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넘게 롯데 전경기 직관한 ‘전설의 야구팬’ 하동 갈매기

-하동 갈매기의 야구 예찬 “야구는 최고의 항암제”

-“최고의 직관 경기는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팬은 팬일 때 가장 무서워. 얼굴색으로 차별하지 않듯, 직관 여부로 누가 진정한 팬인지 구분할 수도, 구분해서도 안 된다”

-직관 위해 산 ‘캐러반’을 태풍으로 날리고, 캠핑 버스 구입한 하동 갈매기, “경비 부족한 야구팬들에게 라면, 밥 대접하고, 숙소도 제공하는 '야구 희망버스' 되고 싶다”

롯데 유니폼을 입은 '하동 갈매기' 김쌍식 씨(사진 맨 위부터)와 역시 롯데 팬이자 김 씨의 '평생 베프'인 이완형 씨, '하동 갈매기' 옆에서 동태찌개 맛집을 운영하는 야구팬 정상재 씨가 '야구 희망버스'에 앉아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야구 희망버스'는 올 시즌 야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사진=엠스플뉴스)
롯데 유니폼을 입은 '하동 갈매기' 김쌍식 씨(사진 맨 위부터)와 역시 롯데 팬이자 김 씨의 '평생 베프'인 이완형 씨, '하동 갈매기' 옆에서 동태찌개 맛집을 운영하는 야구팬 정상재 씨가 '야구 희망버스'에 앉아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야구 희망버스'는 올 시즌 야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하동]

하동군(河東郡). 섬진강(河) 동쪽(東)에 자리 잡은 군(郡)이다. 한때 인구가 14만 명이나 됐던 하동군은 과거 소설 ‘토지’의 배경이나 ‘화개장터’로 유명했다. 특히나 화개장터는 영·호남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지역감정 해소의 상징‘으로 불렸다.

이런 하동에 한 마리의 갈매기가 날아든 건 20년 전이다. 갈매기의 이름은 김쌍식(55). 하동이 고향인 김 씨는 원양어선 조리사로 전세계를 누비다 모든 걸 정리하고, 하동으로 돌아와 작은 횟집을 차렸다. 그 횟집 이름이 바로 ‘하동 갈매기’다.

원체 성실하고 실력이 좋았던 터라, ‘하동 갈매기’가 지역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성장하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변에선 지금대로라면 20년 후엔 하동 제일가는 부자가 될 것이라며 빨리 체인 사업을 해 대박을 터트리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설 ‘토지’는 반드시 읽어야 하나 지금은 읽고 싶지 않은 명작으로 남아 있고, 화개장터가 해소하고자 했던 ‘지역감정’ 역시 추억 속의 갈등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하동도 인구 절벽을 걱정해야할 만큼 빠르게 인구가 줄어 지금은 채 5만이 되질 않는다.

김 씨 역시 ‘하동 제일가는 부자’는 고사하고, 여전히 ‘하동 갈매기’에서 손님을 맞고 있다. 단 하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그의 ‘야구 사랑’이다. 김 씨는 20년 전처럼 지금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황사가 불거나 시간만 되면 야구장을 찾는다. 이제 그런 그를 가리켜 야구팬들은 ‘진짜 야구팬’, ‘전설의 직관(직접 관전)왕’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십년 이상 롯데 자이언츠 전경기를 직관했던 ‘전설의 야구팬’ 김쌍식 씨. 그는 올 시즌 새로 구입한 ‘야구 희망버스’를 몰고 전국을 누빌 예정이다. 스포츠계에선 화개장터보다 더 하동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꼽히는 ‘하동 갈매기’ 김쌍식 씨를 엠스플뉴스가 만났다.

