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시즌 최강 불펜 자랑하던 한화와 삼성, 올 시즌 불펜 운영 쉽지 않네

-변덕스러운 불펜, 왜 2년 연속 꾸준한 활약 어려울까

-전 시즌 많은 등판 후유증, 오랜 기간 검증된 불펜 투수 드물다는 지적도

-불펜도 뎁스가 중요, 꾸준히 새로운 피 수혈하고 발굴해야

한화 정우람과 삼성 장필준. 불펜이 오랜 기간 꾸준한 활약을 하기는 쉽지 않다(사진=한화, 삼성)
한화 정우람과 삼성 장필준. 불펜이 오랜 기간 꾸준한 활약을 하기는 쉽지 않다(사진=한화, 삼성)

[엠스플뉴스]

4월 19일 대전에서 열린 삼성-한화전. 선발 김범수가 5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내려간 뒤, 6회부터 한화는 불펜야구를 시작했다. 2대 1로 앞선 6회. 작년 같았으면 6회엔 박상원이 나왔을 테고, 7회엔 아마도 송은범, 8회쯤 이태양이 나와서 한 점 리드를 철통같이 지켰을 것이다.

그 사이 한화 타선은 한 두 점 정도 달아났을 테고, 9회가 되면 익숙한 각본대로 정우람이 올라와 경기를 매조졌을 게다. 이게 작년 한화가 피타고리안 기대승률 4할대 전력을 갖고도 리그 3위를 차지한 비결이다. 질 때는 시원하게 크게 지더라도, 한 두 점차 앞선 경기에선 조금의 빈틈도 주지 않는 게 지난 시즌 한화가 보여준 야구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6회 올라온 투수는 지난 시즌 ‘추격조’ 안영명이었다. 7회에도 올라온 안영명이 선두타자 안타를 맞자 며칠 전까지 선발투수였던 박주홍이 나와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았다. 앞서 홈런을 날린 이원석 타석이 되자 이번엔 박상원이 올라왔고, 박상원은 8회 1사 1루까지 던진 뒤 정우람에게 공을 넘겼다.

아웃카운트 5개를 잡으러 올라온 정우람은 구자욱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고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뒤, 9회엔 이원석에게 3대 2로 경기를 뒤집는 홈런까지 허용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완벽했던 한화의 승리 공식에 일년 사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이태양은 시즌 초반 부진 끝에 선발투수로 보직을 바꿨다. 송은범도 잇단 부진 끝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작년 7, 8회를 책임졌던 셋업맨 둘이 한꺼번에 불펜에서 이탈했다. 둘은 지난 시즌보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2~3km/h 정도 떨어진 상태다.

시즌 1세이브로 장기간 ‘개점휴업’ 상태던 정우람은 오랜만에 단체손님(5아웃)을 받으려다 접시를 깨뜨렸다. 시즌 2차례 세이브 기회에서 1세이브 1블론세이브. 작년처럼 선발이 5회만 던지고 내려가도 별 걱정이 안 되던 철벽 불펜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단지 한화만 이런 문제를 겪는 건 아니다. 맞은편 더그아웃의 삼성도 심창민의 군입대, 최충연의 보직변경으로 비슷한 혼란을 겪는 중이다. 지난 시즌 불펜 WPA(추가한 승리확률) 2.85로 1위였던 한화의 올 시즌 WPA는 0.06으로 4위, -0.39로 리그 2위였던 삼성의 올 시즌 WPA는 -1.21로 리그 8위다.

또 불펜 평균자책 3위(5.05)였던 롯데는 올해 7.01로 최하위로 내려앉았고, 불펜 평균자책 4위(5.06)였던 KIA도 6.17로 리그 9위로 주저앉았다. 롯데 불펜은 WPA도 -3.65로 꼴찌, KIA 역시 -2.51로 꼴찌에서 두 번째다. 반면 불펜 평균자책 9위(5.62)였던 LG는 올해 단숨에 리그 1위(2.18)로 성적을 끌어올렸고 WPA도 0.60으로 2위다.

이처럼 변덕이 죽끓듯 하는 게 불펜이란 동네다.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질 때는 마치 예술작품처럼 환상적인 순간을 연출하지만, 퍼즐 조각 하나만 빠져나가도 한순간에 삐걱대고 엉망이 돼 버린다. 한 시즌 잘 돌아가다가도 다음 시즌이면 형편없이 망가지기 일쑤다. 믿음직하고 완벽한 불펜을 구축하는 것도 어렵지만, 꾸준하게 유지하는 것도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변덕스러운 불펜, 그래서 ‘뎁스'가 중요하다

19일 경기에서 한화를 구한 김경태와 문동욱(사진=한화)
19일 경기에서 한화를 구한 김경태와 문동욱(사진=한화)

불펜은 왜 이렇게 변덕스럽고, 냉온탕을 오가고, 이리저리 널을 뛰는 것일까. 왜 불펜은 진득하니 안정적인 모습을 2년 연속 이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피로’는 불펜의 부진을 설명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원인이다. 결국 불펜은 투수들의 조합이다. 마무리와 셋업맨 등 핵심적인 몇몇 투수들의 존재가 불펜진 전체의 완성도를 크게 좌우한다. 잘 던지는 불펜투수는 그만큼 자주 나온다. 특히 팀 성적이 좋고 긴박한 경기가 잦으면 자연히 등판 횟수가 많아진다. 여기서 쌓인 피로도가 다음 시즌 부상 혹은 구위 저하로 이어진다는 가설이다.

