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도전하는 KIA 타이거즈가 분명히 불리하다. 그래도 가을야구는 분위기 싸움이다. 첫 경기 첫 타석에 들어선 리드오프 로저 버니다나가 그 분위기를 먼저 가져올 수 있다. 가을의 시작과 끝자락까지 질주하고 싶은 버나디나의 각오를 들어봤다.

KIA 외야수 로저 버니다나의 감각적인 슬라이딩이 팀의 5위 수성에 힘을 보탰다(사진=엠스플뉴스)
KIA 외야수 로저 버니다나의 감각적인 슬라이딩이 팀의 5위 수성에 힘을 보탰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전준우의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굴러가는 순간 포수 한승택은 자기도 모르게 “됐다”라고 외쳤다. 올 시즌 좀처럼 활짝 웃을 일이 없었던 윤석민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기태 감독은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잡히는 순간 크게 손뼉을 마주쳤다. 그만큼 절박했던 KIA 타이거즈의 가을야구였다.

10월 12일 광주에서 KIA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규시즌 마지막까지 순위 싸움을 펼쳤다. 이번엔 아쉽게도 1위가 아닌 5위 자리를 놓고 롯데 자이언츠와 다퉜다.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가을야구 참가는 선수단에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이날 5위를 확정 지은 6대 4 승리의 MVP는 7회 말 결승타를 날린 안치홍이었다. 사실 숨은 MVP도 따로 있었다. 바로 1회 말 3득점으로 기선제압의 중심에 선 로저 버나디나였다. 버나디나는 1회 상대 1루수 이대호의 포구 실책을 틈타 베이스 앞에서 태그를 피하는 동물적인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

이 감각적인 주루에 롯데 선발 투수 김원중은 흔들렸다. KIA는 1회 말 3득점으로 경기 분위기를 주도했다. 비록 경기 중반 KIA가 역전을 당했지만, 1패만 기록해도 탈락하는 롯데는 한 점 차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시즌 143경기를 치르고 나서야 KIA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을 확정했다.

‘해결사 본능’ 버나디나의 질주는 여전했다

버나디나는 올 시즌 리그 중견수 WAR 2위에 오르는 활약을 펼쳤다. 지난해와 비교해서 크게 밀리지 않는 시즌 기록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버나디나는 올 시즌 리그 중견수 WAR 2위에 오르는 활약을 펼쳤다. 지난해와 비교해서 크게 밀리지 않는 시즌 기록이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5위 확정 다음 날인 10월 13일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만난 버나디나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전날 보여준 감각적인 슬라이딩에 대해 버나디나는 그게 바로 내 본능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올 시즌 버나디나의 성적은 131경기 출전/ 타율 0.310/ 159안타/ 20홈런/ 70타점/ 32도루/ 출루율 0.395/ 장타율 0.487다. 지난해 성적과 비교하면 타점(111타점)과 홈런(27홈런), 그리고 장타율(0.540)이 다소 떨어졌다.

그래도 중견수라는 포지션을 고려하면 자기 몫은 충분히 해줬단 평가다. 버나디나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도 4.56으로 KT WIZ 멜 로하스 주니어(5.97)에 이어 리그 중견수 2위에 위치했다. KIA에선 뺄 수 없는 공·수의 윤활유 역할을 맡은 버나디나였다.

“굉장히 긴 시즌이었다. 5위 자리를 놓고 마지막까지 싸워야 했다. 분명히 쉽지 않았다. 시즌 내내 내 역할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야구 선수라면 어느 정도 숫자에 만족할 순 없다. 그래도 리드오프로 꽤 나선 걸 생각하면 성적이 나름대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상대 투수들과 수비수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나도 계속 진화하고자 노력했다.” 버나디나의 말이다.

버나디나는 올 시즌 중요한 순간마다 해결사 역할도 도맡았다. 올 시즌 긴박한 CL & Late(7회 이후 동점 혹은 한 점 차) 상황에서 버나디나는 타율 0.367/ 출루율 0.465/ 장타율 0.567로 활약했다. High LEV(레버리지 인덱스가 1.6 이상인 중요한 상황)에서도 타율 0.337/ 출루율 0.423/ 장타율 0.629를 기록한 버나디나였다. 그만큼 승부에 결정적인 순간에 제대로 힘을 보탰단 뜻이다.

버나디나 “지난해 KS 활약상 이번 가을에도 재현하겠다.”

지난해 감격을 느끼고자 쉬지 않고 한국시리즈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버나디나다(사진=KIA)
지난해 감격을 느끼고자 쉬지 않고 한국시리즈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버나디나다(사진=KIA)

‘빅게임 히터’라고 표현해도 과찬이 아니다. 지난해 가장 중요했던 한국시리즈에서 버나디나는 타율 0.526(19타수 10안타) 1홈런 7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원체 강렬한 인상을 남긴 투수 양현종이 MVP를 받아야 했지만, 버나디나의 공로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가을야구에서도 버나디나는 리드오프로서 팀 공격의 선봉장에 선다. 특히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첫 경기에서 지면 모든 게 끝이다. 원정팀으로서 1회 초 첫 타석에서 상대 팀을 당황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버나디나가 맡은 중요한 역할이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때와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준비하겠다. 그때의 활약을 재현하면 좋겠다. 여기선 한 번만 지면 끝이다. 한 타석 한 타석이 다 소중하다. 리드오프로서 출루에만 집중하겠다. 내가 출루해야 초반 득점이 가능하다. 그걸 위한 팀 배팅이 무조건 필요하다. 버나디나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고기도 먹어 본 자가 더 잘 먹는다. 우승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억에 있기에 버나디나는 더 큰 무대를 즐길 준비가 됐다.

버나디나는 “포스트시즌은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과 왠지 모를 긴장감을 나는 즐긴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때 롱 패딩을 입을 정도로 날씨가 정말 춥긴 추웠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뛸 수 있다면 상관없다. 한국시리즈까지 가려면 쉬지 않고 긴 여정을 치러야 한다. 일단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을 이긴다면 모든 게 잘 풀릴 거로 믿는다”고 힘줘 말했다.

버나디나의 올 시즌 질주는 가을 끝자락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사진=엠스플뉴스)
버나디나의 올 시즌 질주는 가을 끝자락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사진=엠스플뉴스)

한국, 그리고 광주와 최대한 오래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버나디나다. 나이(1984년생)가 다소 걸리지만, 내년까진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줄 수 있단 시선이 있다. 구단 내 토종 중견수 자원도 마땅치 않다. 재계약 가능성은 다른 두 투수보단 높아 보인다.

“구단에서 항상 지원과 배려를 잘해주셔서 감사드린다. 한국에서 야구를 하는 게 즐겁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야구를 이런 좋은 환경에서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래서 포스트시즌 같은 큰 무대를 다시 뛰는 것도 정말 기대된다. KIA 팬들이 많이 오셔서 즐겼으면 좋겠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때 팬들의 응원은 정말 소름 돋을 정도였다. 그런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다.”

버나디나는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 우승을 향한 각오를 다졌다.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까닭이다. 한 번 맛본 우승을 또다시 하고 싶은 욕심은 당연하다. 우리는 ‘디펜딩 챔피언’으로 올 시즌을 시작했으니 엔딩도 챔피언으로 끝내는 게 맞다. 결과는 부딪혀 봐야 안다.

버나디나의 두 눈은 이미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넘어섰다. 버나디나의 거친 질주가 가을의 끝자락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