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4 ‘검니폼’ 우승 멤버 추억 소환한 LG 트윈스 홈 개막전
-차명석 단장 “LG만의 전통과 문화를 제대로 세우고자 한 행사”
-‘시구자’ 김용수 전 감독 “서울의 자존심 LG, 2~3년 안으로 꼭 우승하길”
-‘시포자’ 김동수 코치 “아직도 25년 전 우승 영상, 새로 찍어야죠.”
-‘시타자’ 유지현 코치 “‘26년째’ 스트라이프 유니폼, 우승 향한 책임감 느낀다.”

LG 트윈스 첫 번째 영구결번의 주인공 노송 김용수 전 감독이 홈 개막전 시구를 위해 잠실구장을 찾았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LG 트윈스 첫 번째 영구결번의 주인공 노송 김용수 전 감독이 홈 개막전 시구를 위해 잠실구장을 찾았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잠실]

25년 전으로 ‘타임 워프’를 한 그림이었다. 마운드 위엔 글러브를 낀 투수 김용수가 서 있었다. 포수 김동수는 김용수와 마주 보는 자리에서 공 받을 준비를 했다. 타석엔 선두 타자 내야수 유지현이 방망이를 들었다. 세 선수 모두 1994년의 마지막 순간처럼 ‘검니폼(검은색+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3월 29일 잠실구장에선 LG 트윈스의 홈 개막전이 열렸다. 광주와 인천에서 원정 개막 시리즈를 치르고 돌아온 LG 선수단은 올 시즌 처음으로 잠실에서 홈팬들을 맞이했다. 이날 경기에 앞서 특별한 손님들이 그라운드 위로 나왔다. 1990년과 1994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들이 ‘홈 커밍데이’ 개막 행사에 초청받은 것이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우승 멤버들은 김재박·하기룡·최정우·유종겸·김용수·김상훈·김영직·서효인·차동철·이용철·김기덕·인현배 등 12명이다. 1994년 우승 당시 배터리로 호흡을 맞춘 김용수 전 감독과 김동수 코치가 시구와 시포자로 나섰다. 유지현 코치도 시타를 맡았다. 경기에 앞서 김재박 전 감독은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선수단에 덕담을 건넸다. LG 팬들도 추억이 서린 전설들을 크게 반겼다.

‘노송’의 묵직했던 시구 “진작 했어야 했는데

김용수 전 감독(오른쪽)이 94년 우승 마지막 순간처럼 김동수 코치(가운데)에게 공을 던졌다. 이를 지켜보는 홈 개막전 선발 투수 타일러 윌슨(왼쪽)(사진=LG)
김용수 전 감독(오른쪽)이 94년 우승 마지막 순간처럼 김동수 코치(가운데)에게 공을 던졌다. 이를 지켜보는 홈 개막전 선발 투수 타일러 윌슨(왼쪽)(사진=LG)

누구보다도 이 행사를 흐뭇하게 지켜본 이는 LG 차명석 단장이었다. 차 단장은 LG만의 문화와 전통을 만드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차 단장이 올 시즌 프런트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키워드가 바로 ‘BACK TO THE BASIC’이다. 기본으로 돌아가 팬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행동으로 직접 실천하자는 의미다.

90·94년 우승 멤버 초청 행사를 한 달 전부터 기획했어요. 지금보다 더 일찍 해야 했던 행사였는데 어쩌면 지금까지 역사를 소홀하게 생각했던 거죠. LG만의 전통과 문화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상징적인 행사라고 봅니다. 또 무엇보다 LG 팬들을 위한 자리에요. ‘검니폼’ 부활도 그렇고요. 항상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나하나씩 과제를 해결하겠습니다. 그라운드를 뿌듯하게 바라보던 차 단장의 말이다.

현역 시절 별명인 ‘노송’처럼 김용수 전 감독은 여전히 마운드 위에서 꼿꼿이 허리를 펴고 섰다. 살짝 와인드업 한 김 전 감독은 김동수 코치의 미트로 여전히 힘찬 속구를 꽂아 넣었다. 공을 던지고 받은 김 전 감독과 김 코치, 그리고 방망이를 들었던 유지현 코치는 마운드 앞으로 모여 함께 손을 들어 올리는 짧은 세리모니를 한 뒤 관중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 순간 LG 팬들은 25년 전 흐릿해진 그 순간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시구를 마치고 나온 김 전 감독은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행사가 조금 늦은 듯싶어요. 진작 했어야 했는데. 현역 선수들에게 우리 같은 우승 멤버가 있었단 걸 보여주는 게 뜻깊은 거죠. 아까 마운드 위로 올라갔을 때 정말 떨렸습니다. 조금 더 연습하고 던졌어야 했는데 개인적으론 시구가 불만족스럽네요(웃음). 올 시즌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김 전 감독의 말이다.