롯데 직관 위해 캠핑 카라반, 캠핑 버스 구입한 ‘전설의 야구팬’ 하동 갈매기

'야구 희망버스' 안 테이블에서 롯데 야구팬 김쌍식(사진 좌로부터), 김 씨의 '영혼의 베프' 이완형, 열혈 롯데 팬 정상재 씨가 야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야구 희망버스' 안 테이블에서 롯데 야구팬 김쌍식(사진 좌로부터), 김 씨의 '영혼의 베프' 이완형, 열혈 롯데 팬 정상재 씨가 야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사진=엠스플뉴스)

횟집 영업, 여전히 잘 되는 듯합니다. 점심 때 손님이 하도 많아 앉을 자리가 없던데요. 20년 전에도 장사가 잘 돼 ‘하동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될 것’이란 얘길 자주 들으셨다고요?

하동 제일 부자는 무신(웃음). 횟집 운영하면서 애들 키우고, 와이프랑 오순도순 살 정도만 벌었어요. 야구에만 안 빠졌어도 ‘하동 제일’까진 아니어도 지금보다 더 벌긴 했을 거예요.

야구에 얼마나 빠졌기에….

많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피곤해집니다(웃음).

횟집 뒷마당에 가니까 ‘캠핑용 카라반’이 있던데요.

아, 그거. 재작년에 샀던 거에요. 지금은 못 씁니다.

왜요?

산 지 1년도 안 돼 태풍에 날아갔어요. 강풍이 부니까 카라반이 ‘붕’ 떴다가 떨어졌는데 반쯤 망가졌더라고.

이런.

카라반 저렇게 되고 다시 산 게 (카라반 옆에 있는 버스를 가리키며) 저거에요.

버스요?

잘 됐지 뭐. 카라반은 차 뒤에 달고 다녀야 하는데 저 버스는 안에 주방이고, 화장실이고, 침대고 다 있거든(웃음).

‘캠핑 버스’인가요?

맞아요. 캠핑 버스. 누가 중고로 내놓은 걸 샀어요.

캠핑 카라반, 캠핑 버스. 돈이 수월찮게 들어가는 것들인데 왜 사신 겁니까.

야구팬 모두가 부자는 아니에요. 원정 경기 가면 숙박비, 식비, 교통비 깨지는 게 만만치 않죠. 저 같은 야구팬들한테 라면, 밥 같은 식사도 좀 대접하고, 혹시 잘 때 없으면 잠도 좀 주무시라고 산 게 저 캠핑 버스에요. 이용하는 사람 없으면 내랑 우리 와이프랑 쓰면 되고(웃음).

대단하십니다.

미국으로 메이저리그 경기 보러 갔을 때 저런 캠핑카로 야구 보러 다니는 팬들을 억수로 많이 봤어요. 마, 꿈을 이룬 거죠(웃음).

롯데 한 시즌 경기를 모두 현장에서 관전했던 김쌍식 씨. 연간회원권 7장 구매해 산간벽지, 다문화 가정, 편부모 가정 아이들에게 야구 볼 기회 제공하는 ‘야구 키다리 아저씨’

'하동 갈매기' 김쌍식(사진 가운데) 씨는 사직야구장에선 유명 인사다. 홈, 원정 가릴 것 없이 수년간 롯데 전경기를 직관한 그는 롯데 팬들 사이에선 '전설'로 꼽힌다. 사진은 고 최동원 감독의 어머니 김정자 여사(사진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함께 사직구장에서 기념촬영한 장면(사진=김쌍식)
'하동 갈매기' 김쌍식(사진 가운데) 씨는 사직야구장에선 유명 인사다. 홈, 원정 가릴 것 없이 수년간 롯데 전경기를 직관한 그는 롯데 팬들 사이에선 '전설'로 꼽힌다. 사진은 고 최동원 감독의 어머니 김정자 여사(사진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함께 사직구장에서 기념촬영한 장면(사진=김쌍식)

야구는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겁니까.

기자님은 태어날 때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 납니까?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내한텐 야구가 그래요. 언제부터 왜 야구를 좋아하게 됐는지 도통 기억이 안나네(웃음).

첫 야구장 직관(직접 관전)은 기억나실 듯한데요.

중학교 졸업한 다음부터 싶은데. 제가 남보다 사회 생활을 쪼메 일찍 시작했어요. 짬 내서 야구 보러가는 게 남보단 수월했죠. 고교야구 전성기일 때 부산 구덕구장, 마산구장에 억수로 많이 갔어요. 본격적인 직관의 역사는 스무살 넘고서 서울로 올라갔을 때부터에요.

