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시즌 한동민 2번 카드 앞세워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한 SK 와이번스

-염경엽 감독 부임한 올 시즌, 한동민과 고종욱이 번갈아 2번 나선다

-염경엽 감독 “강한 2번? 컨디션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오는 게 유리하다”

-한동민 2번 중심으로 컨디션과 상황 따라 고종욱도 2번 기용…고종욱 역할 중요

SK 한동민과 고종욱. 올 시즌 SK 2번 타자로 나올 선수들이다(사진=엠스플뉴스)
SK 한동민과 고종욱. 올 시즌 SK 2번 타자로 나올 선수들이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누가 2번을 치는지가 아니라, 누가 컨디션이 좋은지가 더 중요하다. 컨디션 좋은 타자가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들어가는 게 맞는 것 아닌가. 그게 톰 탱고 이론의 확률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지난 시즌 SK 와이번스는 리그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타순을 선보인 팀이다. 144경기에서 SK가 사용한 타순은 총 129가지. 두 번 사용한 라인업은 11종류, 세 번 사용한 라인업은 단 2종류에 불과할 정도로 경기에 따라 변화가 잦았다. 가장 라인업 종류가 적었던 LG(74종류)와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했다.

하지만 1경기 1라인업 수준으로 오더가 바뀌는 와중에도 유독 2번 타자 한 자리만큼은 ‘고정’에 가까웠다. 지난 시즌 SK는 한동민이 91경기에 2번으로 출전해 붙박이 2번 역할을 했다. 홈런 41개를 때려낸 한동민의 활약 속에, SK는 10개 구단 가운데 2번 타순에서 최고의 생산력(42홈런 OPS 0.881, 2위 두산 OPS 0.848)을 올릴 수 있었다

트레이 힐만 감독이 떠나고 염경엽 감독이 취임한 올 시즌, SK 2번 자리에 변화가 생긴다. 염 감독은 기존 한동민에 더해, 삼각 트레이드로 영입한 고종욱도 2번 타순에 배치할 계획이다. 한동민과 고종욱은 전혀 다른 유형의 선수다. 한동민이 홈런 파워를 자랑하는 슬러거라면, 고종욱은 빠른 발과 컨택트 능력이 장점인 선수다. 염 감독이 대조적인 두 선수를 2번에 기용하려는 이유는 뭘까.

염경엽의 반문 “10타수 무안타 치는데 2번에 둔다고 효과 있나”

염경엽 감독은 톰 탱고의 이론을 오래전부터 연구해왔다며 '컨디션 좋은 2번'론을 강조했다(사진=엠스플뉴스)
염경엽 감독은 톰 탱고의 이론을 오래전부터 연구해왔다며 '컨디션 좋은 2번'론을 강조했다(사진=엠스플뉴스)

염경엽 감독은 시범경기 기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KBO리그 트렌드로 주목받는 ‘강한 2번’에 대해 ‘좋은 타자를 한 타석이라도 더 돌아오게 하는 게 한 시즌을 봤을 때 유리하다는 것’이라 요약했다.

이는 미국의 세이버메트리션 톰 탱고(Tom Tango)가 공저한 [The Book]에 나오는 주장이다. 톰 탱고에 따르면 상위 타순일 수록 경기당 좀 더 많은 타석에 나올 수 있고, 따라서 좋은 타자는 가능한 라인업의 앞쪽에 배치하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타순 맨 앞인 1번 타자의 경우,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나올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최고의 타자는 2번 혹은 4번에 배치하는 게 최상의 타순이 된다.

톰 탱고는 통계를 토대로 팀내 최고 타자 가운데 출루 능력이 좋은 타자를 2번에, 장타 능력이 좋은 타자를 4번에 배치하라고 주문한다. 그 다음으로 출루 능력이 좋은 타자를 1번, 장타 능력이 좋은 타자를 3번에 배치하란 게 톰 탱고의 주장이다.

염 감독은 “톰 탱고의 이론은 결국 라인업에서 5명의 타자를 강조한다. 1번과 2번, 그리고 4번이고 나머지 두 타자가 3번과 5번이다. 어느 팀이든 정말 방망이 잘 치는 타자는 5명 정도다. 6명, 7명을 보유한 팀은 정말 강한 팀”이라며 “5명을 잘 조합해서 타선을 연결하고, 빅이닝을 만들고, 많은 득점을 올리는 게 톰 탱고의 이론”이라 설명했다.

지난 시즌 SK는 이런 이론에 따라 한동민을 2번 타자로 기용했다. 염 감독은 “오래전 톰 탱고 이론을 외국 자료를 받아보면서 접했고, 꾸준히 연구해 왔다. 지난 시즌 힐만 감독에게 한동민 2번을 적극 권유했던 것도 그래서”라며 “이전까지는 SK에 2번 타자감이 없었다. 한동민이 자리잡으면서 비로소 2번 타자가 생겼다”고 밝혔다.

