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침체했던 두산 베어스 팀 타선, 반등의 불씨 붙였다
-‘눈 야구’로 승리 기여한 페르난데스 “주자 있을 땐 인내심 발휘해야”
-말 아꼈던 박건우 “한 경기일 뿐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마수걸이 홈런’ 김재환 “베테랑 형들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두산은 외국인 타자 페르난데스의 결정적인 밀어내기 볼넷으로 3월 마지막 주 출발을 상쾌하게 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두산은 외국인 타자 페르난데스의 결정적인 밀어내기 볼넷으로 3월 마지막 주 출발을 상쾌하게 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잠실]

고구마를 한가득 먹은 듯 답답했다. 시범경기부터 이어진 두산 베어스의 타선 침체였다. 때때로 문제의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나온다. 이 경기가 그랬다. 두산 외국인 타자 호세 미겔 페르난데스의 침착한 ‘눈 야구’가 침묵했던 팀 타선에 불을 붙였다. 그렇게 불씨가 생기자 두산 타선은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3월 26일 잠실구장의 분위기는 시작부터 달아오르지 않았다. 두산 타선은 분명히 침체 흐름이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저마다의 걱정을 한 아름씩 안고 있었다. 올 시즌 시범경기 기간 두산은 팀 타율(0.188)과 팀 안타(41개) 부문에서 최하위에 그쳤다.

시범경기 부진은 개막 시리즈까지 악영향으로 작용했다. 두산은 3월 23일 잠실 한화 이글스전에서 5대 4로 승리했지만, 이날 팀 안타 수(6개)는 한화 팀 타선(12개)에 밀렸다. 24일 경기에서도 두산 타선은 한화 외국인 투수 채드 벨에 완벽하게 밀리며 3안타 1득점에 머물렀다. 개막 시리즈에서 안타가 나오지 않은 타자들도 점점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26일 잠실 키움 히어로즈전을 앞두고도 무언가 답답한 분위기가 두산 더그아웃을 감쌌다. 현장에서 만난 한 두산 타자는 “아직 전체 팀 타격감이 떨어진 흐름은 맞다. 아무래도 우천 취소 등 사정으로 캠프 연습경기와 시범경기를 많이 소화하지 못한 탓도 있는 듯싶다. 캠프 때 구상했던 스윙을 실전에서 제대로 연습하지 못 했던 동료들도 있고, 구위가 올라온 투수들의 실전 투구를 더 못 본 점도 아쉽다”고 귀띔했다.

방망이가 아니라면 ‘눈’이라도

페르난데스는 인내심과 전력질주로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사진=두산)
페르난데스는 인내심과 전력 질주로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사진=두산)

그 우려대로 두산 타선은 이날 키움 선발 투수 최원태에게 꽁꽁 묶여 경기 초반을 어렵게 보냈다. 5회 초 선취 득점을 허용한 두산은 5회 말까지 무득점에 그치며 0대 1로 끌려갔다. 답답한 흐름을 끊은 주인공은 바로 페르난데스였다. 페르난데스는 6회 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바뀐 투수 한현희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기록했다. 이어진 김재환의 우중간 2루타에 페르난데스는 1루부터 홈 플레이트까지 힘껏 내달려 동점 득점을 만들었다.

7회 말에도 페르난데스의 ‘매의 눈’이 빛났다. 페르난데스는 1대 1로 맞선 7회 말 2사 만루 기회에서 바뀐 투수 이보근과 7구 풀카운트 승부 끝에 역전 밀어내기 볼넷을 얻었다. 페르난데스의 열정적인 뜀박질과 침착한 인내심이 두산 타선에 불을 붙였다.

두산은 페르난데스의 밀어내기 볼넷 이후 이어진 박건우의 2타점 적시타와 김재환의 비거리 125m짜리 대형 스리런 아치로 7회 6득점 빅 이닝에 성공했다. 이후 불펜진을 가동한 두산은 7대 2 승리를 거뒀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야수들의 타격 페이스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기회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승리할 수 있었다”며 침체했던 팀 타격감 반등을 반겼다.

방망이가 안 풀리면 ‘눈’으로도 충분히 경기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 자신만의 타격 존을 형성하며 선구안이 뛰어난 페르난데스의 장점이 느껴진 하루였다. 경기 뒤 만난 페르난데스는 7회 타석에 나가기 전 결정적인 순간임을 직감했다. 공을 치고 싶었는데 주자가 나가 있었기에 최대한 좋은 공을 기다리고자 했다. 상대가 몸쪽 속구 승부 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유인구를 던질 거로 예상했다. 다행히 인내심으로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중요했던 밀어내기 볼넷 상황을 복기했다.

