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연속 한화 불펜 승리조로 활약 중인 박상원

-2018시즌 경험 발판으로 2019시즌 한 단계 성장…6회 담당에서 7, 8회 담당으로

-“7, 8회 던져보니 선배들 마음 알 것 같다…선배들 조언이 큰 힘”

-“최종 꿈은 마무리 투수…7, 8회 이겨내야 9회도 있다”

2018시즌 경험을 발판으로 더 크게 성장한 박상원(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2018시즌 경험을 발판으로 더 크게 성장한 박상원(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날 때부터 3루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타석에서 출발해 1루를 밟고, 2루를 도는 과정을 거쳐야 3루와 홈으로 향할 자격이 주어진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마무리 투수로, 선발 에이스로 시작하는 선수는 보기 드물다. ‘끝판왕’ 오승환도, 2018 세이브왕 정우람도 프로 데뷔 때는 많은 불펜 투수들 중의 한 명이었다.

한화 이글스 셋업맨 박상원 역시 출발은 ‘미생’이었다. 2017년 7월 20일 NC전, 2대 7로 뒤진 8회 ‘패전처리’로 등판해 2이닝을 던진 게 박상원의 프로 데뷔 경기였다. 2년 차인 2018시즌 출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3월 24일 넥센전(현 키움)에 큰 점수 차로 뒤진 9회 올라와 0.1이닝을 던지는 것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박상원은 이렇게 얻은 등판 기회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등판할 때마다 안정적인 피칭을 거듭하며 점차 코칭스태프의 신임을 얻었다. 갈수록 지는 경기보다는 이기는 날에, 덜 중요한 상황보다는 더 긴박한 상황에 나오는 날이 많아졌다. 풀타임 1군 투수로 활약한 박상원의 2018시즌 성적은 69경기 4승 2패 9홀드에 2.10의 평균자책. 11년 만에 대전에서 열린 가을야구를 함께하는 기쁨도 누렸다.

올 시즌 박상원에겐 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이태양과 송은범의 이탈로 헐거워진 한화 뒷문을 탄탄하게 걸어잠그는 역할이다. 5회, 6회를 책임지던 투수에서 이제는 7회, 8회를 막는 투수로 ‘승진’을 이뤘다. ‘불펜투수는 2년 연속 꾸준하기 어렵다’는 징크스를 깨고, 지난 시즌 경험을 발판으로 더 믿음이 가는 투수로 성장한 박상원이다. 마무리 투수가 최종 목표라는 한화 마운드의 새 수호신 박상원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포스트시즌 실패 경험 약이 됐다…다시 기회 주어지면 이번엔 빚 갚을 차례”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피칭 훈련하는 박상원(사진=한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피칭 훈련하는 박상원(사진=한화)

개막 이후 8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펼치다, 9경기만에 깨졌다(4월 18일 KT전 박경수 홈런). 아쉽지 않나.

아쉽지만 어쩌겠나. (웃음) 세상에 홈런 안 맞는 투수는 없다. 언제까지나 홈런을 안 맞고 점수를 안 줄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홈런을 맞은 상황은 아쉬움이 남는다. 점수차가 큰 경기였다면 모르겠는데, 그 홈런 하나로 사실상 경기가 끝나버렸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평균자책 0의 행진은 깨졌지만, 분명한 건 올 시즌 들어 지난 시즌보다 부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어떤 점일까.

불안한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18일 경기도 아쉽긴 했지만 굳이 좋은 점을 찾자면, 홈런을 맞은 뒤에도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는 게 좋았다. 작년 같았으면 홈런을 맞고 난 뒤에 계속 흔들리다가, 이닝을 끝내지 못하고 교체됐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더이상 실점을 안 하고 내가 이닝을 마무리했다는 게 좋았다고 본다.

정신적으로 한결 단단해진 느낌이다.

투수가 맞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예전엔 하나 맞고 나면 마운드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스스로 위축되곤 했다. 불펜투수를 하다 보면 중요한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갈 때가 많으니까, 잘 던지면 중요한 상황을 잘 막아서 팀이 이기는 데 기여한 게 되지만, 못 던지면 나 때문에 진 게 돼버린다.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 극과 극을 오갈 때가 많았다. 송진우 코치님과 한용덕 감독님 조언을 받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한 방 맞아도 ‘경기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타자들이 점수 내줄 거다’라고 생각하고 계속 던진다.