실제 지난해 불펜 최다이닝 투수 5인(최충연, 김윤동, 송은범, 이태양, 김강률) 중에 4월 21일 현재도 1군 불펜에서 활약 중인 투수는 최충연 하나뿐이다. 최충연은 올 시즌 선발에서 출발해 불펜으로 복귀했고, 6번의 불펜 등판에서 3.2이닝 동안 평균자책 9.82를 기록 중이다.

한 시즌 앞으로 가면 2017시즌 최다이닝 1위부터 5위까지(김진성, 김강률, 원종현, 이민호, 김윤동) 중에 김진성, 원종현, 이민호가 다음 시즌 큰 폭의 성적 하락을 겪은 것을 보게 된다. 한 시즌 더 앞으로 가면 권 혁과 송창식, 채병용의 이름이 등장한다. 권 혁 이름까지 나왔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될 것 같다.

마무리 투수 출신인 박승민 KT 투수코치는 국내 불펜투수들은 경기에서 많이 던지는 것도 있지만, 실제 등판하지 않을 때도 불펜에서 많은 공을 던지는 경향이 있다. 불펜 투수들의 휴식을 좀 더 확실하게 지켜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구단 코치는 “KIA 김윤동 같은 투수는 아예 8회나 그 이전부터 올라올 때가 많더라. 투수를 한번 앞당겨서 기용하기 시작하면, 그 뒤에도 계속해서 타협하게 된다. 일단 원칙이 깨지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점에서 최근 KBO리그에 3연투, 4연투 사례가 속출하는 건 좋지 않은 신호다.

불펜이란 특수성을 떠나 2년 연속 1군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SK 손 혁 투수코치는 어떤 포지션의 선수나 한 시즌 활약만이 아닌 2년, 3년 이상 꾸준히 잘했을 때 인정을 받는다. 불펜 투수 역시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각 팀 불펜 구성을 살펴보면 여러 해 동안 꾸준히 불펜 외길만 걸어온 투수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막 데뷔해 싱싱한 공을 뿌리는 신인 투수나, 선발 경쟁에서 탈락해 불펜으로 이동한 선수, 오랫동안 2군에 머물다 1군에 올라온 투수들로 불펜을 구성하게 마련이다.

한화만 해도 이태양과 송은범은 원래 선발 후보로 분류됐던 선수들이다. 전업 불펜투수가 된 건 지난 시즌이 처음이다. 한화 불펜은 작년 시즌 처음부터 강력했던 게 아니라, 이런저런 조합을 실험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탄생했다. 삼성 최충연처럼 신인급 투수가 강력한 구위를 앞세워 리그 최고 불펜투수로 올라선 예도 있다. 이들이 불펜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친 건 ‘한 시즌’이다. 다음 시즌에도 반드시 똑같은 활약을 이어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뎁스(depth)’가 중요하다. 박승민 코치는 불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선 선수층이 두터워야 한다고 했다. 좋은 불펜투수는 다다익선이다. 필승조 3명을 확보했다고 거기서 만족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모든 게 완벽하게 돌아갈 때도 항상 예비 전력을 준비하고, 한 시즌을 마친 뒤엔 불펜에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한다. 그래야 좋았던 불펜이 흔들릴 때도 언제든 새 퍼즐을 조합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다.

SK는 올 시즌을 앞두고 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강지광-하재훈을 불펜진에 투입했다. 이외에도 이승진, 서진용, 박민호 등을 추가해 지난 시즌 승리조와는 전혀 다른 구성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손 혁 코치는 “불펜에 좋은 투수가 많아 캠프 때부터 경쟁이 치열했다. 시즌 전에 잘 준비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두산 역시 시즌 전 배영수, 권 혁 등 베테랑을 영입하고 군복무에서 돌아온 윤명준을 추가해 불펜을 강화했다. 한화가 이태양, 송은범 없이 어느 정도 버티는 건 지난해 5, 6회를 책임졌던 박상원과 안영명이 7, 8회를 맡길 만한 투수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반면 특정 투수 의존도가 높았던 팀들은 선수 한 명만 부진해도 불펜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서두에서 언급한 삼성과의 경기, 한화는 정우람이 물러난 뒤 김종수-김경태-문동욱 등 그간 1군 경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던 투수들을 차례로 투입했다. 이들 셋은 삼성 타선을 3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한화는 연장 11회 혈투 끝에 4대 3 재역전승을 거뒀다. 이들 가운데 남은 시즌 한화 뒷문을 책임질 새로운 구세주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난해 한화 최강 불펜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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