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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특집] 앞으로 투수들은 ‘무조건’ 1회부터 박병호와 상대해야 한다

  • 기사입력 2019.03.14 06:55:04   |   최종수정 2019.03.14 06: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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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의 실험, 박병호 2번 타자 전진 배치

-이론으로 입증된 강한 2번 효과…최고 강타자는 2번 배치가 딱이야

-시뮬레이션 결과, 한 시즌 35타석 더 출전 가능…투수들에게는 악몽

-4번이든 2번이든 박병호는 박병호 “야구하면서 처음 경험, 재미있다”

 

이제는 2번 타자 박병호로 불러주세요(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이제는 2번 타자 박병호로 불러주세요(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3월 1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시범경기 LG-키움 전. 1회말 키움 히어로즈 톱타자 이정후가 투수 땅볼 아웃으로 물러났다. 제리 샌즈는 2루수쪽 땅볼 아웃, 서건창은 삼진에 그쳤다. 예년 같았으면 삼자범퇴, 득점 없이 끝났을 1회 공격이다. ‘4번 타자’ 박병호는 2회말 주자 없는 가운데 선두타자로 타석에 나섰을 게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키움이 예년과 전혀 다른 타순을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이정후 바로 다음 나온 2번 타자는 리그 최고의 거포이자 투수들의 악몽인 박병호였다. 박병호는 LG 선발 타일러 윌슨의 초구를 골라낸 뒤, 2구째 약간 가운데 몰린 패스트볼을 벼락같이 받아쳤다. 좌중월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35미터짜리 솔로홈런. 돔구장이 아니었으면 구장 밖 안양천 너머에 떨어졌을 대형 홈런이 터졌다. 

 

135m보다 더 될 것 같은데요? 경기 후 기자들과 만난 박병호의 너스레다.

 

이날 키움은 ‘오소독스’와는 135m만큼 멀리 떨어진 라인업을 가동했다. “2번 타자는 생전 처음”이라는 박병호 2번도 놀랄 노자였지만 ‘4번 타자 서건창’도 놀랍긴 마찬가지. 불과 이틀 전 인터뷰 때 “4번 빼고는 다 나갈 수 있다”고 했던 서건창이다. 데뷔 이후 한 번도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린 적 없는 ‘퓨어 컨택트’ 타자다. 지난 시즌 리그 4번 출전 최다 타석수 상위 30인은 전원이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 경험이 있는 장타자였다. 

 

경기전 클럽하우스에 선발 배팅오더가 붙은 걸 봤는데, 선수들도 (그런 타순은) 처음이라 많이 웃었습니다. 박병호의 말이다.

 

승패와 무관한 시범경기라서 가능한 일회성 실험일까. 그렇지는 않다. 장정석 감독이 “시범경기 동안 계속 박병호를 2번과 3번으로 기용하며 테스트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 감독이 지난 시즌부터 꾸준히 ‘강한 2번’을 강조한 점을 고려하면, 실험의 끝은 ‘박병호 2번’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론상 강한 타자 앞 타순 배치할수록 유리…최적의 타순은 2번 혹은 4번

 

생애 처음 2번으로 나선 타석, 첫 스윙에 홈런포를 터뜨린 박병호(사진=키움) 생애 처음 2번으로 나선 타석, 첫 스윙에 홈런포를 터뜨린 박병호(사진=키움)

 

강한 2번 타자는 어떨까요?지난해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당시 장정석 감독이 들려준 말이다. 장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선 '강한 2번 타자'가 대세라며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는 2번 타순에서 52홈런을 때려냈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강한 2번은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새로운 유행이자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만 해도 애런 저지, 리스 호스킨스, 욜머 산체스, 마이크 트라웃, 맷 채프먼, 에릭 호스머, 폴 골드슈미트, CJ 크론 같은 홈런더비 출전용 선수들이 대거 2번 타순에 포진해 장타 경쟁을 펼쳤다. 

 

단순히 메이저리그에서 하니까 따라 하는 게 아니다. 2번에 강한 타자를 놓는 데는 충분한 이론적 근거가 있다. 이철진 키움 전력분석팀장은 기본적으로 강한 타자가 한 타석이라도 더 나가게 하자는 게 핵심이라 설명했다. 야구는 1번부터 9번까지 순서대로 돌아가며 나오는 종목이다. 잘 치는 타자가 한 번이라도 더 나오게 하려면, 강타자를 앞 타순에 배치하고 약한 타자를 뒤에 배치하는 게 바람직하다. 

