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외국인 투수 덱 맥과이어, 한화전 13K 노히트노런

-노히터 전까지 평균자책 6.56 부진, 한 경기로 이미지 변신

-노히터의 저주? 마야 사례 있지만, 보우덴 사례도 있다

-자신감 찾은 맥과이어, 노히터 이후 반등 가능할까

13탈삼진 노히터를 달성하고 포효하는 맥과이어(사진=삼성)
13탈삼진 노히터를 달성하고 포효하는 맥과이어(사진=삼성)

[엠스플뉴스]

‘아싸’에서 ‘인싸’가, 미운 오리 새끼에서 하루아침에 백조가 됐다.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 투수 덱 맥과이어가 4월 21일 대전 한화전에서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달성하며 KBO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역대 14번째이자 외국인 투수 4번째 기록. 2016년 두산 마이클 보우덴 이후 3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16대 0 대승으로 역대 최다점수차 노히터 기록도 함께 이뤘다.

극적인 반전이다. 이날 전까지만 해도 맥과이어는 5경기 승리 없이 2패에 평균자책 6.56으로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23.1이닝 동안 29개의 안타를 얻어맞았고 볼넷도 21개나 허용했다.

워낙 나오는 경기마다 얻어맞다 보니, 구단 밖에서는 ‘퇴출 1호가 되는 게 아니냐’는 예상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 네티즌은 커뮤니티에 ‘맥과이어가 노히터를 하면 댓글을 단 분들에게 아파트를 사겠다’는 공약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노히터라는 상상 밖의 결과가 나왔고, 많은 사람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삼성의 ‘맥과이어 살리기’ 프로젝트…영상 분석, 트랙맨 데이터 총동원

맥과이어가 대기록 달성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장면(사진=삼성)
맥과이어가 대기록 달성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장면(사진=삼성)

시즌 초반 최악의 부진을 겪었던 맥과이어가 반전을 이룬 비결은 무엇일까. 이를 알려면 맥과이어가 왜 시즌 초반에 부진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사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맥과이어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려보다는 기대감이 훨씬 컸다. 캠프 연습경기에서 나왔다 하면 호투를 펼쳤고, 시범경기에서도 LG전 1경기에서 5이닝 7탈삼진 무실점으로 잘 던졌다. 개막 전까지는 꾸준히 ‘좋은 모습’만 보여준 맥과이어다.

그러다 3월 23일 창원 NC와 개막경기에서 무너졌다. 2회까지 홈런만 세 방을 얻어맞고 녹아내렸다. 특히 1회말 크리스티안 베탄코트 상대로 잘 던진 하이 패스트볼이 홈런으로 연결된 게 치명타였다. 삼성 관계자는 베탄코트와 양의지가 워낙 잘 쳤다. 맥과이어는 자기 구위를 믿고 윽박지르는 투구를 해야 하는 투수인데, 그 홈런 이후 완벽하게 제구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는 것 같았다고 했다.

개막 전까지 너무 승승장구했던 게 오히려 독이 돼서 돌아왔다. 삼성 관계자는 “캠프나 시범경기 때 부족한 모습이 나왔다면 미리 보완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큰 기대를 받으며 시작한 시즌 첫 경기에서 좋지 않은 모습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선수 스스로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제구가 흔들렸다”고 전했다.

장점인 패스트볼 구위까지 이상 조짐을 보였다. 개막전 때 평균 146.3km/h였던 패스트볼 구속이 29일 두산전 때는 143km/h로 떨어졌고, 4월 4일 KIA전에선 142.4km/h에 그쳤다. “좋은 볼을 갖고 있는데도 강하게 공격적으로 승부하지 못하고, 위기를 자초하는 투구가 거듭됐다.” 삼성 관계자의 설명이다.

맥과이어는 메이저리그 1라운드 드래프티 출신이다. 2010 MLB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11순위로 데뷔 때부터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구단의 큰 기대를 좀처럼 성적으로 연결하지 못했고, 2018시즌까지 빅리그 통산 27경기 1승 3패 평균자책 5.23의 성적만 남겼다.