야구 직관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신 건 아니지요?

요리 배울라꼬(웃음).

국외생활을 오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군 전역 후, 배 수리하는 회사에 요리사로 들어갔어요. 배가 고장 나면 이집트까지 파견나가 수리 끝날 때까지 선원들 식사 챙겨주고 돌아오곤 했죠. 짧게는 보름, 길면 1년까지 해외에 있었어요. 그러다 회사 그만두고, 서울 식당에서 남의 집 생활을 시작했죠. 그때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맛 봤어요(웃음). 그렇게 살다보니까 이건 마, 사람 사는 게 아닌 기라. 그래 안 되겠다 싶어 고향 하동으로 내려온 게 20년 전이라예.

지금 횟집이 그때 생긴 거군요.

아니에요. 처음엔 지금 가게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시작했어요. 억수로 힘들었는데 시간 지나니까 장사도 잘 되고, 사람들도 인정해주고, 덕분에 지금 이 자리 땅도 사고, 가게도 옮기고 했죠.


횟집 이름이 ‘하동 갈매기’입니다. 하동 와보니까 생각보다 갈매기가 많이 보이진 않던데요. ‘하동 갈매기’로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롯데를 좋아했으니까(웃음). ‘하동’은 제 고향이고, ‘갈매기’는 롯데 자이언츠의 상징 아닙니꺼. 내 고향 하동에도 롯데 자이언츠를 알리자는 생각에서 ‘하동 갈매기’로 짓게 됐어요.

하고 많은 팀 가운데 롯데 열혈팬이 된 이유라도 있습니까.

프로야구 초창기 땐 NC 다이노스가 없었어요. 부산, 경남엔 롯데밖에 없었어요. 지역 연고팀이라 맹목적으로 좋아하게 됐죠.

부산, 경남 야구 팬들 사이에서 김 선생님 본명은 몰라도 '하동 갈매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가게 차리기 전까진 ‘야구에 미친 놈’, ‘야구에 정신 나간 놈’이 제 별명이었어요. '하동 갈매기'가 별명으론 훨씬 낫죠(웃음).

얼마나 야구에 빠지면 그런 별명을 얻을 수 있울까요?

1970년대엔 한국야구 메카가 동대문야구장이었어요. 총각 때 동대문야구장을 정말 뻔질나게 드나들었어요. 그러다 1983년부터 프로야구를 잠실야구장에서 하면서 ‘잠실구장 고정멤버’가 됐죠(웃음).

프로야구 초창기 때부터 롯데 경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찾아가 봤다고 들었습니다.

프로야구 초창기 땐 한 시즌이 채 100경기도 안 됐어요. 그땐 주로 서울에서 일할 때니까 롯데 서울 원정 경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가 봤어요. 그러다 홈, 원정 포함 모든 롯데 경기를 보러 가기 시작했죠. 요샌 가게에 직원이 부족해 예전처럼 직관율이 높지 않지만, 지금도 롯데 부산 홈경기는 거의 직관하는 편이에요.

롯데 전경기를 직관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주로 누구와 동행하셨습니까.

주로 아내랑 갔어요.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다니기도 했고. 롯데 경기를 원체 많이 쫓아다니다 보니까 야구장에 ‘딱’ 들어가면 절 알아보는 분들이 꽤 돼요. 하동 갈매기 왔다꼬 음료수, 맥주, 오징어 사다주는 분도 계시고(웃음).

매일 표 확보하는 게 전쟁이었을 듯싶습니다.

번잡스럽게시리, 표는 무신(웃음). 해마다 시즌권을 끊습니다. 1루 상단이 제 고정석이라예.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이 티켓 없으면 꼭 내를 찾아와 “김 사장, 표 있는교?” 묻는다꼬. 그럼 “왜 없겠어요. 자, 다녀 오이소”하고 표를 준다꼬. 누굴 위해 내가 갖고 있는 작은 뭔가를 베푼다는 재미, 이게 얼마나 보람찬 일인지 안 해본 사람은 모를 낍니더.

