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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선발 공백’ 넥센, ‘불펜데이’ 시도는 어떨까

| 에스밀 로저스의 부상 이탈, 신재영 2군행으로 선발 두 자리에 구멍이 난 넥센 히어로즈. 그러나 새로운 선발투수 두 명을 한 번에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참에 ‘불펜데이’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안타까운 부상을 당한 로저스(사진=엠스플뉴스) 안타까운 부상을 당한 로저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6월 13일 현재 넥센 히어로즈 1군 엔트리에는 선발투수가 3명뿐이다.

 

선발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는 불의의 사고와 손가락 수술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12일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 밝은 표정으로 고척스카이돔에 나타났지만, 남은 시즌 복귀를 장담할 수 없는 암울한 상황이다. 신재영은 거듭된 부진 끝에 2군행 통보를 받았다. 기존 5인 선발 로테이션에서 2명이 한꺼번에 떨어져 나갔다.

 

시즌 초반만 해도 넥센은 리그 최강 선발투수진을 자랑했다. 선발투수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는 물론 투구이닝 등에서 10개 팀 가운데 단연 1위가 넥센이었다. 주전 야수들이 줄부상 속에 일본 이지마 치료원 고객이 될 동안에도 강한 선발진을 앞세워 중상위권 경쟁을 계속했다. 넥센 관계자도 “우리 팀이 버티는 힘은 마운드에서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막강했던 마운드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6월 들어 넥센 선발진이 기록한 평균자책은 6.62로 같은 기간 꼴찌 NC(7.14) 다음으로 나쁜 기록이다. 5월까지 리그에서 두 번째로 적었던 선발 조기 강판(7회)도 6월 들어 5차례로 KIA와 함께 가장 많다. 강점이던 선발진이 이제는 약점이 된 셈이다. 

 

마운드가 흔들리면서 팀 성적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6월 들어 넥센은 10경기에서 3승 7패를 기록했다. 이 기간 NC와 KT(2승 8패) 다음으로 좋지 않은 성적이다. 시즌 순위도 31승 36패로 삼성(31승 35패)에 밀려나 7위에 그치고 있다. 

 

넥센 코칭스태프는 선발투수진 재구성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운 나쁜 감독 중 한 명일 넥센 장정석 감독은 12일 한화전을 앞두고 “목요일 경기 때 2군 투수 가운데 하나를 올려 선발로 기용할 계획”이라 밝혔다. 후보는 김정인, 하영민, 김성민이다.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신인 안우진을 계속 선발로 쓸지도 투수코치와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선발 위기, 넥센은 2017시즌에도 경험했다

 

브리검은 리그에서 가장 이닝 소화 능력이 뛰어난 투수 가운데 하나다(사진=엠스플뉴스) 브리검은 리그에서 가장 이닝 소화 능력이 뛰어난 투수 가운데 하나다(사진=엠스플뉴스)

 

돌아보면 지난 시즌에도 넥센은 비슷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시즌 초반만 해도 넥센은 선발진이 막강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외국인 투수 션 오설리반을 조기 퇴출했지만, 외국인 투수가 필요 없어 보일 정도로 나머지 선발진이 잘 던졌다. 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조상우와 한현희가 연일 호투하면서 ‘선발 풍년’에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좋던 선발진이 하나둘씩 부상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풍족했던 선발진은 한순간에 구멍투성이가 됐다. 후반기에는 그야말로 엔트리에 있는 투수는 다 한 번씩 선발로 나와서 던지는 식이 됐다. 정대현, 하영민, 윤영삼, 김정인, 금민철이 한 차례 이상 선발로 나섰다. 

 

아쉽게도 이들 가운데 인상적인 결과를 남긴 투수는 나오지 않았다. 넥센은 후반기 24승 1무 33패(0.421)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경쟁에서 탈락했다. 선발 공백을 확실하게 채우지 못한 결과였다. 

 

지난해와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넥센 투수진에서 ‘로테이션’을 기대할 만한 투수는 세 명뿐이다. 경기당 평균 투구이닝 리그 4위의 브리검, 10위의 한현희, 11위의 최원태는 평균적으로 6이닝을 기대할 수 있는 믿음직한 선발투수들이다. 

 

하지만 나머지 투수 가운데 1군 경기에서 평균 5, 6이닝을 기대할 만한 투수는 없다. 꾸준히 선발로 1군에서 등판한 경험이 있는 투수도, 안정적으로 5이닝을 막아줄 거란 믿음을 주는 투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어쩌다 1경기를 잘 던질 순 있겠지만, 그다음 경기에서도 똑같은 피칭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지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단 뜻이다. 

 

신인 안우진이 대안이 될지는 의문이다. 물론 안우진은 남다른 멘탈과 재질을 가진 대형 투숫감이다. 하지만 선발로 나온 2경기에선 한계를 노출했다. 기본적으로 안우진의 투구는 우타자 기준 바깥쪽에 집중돼 있다. 플레이트 반대편을 활용하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이를 상대 타자들이 간파했다. 마음먹고 던진 공에 배트가 나오지 않았고, 이게 경기 초반 무너지는 원인이 됐다. 불펜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선발로 긴 이닝을 던지기엔 한계가 있다.

 

나머지 1군 엔트리를 보자. 오주원, 김상수, 이보근은 전업 불펜투수다. 박정준과 이승호는 완전 신인에 가깝다. 조덕길도 나이는 스물아홉이지만 올해가 1군에서 치르는 첫 시즌으로 선발 경험은 없다. 김동준도 1군 선발 경험은 5경기, 양현은 1경기가 전부다.

