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투구의 기본으로 여겨졌던 포심 패스트볼이 최근 프로야구에서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처음 50% 미만으로 떨어진 데 이어, 올 시즌엔 46%로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포심 패스트볼이 줄어드는 이유와, 앞으로의 전망을 엠스플뉴스가 주목했다.

올 시즌 투심 투수로 거듭난 송은범(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투심 투수로 거듭난 송은범(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한화 이글스 송은범은 과거 리그를 대표하는 강속구 투수였다. 150km/h에 육박하는 빠른 패스트볼과 그림 같은 슬라이더로 SK의 우완 에이스로 활약했다.

하지만 SK에서 KIA로 이적한 2013년을 기점으로 내리막이 시작됐다. 2015년까지 3년 연속 평균자책 7점대. 2016년과 2017년엔 6점대 평균자책으로 부진했다. 여전히 140km/h 중후반대 빠른 볼을 던지는데도, 마운드에만 오르면 타격연습장 머신처럼 난타를 면치 못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송은범은 변화를 시도했다. 정민태 투수코치의 권유로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했다. 포심과 투심은 손가락과 공 실밥이 만나는 지점 수로 구분한다. 만나는 지점이 네 개면 포심, 두 개면 투심이다. 투심은 포심보다 구속이 다소 느리지만, 대신 우타자 기준 몸쪽으로 떨어지는 변화가 특징이다.

올 시즌 송은범은 특유의 140km/h 후반대 포심을 거의 던지지 않는다. 대신 140km/h 초반대 투심과 슬라이더, 커브 등 변화구를 총동원해 타자와 맞선다. 지난해 46.2%였던 포심 비율이 올해는 5월 9일 현재 8.1%로 줄었다. 대신 0.2%였던 투심 구사율은 62.2%로 치솟았다.

강속구 투수에서 기교파 투수가 됐지만, 투구 성적은 훨씬 좋아졌다. 9일 현재 18경기 25이닝 동안 평균자책 3.24로 한화 불펜의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2이닝 이상 긴 이닝도 탄탄하게 막아내며, 한화 마운드 1+1 전략의 핵심으로 자릴 잡았다. 9이닝당 탈삼진도 데뷔 이후 최고치인 7.20개로 오히려 강속구 투수 시절보다 많은 삼진을 잡고 있다.

한화 안영명도 비슷한 변화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안영명도 한때 전체 투구의 50% 이상을 포심으로 던졌다. 지난해부터 포심 대신 투심을 장착해, 투심과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올 시즌엔 빠른 볼 평균구속이 지난해보다 5km/h 가까이 빨라졌지만, 여전히 포심보다 투심 위주로 던진다.

안영명도 9일 현재 11경기 2승 3홀드에 평균자책 1.89로 성적이 좋다. 한화 투수진에서 가장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가 높은 투수가 바로 안영명이다(0.89승).

송은범과 안영명은 최근 프로야구의 트렌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최근 KBO리그에선 포심 패스트볼이 줄어들고, 대신 투심과 커터 등 변형 패스트볼 구사가 늘어나는 추세다. 타자들의 힘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타고투저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투수들의 노력이다.

2014년 이후 연도별 리그 구종 비율. 포심 비율이 해마다 줄어드는 걸 확인할 수 있다(통계=스탯티즈)
2014년 이후 연도별 리그 구종 비율. 포심 비율이 해마다 줄어드는 걸 확인할 수 있다(통계=스탯티즈)

야구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9일 현재 KBO리그 전체 포심 비율은 46.1%에 불과하다. 2014년 59.2%였던 포심 비율은 해마다 줄어 지난해 처음 50% 미만을 기록한 뒤, 올해는 46.1%로 이 사이트가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대신 변형 패스트볼이 사라진 포심의 자리를 채웠다. 스탯티즈는 커터를 슬라이더와 함께, 투심을 싱커와 함께 집계한다. 슬라이더(+커터) 비율은 2014년 18.2%에서 올해 21.3%로 증가했다. 싱커(+투심) 비율 역시 2014년 1.3%에서 해마다 증가해 올 시즌 6.8%까지 늘었다.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28명 가운데 포심 비율이 50% 이상인 투수는 KIA 팻딘(58.3%), 한화 제이슨 휠러(55.3%), 양현종(55.2%), LG 김대현(50.4%), KT 라이언 피어밴드(50.4%) 등 5명 뿐이다. 규정이닝을 채운 나머지 23명의 투수는 전체 투구의 50% 이상을 포심 아닌 다른 구종으로 던졌다.

타고투저, 포심 패스트볼 감소를 불렀다

자연 커터를 던지는 금민철(사진=엠스플뉴스)
자연 커터를 던지는 금민철(사진=엠스플뉴스)

변형 패스트볼 증가를 주도하는 건 외국인 투수들이다. 올해 포심 구사율 최저 10명 가운데 7명이 외국인 투수다. 국내 투수로는 지난해부터 투심 투수로 변신한 넥센 최원태(0.0%), 자연 커터를 던지는 KT 금민철(0.2%), 사이드암 투수 KT 고영표(27.5%)만이 10명 안에 이름을 올렸다.

KBO리그에 본격적으로 커터와 투심이 등장한 것도,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이 계기였다. 당시 외국인 투수들은 국내 타자들에게 생소한 싱커, 투심 패스트볼, 컷패스트볼을 던져 재미를 봤다. 미국 무대에선 포심 위주로 던지던 투수가 KBO리그에 온 뒤엔 변형 패스트볼 비율을 의도적으로 늘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넥센이 영입한 제이크 브리검이 이런 예다.