야구팬을 늘리는 데도 꽤 효과가 있을 듯합니다.

맞지요. 제가 드린 표로 롯데 야구를 한번 보면 십중팔구 롯데 야구에 빠져들게 됩니다. 롯데 경기는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응축한 한편의 드라마라, 한번 보면 또 안 볼 수가 없어요. (갑자기 풀 죽은 목소리로) 롯데는 희로애락에서 주로 ‘로(노엽고)’나 ‘애(슬프고)’가 많아서 그렇지만.

아내와 2년 동안 롯데 전경기 직관한 사연 “야구가 내 아내에겐 가장 효과적인 항암 치료제였다.”

'하동 갈매기' 김쌍식 씨는 '야구 직관'만 하는 게 아니다. 그는 하동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산간벽지 아이들 그리고 편부모 가정 아이들을 사직야구장에 초청해 함께 야구를 관전하곤 한다. 그는 단순한 야구팬이 넘어선 '야구의 키다리 아저씨'다(사진=엠스플뉴스)
'하동 갈매기' 김쌍식 씨는 '야구 직관'만 하는 게 아니다. 그는 하동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산간벽지 아이들 그리고 편부모 가정 아이들을 사직야구장에 초청해 함께 야구를 관전하곤 한다. 그는 단순한 야구팬이 넘어선 '야구의 키다리 아저씨'다(사진=엠스플뉴스)

앞서 시즌 연간회원권을 구매한다고 하셨는데요. 본인과 아내, 두장을 사는 겁니까.

보통 연간회원권으로 7석을 사요.

7석이나요?

7석이면 보통 1천만 원 가까이 들어요. 10년 동안 저축했으면 1억 원 정 되겠네. 롯데 원정 따라다닐 때 쓴 경비까지 합하면…부산 사직야구장 옆에 아파트를 사도 진작 샀겠네. 안 그래요?(웃음).

부인께서 '야구'하면 학을 떼실 것 같은데요.

(고갤 흔들며) 전혀. 아내가 한 번도 만류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우리 와이프는 ‘남자가 스포츠에서 희열을 느낄 때가 가장 멋있다’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야구장 가서 롯데 선수들이 잘하면 잘해서 신나고, 못하면 큰 소리로 응원하면서 스트레스 풀고. 마음의 병이 야구장에서 다 치유되니까.

남편은 야구장에서 스트레스 풀어 좋다지만, 아내는 야구장에서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면서 되레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겠습니까.

(잠시 조용하다가) 실은 우리 와이프가 12년 전에 몸이 무척 좋지 않았어요. 암에 걸린 기라. 아내가 내성적인 사람이었어요. 수술한 다음 야구장에 데려가서 “맘껏 소릴 질러보라”고 했어요.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괜한 말은 무신(웃음). 아내가 내가 하란데로 하고서 재밌어 하는기라. 자기가 지금껏 살면서 언제 또 함성을 지르고, 소릴 질러봤겠어요. 2년 동안 아내와 함께 롯데 전경기를 보러 다녔습니다.

2년 동안 ‘부부 직관’이라, 부럽습니다. 아, 그러면 횟집은 누가….

같이 원정 경기 보러 가는 날엔 가게 문을 닫았어요. 서울, 인천으로 원정 응원하러 가면 보통 이틀은 가게 문을 닫아야 해요. 마산, 부산 직관은 오전 장사 끝나면 바로 야구장으로 갔고. 그렇게 2년 동안 아내와 다니다 보면서 부부의 정도 깊어지고, 무엇보다 아내가 암에서 완치됐어요. (환한 표정을 지으며) 제 아내에게 야구만큼 효과적인 암 치료제도 없던 셈이죠.

직관 대신 횟집 영업을 했다면 꽤 큰돈을 벌었을 텐데요.

