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향한 비판 여론, 국정감사 이후 국회의원 쪽으로 방향 전환

-박용진 전 감독 “국감 논란에 사태 본질 희석되면 안 돼”

-대표팀 선발 시스템 부재와 객관성·일관성 결여가 문제 본질

-KBO 시스템 바로잡고 책임질 사람 책임져야

야구 원로 박용진 감독은 야구계 현안과 문제점에 대해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야구 원로 박용진 감독은 야구계 현안과 문제점에 대해 쓴소리를 주저하지 않는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10월 10일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기점으로 아시아경기대회 야구대표팀과 선동열 감독을 둘러싼 여론의 풍향이 180도 달라지고 있다. 이날 국감에서 일부 국회의원이 질의 문제로 비난을 받으면서다.

역설적으로 국감 논란이 커지면서, 대표팀 선발 과정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의식과 이에 대한 진상과 개선은 뒷전으로 밀려버리는 모양새다. '야구 원로' 박용진 전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은 이런 상황에 대해 큰 아쉬움을 토로했다. 논란의 본질은 대표팀 선발 시스템, 그리고 객관성과 일관성이 결여됐던 선수 선발 과정인데, ‘국감 논란’으로 이 본질이 희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고교야구와 실업야구, 프로야구를 두루 거친 원로 야구인이다. 지금은 야구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야구 재능기부에 헌신하고 있다. 야구 원로는 "내가 이런 말하면 야구인들이 싫어하겠지만,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국보급 투수 국감 출석? 야구인이 성역은 아니지 않은가”

국회 국정감사 증인석에 앉은 선동열 대표팀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국회 국정감사 증인석에 앉은 선동열 대표팀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선동열 국가대표 감독이 출석한 10일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논란입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솔직히 좀 안타까웠습니다.

‘국보급 투수’가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셨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국감장에 나온 것엔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선 감독이 현역선수 시절 국보급 투수였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감독 선동열'까지 국보일 순 없습니다. 재벌 총수도 국감장에 불려 나오는데, '야구인'이라고 성역이 될 이유가 있겠습니까.

국감 이후 대투수 출신을 국감장에 불러낸 것 자체를 문제 삼는 여론이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대표팀을 놓고 얼마나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까. 대회가 끝난 지 석 달이 지났는데도 논란이 계속되고, 연일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선 감독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어요. 국회의원이야 어차피 이슈에 민감하고,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인데,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되면 당연히 국감 증인 요청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국회의원들의 질문이 논란이 됐습니다.

국회의원들의 야구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시간 부족으로 생긴 문제라고 봅니다. 하지만, 과연 야구만 그런가요? 다른 국감 상임위에선 희한한 장면이 더 많이 나오더군요. 정치는 잘 모르지만, 매년 국감 때마다 언론에서 국회의원들을 질타하지 않습니까. 야구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또 그게 문제의 본질도 아니고요.

“대표팀 논란, 본질은 시스템 부재와 선발 과정 객관성 결여”

국회의원들을 향해 비판이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선동열 감독과 KBO(한국야구위원회)에 대한 비판 여론은 사그라지는 모양새입니다.

사태의 본질을 봐야 합니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니까, 여기에 영합해서 본질을 희석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사태의 본질이 뭐라고 보십니까.

본질은 야구 대표팀 선발 과정의 객관성과 일관성 결여, 그리고 시스템의 부재입니다. 이 본질을 잊어버려선 안 됩니다.

시스템의 부재는 기술위원회 해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물론 기술위원회가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안에도 여러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어요.

기술위원회가 있던 시절에도 대표팀 선발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독 한 개인에게 전권을 줘서 발생한 폐단보단 시스템을 구축해 선수 선발을 했을 때 생기는 폐단이 덜 하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에요. 적어도 지금처럼 감독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과 비난이 집중되거나, '감독만 알지, 우린 모른다'는 협회의 무책임한 태도는 사라지게 될 겁니다. 시스템에 의해 선수를 선발하고, 코칭스태프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대표팀 선수 선발 이후 일부 선수에게 비난이 집중됐습니다. 하지만, 기량을 놓고 봤을 때 뽑아선 안 될 선수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선 감독과 KBO의 대응이 아쉽다는 겁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선수를 뽑아놓고 별다른 설명을 하거나 기회를 주지 않아 논란이 더 커진 면이 있다는 뜻이신가요?

