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논란’ 경기감독관 대신 전직 심판위원장 ‘대타’로 쓴 KBO

-KBO 운영팀 “1, 2군 감독이나 심판 출신이면 '대타'로 괜찮다”

-구단들 “아무나 쓸 거면 경기감독관 제도 왜 두나?”

-“경기감독관실에 아무나 들어오는 게 현실”

-‘1일 경기감독관’ 맡았던 전 심판위원장, 지난해에도 10일간 ‘대타 비디오판독 센터장’으로 일한 것으로 밝혀져

KBO 경기운영위원 ‘성희롱’ 논란이 불거지면서 야구계에선 “대표적인 전직 감독, 심판의 전관예우인 경기운영위원 제도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KBO 경기운영위원 ‘성희롱’ 논란이 불거지면서 야구계에선 “대표적인 전직 감독, 심판의 전관예우인 경기운영위원 제도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KBO(한국야구위원회) 경기운영위원(경기감독관)이 야구장 여서 임시직원에게 ‘성희롱’에 해당하는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프로야구계가 또 한 번 팬들의 거센 질타를 받고 있다.

해당 ‘성희롱’ 논란은 6월 6일 서울 잠실야구장 1층 ‘경기운영위원실’에서 벌어졌다. 이날 A 경기운영위원은 경기운영위원실에 들어온 여성 임시직원에게 자신과 함께 있던 야구인 B 씨의 어깨를 주무를 것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관련 기사 : 야구장 성희롱 논란…“KBO 경기감독관이 ‘안마’ 요구”]

엠스플뉴스에 이 사실을 알린 다른 임시직원은 경기운영위원 B 씨가 여성 아르바이트 직원의 손목을 억지로 잡은 뒤 'B에게 씨 안마를 해 드리라’고 요구했다격리된 공간 속에 남성 두 명과 있던 여성 임시직원이 A 씨의 요구에 상당한 성적 수치심을 느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여성 임시직원이 자신을 고용한 외주업체에 이 사실을 알리고, 외부업체가 계약관계인 LG 트윈스 구단 관계자에게 해당 내용을 전달하면서 A 씨의 부적절한 요구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LG 구단 관계자는 ”외주업체로부터 해당 내용을 전달받고서 바로 KBO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며 “KBO 장윤호 사무총장이 직접 경위를 파악하고, 여성 임시직원에게 KBO 차원의 사과를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LG의 발 빠른 대처와 KBO 장 사무총장의 적극적인 경위 파악으로 여성 임시직원은 A 경기운영위원으로부터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장 사무총장은 A 경기운영위원회의 부적절한 처신을 보고받고서 ‘선 업무배제, 후 해명’이 2차 피해를 막는 최선의 길이라 판단했다즉시 A 경기운영위원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것과 동시에 다음 날 잠실구장에 다른 분을 경기운영위원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경기운영위원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임을 스스로 증명한 KBO

‘성희롱’ 논란으로 직무정지를 당한 A 경기운영위원 대신 7일 잠실구장 경기감독관실을 지킨 도상훈 전 심판위원장(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성희롱’ 논란으로 직무정지를 당한 A 경기운영위원 대신 7일 잠실구장 경기감독관실을 지킨 도상훈 전 심판위원장(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KBO 장윤호 사무총장의 판단은 빠르고, 명확했다. 하지만, KBO 운영팀의 대처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KBO가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잠실구장에 ‘대타’로 보낸 경기운영위원은 도상훈 전 KBO 심판위원장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만난 도 전 위원장은 “A 경기운영위원이 개인적 사정이 있어 오늘 못 나왔다. 내가 대리로 나왔다”며 ”A 경기운영위원의 정확한 사정은 잘 모르겠다. KBO 쪽에서 내게 전화가 와서 나왔다”고 말하고서 황급히 자릴 떴다.