김 전 감독은 현재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상태가 아니지만, 여전히 밖에서 LG의 선전을 기원하며 옆에서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에 가끔 외야석에서 경기를 구경해요. LG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하는데 좋은 그림을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밖에서 지켜보는 저도 LG의 우승이 정말 간절해요. 1994년 이후 우승을 단 한 번도 못 해봤잖아요. 그 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서울의 자존심이니까 2~3년 안으로 우승해야죠. 김 전 감독의 아쉬움이 더 진하게 묻어나온 말이었다.

‘검니폼’ 기운을 받아 우승의 한을 풀 수 있을까

시타자 유지현·시구자 김용수·시포자 김동수(왼쪽부터 차례대로)가 입은 검니폼은 1994년 우승의 향기를 다시 떠올리기에 충분했다(사진=LG)
시타자 유지현·시구자 김용수·시포자 김동수(왼쪽부터 차례대로)가 입은 검니폼은 1994년 우승의 향기를 다시 떠올리기에 충분했다(사진=LG)

김용수 전 감독의 공을 받은 김동수 코치도 25년 전 우승의 추억을 잠시 떠올렸다. 여전히 우승 당시 김 전 감독과 얼싸안던 그 순간이 생생한 김 코치였다.

25년 전 우승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늘 행사를 하니 그때 추억이 많이 떠오르네요. 우승 멤버들과 그라운드 위에서 함께 모이는 건 반갑고 정말 새로운 느낌입니다. 차명석 단장님이 좋은 행사를 만들어주셨어요. 물론 아직도 LG 우승하면 항상 25년 전 우승 영상만 나오는 건 안타깝습니다. 그 이후로도 우승 영상이 많이 만들어졌어야 했어요. 이제 새로 우승 영상을 찍을 때가 왔죠. 코치로서도 우승이 간절합니다. 팀이 점점 좋아질 거로 믿어요. 우승을 향한 김 코치의 바람이다.

유지현 코치에게도 뜻깊은 자리가 됐다. 1994년부터 쉬지 않고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유 코치는 벌써 ‘LG 26년 차’가 됐다. 그 긴 세월 동안 신인 시절 단 한 차례의 우승만 경험했기에 유 코치의 아쉬움은 더 진하다.

정말 좋은 자리가 만들어졌어요. 우승 멤버나 현재 선수단도 그렇고 무엇보다 올드 LG 팬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행사입니다. 25년 전 우승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해요. 이후 해마다 우승하겠다고 했지만, 계속 거짓말이 됐습니다. 제가 어느덧 LG에서만 26년째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어요. 책임감을 크게 느낍니다. 빨리 팬들과 우승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유 코치의 말이다.

‘LG 26년 차’ 유 코치의 우승을 향한 간절함은 얼마나 클까. 유 코치는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벗기 전엔 반드시 우승을 맛보겠단 대답을 내놨다.

간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박용택 선수가 인터뷰 때 항상 마지막 남은 목표가 우승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신인 때 우승하고 그 뒤로 해본 적이 없어요. 언제까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땐 꼭 우승을 다시 맛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선수 때와 또 다른 느낌이 아닐까요. 이 행사를 기점으로 올 시즌 후배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보여줬으면 합니다.

LG의 마지막 우승인 1994년 한국시리즈 4차전 종료 직후 찍힌 사진. 마무리 투수였던 김용수 전 감독(가운데)이 선수들에게 둘러 싸여 환호하고 있다(사진=LG)
LG의 마지막 우승인 1994년 한국시리즈 4차전 종료 직후 찍힌 사진. 마무리 투수였던 김용수 전 감독(가운데)이 선수들에게 둘러 싸여 환호하고 있다(사진=LG)

실제로 ‘검니폼’ 우승 멤버 선배들의 좋은 기운이 전달된 덕분일까. LG는 이날 선발 투수 윌슨의 7이닝 1실점 호투와 조셉의 동점 홈런, 그리고 이천웅의 역전 적시타로 2대 1 승리를 거뒀다. 2연패를 끊고 다시 연승 가도에 오를 채비를 마친 LG다.

홈 개막전 승리에 이바지한 윌슨은 경기 전 ‘검니폼’ 레전드 행사를 보며 느낀 소감을 전했다. 윌슨은 “홈 개막전 오프닝 행사가 정말 훌륭했다. 비록 LG의 우승이 너무 오래전 얘기지만, 우승 멤버들을 다시 불러 우승을 향한 의지를 다진 좋은 시간이었다. 시구를 한 분도 우승 멤버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들었다. (1994년 우승을 확정 지은 마무리 투수라고 듣자) 우승의 마지막 순간 마운드 위에 서 있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나도 올 시즌 똑같은 경험을 꼭 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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