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가 ‘정상 구단’이 되는 길은 무엇일까. 주주들의 주장대로 ‘구단 정상화’가 되면 히어로즈에 항구적인 안정과 번영이 따를까. 많은 야구인은 “‘구단 정상화’는 주주들의 프레임일 뿐”이라며 “히어로즈 구단의 리그 퇴출과 새 구단 물색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의 미래는 이장석 전 대표의 운명만큼이나 불투명한 상태다(사진=엠스플뉴스)
넥센 히어로즈의 미래는 이장석 전 대표의 운명만큼이나 불투명한 상태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넥센 히어로즈는 경이로운 구단이다. ‘갈 데까지 갔다’는 위기감이 들 때마다 어떻게든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번엔 ‘뒷돈 트레이드 파문’이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5월 30일 “구단 자체 조사 결과, SK 와이번스를 제외한 8개 구단이 히어로즈와 ‘뒷돈 트레이드’를 했거나 트레이드 머니를 축소·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8개 구단의 ‘강제 신고’로 그간 풍문으로 떠돌던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머니 축소 신고’는 모두 사실로 밝혔다.

KBO 관계자는 엠스플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구단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KBO 특별조사위원회가 정밀 확인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며 “그 결과를 토대로 상벌위원회를 열어 추가 조치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별조사위의 정확한 조사와 상벌위의 강력한 처벌이 이뤄진다면 ‘뒷돈 트레이드’는 한국야구계에 큰 상처를 남긴 채 퇴출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야구인은 ‘뒷돈 트레이드’만 퇴출시켜선 안 된다고 말한다. ‘뒷돈 트레이드’ ‘구단 사유화’ ‘리그 질서 파괴’ ‘막장 운영’ 등으로 KBO리그를 궁지로 몰아넣은 히어로즈 구단도 함께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히어로즈의 실권자는 이장석 전 대표

이장석 전 대표가 홈경기를 관전했던 고척돔 귀빈실(사진=엠스플뉴스)
이장석 전 대표가 홈경기를 관전했던 고척돔 귀빈실(사진=엠스플뉴스)

숨겨져 왔던 히어로즈의 민낯은 이장석 전 대표가 구속되면서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대 주주인 이 전 대표는 구속과 함께 KBO로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KBO의 처분대로라면 이 전 대표는 습관처럼 했던 ‘오더 작성’은 물론이고 구단 경영에서도 완전히 손을 떼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되레 이 전 대표는 재벌 회장들처럼 ‘옥중 경영’에 나섰다. 엠스플뉴스 취재 결과 매주 서울구치소를 찾아 이 전 대표를 면회한 이들은 현 구단 대표와 구단 변호사만이 아니었다. 구단 직원, 전력분석팀장도 주기적으로 이 전 대표를 면회했다.

히어로즈 관계자는 구단 수뇌부와 직원들이 이 전 대표를 만나고 올 때마다 구단 방향이 결정됐다. 지금도 구단의 실질적 대표가 이장석 전 대표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구단 직원들이 용기 내 목소릴 내지 못하는 것도 여전히 이 전 대표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여기서 주목할 건 이 전 대표에 각을 세우는 다른 주주들이다. 이들은 “이 전 대표가 구단을 파탄으로 이끌었다”며 “구단 정상화만이 구단을 살리는 길”이라고 목소릴 높이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구단 정상화는 법원 판결대로 이 전 대표가 레이니어그룹 홍성은 회장에게 지분 40%를 넘겨주고, 이 전 대표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구단 대표를 선임해 히어로즈를 다시 사랑받는 구단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히어로즈가 무리한 유상증자에 나서지 않고, ‘뒷돈 트레이드 파문’이 터지기 전만 해도 야구계는 이 주장에 크게 공감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주식회사 서울 히어로즈’의 주주 혹은 주주가 될 사람들이 외치는 ‘구단 정상화’와 KBO리그 안정과 발전을 위한 ‘히어로즈 정상화’가 별개일 수 있다는 시각이 강해진 까닭이다.

주식회사 서울히어로즈 주주들이 주장하는 ‘구단 정상화’와 KBO리그 안정과 발전을 위한 ‘히어로즈 정상화’는 별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구단 제명은 전례가 없다. 하지만, 리그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전례가 없다'는 걸 두려워하기보단 '전례'를 만들어 야구계 전체에 경각심을 심어주는 게 나을지 모른다(사진=엠스플뉴스)
한국 프로야구에서 구단 제명은 전례가 없다. 하지만, 리그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전례가 없다'는 걸 두려워하기보단 '전례'를 만들어 야구계 전체에 경각심을 심어주는 게 나을지 모른다(사진=엠스플뉴스)

이런 시각이 나온 덴 여러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히어로즈가 이 지경이 되도록 기존 주주들은 뭘 했느냐는 것이다. 기존 주주 가운데 두 명은 히어로즈 구단 고위직 출신들이다. 이장석 전 대표가 ‘뒷돈’을 받고서 선수들을 팔 때 그걸 옆에서 지켜본 핵심 참모들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비정상적인 구단 운영’을 할 땐 침묵하던 분들이 지금 와 ‘구단 정상화’를 외친다는 게 솔직히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주주라고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해마다 이 전 대표는 ‘구단 소속이 아닌’ 주주를 미국 스프링캠프에 초청했다. 주주 대우를 해줬던 것이다. 그땐 ‘구단 정상화’니 ‘정의’니 ‘공정’이니 하는 소린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 한 히어로즈 직원은 “주주로서의 대우는 받을 때로 받고, 그간 최대 주주의 전횡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더니 이제 와 ‘구단 정상화’를 외친다는 게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두 번째는 지분 정리가 돼도 히어로즈 구단이 정상화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벌써 야구계에선 “누가 최대 주주가 되면 히어로즈 단장, 사장으로 누가 누가 된다더라”하는 식의 얘기가 퍼져 있다. “모 구단 전직 사장이 누구 쪽에 붙어 히어로즈 주주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야구계 세평에 오르내리는 ‘지분 정리 시’ 차기 히어로즈 단장, 사장만 무려 5, 6명이란 건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한술 더 떠 히어로즈 주주 가운데 누가 재계를 돌아다니며 ‘지금 구단 가치가 1천억 원이다. 지금 주식을 사둬야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로 주식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는 소리마저 들린다.