그래서인지 표정에도 자신감이 묻어난다.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주눅 든 채로 마운드에 서 있으면, 그 감정이 타자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더라. 상대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자신이 있는지 위축됐는지 타자도 느낀다. 그런 감정을 가능한 티 내지 않으려 한다. 비록 속은 타들어 갈지라도 표정에는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 그게 프로인 것 같다.

지난해 풀시즌과 포스트시즌을 치른 경험이 큰 도움이 된 모양이다.

작년 포스트시즌 때 겪은 실패가 내겐 약이 됐다. 사실 작년 정규시즌 기간엔 시즌 내내 이렇다할 컨디션 저하를 겪지 않았다. 원래 페넌트레이스 144경기를 치르다 보면 컨디션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법인데, 난 그런 기복 없이 순탄하게 시즌을 보냈다. 그러다 하필 마지막 포스트시즌 기간에 컨디션이 뚝 떨어졌던 거다.

사실 작년 포스트시즌 부진 때문에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다.

작년 포스트시즌 경험이 없었다면, 오히려 지금쯤 크게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때 경험과 마음가짐이 지금 잘 던지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빚을 졌다고도 할 수 있다. 다시 그 자리에 서게 된다면, 이제는 빚을 갚을 차례다. 이번에는 팀이 나 때문에 더 높은 곳에, 한국시리즈에 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거다.

“후배를 진심으로 위하는 선배, 그게 한화만의 문화”

박상원은 올 시즌을 앞두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무장했다(사진=한화)
박상원은 올 시즌을 앞두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을 무장했다(사진=한화)

주로 정신적인 변화에 관해서만 얘기했는데, 올 시즌 기술적으로 달라진 부분은 없나.

음, 슬라이더를 많이 가다듬었다.

슬라이더?

작년에 맞은 홈런 3개 중의 2개가 슬라이더를 던지다 맞은 홈런이다. 사실 3개밖에 안 맞은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너무 밋밋했다. 워낙 밋밋하게 들어가서 그런지, 타자들이 ‘이게 무슨 공이지’하고 안 친 것뿐이지 위험한 공이 정말 많았다. 던지는 순간 ‘뜨끔’한 공도 많았다.

주무기는 포크볼 아닌가.

패스트볼과 포크볼 두 구종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 또 공인구도 살짝 커지다 보니까, 포크볼 던지기가 살짝 불편해진 것도 있다. 손가락을 벌린 채 공을 잡고 있을 때 느낌이 달라졌다. 얇은 옷만 입다가 두꺼운 옷을 입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물론 불평하려는 건 아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투수들도 다 같은 조건이니까. (웃음)

작년엔 주로 5회와 6회에 등판하는 역할이었다. 올해 들어 7회와 8회에 등판하는 경기가 많아졌다. 벤치로부터 신뢰를 받는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아직 크게 피부로 와닿지는 않는다. 이제 고작 스무 경기 정도 했을 뿐이다. 시즌 초에는 더 앞쪽에서 시작했고, 최근 몇 경기 뒤쪽에서 나왔을 뿐이다. 송은범 선배님도 다시 오실 것 아닌가. 은범 선배 오신 뒤에도 계속 뒤쪽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부터 잘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만약 선배님들이 정상 궤도를 찾은 뒤에도, 계속해서 내가 8회를 책임지는 투수가 돼 있다면 그만큼 우리 팀 불펜이 탄탄해졌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다면 팀에는 큰 활력소가 될 거다.

5, 6회에 나와서 던지는 것과 7, 8회에 던지는 건 어떻게 다른가.

작년에는 5회, 6회 앞쪽에서 던지느라 몰랐는데, 이제는 형들의 마음을 좀 알 것 같다. 마무리투수까지 가기 위한 마지막 단계이고, 팀 승리를 좌우하는 단계 아닌가. 기쁠 때는 엄청 기쁘겠지만, 슬플 때는 한없이 슬픈 게 이 자리인 것 같다. 이런 자리에서 티 안나게 역할을 해낸 선배들이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사실 이런 얘긴 한번도 한 적이 없는데… 좀 더 해도 되나?

얼마든지.

