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 라울 알칸타라, 미국 시절 150km/h대 강속구 던지면서도 난타

-KT 합류한 뒤 에이스 변신, 4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호투

-달라진 점은 하이패스트볼 구사율, “높은 공 적극적 구사해 효과”

-알칸타라의 장점 극대화한 KT 코칭스태프, ‘피치 디자인’ 성공 거뒀다

KT 알칸타라는 KBO리그에 온 뒤 미국 시절과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사진=엠스플뉴스)
KT 알칸타라는 KBO리그에 온 뒤 미국 시절과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메이저리그 유망주 시절에도 KT 위즈 유니폼을 입은 지금도, 라울 알칸타라는 똑같은 사람이다. 여전히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고, 동료들의 장난에는 특유의 순한 미소를 지으며 웃어 보인다. 150km/h대 강력한 패스트볼과 싱커를 던지는 것도, 체인지업-슬라이더-커브 등 온갖 변화구를 던지는 것도 그대로다.

하지만 KT에서 알칸타라의 피칭을 보면, 미국 시절과 전혀 다른 투수처럼 보인다. 미국 시절엔 무시무시한 구위를 갖고도 난타를 면치 못했다. 타자들은 알칸타라의 150km/h대 광속구를 어렵지 않게 받아쳤다. 빅리그에서 두 시즌 동안 13경기 46.1이닝 평균자책 7.19에 그쳤고, 트리플 A에서도 58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 3.60으로 ‘압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KBO리그에 온 뒤에는 확 달라졌다. 4월 19일까지 4경기에 등판해 4차례 모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고 2경기에선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작성했다. 27이닝 동안 허용한 자책점은 단 8점. 평균자책 2.67에 2승 1패를 기록하며 KT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 중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높은 패스트볼’ 무기로 ‘에이스’ 변신한 알칸타라

알칸타라는 KT 합류 뒤 하이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던지고 있다(사진=KT)
알칸타라는 KT 합류 뒤 하이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던지고 있다(사진=KT)

가장 큰 변화는 ‘하이패스트볼’이다. 미국 시절 알칸타라는 빠른 싱커를 무기로 스트라이크존 낮은 쪽을 공략하는 투수였다. 존 높은 쪽은 좀처럼 던지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공을 낮게 던지려 했고, 그 과정에서 가운데 치기 좋은 높이로 들어가는 실투가 자주 나왔다.

스트라이크존을 9등분한 팬그래프 데이터를 보면 알칸타라는 2016년과 17년 2년간 던진 패스트볼 가운데 15.6%만을 존의 위쪽으로 던졌다. 가운데 높이가 26.9%를 차지했고, 낮은 높이의 패스트볼 비율은 17.6%였다. 존을 36등분한 데이터로 봐도 존 최상단 높이로 던진 패스트볼은 전체의 9.3%였다.

메이저리그 2년간 알칸타라의 패스트볼 분포도(출처=팬그래프)
메이저리그 2년간 알칸타라의 패스트볼 분포도(출처=팬그래프)

최근 메이저리그는 투수들의 투심, 싱커 구사가 늘면서 타자들이 올려치는 스윙으로 대응했고, 그러면서 리그 홈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커맨드가 완벽하지 않은 알칸타라가 어중간한 지점에 던지는 빠른 볼은 타자들에게 좋은 먹이감이나 다름없었다.

반면 KT에 온 뒤 알칸타라는 전에는 잘 던지지 않던 하이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던지고 있다. 존을 9등분한 스탯티즈 데이터를 보면, 알칸타라는 전체 패스트볼 중에 22.6%를 존의 높은 쪽으로 구사했다. 우타자 기준 몸쪽 높은 지점, 좌타자 몸쪽 높은 지점으로 던진 볼의 비율도 상당했다.

알칸타라의 패스트볼, 싱킹패스트볼 코스별 구사율(표=스탯티즈)
알칸타라의 패스트볼, 싱킹패스트볼 코스별 구사율(표=스탯티즈)

포심 뿐만 아니라 싱커성 패스트볼도 높은 쪽으로 던지는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여기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낮은 쪽으로 떨어뜨려, 평균 147.7km/h에 달하는 패스트볼의 효과를 더하고 있다.

KT 위즈 코칭스태프의 ‘피치 디자인’이 제대로 들어맞은 결과다. 이강철 감독은 KIA 시절 헨리 소사의 일부 구종을 ‘봉인’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다. 박승민 투수코치도 히어로즈 시절 최원태의 포심을 봉인하고 투심을 장착해 에이스로 키우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이강철 감독은 올해 스프링캠프 당시 알칸타라에 대해 회전수가 좋지 않다, 제구력이 나쁘다는 얘기도 있지만 스피드라는 장점이 있다. 알칸타라 정도의 빠른 볼이라면 충분히 타자들에게 통할 수 있다고 본다며 알칸타라의 단점을 고치기보단 장점을 살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위해 KT 코칭스태프가 주문한 게 바로 하이패스트볼이다. 박승민 투수코치는 빠른 공을 던지는 알칸타라의 장점을 살리려면 높은 쪽 공이 필요하다고 봤다. 캠프 때부터 높은 공을 자주 던지게 주문했고, 포수 장성우도 높은 코스를 자주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구단 투수코치는 “‘발사각 혁명’이 주목받으면서 한국에도 올려치는 스타일의 타자가 많아졌다. 이런 타자들 대상으로 하이패스트볼을 던지면 배트에 맞아도 접점이 적어 좋은 타구를 만들기 쉽지 않다. 패스트볼 구속이 실제보다 더 빠르게 느껴지는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볼 스피드가 떨어지거나, 제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큰 것을 허용할 위험성은 있다. 18일 수원 한화전 이성열 타석이 좋은 예다. 2회 첫 타석 때 알칸타라는 존 높은 쪽으로 벗어나는 148km/h짜리 빠른 볼을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았다. 그러나 6회 다시 만났을 때는 스피드가 뚝 떨어진 142km/h짜리 투심이 존 약간 높은 곳으로 들어가는 실투가 됐고, 비거리 125미터짜리 대형 홈런으로 연결됐다.

하지만 알칸타라는 피홈런 이후에도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구속이 떨어진 패스트볼 대신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효과적으로 섞어가며 7회까지 마운드를 지켰고, 7이닝 3실점으로 이날 투구를 마감했다. ‘스피드’로만 밀어붙이는 투구를 넘어 좀 더 원숙한 투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였다.

투수의 볼 스피드를 하루아침에 빠르게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들쭉날쭉 제구력을 안정시키는 것도, 새로운 변화구를 익히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투수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보다 효과적인 투구방법을 연구한다면, 같은 공을 갖고도 훨씬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알칸타라의 에이스 변신은 ‘피치 디자인’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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