사람들의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KBO리그에서도 되살아날 위기였다. 삼성 외국인 영입을 담당하는 박현우 스카우트는 과거 실패의 경험이 있는 친구다. 사람들이 자기를 얼마나 기대하는지 잘 아는데, 그에 부응하지 못한 데서 오는 심리적 위축이 컸다코치님과 감독님이 계속 ‘괜찮다’ ‘네 공 좋다’ ‘자신감 있게 던지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게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맥과이어의 구속 변화. 키움전을 기점으로 다시 제 스피드를 찾았다(통계=스탯티즈)
맥과이어의 구속 변화. 키움전을 기점으로 다시 제 스피드를 찾았다(통계=스탯티즈)

코칭스태프는 물론 전력분석팀까지 달라붙어 ‘맥과이어 살리기’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전력분석팀에서 맥과이어가 좋았을 때의 투구동작을 영상 분석을 통해 보여줬다. 제구가 잘 이뤄질 때 머리의 움직임, 골반의 움직임을 확인했는데 최근 투구에선 그런 부분이 많이 흐트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전력분석팀은 맥과이어가 좋은 공을 던질 때, 투구에 앞서 머리를 한번 숙였다가 포수를 보고 투구 동작으로 들어갔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팔이 자연스럽게 넘어오는 공간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개막전 난타 뒤 코너워크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 그 동작을 생략하고 바로 포수 쪽을 보고 공을 던지는 식이 돼 있었다. 삼성 관계자는 “전력분석 팀에서 미세한 부분까지 분석해서 좋았을 때의 폼을 되찾을 수 있게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레이더 트래킹 시스템을 활용한 분석도 맥과이어의 자신감 회복에 도움을 줬다. 삼성 관계자는 트랙맨 분석 결과 맥과이어는 여전히 A급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모두 회전수와 구위가 좋았고, 이를 바탕으로 코칭스태프에선 ‘구위를 믿고 밀어붙여라’ ‘타자를 보고 윽박질러라’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은 4월 16일 키움 히어로즈전부터 서서히 효과를 나타냈다. 이날 맥과이어는 평균 147.4km/h의 KBO리그 데뷔 후 가장 빠른 패스트볼을 던졌고, 5이닝 2실점(1자책)으로 비교적 준수한 피칭을 펼쳤다. 그리고 21일 한화전에서도 평균 147.1km/h의 광속구를 뿌리며 노히터를 달성했다. 투구수 120구를 넘긴 9회에도 스피드건에 149km/h가 찍힐 정도로, 맥과이어의 구위는 위력적이었다. 삼성이 영입 당시 기대한 바로 그 모습이다.

노히터의 저주? “자신감 찾은 맥과이어, 반등 계기 될 것”

맥과이어는 캠프 때부터 실패 없이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단점을 찾고 수정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게 정규시즌 독이 되어 돌아왔다(사진=엠스플뉴스)
맥과이어는 캠프 때부터 실패 없이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단점을 찾고 수정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게 정규시즌 독이 되어 돌아왔다(사진=엠스플뉴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노히터 이후 맥과이어가 어떤 피칭을 보여줄지가 중요하다. KBO리그에는 노히터에 관한 슬픈 전설이 있다.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투수들이 하나같이 대기록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 퇴출당했다고 해서 생긴 야구장 전설의 일종이다.

정확히는 두산 유네스키 마야 때문에 나온 얘기다. 마야는 2015시즌 5월 9일 키움 전에서 ‘136구’를 던지며 노히터를 달성한 뒤 처참하게 무너졌다. 노히터 이후 10경기에서 승리 없이 4패만 당했고, 46.1이닝 동안 70피안타 6홈런 24볼넷 39탈삼진 평균자책 10.8을 기록한 뒤 퇴출당했다.

그보다 한 해 전에는 NC 찰리 쉬렉의 사례가 있다. 찰리 역시 2014년 6월 24일 LG전에서 노히터를 달성한 뒤, 나머지 14경기에서 6승 5패 75이닝 90피안타 9홈런 26볼넷 41탈삼진 평균자책 6.12에 그쳤다. 이듬해에도 12경기 4승 5패 평균자책 5.74에 그친 찰리는 시즌 중반 퇴출됐다.

