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 이글스가 2018시즌 전반기를 리그 2위의 좋은 성적으로 마쳤다. 한화의 힘은 팀 평균자책 2위의 탄탄한 마운드에서 나온다. 여기엔 탄탄한 수비력과 허슬플레이로 한화 안방을 굳건하게 지킨 포수 최재훈의 기여가 적지 않다.

경기장 밖에선 훈남이지만, 경기만 시작되면 터프가이가 되는 최재훈(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경기장 밖에선 훈남이지만, 경기만 시작되면 터프가이가 되는 최재훈(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한화 이글스 최재훈은 그라운드 안과 밖의 모습이 정반대다.

야구장 안에서 최재훈은 ‘상남자’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눈빛부터 확 달라진다. 상대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 이글이글 타오르는 강렬한 눈빛으로 경기장에 나선다. 절대 몸을 사리는 법도 없다. 머리에 공을 맞아도, 주자와 부딪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조금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서 다시 몸을 날린다. 투수가 자신 없는 피칭을 하면 호되게 ‘야단’을 치기도 한다. 야구장 밖에서 보여주는 ‘훈훈한’ 모습과는 딴판이다.

최재훈이 그라운드에서 터프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올 시즌은 최재훈이 프로 데뷔 이후 처음 풀타임 주전 포수로 보내는 시즌이다. 2008년 데뷔 이후 줄곧 ‘수비형 포수’ ‘백업 포수’란 꼬리표를 달고 보내다 11년 만에 처음 주전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어렵게 잡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 간절함이 운동장에 몸을 던지게 하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온 힘을 다하게 만든다. 그 열정이 한화 투수진에 전염되고, 한화 팀 전체로 옮겨갔다. 한화가 시즌 전 전문가들의 하위권 예상을 깨고 전반기를 리그 2위로 마감한 데는 열정과 투지로 가득한 안방마님 최재훈의 역할이 컸다.

그라운드에서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상남자 포수’ 최재훈의 이야기를 엠스플뉴스가 들어봤다.

“타격이 안 되니까 수비까지 흔들렸다”

최재훈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포수 수비력을 자랑한다(사진=엠스플뉴스)
최재훈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포수 수비력을 자랑한다(사진=엠스플뉴스)

한화 이글스의 뜨거웠던 전반기가 모두 끝났습니다. 전반기를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심란했습니다. 제가 너무 못했으니까요. 야구가 너무 안 되니까 고민도 많았고, 사람 만나는 게 두려울 정도였습니다. 만약 팀 성적까지 좋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 팀이 2위로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게 큰 힘이 됐고,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스트레스의 근원은 아무래도 타격 성적인가요.

타격도 타격이지만, 그 때문에 수비까지 안 됐어요. 타격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가 나중엔 수비까지 영향을 주더라구요. 시즌 초반에 수비에서 많이 흔들렸죠. 투수들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제가 포수로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으니까요.

그랬군요.

계속 고민하다 나중엔 생각했죠. 타격이 안 되면 하나라도 잘해야겠다. 방망이를 못 치면 수비만이라도 잘하자. 타격이 안 된다고 수비까지 못 하면 그건 밑바닥이고 포수로서 자질이 없는 거다. 그런 마음으로 경기에 나가면 수비에 집중했고, 조금이라도 더 수비를 잘하려고 신경 썼습니다. 덕분에 수비는 많아 나아진 것 같습니다.

수비력으로 이름난 최재훈 선수가 타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단 게 의외입니다.

저도 몰랐어요. 물론 그전에도 타격이 안 되면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처음 풀타임으로 시즌을 소화하다 보니까, 타격이 너무 안 되면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더군요. 많이 힘들었죠.

흔히 ‘포수는 타격보다 수비’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은 거군요.

예, 실제로는 그게 안 되더라구요.

