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보이스피싱 연루윤호솔에 2개월 자격정지 제재

-KBO 규약상 자격정지는 구단이 KBO에 요청해야, 한화는 신청한 적 없어

-문제 제기에 KBO “상벌위원들이 착각...자격정지 아닌 참가활동정지”

-상벌위원들에게 책임전가, 알고보니 '착각'의 몸통은 정금조 사무차장

-참가활동정지는 정식 제재 전까지 한시적 조치, 윤호솔 상벌위 다시 열어야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 선수로 프로에 입문한 윤호솔. 그러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KBO 제재를 받게 됐다(사진=NC)
2013 신인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 선수로 프로에 입문한 윤호솔. 그러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KBO 제재를 받게 됐다(사진=NC)

[엠스플뉴스]

KBO 상벌위원회는 8월 17일(금) 법원으로부터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윤호솔에게 야구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 3호에 의거 2개월(60일)의 자격정지와 유소년야구 봉사활동 80시간의 제재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8월 27일 KBO(한국야구위원회)가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이다. '보이스 피싱' 사건에 연루된 한화 이글스 투수 윤호솔에게 KBO는 2개월(60일) 자격정지 제재를 부과했다. 근거로는 야구규약 제151조의 ‘품위손상행위’를 들었다.

KBO 규약의 품위손상행위 조항. 가능한 제재가 나열돼 있지만 자격정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KBO 규약의 품위손상행위 조항. 가능한 제재가 나열돼 있지만 자격정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두 가지가 눈에 밟힌다. 첫 번째는 ‘품위손상행위’와 ‘자격정지’ 제재가 연결될 수 있느냐다.

KBO 규약 제151조 [품위손상행위] 항목엔 선수, 감독, 코치, 구단 임직원 또는 심판 위원이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총재는 다음 각 호의 예에 따라 적절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가운데 윤호솔의 보이스 피싱 연루는 기타 인종차별, 가정폭력, 성폭력, 음주운전, 도박, 도핑 등 경기 외적인 행위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에 해당한다.

여기에 연결된 제재로는 실격 처분, 직무정지, 참가활동정지, 출장정지, 제재금 부과 또는 경고 처분 등이 있다. 자격정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KBO 실토 “자격정지 용어 선택 실수, 참가활동정지가 맞다”

KBO 규약의 '자격정지선수'는 구단이 총재에게 요청하는 방식이다(사진=엠스플뉴스)
KBO 규약의 '자격정지선수'는 구단이 총재에게 요청하는 방식이다(사진=엠스플뉴스)

왜 온갖 제재 유형 가운데 자격정지만 빠져 있을까. 여기엔 이유가 있다. KBO 규약 '제34조 [자격정지선수]'에 답이 있다. 자격정지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 구단은 선수가 선수계약 또는 제58조를 위반한 경우 당해 선수를 자격정지선수로 지정해 줄 것을 총재에게 요청할 수 있다. ② 총재는 제1항의 요청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당해 선수를 자격정지선수로 공시한다.

다시 말해 자격정지는 KBO와 상벌위원회가 내리는 제재가 아니라, 구단이 특정 위반행위를 한 선수에 대해 KBO에 요청해 이뤄지는 제재다. 과거 ‘일베 논란’에 휩싸인 KIA 타이거즈 윤완주가 좋은 예다.

당시 KIA는 자체 상벌위원회를 열어 윤완주에게 자격정지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당시 KBO가 윤완주에게 내린 제재는 강도가 약한 ‘엄중 경고’였다. 그렇다면 한화는 KBO에 윤호솔 자격정지를 요구했을까.

취재 결과 한화 구단은 윤호솔에 대해 자격정지 제재를 논의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화 관계자는 “KBO에 윤호솔 자격정지를 요청한 적 없다”고 밝혔다. 구단이 요청하지 않은 자격정지를 왜 KBO는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것일까.

KBO 정금조 사무차장은 “자격정지란 용어 선택이 잘못된 건 맞다”고 인정했다. “당시 상벌위원회에서 참가활동정지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자격정지라고 쓰는 바람에, 충분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용어를 사용했다. KBO도 제대로 지적을 못 했다”고 답했다.

실제 의도한 제재는 자격정지가 아니라 ‘참가활동정지’란 게 KBO의 주장이다. 정 사무차장은 “'자격정지'란 단어를 썼지만 참가활동정지와 똑같다. 지난번 참가활동정지 땐 그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기간을 2개월로 정확하게 정해서 표현했다”고 밝혔다.

윤호솔 ‘자격정지’ KBO 규약 엉터리로 적용한 결과

참가활동정지는 한시적 조치다(사진=엠스플뉴스)
참가활동정지는 한시적 조치다(사진=엠스플뉴스)

정금조 사무차장의 말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참가활동정지는 KBO 규약 제152조 [유해행위의 신고 및 처리] 제 5항에 근거한 제재다.

내용은 총재는 제148조 [부정행위] 각 호 또는 제151조 [품위손상행위] 각 호의 사실을 인지한 경우 또는 그에 관한 신고·확인 과정에서 해당직무의 수행에 지장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해당 자에 대하여 제재가 결정될 때까지 참가활동(직무)을 정지할 수 있다다.

조항의 내용에서 이해할 수 있듯 참가활동정지는 정식 제재가 아니다. 품위손상행위로 선수의 직무수행에 지장이 있을 때, 사법적인 최종 결론이 나고 확정 제재가 나오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선수의 참가활동을 정지시키는 조치다.

성폭행 혐의를 받는 조상우와 박동원(이상 넥센)도, 승부조작에 연루된 이태양과 문우람, 유창식도 다 참가활동 정지 대상이 됐다. 이후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이태양은 영구실격, 유창식은 3년 유기실격이란 정식 제재를 받았다.

윤호솔은 앞서 8월 11일 KBO로부터 참가활동정지 조치를 당했다. 24일 상벌위원회가 열린 건 윤호솔에게 최종 제재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날 내린 조치가 실질적으로는 참가활동정지 조치에 해당한다는 KBO 설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 구단 요청에 의해서만 내릴 수 있는 자격정지를 상벌위원회가 제재로 부과했단 것도 문제가 있다. 한화가 먼저 자격정지를 부과하고 KBO가 추가 제재를 내렸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이날 제재는 KBO가 먼저 자격정지를 내린 뒤 한화가 자체징계를 내리는 식으로 진행됐다.

결국 이날 윤호솔에게 내려진 ‘자격정지 2개월’은 KBO가 야구규약을 엉터리로 적용한 결과다. 정상적인 협회라면 야구계와 야구팬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할 일이다. 하지만, KBO는 '자격정지와 참가활동 정지가 똑같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만 하고 있다.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시간만 지나면 언제나 자기 자릴 보존하던 이들이 바로 KBO 임직원들이다. KBO가 일반 기업이어도 이런 식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통할까. 야구계를 우습게 알고, 야구팬들을 시쳇말로 '개돼지'로 보지 않았다면 '자격정지와 참가활동 정지가 똑같다'는 무책임한 소린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 사무차장은 상벌위원회 핑계를 댔지만, 그 자신이 해당 서류에 직접 사인한 이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야구규약에 능통하지 않은 상벌위원들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운영팀에서 활약했던 정 사무차장이 져야한다.

KBO는 조만간 상벌위원회를 다시 열어 윤호솔에 대한 제재를 재심의할 계획이다. 한화 역시 윤호솔에 대한 구단 자체 징계를 다시 논의해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허황한 말장난으로 야구계를 기만한 KBO 임직원에 대해서도 징계가 수반되길 바란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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