보는 사람마다 그러더라고. “야구에 안 빠지고, 장사만 열심히 했어도 떼돈 벌었을 거”라고. 하지만, 수십 억 원으로도 살 수 없는 아내의 병이 야구 덕분에 고쳐졌잖아요. 우리 부부도 꼭 붙어서 전국을 다니며 추억을 쌓았고. 생각해 보세요. 그거 돈으로 살 수 있는 추억입니까? 아니잖아요. 신기한 게 1박 2일 가게 문 닫고 야구장 갔다오면 다음날 장사할 때 손님들이 더 많이 오시더라고(웃음).

잊을 수 없는 고 최동원과의 만남 “롯데에 참 애정이 깊던 분”

하동에서 맛집으로 소문 난 횟집 '하동 갈매기' 내부. 롯데 선수 유니폼과 그가 가장 사랑하는 고 최동원, 두 번째로 사랑하는 김용철 전 롯데 감독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다(사진=엠스플뉴스)
하동에서 맛집으로 소문 난 횟집 '하동 갈매기' 내부. 롯데 선수 유니폼과 그가 가장 사랑하는 고 최동원, 두 번째로 사랑하는 김용철 전 롯데 감독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다(사진=엠스플뉴스)

한 시즌 100경기 이상을 직관하려면 전국을 순회해야 하는데요. 이동이나 숙박 때 곤란함이 많았겠습니다.

캠핑 카라반이나 캠핑 버스가 없을 땐 주로 승용차로 다녔어요. 잠은 모텔에서 자거나 지인 집에서 잤고. 아무래도 혼자 다니면 경비도 많이 들고, 외롭거든요. 그래서 8년 전쯤부터 롯데 팬들과 함께 원정경기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단체 직관’을 시작하신 거군요.

단체로 가면 꽤 경비가 절약되거든요. 주변에서도 “단체 직관, 좋은 아이디어네요”하면서 동참했고.

주변에선 김 선생님의 ‘단체 직관 팀’을 뭐라고 부릅니까.

주변 분들이 ‘하동 갈매기 팀’이라고 하더라고. 멤버 중엔 부산 분들도 있지만, 주 멤버는 하동 분들이에요.

늘 궁금했던 게 ‘단체 직관 가면 함께 야구 경기 보고 그다음은 뭘 할까’였습니다.

오직 야구 얘기만 해요. 이기면 왜 이겼을까 분석하고, 지면 왜 졌을까 따지고.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야구야말로 최고의 안주 아닙니꺼(웃음).

야간 경기의 경우 낮엔 마땅히 할 일이 없을 듯한데요.

야간 경기면 낮엔 그 지역 여행을 해요. 야구로 맺어진 인연들과 만나 좋은 시간을 갖기도 하죠. 그때도 뭐 나누는 얘긴 전부 야구지만(웃음).

진짜 야구팬 ‘하동 갈매기’가 꼽는 최고의 직관 경기가 뭘지 궁금합니다.

한 경기밖에 없죠.

어떤 경기입니까.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이죠. 고 최동원 감독님이 롯데를 우승으로 이끈 경기 아닙니까. 당시 잠실구장에서 그 경기를 직접 봤는데, 롯데 우승했을 때 내도 모르게 마, 눈물이 나더라고. 지금도 고 최동원 감독님이 하셨던 “마, 함 해보입시더”란 말만 들으면 눈시울이 붉어져요.

그럼 반대로 최악의 직관 경기를 꼽는다면.

3년 전인가, 잠실에서 롯데가 2연승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는데 바로 3연패했을 때가 가장 아쉬웠어요. 그런 경기 보면 속이 썩어요, 썩어.

역대 롯데 선수 가운데 누굴 가장 좋아하십니까.

당연히 고 최동원 감독님이죠. 영원히 못 잊습니다. 항상 마음 속에 ‘최동원’ 이름 석자를 간직하고 살고 있어요.


고 최동원 감독님과 실제로 만난 적 있으십니까.

네, 있어요. 최 감독님이 1989년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기 전, 사직구장에서 개인훈련하시던 최 감독님과 우연히 만났어요. 인사를 하니까 다른 선수들과 달리 인사도 살갑게 받아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시더라고.


