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허전했다. 올 시즌 전반기 LG 트윈스 외야수 이형종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맥가이버 머리가 사라졌다. 후반기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맞이하고자 이형종이 내린 또 다른 변화였다. 그 변화 속에 숨겨진 고민도 있었다.

이형종은 올 시즌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맥가이버 머리를 최근 깔끔하게 다듬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이형종은 올 시즌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맥가이버 머리를 최근 깔끔하게 다듬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저는 도전과 변화가 무섭지 않습니다.

LG 트윈스 외야수 이형종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선수다. 이형종은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지 4년 만에 1군 무대에서 자리 잡았다. 생존을 위한 과감한 타격 자세 변화와 끊임없는 노력이 통한 셈이다.

LG 팬들 사이에서 ‘야잘잘(야구 잘하는 선수가 잘한다)’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올 시즌 이형종은 출발이 다소 늦었지만, 타자로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는 상황이다. 팀에서 중견수 리드오프 자리를 꿰찬 이형종은 올 시즌 66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0/ 92안타/ 7홈런/ 30타점/ 54득점/ 출루율 0.402/ 장타율 0.490을 기록 중이다.

이렇게 훌쩍 오른 성적과 더불어 훌쩍 길어진 이형종의 뒷머리에도 팬들의 많은 관심이 쏠렸었다. 이형종은 올 시즌 전반기 내내 뒷머리만 기르는 ‘맥가이버 머리 스타일’을 고수했다.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자신감을 키우기 위한 파격 변화였다.

하지만, 이형종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뒷머리는 당분간 볼 수 없다. 최근 이형종이 뒷머리를 깔끔하게 자른 까닭이다. 이것 또한 후반기부터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기 위한 이형종의 변화다. 그런 과감한 도전과 변화가 있기에 지금의 ‘광토마’ 이형종이 있다.

휴식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형종 “24시간 내내 야구만 했었다.”

지난해 24시간 내내 야구만 생각했던 이형종은 올 시즌 루틴과 휴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24시간 내내 야구만 생각했던 이형종은 올 시즌 루틴과 휴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사진=엠스플뉴스)

날씨가 이제 습하고 더워졌습니다.

(짧은 한숨 뒤) 날씨가 더운데 야구도 잘 안 풀리네요.

올 시즌 숫자만 본다면 이해가 안 가는 대답입니다. 최근 어떤 고민이 생겼나요.

지난해 타격감이 쭉 올라가다가 뚝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정상 타격감을 되찾지 못했어요. 최근 지난해와 같은 기억이 조금씩 떠올라요. 더워지면서 시즌 초반보다 체력이나 정신이 지친 것 같습니다.

중견수와 리드오프라는 역할이 체력에 큰 영향을 미친 걸까요.

어떤 자리라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중견수 리드오프라 더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타순이 빨리 돌아오는 느낌 정돈 있죠. 류중일 감독님께서 경기 후반에 대수비 교체로 체력 안배를 신경 써주시니까 괜찮습니다.

높은 타율 숫자에 대한 부담감도 있습니까.

이렇게 잘 친 경험이 없잖아요. 올 시즌 타율이 높아서 숫자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에요. 항상 잘할 순 없지만, 사람 욕심이라는 게 이 숫자를 지키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그렇잖아요. 또 시즌 초반엔 잃을 게 없는 느낌인데 이제 잃을 수도 있단 불안감이 들죠.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공격적인 스윙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초구를 좋아하는 만큼 초구 타율이 0.565(46타수 26안타)로 좋습니다.

제가 초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최근엔 초구에 방망이가 잘 안 나가게 되더라고요(웃음). 초반엔 초구 공략 결과가 좋았어요. 그런데 시즌이 갈수록 점점 헛스윙이나 범타 비율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약간 위축되는 느낌이 있어서 아쉬워요.

고민이 꽤 깊은 것 같습니다. 시즌 초반 부상 공백이 문제가 됐을까요.

그건 전화위복이 됐어요. 반대로 생각하면 내년 시즌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어떻게 시즌을 준비할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죠. 물론 아쉬움이 있지만, 시즌 초반 제대로 더 준비할 시간이 생긴 게 더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지난해 첫 풀타임 시즌에서 배운 교훈도 있을 텐데요.

1군 무대는 전쟁터잖아요. 전쟁에 나가려면 충분한 체력과 정신 무장이 필요해요. 지난해 저는 몸도 준비가 덜 된 데다 경기 전 훈련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훈련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으니 정작 전쟁터에서 에너지가 부족했죠. 또 일희일비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제가 더 성숙하려면 ‘못해도 괜찮아’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최근 꽤 많은 선수가 훈련보다 휴식의 중요성을 얘기합니다.

(고갤 끄덕이며) 쉬는 게 정말 중요하죠. 지난해 경험으로 많이 느꼈어요. 단순히 방망이만 많이 돌린다고 실력이 오르진 않더군요. 자기에게 맞는 적절한 ‘루틴’을 찾아서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24시간 내내 야구를 하다 보니 잘 안 풀렸다고 생각해요. 올 시즌엔 그런 실수를 되풀이 안 해야죠.

LG의 고정 라인업, 이형종의 ‘일희일비’를 없애다

올 시즌 LG의 고정 라인업으로 일희일비가 없어진 이형종은 무서운 속도로 타율을 올렸다(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LG의 고정 라인업으로 일희일비가 없어진 이형종은 무서운 속도로 타율을 올렸다(사진=엠스플뉴스)

타자 전향 뒤 4년 만에 1군 주전 야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LG 팬들 사이에선 역시 ‘야잘잘’이라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웃음).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진 않죠. 어떤 선수나 다 듣는 말은 아니잖아요. 부담이 되는 건 없습니다. 타자 역할에 이렇게 빨리 적응한 건 저 자신도 놀랐어요(웃음).