프로에 온 뒤 정우람 형에게 정말 고마운 점이 많다. 공 던지는 것 외에도 심리적인 면, 야구장에서 행동 같은 부분까지 형에게 배우고 도움받는 부분이 너무 많다. 우람 선배 뿐만 아니라 안영명 선배, 정근우 선배, 김태균 선배 등 우리 팀 선배들은 후배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걱정해준다는 게 느껴진다. 형들에게 감사한 일이 참 많다.

이런 건 더 얘기해도 된다.

우리 팀 스타일 자체가 그렇다. 내가 마운드에서 고민이 있을 때, 변화구 때문에 고민할 때마다 한용덕 감독님, 코치님들께 편안하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 마치 가족처럼, 친한 형처럼, 부모님처럼 도움을 주신다. 아마도 선배들이 나처럼 어렸을 때도 지금 같은 분위기였을 거다. 선배에서 후배로 계속 이어지는, 그게 한화 이글스만의 분위기라 생각한다. 나도 선배들의 본을 받아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마침 같은 연세대 출신 후배 박윤철이 올 시즌 입단했다.

윤철이와 친하다. 유니폼을 벗으면 장난도 치고 하지만, 야구장 안에서만큼은 진지해지려고 한다. 별 볼 일 없는 선수였던 나를 감독님, 코치님이 캠프 때 잘 봐주시고 기회를 주신 덕분에 지금 1군에서 던질 수 있는 거니까. 감독, 코치님들이 날 도와주신 것처럼, 형들이 내게 해준 것처럼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목표는 마무리…7, 8회 이겨내야 9회도 막을 수 있다”

박상원의 최종 목표는 마무리 투수다. 그 목표를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박상원이다(사진=한화)
박상원의 최종 목표는 마무리 투수다. 그 목표를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박상원이다(사진=한화)

불펜투수가 2년, 3년 연속 꾸준한 활약을 하기 쉽지 않다. 그 점에서 지난 시즌 활약을 올 시즌에도 이어가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심리적 부담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또 타자들이나 상대 전력분석에서도 더 집중적으로 파고들 거다. 한 시즌 상대했으니까 데이터도 더 풍부해졌을 거고, 타자들도 공을 많이 봐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됐을 거다. 분명 불리한 점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운명?

내 컨디션이 좋다고 반드시 잘 던진다는 보장도, 컨디션이 나쁘다고 꼭 못 던진다는 법도 없더라. 타자가 못 칠 수도 있는 거고, 어제 김재윤 형처럼 수세에 몰렸다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발버둥친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운명인 것 같다. 잘 던진 날은 ‘오늘은 내가 잘 던질 운명이었다’ ‘다른 사람들 덕분에 잘 던진 거다’라고 받아들인다.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휘문고 3학년 때 프로 1차 지명을 받는 데 실패하면서 깨달았다. 1차 지명 받으려고 겨울부터 그야말로 발버둥을 쳤는데, 내 맘대로 안 되더라. 부상을 참고 뛰다가 갈비뼈가 깨지고, 어깨를 다치고, 나중엔 아예 경기도 못 나갈 정도가 됐다. 지금도 마음 속에 욕심이 생길 때마다 항상 그 때 생각을 한다.

어쨌든 2년 연속 좋은 활약을 한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정우람 선배는 10년 이상 잘하고 있지 않나. (웃음) 그렇다고 너무 멀리까지 내다보는 건 아닌 것 같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올 시즌을 잘 보내는 게 우선이다. 난 큰 바탕을 그려놓고, 그 안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채워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목표를 세우고 그 안을 어떻게 채워갈지, 얼마나 보람되게 보내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일단 올 시즌을 무사히 잘 보내고 나면, 내년에는 좀 더 나은 투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지금이 내겐 좋은 기회다. 팀의 승리에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나 때문에 지는 경기도 있지만 그만큼 이기는 경기도 있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나중에 지금보다 좀 더 중요한 자리로 가려면, 지금 이 단계를 잘 이겨내야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중요한 자리라면.

내 꿈이 나중에 마무리 투수가 되는 거다. 5회, 6회를 던지던 투수가 7회, 8회를 막을 수 있다면 나중에는 9회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7, 8회를 견디지 못한다면 9회까지는 가기 어려울 거다. 그래서 더욱 현재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한 이닝이든 두 이닝이든 팀에 피해를 끼치지 않게, 승리를 지킬 수 있게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그러다 형들이 불펜에 다시 돌아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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