그때가 최 감독님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습니까.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하실 때도 뵌 적이 있어요. “건강하십시오”하니까 최 감독님이 “고맙습니다”하시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롯데 파이팅”하시더라고. 롯데에 참 애정이 깊던 분이셨어요. 정말 좋은 분이셨는데…휴우-.


“팬은 팬일 때가 가장 무서운 존재. 롯데 팬 서비스 ‘업그레이드’ 해야”

겨울을 지나 봄이 찾아왔다. 야구의 계절을 기다렸던 '하동 갈매기'는 전국 야구장으로 날아갈 채비를 끝마쳤다(사진=엠스플뉴스)
겨울을 지나 봄이 찾아왔다. 야구의 계절을 기다렸던 '하동 갈매기'는 전국 야구장으로 날아갈 채비를 끝마쳤다(사진=엠스플뉴스)

역대 롯데 감독 가운데 최고의 사령탑을 꼽는다면 누굴 택하시겠습니까.

롯데 역사상 가장 좋았던 사령탑은 단연 제리 로이스터 감독님이셨어요. 더 설명이 필요하겠으요?(웃음)

올 시즌 다시 롯데를 이끌 양상문 감독에 대한 기대도 클 듯합니다.

크죠. 우승도 우승이지만, 양 감독님이 선수들 잘 다독여서 기복없이 한 시즌 치르고, ‘롯데 강해졌다’는 말만 듣게 해주셔도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우승하면 더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우승하면 좋죠. 1992년 이후 우승 한번도 못해본 팀이 롯데 자이언츠 말고 또 어딨습니까. 프로야구 출범하고, 아직도 정규시즌 우승 한번 못해본 팀은 롯데 말고 또 어딨…(옆에 있던 지인이 “행님, 우울한 소리 그만하소. 눈물 날라까네”라고 하자). 고마, 선수들 아프지 않고, 혹사없이 한 시즌 잘 치르면 좋겠네요.

프로 원년부터 롯데 팬이십니다. 롯데 구단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면 어떤 얘길 하고 싶으십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팬이 곧 손님이고, 소비자입니다. 떡볶이 한접시 먹어도 비평하는 사회에서 한 해 천만 원 이상을 쓰는 팬이 구단에 대해 말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롯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솔직히 말해 ‘프런트’라고 생각해요. 많은 롯데 팬이 여전히 프런트가 과도한 권한을 행사한다고 믿고 있어요.

‘과도한 행사’의 구체적인 예를 꼽는다면.

현장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으면 프런트는 프런트 할 일만 하면 됩니다. 계약기간을 정했으면 그 계약기간을 지키면 되고. 그라믄 감독도 확실히 책임질 건 자기가 책임지지 않겠어요? 마, 그런데 지금까지 롯데 프런트는 어땠습니까. 과거 최동원 선수 때부터…(다시 옆에 있던 지인이 “행님, 억장이 무너진데이. 내 고마 롯데 사무실 찾아갈까”하며 흥분하자). 롯데 프런트가 잘했으면 좋겠어요.

롯데 구단의 팬 서비스에 대해서도 하실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롯데가, 팬 서비스가 좋은 팀은 아니에요. 연간회원이 된 지 10년 정도 됐는데 과거엔 시즌 회원권을 사면 좋은 선물을 줬어요. 지금은 연간회원권 가격은 올라가는데 선물은 A급에서 F급으로 떨어졌어요. 팬 서비스가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롯데는 다운이 돼서 아쉬워요. 구단에서 다문화가정이라든가 편부모 가정, 도서산간 지역 아이들을 초청도 하면 좋은데…그렇게 해보려니까 롯데는 절차가 너무 복잡하더라고.

요즘은 과거와 달리 팬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구단도 팬들의 목소리에 적극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요즘 팬들 중엔 구단주 같은 팬들이 좀 계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진정한 팬은 ‘묵묵히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팬은 팬일 때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구단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쓴소리를 해야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구단에 대고 사사건건 ‘이래라, 저래라 다 표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저도 장사를 20년 넘게 하고 있지만, 장사가 안 될 땐 눈물을 머금고 직원을 줄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걸 일일이 다 밖에 나가 얘기하진 않아요. 구단도 말 못할 고충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 김 선생님이 ‘딱’ 한번 구단 처사에 항의하려고 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으시다고요?