투수를 향한 미련은 이제 없다고 보면 될까요.

(곧바로) 미련은 없어요. 솔직히 예전엔 ‘안 아팠으면’이라고 생각해봤죠. 돌이켜보면 안 아팠어도 투수로서 실력이 많이 부족했을 겁니다. 그 미련을 느끼는 순간 타자로서 성공 못 할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미련을 가져본 적도 앞으로 가질 생각도 없습니다. 사실 지금도 어깨가 안 아픈 게 아니에요. 캐치볼을 하면서 장난으로 투구하는 정도입니다(웃음).

투수 경험이 타자로서 경쟁력을 더 높여주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정도 도움은 되는 것 같아요. 보통 투수들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초구를 노리는 타이밍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젠 투수들이 저에게 초구부터 좋은 공을 안 줄 때도 있죠. 반대로 저도 초구를 그냥 지켜볼 때도 있고요. 그래서 야구가 어려워요.

타자 전향을 결심한 뒤 ‘롤 모델’로 삼은 선수가 있나요.

박용택 선배님과 정성훈 선배님입니다. 야구를 오랫동안 꾸준히 잘해오셨잖아요. 저도 뒤늦게 타자를 시작한 만큼 야구를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박용택 선배님 같은 타자가 되고 싶습니다.

롤 모델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건 큰 행운입니다(웃음).

옆에서 자연스럽게 보면서 따라 하게 되는 거죠. 자기 관리도 철저하시고 인성도 좋으시잖아요. 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저도 더 많이 배우죠(웃음). 박용택 선배님과 함께하는 건 정말 큰 행운이 맞습니다.

올 시즌 LG 타선에서 가장 달라진 점은 류중일 감독의 ‘고정 라인업’입니다. 각자 역할을 확실하게 줍니다.(LG는 올 시즌 팀 가운데 가장 적은 선발 라인업 개수인 34개의 라인업을 사용했다)

고정 라인업의 가장 좋은 점은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는 거죠. ‘오늘 못 쳐도 내일 해결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잘하면 내일은 더 좋은 기록을 만들 기회라고 생각하죠. 오로지 경기장 안에서 야구 말고는 다른 잡생각을 안 하게 됩니다.

지난해와는 다소 다른 느낌이군요.

지난해엔 ‘오늘 못 치면 내일 빠지겠지’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오늘 꼭 잘 쳐야 한단 부담감이 있었죠. 또 부진해도 타석에 나가는 거랑 벤치에 앉아있는 거랑은 정말 다르죠. 타석에 나가야 왜 부진한지 깨닫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올 시즌 LG는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을 더 잘 준비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맥가이버 머리 다음은 야생마 머리?

올 시즌 전반기 큰 화제가 됐던 이형종의 맥가이버 뒷머리는 이제 볼 수 없다(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전반기 큰 화제가 됐던 이형종의 맥가이버 뒷머리는 이제 볼 수 없다(사진=엠스플뉴스)


인터뷰 도중 한 가지 달라진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트레이드마크였던 ‘맥가이버 머리’가 안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웃음).

월요일(7월 9일)에 뒷머리를 정리했습니다(웃음). 다들 아시듯 눈치 안 보고 자신감을 키우고자 뒷머리를 길렀어요. 전반기 동안 제가 목표한 단계가 충분히 지난 것 같아요. 그래서 후반기부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출발하고자 머리카락을 잘랐죠.

있다가 없으면 허전할 텐데요(웃음).

(뒷머리를 매만지며) 조금 허전한 느낌은 있죠. 지난해 9월부터 기르기 시작한 거라 자른 뒤엔 가끔 ‘어라. 뒷머리가 없네’라고 생각해요(웃음). 사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도 또 머리를 기르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어떤 머리인가요.

(잠시 머뭇거리며) 예전 이상훈 코치님처럼 머리를 기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물론 우리나라 정서상 그렇게까지 기르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웃음). 2~3년 뒤에 상황이 된다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긴 합니다.

앞선 말대로 이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후반기에 나서야 합니다. 후반기 가장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제가 지금 타율을 시즌 끝까지 유지할 순 없다고 봅니다. 최대한 위기를 잘 넘기면서 팀의 가을야구 진출을 도와주고 싶어요. 1위와의 거리는 멀어진 게 사실이지만, 2위 자리까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팀 성적이 좋다면 개인 성적도 저절로 따라올 거로 생각해요. 제가 못 하면 팀 성적도 좋을 수가 없잖아요. 무엇보다 안 다치고 풀타임 시즌을 보내는 게 최우선 목표입니다.

가을야구를 향한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을 텐데요. 유일한 가을야구 경험은 2016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입니다.(이형종은 2016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1경기에 출전해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이후 이형종은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당시 정말 아쉬움이 컸어요. 저에게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타격 자세에 변화를 주고 있어요. 변화가 두렵지 않은 게 제 장점이니까요. 그런 도전과 변화가 있기에 발전하는 ‘타자 이형종’이 있는 것 같습니다.

LG 팬들은 리드오프 이형종이 앞장서서 이끄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보길 원합니다. 팬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부탁합니다.

매일 잠실구장에 나와 LG 팬들 앞에서 경기할 수 있단 게 감사할 뿐입니다. 후반기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리고자 모든 선수가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LG 팬들의 뜨거운 응원에 보답하고 싶어요. 단순히 가을야구뿐만 아니라 한국시리즈 진출 그 이상의 결과를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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