어쩌면 이것이 잿밥에 눈이 어두운 이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구단 정상화’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히어로즈는 주인만 바뀔 뿐, 야구계와 팬이 바라는 ‘정상 구단’이 될 수 없다. 실례로 지금껏 ‘포스트 이장석’을 노리는 이들이 ‘히어로즈를 어떻게 정상화하고, 어떤 식으로 비전을 펼치겠다’는 식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물론 그들은 “아직 지분 정리도 안 된 상황인데 뭘 고민할 수 있겠나”라고 반론을 제기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직 지분도 정리 안 된 상태에서 누구누구에 자릴 주겠다’는 공수표는 왜 날리고, ‘히어로즈 구단 가치가 1천억 원’이라며 주식은 왜 세일즈하고 다니는 건지 묻고 싶다.

‘정상 구단’이 되기 위한 마스터 플랜과 야구계와 팬들이 우려하지 않을 ‘구단 경영’에 대한 안전책과 대안을 내놓기보다 지분 싸움과 자리 보장에만 몰두하는 이들이 구단 최대 주주가 된다면 히어로즈의 앞날은 뻔하다. 이장석 시즌 2다.

히어로즈 정상화의 길, 답은 ‘모두가 피하고 싶지만, 피해선 안 되는’ 리그 퇴출이다

이장석 전 대표는 시즌 홈개막전이면 직접 팬들 앞에 서서 허릴 굽혀 인사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초심이 사라지며 팬들과 거릴 두기 시작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장석 전 대표는 시즌 홈개막전이면 직접 팬들 앞에 서서 허릴 굽혀 인사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초심이 사라지며 팬들과 거릴 두기 시작했다(사진=엠스플뉴스)

세 번째는 서울히어로즈의 지분 싸움이나 재산권 다툼이 애초부터 KBO리그의 안정과 번영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지분 정리가 돼야 구단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은 철저히 ‘주주 중심 프레임’이다.

지분 정리가 되고, 새 구단 대표가 선임된다손 쳐도 히어로즈가 항구적으로 안정적 구단이 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누가 최대 주주가 돼도 잿밥만 챙긴다면 경영권 싸움은 계속 이어질 게 분명하다.

히어로즈 구단의 KBO리그 제명과 함께 새 주인을 찾는 게 지금으로선, 그리고 미래를 봤을 땐 최선의 해결책이다.

KBO 정관 제8조(자격상실)엔 ‘제명’이란 단어가 적시돼 있다. KBO 규약에도 ‘제명’을 언급한 부분이 있다. ‘규약 제13조[제명]’이다. 이 조항엔 ‘KBO 이사회의 심의를 거쳐 총회에서 재적 회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제명을) 행한다’라고 적혀 있다. 한마디로 10개 구단 가운데 7개구단 정도만 동의하면 구단 제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KBO 정관, 규약엔 ‘제명 사유’가 명확히 나와 있지 않다. KBO도 이를 인정한다. KBO 고위 관계자는 “지금 정관과 규약엔 솔직히 구단 제명 사유가 확실하지 않다”며 “제명의 기준이 없기에 일련의 히어로즈 사태가 제명 사유가 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명 사유가 정확히 나와 있다 한들, 구단들이 히어로즈 퇴출을 결의하는데 힘을 모을지 의문이다. 히어로즈가 ‘뒷돈 트레이드’를 할 때 함께 손뼉을 쳐준 건 SK를 제외한 8개 구단이었다. 이 팀들이 과연 무슨 염치로 히어로즈 단죄에 나설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야구규약상 히어로즈 구단 퇴출이 완전히 차단된 건 아니다. KBO 규약 ‘제2장 총재’엔 ‘총재는 리그 관계자가 KBO 규약을 위반하는 경우 재결을 통해 다음 각호의 예에 따라 적절한 제재를 할 수 있다’란 내용이 있다. 회원(구단)인 경우 총재가 할 수 있는 제재가 바로 ‘회원자격, 연고지역에 관한 제반 권리의 박탈 또는 정지’다.

규약상 ‘총재의 지시, 재정, 재결 및 제재가 리그의 최종 결정’이란 걸 고려하면 정운찬 KBO 총재의 결심에 따라 히어로즈 퇴출이 얼마든 논의되고, 실현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서울히어로즈 주주들의 지분과 재산권은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주식회사 서울히어로즈’이란 기업 안에서 보호받을 일이다. 지분 40%를 어떻게 정리하든, 새 대표이사를 누구로 정하든 그 역시 서울히어로즈가 알아서 할 일이다. 중요한 건 창단 이후 줄곧 야구계를 기만한 서울히어로즈 구단의 KBO리그 회원 자격을 보호해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KBO와 야구계가 히어로즈 구단의 회원 자격을 박탈하고, 새 회원을 찾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히어로즈 구단 모든 구성원을 위해 그리고 팬을 위해 무엇보다 야구를 위해 '모두가 피하고 싶지만, 피해선 안 되는' 최선의 길이다.

이동섭 기자 dinoegg509@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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