반면 한국 투수들 가운데 변형 패스트볼을 던지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투수와 타자를 모두 경험한 심재학 넥센 수석코치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투심 투수는 거의 없었다.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같은 국제대회에서 타자들이 어려움을 겪은 이유도 투심 같은 변형 패스트볼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했다.

롯데 최동원, 해태 조계현(현 KIA 단장) 등이 지금의 투심에 해당하는 공을 던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엔 투심이란 명칭 대신 ‘슈트’란 표현을 사용했다. 투심이란 표현은 1990년 삼성의 외국인 코치 고든 마티가 소개하면서 처음 프로야구에 등장했다. 또 컷패스트볼도 삼성 김상엽(현 NC 코치), LG 정삼흠이 구사해 재미를 봤지만, 대중적인 구종과는 거리가 멀었다.

야구인들은 최근 변형 패스트볼 증가가 타고투저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손혁 SK 투수코치는 “타자들의 힘과 기술이 좋아지면서, 투수들이 움직이는 패스트볼을 많이 던진다”며 “내 포심으로는 타자 방망이를 못 당하겠다는 판단이 서면 투심이나 다른 공의 비중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KIA 조계현 단장도 "타고투저가 심해지면서 투수들이 방법을 만들어낸 것"이라 설명했다.

이용훈 롯데 투수코치는 “몇 년 동안 타고투저 흐름이 계속됐다. 타자들의 타격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데, 투수들이 따라잡기 위해 다른 공을 던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투수들을 보면 포심을 던지는 데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150km/h대 공도 타자들이 쳐내니까, 밋밋하게 던지면 맞는다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 이 코치의 지적이다.

최일언 NC 투수코치는 “나이가 많든 적든 이제는 포심만 던지는 투구로는 어렵다”고 했다. “투수는 등판하면 어떻게 해서든 잘 던져야 한다”는 게 이유다.

“150km/h 던지다 140km/h 밖에 안 나오는 날도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게 투수다. 투수가 일년 중에 컨디션이 정말 좋은 날은 하루 이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날그날 좋은 공을 갖고 어떻게든 막아내는, 피칭의 기술이 필요하다.” 최 코치의 생각이다.

포심 비율 “계속 줄어들 것” vs “다시 포심 시대 온다”

대표적 포심 피처였던 류현진도 올해 투심을 던져 재미를 봤다(사진=엠스플뉴스)
대표적 포심 피처였던 류현진도 올해 투심을 던져 재미를 봤다(사진=엠스플뉴스)

야구계 일각에선 앞으로 투수들이 포심 비율이 갈수록 더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심재학 넥센 수석코치는 “투수들이 무브먼트 없는 공으론 어렵다고 투수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리그에서 앞으로 투심 비율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나중엔 20% 대까지 올라갈 것”으로 바라봤다.

리그 타자들의 빠른 볼 대응력과 타격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반면 투수가 구속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강속구 구사는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쉽다. 변형 패스트볼 구사율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는 배경이다.

물론 야구는 상대적이다. 투수들의 변형 패스트볼 구사가 늘면 타자들도 그에 맞춰 대응한다. 심 수석코치는 “최근 야구계의 화두는 타구 발사각도다. 과거 야구에선 레벨스윙을 강조했지만, 레벨스윙만으로는 떨어지는 공을 제대로 공략하기 어렵다. 변형 패스트볼 상대로 그라운드 볼이 안 나오려면 타자들은 발사각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SK 와이번스는 ‘발사각 혁명’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구단으로 꼽힌다. 올해 SK 타자들이 싱커+투심 상대로 기록한 구종가치/100은 2.74로 두산(2.79)에 이은 리그 2위다. 발사각을 높여 공을 띄워 보내는 SK 상대로는 떨어지는 패스트볼이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SK 손혁 코치는 “투수가 자기에게 맞는 공을 찾아 던져야 한다. 포심이 되는 투수는 포심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자들의 어퍼컷 스윙에는 낮은 공보다 높은 공을 던지는 게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 손 코치는 "하이패스트볼도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는 공”이라 지적했다. SK 투수진은 리그에서 KIA 다음으로 높은 49.6%의 포심 구사율을 기록 중이다.

투수 출신의 한 스카우트는 "최근 프로 투수들이 변형 패스트볼을 던지면서, 아마추어 투수 중에도 커터나 투심을 던지는 예가 많아졌다"며 "포심도 제대로 못 던지는데 변칙부터 시도한다는 건 넌센스다. 기본인 포심을 정확하고 힘있게 던져 타자와 상대하는 방법을 익히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다.

올 시즌 투심 투수로 거듭난 송은범도 20대 젊은 시절엔 빠른 볼의 힘만으로 타자들을 공략했다. 나이를 먹고, 수년간 부진을 거듭하며 막다른 골목에 몰린 뒤에 시도한 변화가 투심 패스트볼 장착이다. 지난해부터 투심으로 살 길을 찾은 안영명도 비슷한 케이스다.

조계현 KIA 단장은 "송은범이 단지 투심 하나만 더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예전까지 송은범은 느린 템포에 느린 투구폼으로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 올해는 투구 템포가 빨라지고 투구폼도 경쾌해졌다. 여기에 투심을 던지는 변화가 더해지면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전체적인 면을 봐야 한다." 조 단장의 지적이다.

타고투저에 맞서 투수들은 생존을 위해 투심과 커터를 던지기 시작했다. 투수들의 변화에 맞서 타자들은 어퍼컷 스윙으로 발사각을 높여 대응에 나섰다. 이제는 포심의 회전수를 높여서 높은 코스를 공략하는 게 방법이란 분석이 나온다. 진화를 거듭하며 변화에 적응하는 생태계처럼, 야구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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