6회 말 동점 득점 과정에서 보여준 페르난데스의 전력 질주가 인상적이었다. 페르난데스는 ‘전쟁’이라는 단어까지 꺼내며 강력한 시즌 포부를 밝혔다. 페르난데스는 시즌이 개막했단 건 야구 선수에게 전쟁이 시작된 거다. 전쟁에선 걸어 다니면 안 된다. 항상 뛰어다녀야 한다. 그래서 나도 주루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또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상대 투수의 공을 오래 보는 계획은 세우기 힘들다. 좋은 공으로 보이면 방망이가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주자가 있을 땐 최대한의 인내심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힘줘 말했다.

마음의 짐을 던 박건우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박건우는 개막전 2점 홈런을 시작으로 26일엔 3안타 2타점의 활약을 펼쳤다.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던 박건우다(사진=두산)
박건우는 개막전 2점 홈런을 시작으로 26일엔 3안타 2타점의 활약을 펼쳤다.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던 박건우다(사진=두산)

개막전 선제 2점 홈런에다 이날도 3안타 2타점으로 맹활약한 박건우는 144경기 가운데 단 한 경기라며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박건우는 한 경기일 뿐이다. 오늘도 똑같은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 캠프 때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단 생각이 있으니까 조금이나마 자신감이 더 생기고 운도 따르는 듯싶다. 타격감을 얘기하기엔 아직 이른 시기다. 개막전 홈런도 그저 내 홈런으로 팀이 이길 수 있었단 게 좋았다며 겸손함을 내비쳤다.

올 시즌 박건우는 스프링 캠프부터 시범경기까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타율 0.042·1안타)이 마음의 문을 잠시 닫게 했다. 3번 타순에서 해결사 역할을 꼭 맡아야 한단 박건우의 굳센 다짐도 두산 타선을 깨운 원동력이 됐다.

박건우는 개인적인 마음의 짐은 많이 덜었다. 주자 없을 때보단 주자가 있을 때 안타를 때리며 팀 승리에 보탬이 되고 싶을 뿐이다.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계속 경기에 나가겠다. 한 경기 한 경기 일희일비하지 않고 좋은 흐름을 쭉 이어 나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개막 시리즈에서 안타가 나오지 않아 조급한 마음이 생겼던 김재환은 박건우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앞선 박건우의 적시타로 마음이 편안해졌단 김재환은 시즌 마수걸이 홈런을 결정적인 순간 날렸다.

김재환은 “개막 시리즈에서 안타가 안 나왔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으로 오늘 경기에 들어갔다. 다행히 내 앞에서 (박)건우가 안타를 쳐줬기에 마음이 편안했다. 적극적으로 치겠단 마음으로 타석에 임했다. 운 좋게 실투가 들어와 좋은 결과로 연결됐다”며 고갤 끄덕였다.

두산 타선은 걱정하는 게 아니다

두산 타선은 걱정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시범경기 동안 침체했던 팀 타선은 금방 반등의 조짐을 보여줄 분위기다(사진=두산)
두산 타선은 걱정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시범경기 동안 침체했던 팀 타선은 금방 반등의 조짐을 보여줄 분위기다(사진=두산)

시즌 개막 시기는 타자들이 가장 예민한 때다. 개막 시리즈에서 첫 안타가 나오지 않은 두산 타자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베테랑 타자들은 전혀 안 좋은 티를 내지 않고 팀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데 힘썼다. 김재환은 내 위에 형들이 안 좋은 티를 안 내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젊은 선수들도 팀 분위기에 잘 따라줘서 팀 타격 걱정은 안 됐다. 이번 주 첫 경기 승리에 기여해 기분이 좋다. 앞으로도 계속 공격적인 스윙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2번 타순으로 전진 배치된 페르난데스의 출루도 팀 타선 활력소가 될 전망이다. 김재환은 “페르난데스가 아무래도 선구안이 좋아서 출루를 잘해준다. 뒤에 있는 타자들에게 타점 기회가 자주 올 듯싶다. 팀 타선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페르난데스도 김재환의 말에 힘을 더 얻었다. 페르난데스는 팀 승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듯싶어 기쁘다. 솔직히 개막 뒤 3경기에서 내가 보여준 경기력이 ‘베스트’는 분명히 아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준다면 더 좋은 활약을 꼭 보여드리겠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한국 투수들에게 빨리 적응해 진짜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굳게 다짐했다.

3월 들어 답답했던 두산 타선의 흐름은 반등의 조짐을 보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 중심엔 언제나 ‘팀’을 먼저 생각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타선에 힘을 보태고 싶은 두산 타자들의 마음이 모여 있었다. “전쟁에서 걸어 다니면 안 된다”는 페르난데스의 굳센 마음가짐처럼 두산 타선의 정신 무장은 이제 확실히 이뤄졌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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