수비에 집중하니 타격까지 잘 되더라

최재훈은 7월 들어 4할대 월간 타율을 기록하며 타격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최재훈은 7월 들어 4할대 월간 타율을 기록하며 타격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아까 ‘타격 때문에 수비까지 안 됐다’고 했지만, 숫자가 말해주는 최재훈 선수의 수비력은 리그 최상위권입니다. 평균대비 수비승리기여도(WAA) 지표만 봐도 포수 가운데 양의지(0.645)와 나종덕(0.514)에 이어 세 번째로 좋은 수치(0.511)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수비지표가 3위라구요?

예, 그렇습니다.

지표는 3위라고 해도, 제가 경기 출전이나 이닝이 많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요. 양의지 형도 있고 강민호 형, 유강남처럼 저보다 많이 나와서 뛴 선수들이 있잖아요. 지금보다 더 많은 경기에 나가서 기록한 지표여야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수비도 수비지만, 타격도 시즌을 치르면서 점점 살아나는 모습입니다. 7월에 23타수 10안타로 0.435의 높은 타율을 기록 중입니다. 1할대였던 타율도 0.231까지 올라왔구요.

방망이가 너무 안 맞다 보니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했어요. 한동안 양의지 형 폼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 다른 선수 폼을 참고해서 쳐보기도 했죠. 이런저런 폼으로 쳐보면서 느낌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이달 초 KIA전을 앞두고 경기 전 타격 연습을 하는데...

느낌이 왔군요.

맞아요. 느낌이 괜찮았어요. ‘어, 뭐지? 이 느낌은 뭐지?’ 했는데, 그날 경기에서 결과가 좋았습니다. ‘아직 모른다, 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경기 때도 안타가 나오고, 또 안타를 치고 하다 보니 점점 제게 맞는 타격 폼을 찾았단 생각이 들더군요.

배트를 느슨하게 잡았다가 칠 때 꽉 쥐는 송광민 타법을 참고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완벽하진 않아요. 지금 안타 나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꾸준히 지금의 느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더 노력해야죠.

한창 방망이가 잘 맞는 중인데 전반기가 끝나서 아쉽진 않나요? (웃음)

그보단 우리 투수들이 중요하죠. 우리 팀이 우천취소도 그리 많지 않았고, 워낙 접전 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투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거에요. 투수들이 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제 타격이야 후반기에도 꾸준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구요. 우리 팀이 휴식기 동안 재정비해서 후반기에 더 잘했으면 합니다.

“야구장은 전쟁터, 약한 모습 보이면 그 순간 지는 것”

최재훈에게 야구장은 전쟁터다(사진=엠스플뉴스)
최재훈에게 야구장은 전쟁터다(사진=엠스플뉴스)

최재훈 하면 연상되는 몇 가지 단어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부상’입니다.

(한숨을 쉬며) 그랬죠.

두산 시절부터 유난히 크고 작은 부상이 많았고 한화에 와서도 헤드샷을 맞거나 주자와 충돌하는 등 수난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캠프 때도 뇌진탕으로 한 차례 고생했구요. 시즌 초반 생각만큼 성적이 나지 않은 데는 부상의 영향도 분명 있었다고 봅니다.

제가 그렇게 얘기한다면 그건 핑계죠. 야구가 안 되는 건 제 실력이라 생각합니다. 자주 다치는 것도 결국은 제 실력이구요. 뇌진탕 때문에 못 했다, 부상 때문에 못 했다는 건 핑계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그렇게 부상을 당하면서도 항상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를 펼친다는 겁니다. 그렇게 계속 다치다 보면, 부상이 두려울 만도 한데요.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요. 몸을 사리는 건 약해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부터 몸을 사린다면, 누가 팀을 위해 몸을 던지고 희생하려고 하겠어요. 선수들의 희생정신이 있어야 팀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기와는 달리 ‘상남자’네요. (웃음)

저는 야구장은 전쟁터라고 생각해요. 제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 순간 상대에게 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팬들 말로는 경기장 안과 밖에서 모습이 완전히 다른 선수라고 하더군요. 경기장 밖에선 훈훈한 모습인데, 일단 경기가 시작하면 눈빛이 확 달라진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경기에서만 그렇죠. 경기 끝나면 저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고 팬들도 있는데, 경기장 밖에서까지 그런 눈빛으로 다닐 순 없잖아요. (웃음) 그리고 일단 경기가 끝나면 가능하면 야구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자꾸 제가 실수한 것, 잘못한 것만 생각나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거든요.