KBO 고위 관계자는 원래 KBO에서 보내려던 사람은 퓨처스리그 경기운영위원이었다. 하지만, 일정상 그 경기운영위원을 잠실구장에 보낼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도 전 위원장에게 ‘하루만 경기운영위원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앞으론 정상적으로 도 전 심판위원장을 대신해 퓨처스 경기운영위원에게 1군 경기운영위원을 맡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KBO 고위 관계자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KBO는 일정상 도 전 심판위원장에게 ‘어쩔 수 없이’ 1일 경기운영위원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KBO 운영팀은 도 전 심판위원장의 1일 경기운영위원과 관련해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8일 엠스플뉴스 취재진과 통화한 박근찬 KBO 운영팀장은 전날(7일) 도 전 심판위원장이 경기운영으로 나온 건 문제 될 게 없다. 경기운영위원은 1, 2군 감독 출신이거나 심판 출신이 하는 자리라며 그 선에서 자격만 갖춰지면 괜찮다고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KBO 경기운영위원의 주된 임무는 우천취소 결정, 승부조작 징후 시 KBO 보고, 심판 고과 평가 등이다.

현직 경기운영위원은 “우천취소 결정이야 도 전 위원장이 심판 경력이 풍부하니 쉽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승부조작 징후는 2016년 이후 현직을 떠나 있어 흐름을 파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심판 고과 역시 하루만 나와선 평가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며 “박 팀장 말대로라면 경기운영위원은 아무나 맡아도 되는 자리란 뜻인데, 그렇다면 굳이 1, 2군 감독 출신이나 심판 출신만 고집할 게 아니라 코치, 선수 출신에게도 문호를 개방해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도 전 심판위원장은 2016년까지 심판위원장을 지낸 뒤 퇴직해 현재는 KBO에서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는 야구인이다. 경기운영위원회와도 아무 관련이 없다. A 경기운영위원이 문제를 일으키자 도 전 위원장을 대타로 야구장에 보낸 KBO의 대응은 경기운영위원이 그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임을 스스로 증명한 셈인지 모른다.

‘1일 대타 경기운영위원’ 맡은 도상훈 전 KBO 심판위원장, 지난해엔 ‘대타 비디오 판독센터장’으로 10일간 활동

KBO 비디오 판독센터와 아무 상관이 없는 도상훈 전 심판위원장은 지난해에도 10일간 ‘비디오 판독센터장’으로 활동했다(사진=KBO)
KBO 비디오 판독센터와 아무 상관이 없는 도상훈 전 심판위원장은 지난해에도 10일간 ‘비디오 판독센터장’으로 활동했다(사진=KBO)

구단들은 이참에 프로야구계의 대표적 ‘전관예우’인 경기운영위원 제도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성희롱 논란이 벌어진 야구장 경기운영위원실은 KBO 내부 규정상 경기운영위원만 출입할 수 있다. 경기운영위원의 독립성과 보안을 지키기 위해 만든 규정이다. 하지만, 실제론 경기운영위원의 친구나 지인들까지 제집처럼 수시로 드나드는 게 현실이다.

모 구단 관계자는 경기운영위원실에 어느 야구공 제조 업체 사장이 경기 내내 앉아 있다가 가는 걸 본 적이 있다경기운영위원들 가운데 위원실을 일종의 ‘사랑방’으로 착각하는 분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비디오 판독이 구현되는 시대에 왜 경기운영위원 제도를 계속 두는지 모르겠다”며 대표적 전관예우인 경기운영위원이 과연 필요한 자리인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전직 감독’ ‘전직 심판위원장’이란 이유만으로 경기운영위원을 맡아 수혜를 입는 건 지극히 불합리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엠스플뉴스의 추가 취재 결과 ‘1일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한 도상훈 전 KBO 심판위원장은 지난해에도 ‘대타’로 일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7월 21일 잘못된 비디오 판독으로 10일 출장 정지 제재를 받은 김호인 비디오판독 센터장을 대신해 10일간 ‘대타 비디오판독 센터장’을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사실은 지금껏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KBO는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그걸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대신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 재발 방지에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구본능 총재-양해영 사무총장 시절’엔 볼 수 없던 장면이다.

그러나 특별한 설명없이 즉흥적으로 '대타' 경기운영위원을 쓰고, 그것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면 경기운영위원 위촉장은 왜 주고, 계약서는 왜 쓰며, 업무 수행 도중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하는 것인지 KBO에 묻고 싶다. 변화하는 KBO가 좀 더 투명하게 운영되길 많은 야구인이 바라고 있다.

이동섭 기자 dinoegg509@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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