오지환이나 박해민은 소속팀에서 ‘탑’인 선수들입니다. 충분히 대표팀에 승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해 군경팀에 입단할 마지막 기회를 포기했기 때문에 논란이 된 것 아닙니까. 논란을 알면서 뽑았다면, 감독이 직접 ‘이런 이유로 뽑았다’고 자세히 설명하고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어야죠. 또 경기 때 보란 듯이 기용해서 기회를 줬어야 합니다.

실제 같은 대회에서 축구 대표팀은 ‘인맥 축구 논란’이 일자 감독이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논란이 된 선수를 경기에 기용해 논란 자체를 잠재웠습니다. 해당 선수가 경기에서 대활약해 팀을 금메달로 이끌자 비난 여론은 찬사로 바뀌었습니다.

선 감독과 KBO는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는 동안에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선 감독은 침묵을 지키다 국회에서 증인 요청하니까 그제야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선 감독이 자초해서 생긴 일 아닙니까.

여러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전 언론이 논란을 키운 면이 크다고 봅니다. 대표팀 선발 이후에나 대회 기간에, 그리고 기자회견 때까지 언론에선 연일 선 감독과 오지환을 향해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대회 기간 상대 팀을 ‘중학교 수준’ ‘사회인 야구’라고 평가절하한 게 누굽니까. 바로 언론이었어요. 그런데 국감 이후 여론의 비판이 국회의원들 쪽으로 넘어가니까, 이제는 180도 다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론 따라 입장이 오락가락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몇몇 현상의 단편으로 본질을 비켜가는 것, 야구계의 변하지 않는 실상”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선동열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선동열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국정감사에서 선동열 감독은 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5경기를 TV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국가대표팀 스태프도 역임하셨는데요. 후배 감독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얘길 들려주고 싶으신지요.

현장에서 보는 것과 TV를 통해 보는 것은 다릅니다. 전임 감독이라면 현장에 좀 더 많이 나가 많은 이야길 듣고,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장에 나가면 TV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록을 해서 자신만의 선수 평가 자료를 축적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다음 대회, 그다음 대회까지 선수 평가와 선발하는 데 활용할 수가 있죠.

선 감독은 아마추어 선수를 뽑지 않은 이유로 프로 선수와의 ‘실력 차’를 들었습니다.

일본은 사회인 대표가 출전하는데, 우리는 리그를 중단하면서까지 프로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해 출전했습니다. 아마추어 선수 미선발 논란도 여기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과거 대표팀에 아마추어 선수 몇 명 포함했다고 금메달 따는 데 어떤 지장이 있었는지 묻고 싶어요. "젊은 선수들로 구성해 2020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겠다"고 말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선 감독 자신이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의 여론을 오판해 문제를 그냥 덮고 지나가려 해선 안 됩니다.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정운찬 총재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과하긴 했지만, 각종 문제점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과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을 바로 잡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합니다.

지금 상황만 보자면 '책임론'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사실 선 감독은 이미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놓쳤습니다. 대표팀 선발 이후에, 대회 기간에, 대회가 끝난 뒤에 상황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침묵으로 일관하다 그 모든 기횔 날려 보냈습니다. 뒤늦게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 야구인 대부분이 ‘자진사퇴할 것’으로 예상하더군요. 그래야 자기 명예도 지킬 수 있고, 나중을 기약할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어요.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그간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이번 사태를 KBO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해 오신 것으로 압니다.

사실 대표팀 논란에서 가장 큰 책임은 선 감독보단 KBO와 KBSA(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있다고 봅니다.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KBO 총재와 사무총장, 책임자들은 어디서 뭘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니까 문제가 국회까지 가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질 않습니다. 책임지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 몇몇 현상의 편린으로 본질을 희석하는 것. 이게 우리 야구계의 가장 큰 비극이자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어져온 실상입니다.

박찬웅 기자 pcw0209@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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