한번 있어요. 롯데 자이언츠 CCTV 사찰 사건 때. 그땐 저도 사직구장 앞에 모였죠. 그즈음인가, 신동인 당시 롯데 구단주님과 만난 적이 있어요. “팬들을 덜 서운하게 해주십시오. 여기 모인 사람들 공짜 표 달라는 거 아닙니다. 구단 사람들이 팬들 보면 말씀이라도 좀 따뜻하게 해주십시오.” 부탁드렸죠.

뭐라고 하던가요?

“적극 반영하겠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그 후로 다소 바뀌었다고 봐요. 팬들과 계속 소통하려고 하고, 개선책도 내놓고.

“얼굴색으로 차별하지 않듯, 직관 여부로 누가 진정한 팬인지 구분할 수도, 구분해서도 안 돼”

'하동 갈매기' 김쌍식 씨는 본업에 누구보다 충실한 이다. 야구장 직관이 없으면 그는 횟집에서 날카로운 칼 솜씨를 자랑한다. 김쌍식 씨는 “내가 하는 일에 충실한 만큼 야구를 더 편안하고, 재밌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사진=엠스플뉴스)
'하동 갈매기' 김쌍식 씨는 본업에 누구보다 충실한 이다. 야구장 직관이 없으면 그는 횟집에서 날카로운 칼 솜씨를 자랑한다. 김쌍식 씨는 “내가 하는 일에 충실한 만큼 야구를 더 편안하고, 재밌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사진=엠스플뉴스)

언제부터인가 ‘직관’을 진성 야구팬의 기준으로 삼는 분위기가 생겼는데요.

저처럼 구장에 찾아와 응원하는 사람도 야구팬이고, TV 앞에서 열심히 응원하는 분도 야구팬이에요. 얼굴색으로 차별하지 않듯, 직관 여부로 누가 진정한 팬인지 구분할 수도, 구분해서도 안 됩니다.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늘 야구장 직관을 고집했습니다. 프로야구가 나이를 먹은 만큼 관중 문화도 상당히 달라졌을 듯합니다.

1980, 1990년 초반까지만 해도 사직, 마산구장이 매진되면 어디선가 용접기 들고 나타나는 분들이 계셨어요.

용접기요?

용접기로 구장 출입문을 뜯는 기라. 술 취해서 야구장 그물 타는 ‘타잔’들도 많았죠(웃음).

지금 그분들 다 어디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있나요? 지금 내랑 야구 보러 다니는 사람 중에 ‘마산 타잔’ 출신이 많아요(웃음). 지금은 많이 순해졌지만, 지금도 근마들 성격이 불같은 기라(웃음).

1980년 초중반은 지역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입니다.

해태 타이거즈와 롯데가 붙으면 이건 마, 전쟁이 따로 없었다꼬. 지역감정, 말도 못 하게 심했어요. 사직구장에서 해태 경기 열리면 해태 팬들은 1루 관중석 쪽으로 오지도 못했어요. 롯데 팬들이 광주구장 가도 마찬가지였고. 양쪽 팬들 모두 광주, 부산 원정 응원 가면 야구장 들어갈 때 유니폼 꺼내입고, 경기 끝나면 반드시 벗고 나갔다니까. 그때 생각하면 지금 얼마나 좋아졌어요(웃음).

‘야구장 관전 문화 가운데 이건 꼭 바뀌었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습니까.

여성과 어린이 팬에 대한 배려에요. 시즌 중에 산간벽지, 다문화 가정, 편부모 아이들을 초청해 사직구장에 함께 오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무슨 일이라도.

