러 조사하는 절차는 이뤄지지 않았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는 차명계좌 입금내역서에 표기된 입금자 중에 ‘신원 파악이 가능한’ 입금자를 대상으로 취재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차명계좌 문제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12년 한 차례 차명계좌로 돈을 보낸 KBO에 대해서도 아무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수서경찰서 경위 C 씨는 문체부에서 진행한 TF 조사에 응한 것으로 확인됐다. C 경위는 TF 조사에서 ‘수사 과정에서 차명계좌의 존재를 알았고, 검찰에 사건을 이첩할 때 차명계좌에 대해 보고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엠스플뉴스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자 C 경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사건을 맡은 수서경찰서에 물어보라”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현재 C 경위가 근무하는 서울지방경찰청에 공식 질의를 보내 답변을 요청했지만, 이 역시 거부했다.

이와 관련 정재욱 변호사는 “예단은 어렵지만 수사과정이 부실했다고 판단할 여지는 있다. 처음 수사를 할 때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엠스플뉴스는 C 경위가 수사를 제대로 진행했는지 계속 살펴볼 계획이다.

세번째 의문: 검찰 수사 결과에서 사라진 차명계좌

경찰은 차명계좌 존재를 검찰에 보고했다고 주장하지만, 검찰 결정문에선 차명계좌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사진=MBC)
경찰은 차명계좌 존재를 검찰에 보고했다고 주장하지만, 검찰 결정문에선 차명계좌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사진=MBC)

문체부 TF 조사에서 C 경위는 '차명계좌의 존재를 검찰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엔 차명계좌는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협회 계좌와 윤00의 개인 계좌, 양00가 이용한 ‘불상의 계좌’만이 등장할 뿐이다. 검찰이 차명계좌의 존재를 전혀 몰랐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물론 차명계좌로 의심되는 대목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검찰 결정문의 피의자 양00 항목을 보면 ‘2009년 8월 10일경부터 2013년 7월경까지 총 74회에 걸쳐, 업무상 보관하고 있던 고소인 협회 자금 중 합계 약 3억 1천만 원을 지출결의서나 품의서 등 없이 협회 계좌에서 무단 인출 또는 이체한 뒤 사적 용도에 임의 사용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협회 차명계좌를 통한 거래는 2009년 9월부터 2012년 12월에 집중됐다. 총 101회의 거래가 이뤄졌고, 액수는 3억 원에 달했다. 검찰이 지목한 내용과 비슷한 점이 많다. 참고로 차명계좌는 트레이너 B의 명의를 도용해 양00가 개설했다.

검찰 결정문 일부. 계좌 주인과 번호까지 특정한 다른 항목과 달리, 양00 팀장 혐의에 대해선 계좌명과 번호를 특정하지 않았다(사진=엠스플뉴스)
검찰 결정문 일부. 계좌 주인과 번호까지 특정한 다른 항목과 달리, 양00 팀장 혐의에 대해선 계좌명과 번호를 특정하지 않았다(사진=엠스플뉴스)

하지만, 의문은 계속 남는다. 검찰은 결정문에서 다른 혐의를 언급할 땐 계좌 주인과 계좌번호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가령 윤00의 혐의에 대해선 고소인 협회 계좌(농협 369-01-017XXX)를 분명하게 적시했다. 양00의 ‘야구장 건립 기부금 횡령’ 혐의를 언급할 때도 협회 계좌(농협 374-910018-67XXX)를 밝혔다.

그러나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뤄진 횡령에 대해선 ‘고소인 협회 자금’이라고만 표현할 뿐 어느 협회 계좌인지는 적시하지 않고 애매하게 표현했다. 횡령에 사용한 계좌번호 역시 적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횡령 사실은 인정되나, 기존 판결에서의 범죄사실과 포괄일죄의 관계에 있는 범행으로서, 그 기판력이 본건에 미친다. 공소권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지훈 변호사는 “차명계좌는 말단 직원이 쉽게 개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차명계좌를 이용했다면 윗선이 개입한 조직적, 계획적 횡령으로 볼 수 있다. 차명계좌를 이용한 횡령은 개인계좌를 이용해 돈을 빼돌린 것과 포괄일죄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체부 TF 조사에 참여한 일부 조사위원도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사위원은 “증거자료를 살펴보니 무려 3억 원 가까운 돈이 차명계좌를 통해 오갔다. 협회 고위층의 지시 없이 실무자 개인이 착복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라고 강조했다.

사건을 처음 고발한 나진균 전 사무국장은 "증거가 명백하고, 증인이 있는데도 경찰과 검찰은 피고소인들의 이야기만 들었다. '누군가'의 압력 때문인지 이 건만 유독 검사가 7차례나 바뀌는 등 심한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사건 자체가 흐지부지 끝났다”고 목소릴 높였다.

핵심 피의자인 윤00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의원 시절 측근 인사로 알려졌다. 김 전 비서실장이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 그의 선거운동을 도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윤 씨는 지난해 김 전 비서실장이 특검에 소환돼 출두할 때도 보디가드 역할을 수행했다. ‘김기춘 측근’ 출신인 양해영 전 KBO 사무총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제보다. 양 전 총장과 윤 부장은 둘 다 이번 문체부 경찰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한편,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엠스플뉴스의 취재 요청에 “확인해줄 것이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자칫 영원히 봉인될 뻔한 야구협회 차명계좌 및 비자금 사건은 문체부의 조사와 수사 의뢰로 다시 한번 실체를 밝힐 기회를 얻었다. 문체부가 스포츠계 적폐 청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만큼, 이제는 수사기관이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로 화답해야 한다.

어째서 대한민국 경찰, 검찰은 국민에겐 '확인해줄 것'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의혹과 관련해선 '확인해줄 것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일까. 경찰과 검찰이 수사권 조정을 두고 다툼을 벌이지만, 정작 조정해야 하는 건 견제받지 않는 수사권력의 특권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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