 

‘강한 2번’의 선구자 격인 LG 트윈스 류중일 감독은 이 개념을 중학교 야구에 빗대 설명했다. 류 감독은 “중학 야구는 9이닝이 아닌 7회까지만 진행한다. 그래서 중학 야구 타순을 보면 팀에서 제일 잘 치는 타자부터 앞에서 차례로 나온다. 이닝이 짧다 보니, 그래야 한 번이라도 많이 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철진 팀장은 계산 결과 한국야구에서 타순이 하나 올라갈 때마다 한 시즌당 15내지 17타석을 추가로 나오게 된다. 타순을 두 타순 위로 올리면 35타석 정도를 추가로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박병호도 미국 캠프 기간 연습경기 때 2번 타순을 경험했는데, 점수가 많이 나지 않았는데도 5회에 벌써 세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더 많은 타석이 돌아온다는 건, 더 많은 홈런과 안타를 뽑아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팀장은 “박병호가 지난 시즌 11.3타석당 1개 홈런을 기록했다. 타석수 증가로 작년보다 4개 정도 더 많은 홈런이 기대된다. 한국야구에서 홈런의 가치를 분석했을 때 연간 10점 정도를 추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KBO리그에서 10점은 1승에 해당하는 가치를 갖는다. 이는 박병호의 타순 조정만으로 키움이 지난 시즌 대비 1승을 추가로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반 게임 차로 1, 2위가 갈린 사례들을 생각하면, 1승을 더하고 못 하고는 생각보다 훨씬 큰 차이다. 

 

무조건 1회부터 첫 타석에 나서게 된다는 것도 2번과 4번의 차이점이다. 만약 박병호가 4번인데 1회 공격이 삼자범퇴로 끝나면, 박병호는 2회 주자 없는 상황에 선두타자로 타석에 나와야 한다. 지난해 박병호는 2회 타율 0.344에 장타율 0.813을 기록했다. 이제 리그 투수들은 이런 박병호를 무조건 1회부터 만나게 된다. 게다가 한 시즌 35번이나 더 상대해야 한다니, 호환 마마보다 더한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마이클 초이스 2번 타자를 실험했던 장정석 감독. 키움 이철진 전력분석팀장은 “장 감독님이 먼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자료를 요구할 때가 많다“고 밝혔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지난 시즌 마이클 초이스 2번 타자를 실험했던 장정석 감독. 키움 이철진 전력분석팀장은 “장 감독님이 먼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자료를 요구할 때가 많다“고 밝혔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그렇다면 왜 1번 타자가 아닌 2번 타자일까. 이는 주자의 유무 때문이다. 세이버메트릭스계 바이엘이자 바이블인 [The Book]에 따르면 1번 타자는 전체 타석 가운데 약 36%를 주자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나온다. 앞 타자(하위타순)의 출루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1회를 비롯해 경기중에 선두타자로 나설 때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타석에 나왔을 때 주자의 존재까지 생각하면, 이론상 팀 내 최고 타자는 2번 혹은 4번에 배치하는 게 최상의 타순이 될 수 있다. [The Book]에선 출루 능력이 좋은 타자를 2번, 장타 능력이 좋은 타자는 4번에 배치하라고 주문한다. 박병호는 지난 시즌 팀 내에서 가장 높은 0.457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여기서 핵심은 기존 3, 4, 5번으로 생각했던 중심타선을 2, 3, 4번으로 한 타순씩 앞당기는 데 있다.

 

사실 박병호 2번은 하루아침에 뚝딱 등장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이철진 팀장은 박병호 2번은 지난 시즌에도 검토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는 박병호가 아닌 외국인 타자 마이클 초이스가 실험 대상이 됐다. 이유는 작년이 박병호의 KBO리그 복귀 첫해였기 때문. 박병호의 한국 무대 연착륙을 위해 일단은 익숙한 4번 타자부터 맡겼다는 설명이다. 

 

2번 타자 마이클 초이스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키움은 강한 2번 실험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 미국 애리조나 캠프 기간 장 감독은 박병호와 면담에서 타순 이동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다. 박병호는 “장정석 감독님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시키려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며 “애초에 ‘4번 타자의 자부심’ 같은 게 없었기에, 타순 변화에 거부감도 없었다. 오히려 조금 더 책임감이 생긴다”고 했다.

 

이 팀장은 박병호 이동으로 4번 타자의 개념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질 것이라 밝혔다. 4번 타자는 이제 기존에 생각하는 최고의 강타자가 아닌, ‘팀에서 네 번째로 잘 치는 선수’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됩니다. 12일 경기에선 서건창이 4번 타자로 출전했잖아요. 장타력이 있는 선수는 아니지만, 팀 내에서 굉장히 잘 치는 선수죠. 그게 감독님 생각인 것 같습니다.” 

 

번트? 주루? 상차림? 박병호는 2번에서도 여전히 박병호다

 

홈런을 터뜨린 '2번 타자' 박병호와 '3번 타자' 샌즈(사진=키움) 홈런을 터뜨린 '2번 타자' 박병호와 '3번 타자' 샌즈(사진=키움)

 

일본 야구 만화에서 2번 타자는 대개 번트에 능하고, 작전 수행능력이 좋은 선수로 묘사된다. 만화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야구에서도 그렇다. 류중일 LG 감독은 “일본 캠프에서 연습경기를 하면, 1회 주자가 나갔을 때 한국 팀들은 다 강공을 하는데 일본 팀들은 여전히 번트를 댄다”고 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KBO리그의 풍경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2번 타자 박병호’에게 키움이 기대하는 건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럴 거면 애초에 2번에 배치하지도 않았을 거다.