최재훈의 목표는 가을야구, 그리고 ‘세이브왕 정우람’

최재훈은 남은 시즌 목표로 개인 성적이 아닌 투수들의 기록을 얘기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최재훈은 남은 시즌 목표로 개인 성적이 아닌 투수들의 기록을 얘기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다른 얘길 해볼까요. 올 시즌 한용덕 감독과 강인권 코치 등 두산 시절 함께했던 코칭스태프와 한화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최재훈 선수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은데요.

정말 큰 도움을 받고 있죠. 강인권 코치님은 제 은인입니다. 옆에서 항상 힘을 주시고, 제가 잘 못 하는 부분을 코칭해주시곤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코치님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한용덕 감독은 어떻습니까.

제가 시즌 초반 잘 안 될 때 주눅이 들어 있었어요. 자꾸 눈치를 보곤 했습니다. 그때 감독님께서 ‘재훈아, 넌 주전이다. 주전 선수가 왜 눈치를 보냐.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즐겨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말씀이 큰 힘이 됐죠.

‘내가 한화의 주전 포수다’라는 확신이 없었던 걸까요.

감독님은 주전이라 말씀하셔도, 전 제게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주전이라기보단 ‘도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속 보고 느끼고 공부하면서 실력을 키워서,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다 보면 그때 가서는 주전이란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주전’이라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최재훈이 생각하는 포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뭔가요.

제일 중요한 건 투수의 ‘신뢰’라 생각해요. 투수에게 신뢰와 편안함을 주는 포수가 돼야죠. 그래야 투수가 원하는 공을 자신 있게 던질 수 있으니까요. 투수가 공을 잘못 던져도 어떻게든 잡아내고, 블로킹하고, 볼을 던져도 끝까지 스트라이크로 만들어 주고 하다 보면 투수들이 좀 더 저를 믿고 공을 던질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제가 더 노력해야겠죠.

좋은 얘깁니다.

사실 원래 전 투수들을 혼내기도 하는 편이에요. 혼낼 때는 많이 혼내거든요. 후배만이 아니라 형들도 혼내곤 했어요. 그런데 올해는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저도 못 하고 있는데, 누가 누굴 혼내나 싶었어요. ‘혼날 사람은 난데 왜 투수를 혼내나’ 그런 생각을 했죠.

수비는 물론 공격까지 잘 되는 요즘엔 어떻습니까. 요새도 투수들 많이 혼내나요. (웃음)

아뇨. 그보단 투수들에게 말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화내기보단 조심스럽게 제 생각을 얘기하구요. 투수들이 저를 많이 믿어주는 것 같아 고맙고, 다들 생각 이상으로 정말 잘 던져주고 있어서 큰 힘이 됩니다. 투수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제 시즌 후반기를 앞두고 있는데, 최재훈 선수의 남은 시즌 목표가 뭔지 궁금합니다.

우리 투수들이 더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겁니다.

아니, 개인 성적이 아닌 투수 성적이 목표란 건가요?

네. 후반기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투수들이 더 쉽고 편안하게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그래서 선발투수는 승리 올릴 수 있게 도와주고, 중간투수는 홀드를 올릴 수 있게 도울 겁니다. 그리고 (정)우람이 형, 우람이 형이 제겐 가장 큰 목표에요.

세이브 1위 말인가요.

맞아요. 우람이 형 세이브왕 차지하는 거. 처음부터 그게 제 목표였어요. 그것만큼은 꼭 이루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팀이 끝까지 잘해서 가을야구를 할 수 있다면, 제겐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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