여기에 염 감독은 자신만의 색깔을 더할 계획이다. 그는 야구는 정답이 없다. 다만 좀 더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찾을 뿐이라며 톰 탱고 이론의 확률을 좀 더 높이기 위해선 현재 팀의 컨디션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2번 타자가 10타수 무안타를 치고 있는데 2번에 둔다고 효과가 있겠나. 한동민이 2번을 치느냐, 고종욱이 2번을 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느 선수가 현재 컨디션이 좋은지에 따라 2번을 들어가는 게 맞다는 거다. 컨디션 좋은 타자가 한번이라도 더 타석에 들어가는 게 팀에 도움이 된다.” 염 감독이 주장하는 ‘컨디션 좋은 2번’론의 내용이다.

염경엽 “한동민 홈런, 고종욱 도루로 같은 1점…선택은 감독의 몫”

2018시즌 SK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트레이 힐만 감독. 올 시즌 새로운 리더십과 함께 SK 팀 컬러에도 변화가 예상된다(사진=엠스플뉴스)
2018시즌 SK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트레이 힐만 감독. 올 시즌 새로운 리더십과 함께 SK 팀 컬러에도 변화가 예상된다(사진=엠스플뉴스)

사실 염경엽 감독이 생각하는 최적의 2번 타자 감은 따로 있다. 염 감독은 “사실 팀 내에서 2번에 가장 적합한 선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정진기가 아닐까”라고 했다. 프로 입단 당시 발빠른 외야수였던 정진기는 이후 벌크업을 통해 힘과 스피드를 겸비한 선수로 거듭났다. 다만 아직 1군 무대에서는 가진 잠재력만큼의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염 감독은 “2번에 강한 타자를 세운다는 것은 작전 대신 공격을 펼친다는 의미다. 병살타 등으로 흐름을 끊을 경우 그 여파가 3~4회까지도 갈 수 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의 마이크 트라웃처럼 홈런을 치면서 도루도 20개까지는 가능한 선수가 2번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 팀에서는 정진기가 그런 유형에 가깝다”고 기대감을 표현했다.

한동민은 40개 이상 홈런을 때려낼 파워는 있지만 대신 기동력과 컨택트 능력까지 갖추진 못했다. 고종욱은 20개 이상 홈런을 때려낼 파워는 없지만, 대신 뛰어난 기동력과 3할 이상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컨택트 능력을 갖췄다. 둘의 장점을 합하면, 염 감독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2번 타자가 탄생하는 셈이다.

한동민의 홈런으로 1점을 뽑을 수도 있지만, 고종욱이 출루하고 도루와 전략을 통해 1점을 낼 수도 있다. 똑같은 1점이다. 만약 한동민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2번에 나가는 것보다 밑에서 받쳐주면서 주자 3루 있을 때 외야플라이 하나 쳐주는 게 팀의 득점력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염 감독의 생각이다.

한동민이 시즌 내내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나서긴 어렵다. 한동민의 타격감이 좋지 않을 때는, ‘최고 타자를 2번에 배치해 득점력을 끌어올린다’는 이론을 구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때 고종욱을 기용해 도루와 작전 등으로 새로운 득점 루트를 만든다는 게 염 감독의 구상인 셈이다.

염 감독은 “득점의 루트는 한 가지가 아니다. 다만 감이 좋은 선수가 2번에 가 있는 게 득점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라며 “홈런으로 득점할 확률이 높은지, 도루를 통해 득점할 확률이 높은지 선택은 벤치의 몫이다. 여러 고민과 생각 끝에 가장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는 말로 득점 루트의 다양화를 강조했다.

이런 구상이 성공을 거두려면, 한동민과 짝을 이룰 2번 고종욱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종욱은 염 감독과 함께한 넥센(현 키움) 시절 3할대 고타율과 20도루 이상을 기록했다. 지난 2시즌 동안에는 도루 33개를 성공할 동안 8차례만 실패하면서 물오른 도루 능력을 뽐냈다. 고종욱이 염 감독의 기대대로 높은 타율과 많은 도루를 기록한다면, SK는 보다 다채로운 공격을 펼칠 수 있다.

물론 야구는 투입한 그대로 결과가 산출되는 종목이 아니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로 이어질 때도 많고, 장미를 넣었는데 폐휴지가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팀이 경기전 타격훈련을 보고, 컨디션에 따라 타순을 짜 지만 최상의 결과만 나오진 않는다.

SK는 이번 시범경기 6경기 가운데 4경기에서 고종욱을 2번 타자로 기용했다. 고종욱은 이 4경기에서 타율 0.083에 그쳤다. 반면 한동민은 2번으로 기용된 17일 KT전에서 3안타(2루타 2개)를 때려내며 팀의 3대 1 승리를 이끌었다. 염 감독의 말대로 야구엔 정답이 없고, 그래서 야구가 어렵다. 염 감독이 말한 2번 기용 계획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정규시즌을 지켜봐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