 

2군을 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화성 히어로즈 팀 내 이닝 상위권인 김정인, 이찬석, 윤영삼, 하영민, 김영광, 오윤성, 임규빈, 문성현 등 중에 포스트시즌 진출 팀의 4, 5선발 역할을 맡을 만한 투수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가운데 한 명이 불쑥 솟아올라 4선발 역할을 해주는 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들 중에 두 명이 한꺼번에 솟아올라 선발투수로 로테이션을 소화하길 바라는 건, 너무 요행을 바라는 일이다. 선발투수 두 명을 찾으려고 노력하다간, 지난 시즌 후반과 비슷한 결과밖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단 얘기다. 

 

선발 공백 넥센, 탬파베이식 ‘불펜데이’는 어떨까

 

한현희는 선발 평균 투구이닝 10위에 올라 있다(사진=엠스플뉴스) 한현희는 선발 평균 투구이닝 10위에 올라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애매한 투수에게 5, 6이닝을 맡기려다간 애매한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이참에 파격적인 시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올 시즌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의 마운드 운영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탬파베이는 일반적인 5인 선발 로테이션이 아닌 ‘4인 로테이션’을 쓰는 팀이다. 5월 이후엔 아예 크리스 아처-블레이크 스넬-제이크 파리아의 3명으로 선발진을 운영하고 나머지 경기엔 불펜 투수들을 투입하는 ‘불펜데이’로 투수진을 이끌었다. 심지어 커리어 내내 마무리였던 세르지오 로모를 이틀 연속 선발로 투입해 1이닝만 던지게 하는 파격적인 운영을 선보이기도 했다. 

 

‘선발투수는 5명이 있어야 한다’, ‘선발은 최소 5이닝을 막아줘야 한다’는 기존 상식에 비춰보면 탬파베이의 마운드 운영은 말도 안 되는 짓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꽤 효과적이다. 13일 현재 탬파베이 선발투수진은 수비무관 평균자책(FIP) 3.92(9위)에 WAR 4.1승(15위)으로 나름대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리그 30개 팀 중에 가장 많은 285.2이닝을 던진 불펜 투수진도 FIP 3.87로 16위, WAR 1.9승으로 11위의 성적을 내고 있다. 시즌 전 약체로 평가받던 투수진이 기대 이상으로 잘 버텨준 덕분에, 탬파베이는 30승 35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양키스와 레드삭스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 중이다. 

 

이론적으로 봐도 탬파베이의 시도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원래 1회는 투수들에게 가장 버티기 힘든 이닝이다. 경기장과 마운드에 익숙해지기 전이고, 상대 1-2-3-4번 상위타선을 줄줄이 상대해야 한다. 그래서 1회부터 많은 공을 던지고 대량 실점하며 진땀을 흘리다 2회부터 비로소 안정을 찾는 선발투수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1회에 나오는 투수가 반드시 선발투수일 필요가 있을까. 탬파베이의 마운드 운영은 여기에 새로운 답을 제시한다. 7, 8, 9회를 좋은 불펜투수가 올라와 전력으로 1이닝씩 막아내듯이, 좋은 불펜투수가 먼저 올라와 1회를 전력으로 막으면 된다. 상위타선이 좌타자로 구성된 팀과 상대할 땐 좌완 불펜투수를 '오프너'로 올려 1회를 막는 것도 안 될 게 없다. 

 

넥센은 이미 올 시즌 탬파베이와 비슷한 시도를 한 경험이 있다. 정규시즌이 아닌 시범경기 기간, 3월 20일과 21일 LG전 2경기에서 ‘불펜데이’를 시도한 바 있다. 당시 장정석 감독은 “중간 투수들의 기량이 비슷해 1군 자리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며 “선발은 2군 경기에 투입하고, 1군 2경기는 불펜 투수들로 치를 계획”이라 밝혔다.

 

실제 20일 LG전에서 넥센은 하영민(3이닝)에 이어 손동욱, 윤영삼, 오주원, 김동준, 이보근, 조덕길을 차례로 투입해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3-5 패배. 21일에도 문성현(1.2이닝)을 시작으로 김성민, 김동준, 이영준, 손동욱, 김선기, 김상수, 조상우가 차례로 등판해 10-1로 대승을 거뒀다.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이미 불펜 야구로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는 넥센이다.

 

넥센이 ‘불펜데이’를 시도해볼 만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넥센엔 4, 5선발감 후보는 없지만 대신 비슷비슷한 능력을 갖춘 불펜 투수 자원은 풍족하다. 강력한 구위를 자랑하는 신인 안우진과 김선기가 있고 김동준, 조덕길도 1, 2이닝은 충분히 막을 능력을 갖춘 투수들이다. 2군에도 ‘5이닝 선발’로는 큰 기대가 되지 않지만 ‘1이닝 불펜’으론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투수가 많다. 

 

또 하나의 이유는 기존 3명의 선발투수가 지닌 '이닝 소화' 능력이다. '불펜데이' 방식은 자칫하면 불펜 과부하로 이어지기 쉽다. 물론 10일 엔트리 말소 기간을 적절히 활용해 다양한 불펜 투수를 기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과부하를 최소화하려면 기존 선발들이 긴 이닝을 버티면서 불펜 소모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 점에서 경기당 평균 투구이닝 리그 4위(브리검)-10위(한현희)-11위(최원태) 투수를 보유한 넥센은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넥센은 원래 파격적인 시도에 익숙한 팀이다.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기존 구단들이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을 과감하게 실험해 성공을 거둬 왔고, 나름의 자부심과 자신감도 갖고 있다. 색다른 시도를 하는 데 선수들의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덜하다. 아직 KBO리그에선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불펜데이. 지금의 넥센 히어로즈라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실험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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