관중석 상단에 앉은 팬들이 라면, 캔 등을 아래로 집어던지는 일이 적지 않아요. 욕설은 양반이고, 아이들이 옆에 있는데도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어른이 부지기수에요. 아무리 ‘야구팬 부모’라고 해도 내 아이가 라면, 캔이 날아다니고, 욕설과 음담패설이 쏟아지는 곳이라면 누가 가족을 데리고 야구장에 오겠습니까. 오랫동안 야구장을 찾은 사람으로서, 각 구장마다 ‘어린이 존’이나 ‘가족 존’을 따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야구장 문화가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 하는 건 아니에요. 예전과 비교하면 90% 이상 개선됐어요. 인프라도 그래요. 인천 문학구장에 가면 바비큐 존이 있고, 광주 챔피언스필드에도 훌륭한 먹거리 존이 생겼어요. 고척 스카이돔은 여름에 얼마나 시원합니까.

“95살까지 직관 했으면. 캠핑 버스 못 몰 나이 되면 사직구장 옆으로 이사 가서라도 직관하겠다”

'야구 희망버스' 운전대를 잡은 김쌍식 씨. 그는 배트를 기어 삼아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 야구장을 누빌 것이다(사진=엠스플뉴스)
'야구 희망버스' 운전대를 잡은 김쌍식 씨. 그는 배트를 기어 삼아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 야구장을 누빌 것이다(사진=엠스플뉴스)

경남을 대표하는 프로야구팀으로 NC 다이노스가 생겼습니다.

NC 분들이 우리 가게에 종종 놀러 오세요. “하동 갈매기님. 이제 롯데 말고 진짜 고향팀 NC 좀 많이 응원해 주이소” 하시고(웃음).

롯데와 NC가 부산, 창원에서 같은 날 경기를 치르면 어디로 직관 갈 지 고민 좀 하셨겠습니다.

마, 일단 롯데지(웃음). NC는 롯데 다음으로 좋아하는 팀이에요. 지금은 ‘내 지역’ 이유로 좋은 게 아니라 특유의 응원 문화가 좋아서 더 롯데에 애정을 느껴요. 누가 그라데예. 사직구장이 세상에서 제일 큰 노래방이라고(웃음).

네.

예전엔 신문지 응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신문지 응원을 막고, 모 맥주사 로고가 새겨진 막대 풍선을 들고 응원하라고 하더라고. 빨대도 환경오염 때문에 줄이는 판에 비닐 막대 풍선을 왜 들고 응원하라는지…(옆에 있던 지인이 “행님, 롯데가 돈이 많으면 그라겠으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00야, 내랑 사직으로 출발하자’고 하자). 응원 문화도 잘 됐으면 좋겠어요.

재야의 야구 전문가로서 올 시즌 롯데 우승, 가능할 것으로 보십니까.

1992년 우승하고, 지금이 2019년이죠? 27년이면 아들이 장가 가 손자를 볼 시간이에요. 그런데도 우리 롯데는 아직 우승을 못 하고 있어요. 아쉽지만, 우짜겠습니까. 양상문 감독님과 선수들이 잘하고, 구단이 열심히 서포트하길 바라야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언제까지 직관하실 계획이십니까.

솔직히 나이가 들수록 이동하는 게 힘들어요. 지금 50대 중반인데 체력이 예전 같지 않더라고. (횟집 벽에 걸려진 최동원 사진을 지켜보다가) 95살까진 야구 보러 다니고 싶어요. 아마 20년 후엔 캠핑카 같은 큰 차를 몰기 힘들어질 거예요. 그럼 그땐 걸어서 사직야구장으로 갈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할 예정이에요.

굳이 95살인 이유가 있습니까. 100살까지 야구장에 오시면 좋겠는데요.

제 할머니가 105살에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보단 10년 덜 살고 싶다”고 한 적이 있거든요. 그게 95살이에요(웃음).

제가 본 최고의 야구팬을 모시고, 몇 시간이나 야구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더 우문일 수 있는데요. 정말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야구의 매력, 뭐라고 보십니까.

야구는 ‘엔돌핀’입니다. 야구만 보면 아픈 곳도 낫고, 걱정도 사라져요. 엔돌핀이 팍팍 돌기 때문이에요. 야구가 절 배신해도 제가 야구를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웃음).

박동희, 박찬웅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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