 

제가 번트를 댈 수도 없고… 박병호가 ‘전통적인 2번’ 역할에 대해 들려준 말이다. 4번 타자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2번을 칠 때도 다르지 않아요. 주자라든가 점수 차에 따라 다른 타격을 하진 않을 것 같아요. (팀에서도) 그걸 바라면서 타선을 앞으로 당기진 않았을 겁니다.

 

사주팔자에 없던 4번 타자를 맡은 서건창도 같은 생각이다. “타석에 나설 때 목적은 항상 같아요. 타순과 관계없이, 제가 할 일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박병호 형이 테이블세터에 간다고 출루에 더 목적을 두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톱타자가 익숙한 이정후도 “1번이라고 다른 타순일 때와 다른 타격을 하는 건 아니다. 감독님도 초구부터 적극적인 타격을 하라고 강조하신다”며 타순이 타격 전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밥상을 차리고, 번트를 대고, 주루플레이를 하는 건 옛날 투고타저 환경의 2번 타자에게 요구된 덕목이다. 한 점의 가치가 천금과도 같았던, 1번이 출루하면 2번이 번트로 보낸 뒤 중심타선에 맡기던 시절 얘기다. 

 

지금의 야구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극악의 타고투저 환경 속에 연일 대량득점이 쏟아지고, 한 점보다는 아웃 카운트 하나하나의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 희생번트로 아웃 카운트를 버리고, 진루타로 주자를 한 베이스 더 보내는 노력은 대부분의 경우 바보짓이다. 류 감독은 “희생번트를 대나 강공을 하나 기대할 수 있는 득점은 큰 차이가 없다”며 “처음 감독할 때부터 내 야구에서 1회부터 번트 대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보단 장타를 때려 그대로 1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거나, 득점권으로 보내거나, 주자가 없으면 직접 득점권 주자가 되는 편이 낫다. 아니면 12일 경기에서 박병호가 보여준 것처럼 타자 주자가 한 방에 타점과 득점을 동시에 올리는 방법도 있다. 4번에서든 2번에서든, 똑같이 박병호다운 타격을 하면 된다. 2번이라고 달라질 게 없다. 

 

어차피 1회가 지나면 똑같습니다. 4번 타자일 때도 1회 이후엔 종종 선두타자로 나설 때가 있었으니까요.박병호의 말이다. 정말 다르게 느껴지는 점은 1회에 먼저 타석 들어가는 것, 그리고 타석 수가 많이 돌아오는 것. 이 두 가지가 2번 타자와 4번 타자가 다른 점입니다. 그 외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2번에서 4번으로 이동한 서건창도 마찬가지다. 서건창은 4번 체험 후 기자에게 “4번 타자라고 다를 건 없다. 똑같이 타격했다”고 말했다. “어느 타순에서든 적응해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클러치 상황이요? 그런 상황에선 팀의 어떤 선수든 클러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닐까요.”

 

4번 타자 서건창. 올 시즌 키움에서 4번 타자는 최고의 거포가 아닌, 팀에서 '4번째로 잘 치는' 타자를 의미한다(사진=키움) 4번 타자 서건창. 올 시즌 키움에서 4번 타자는 최고의 거포가 아닌, 팀에서 '4번째로 잘 치는' 타자를 의미한다(사진=키움)

 

경기전 배팅 오더를 보고 선수들끼리 웃었다던 박병호는 사실 (선수들이) 타순에 대해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미 애리조나에서 해봤기 때문에, 지금은 다들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거부감은 없습니다. 야구하면서 처음 2번을 쳐본 것 같은데, 이런 게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KBO리그에서 강한 2번을 시도한 게 키움이 처음은 아니다. 류중일 감독처럼 강타자를 2번에 놓는 실험을 시도한 선구자들이 여럿 있었다. 삼성 시절 박석민을 2번에 놓기도 하고, ‘2번 양준혁’ 이론을 전파하기도 했던 류 감독은 ‘강한 2번 타자’ 실험에 대해 “자꾸 따라 하지 좀 말라고 해요”라는 농담으로 선구자의 자부심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런 실험이 리그 전체에 뿌리를 내리진 못했다. 여전히 전통적인 스타일의 2번 타자를 선호하는 감독이 적지 않았다. 또 팀 선수 구성상 강타자를 2번에 배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류 감독만 해도 지난 시즌엔 ‘김현수 2번’을 시도했지만, 박용택이 6번으로 한 타순 내려간 올해는 김현수를 3번에 배치할 계획이다. 지난 시즌 리그 2번 타자들이 거둔 성적은 OPS 0.794로 6번 타순(0.809)보다도 저조했다. 

 

하지만 올 시즌 들어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시범경기 첫날부터 키움을 비롯해 많은 팀이 ‘강한 2번’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화는 베테랑 강타자 송광민을 2번 자리에 기용했고, KT 역시 박경수를 2번에 배치해 톱타자 황재균과 ‘20홈런 테이블세터’를 구성했다. 롯데와 KIA처럼 외국인 타자를 2번에 기용한 팀도 있다. 어쩌면 올 시즌, KBO리그에서 ‘2번 타자 홈런왕’이 나오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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