맥과이어가 21일 던진 128구는 개인 통산 한 경기 최다 투구 수다. 맥과이어는 마이너리그 시절 110구가 한 경기 최다투구 수였던 투수다(2014년 8월 5일). 지난 시즌엔 5월 4일 시라큐스전에서 8이닝 동안 103구를 던진 게 가장 많은 투구수였다. 분명 대기록 달성을 위해 평소보다 많은 공을 던진 것은 사실이다.

노히터 그 후

찰리 14경기 6승 5패 75이닝 90피안타 9홈런 26볼넷 41탈삼진 평균자책 6.12 (110구)

마야 10경기 0승 4패 46.1이닝 70피안타 6홈런 24볼넷 39탈삼진 평균자책 10.88 (136구)

보우덴 15경기 8승 4패 85.2이닝 76피안타 12홈런 29볼넷 72탈삼진 평균자책 4.31 (139구)

하지만 지나친 일반화는 금물이다. 많은 투구수가 문제라면, 두산 마이클 보우덴의 사례로 반박이 가능하다. 보우덴은 2016시즌 6월 30일 NC전에서 139구 노히터를 달성했지만, 이후에도 15경기 8승 4패 평균자책 4.31로 좋은 투구를 이어갔다. 특히 보우덴은 노히터 경기 외에도 두 차례나 130구 이상을 던졌고, 110구 이상을 던진 경기도 9차례나 됐다.

마야 문명의 몰락과 노히터 간의 상관관계는 확실치 않다. 노히터 경기에서 마야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39.2km/h에 그쳤다. 노히터 때 무리한 게 몰락의 원인이라면 노히터 이후 구속이 떨어졌어야 한다. 그러나 노히터 이후 마야의 구속은 꾸준히 향상됐다. 5월 NC전과 KT전에선 평균 143km/h대 빠른 공을 던졌고, 그 시즌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1.4km/h에 달했다.

마야의 부진이 노히터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야의 노히터가 일종의 ‘원히트원더’였다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빠빠빠’나 ‘삐리뽐빼리뽐’ 한 곡만 남기고 사라진 그룹들처럼, 마야의 노히터는 그의 KBO리그 경력에서 몇 안 되는 빛나는 순간이었다.

마야는 노히터 이전까지도 수준급 외국인 투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무대에 처음 합류한 2014시즌에도 11경기 평균자책 4.86에 그쳤고, 노히터 이전 두 경기에서도 13이닝 6실점 평균자책 4.15로 완벽한 피칭을 보여주진 못했다.

2014시즌과 2015시즌 마야의 기록을 살펴보면 평균자책은 4.86과 8.17로 차이가 크지만, FIP(수비무관 평균자책)은 4.71과 4.44로 큰 차이가 없다. 9이닝당 탈삼진은 2015시즌(8.17개)으로 오히려 나았고 피홈런도 0.79개로 오히려 줄었다. 노히터 한 경기에 모든 운을 다 써버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찰리 역시 노히터 이전부터 꾸준히 하락세를 타는 중이었다. 노히터 이전 13경기 성적은 5승 3패 81.1이닝 94피안타 26볼넷 44탈삼진 평균자책 4.32로 외국인 에이스급 성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노히터 한 경기 때문에 KBO리그에서 수명이 연장됐다고 봐야 한다. ‘노히터의 저주’는 흔한 야구장 전설 가운데 하나일 뿐,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맥과이어의 노히터 게임은 오히려 긍정적인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시즌 초반 예상밖의 부진에 위축됐던 맥과이어가 자신의 공에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날 맥과이어는 140km/h 후반대 강속구로 한화 타선을 완벽하게 압도했다. 가운데 몰리는 공이 많던 슬라이더가 존 외곽을 날카롭게 파고들었고, 간혹 실투성으로 들어간 패스트볼도 워낙 구위가 좋아 한화 타자들이 제대로 쳐내지 못했다. 이날 피칭을 통해 맥과이어는 자신을 선택한 삼성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해 보였다. 우리가 기대한 진짜 맥과이어를 만나는 건 이제부터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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