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반 KBO리그 투수 혹사 경계령

-3연투 사례 속출, 절대 금기 4연투까지 등장

-젊은 불펜투수들 하루 건너 등판, ‘100이닝’ 불펜투수 나올라

-구단마다 확고한 원칙과 매뉴얼 갖고 마운드 운영해야

올 시즌 초반 많은 경기에 등판한 LG 신인 정우영, 불펜 등판 사흘 뒤 선발로 등판한 양승철(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초반 많은 경기에 등판한 LG 신인 정우영, 불펜 등판 사흘 뒤 선발로 등판한 양승철(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4월 23일 잠실 KIA-LG전. 이날 KIA는 선발투수로 우완 양승철을 기용했다. 은퇴한 1973년생 해태 투수 양승철이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나온 양승철은 불과 사흘전 구원으로 나와 31구를 던졌던 2019 신인투수 양승철이었다.

파격 선발 카드는 1, 2회 무실점으로 성공을 거두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양승철은 3회 들어 볼넷과 적시타, 만루홈런을 내주며 6실점했고, 3이닝 투구수 80구를 기록하고 내려갔다. 4회부터 등판한 이준영은 18일부터 20일까지 내리 3연투를 소화한 투수. 이틀 쉬고 올라온 이준영은 이날 2.1이닝 동안 52구를 던졌다.

확실히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날 양승철의 선발 등판을 보면서 안영명이 6일 동안 세 차례 선발로 등판하고, 김민우가 구원 24구 이틀 뒤 선발로 나와 92구를 던졌던 2015년 한화를 연상했다면 KIA 벤치에 실례가 될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장면이 올 시즌 초반 유독 자주 눈에 띈다는 점이다. 한동안 KBO리그에서 사라졌던 ‘혹사’ 망령이 다시 야구장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3연투 속출, 젊은 불펜투수 매일 ‘출첵’

시즌 초반 거의 매 경기 등판하고 있는 배재환(사진=NC)
시즌 초반 거의 매 경기 등판하고 있는 배재환(사진=NC)

좀비처럼 죽지도 않고 돌아온 ‘혹사’의 망령은 시즌 초반 3연투 횟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4월 24일 현재까지 9개 구단 20명의 투수가 한 차례 이상 3연투를 경험했다. 이 중에는 3연투를 두 차례나 겪은 투수도 둘이나 되고, 심지어 절대 금기시되는 4연투를 경험한 투수도 있다.

2019 3연투 이상 일지

LG 정우영 4.16~18 3연투

NC 원종현 3.26~28 3연투 4.4~7 4연투

롯데 고효준 4.16~18 3연투

KT 김재윤 4.18~20 3연투

KIA 문경찬 4.16~18 3연투

한화 박상원 4.17~19 3연투

SK 김태훈 4.11~13 3연투

KIA 하준영 4.10~12 3연투

롯데 손승락 4.3~6 4연투 16~18 3연투

NC 강윤구 4.5~7 3연투

두산 이형범 3.28~30 3연투

KIA 이민우 4.12~14 3연투

두산 김승회 4.11~13 3연투

KIA 고영창 4.10~12 3연투

LG 정찬헌 4.11~13 3연투

롯데 구승민 4.19~21 3연투

삼성 우규민 4.17~19 3연투

KIA 이준영 4.18~20 3연투

한화 문동욱 4.19~21 3연투

한화 박주홍 4.18~21 4연투


구단별, 투수별 3연투 횟수

KIA 문경찬 1회, 하준영 1회, 이민우 1회, 고영창 1회, 이준영 1회

롯데 고효준 1회, 구승민 1회, 손승락 1회, 손승락 4연투 1회

한화 박상원 1회, 문동욱 1회, 박주홍 4연투 1회

NC 강윤구 1회, 원종현 1회, 원종현 4연투 1회

LG 정우영1회 , 정찬헌 1회

두산 이형범 1회, 김승회 1회

KT 김재윤 1회

SK 김태훈 1회

삼성 우규민 1회

키움 0회

팀별로 살펴보면 1군에 투수코치만 3명이 있는 KIA 타이거즈가 3연투 총 5회로 최다를 기록 중이다. 3연투 세 차례를 기록한 롯데는 마무리 투수 손승락이 3연투 한 차례, 4연투 한 차례를 각각 기록했다. 손승락은 페이스 저하를 이유로 21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상태다.

그외 2015년과 2016년 리그를 지배한 ‘혹사’의 중심에 있었던 한화가 3연투 2차례에 4연투 1차례를 기록했고, 2017시즌까지 불펜투수들의 과부하가 컸던 NC도 3연투 두 번에 4연투가 한 차례 나왔다. KT와 SK, 삼성은 각각 1차례씩 3연투가 나왔다. 아직 한번도 3연투가 없었던 팀은 키움 히어로즈 하나 뿐이다.

2019시즌 불펜투수 이닝 상위 10명의 144경기 환산 투구이닝과, 2014~2018시즌 리그 최다 투구이닝 불펜투수 비교(통계=스탯티즈)
2019시즌 불펜투수 이닝 상위 10명의 144경기 환산 투구이닝과, 2014~2018시즌 리그 최다 투구이닝 불펜투수 비교(통계=스탯티즈)

3연투 만이 아니라 불펜 투수들의 이닝과 투구수 관리도 우려를 사는 부분이다. LG 신인 정우영은 13경기 18.1이닝을, 삼성 최지광은 12경기 16.2이닝을 던졌다. NC 배재환도 15경기 15.2이닝, LG 고우석은 13경기 15.1이닝을 각각 던졌다.

이를 144경기로 환산하면 정우영은 72경기 101.2이닝을, 최지광은 69경기 96이닝을, 배재환은 83경기 86.2이닝을, 고우석은 72경기 85이닝을 던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아직 시즌 초반이고 남은 시즌 투수진 상황 변화에 따라 이 예상 투구이닝은 줄어들 수도,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2014년 이후 불펜투수 최다이닝은 2015년 한화 권혁의 78경기 112이닝, 2위는 같은해 한화 박정진의 76경기 96이닝이다. 최근 5년간 불펜 최다이닝 10위는 2014년 SK 전유수의 67경기 84.2이닝이다. 현재까지 페이스만 놓고 보면, 리그 젊은 투수들이 소화한 경기수와 투구이닝은 충분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올 시즌 불펜 투구수 상위 10명의 144경기 환산 투구수와 2014~2018시즌 불펜 투구수 상위 10명의 기록 비교(통계=스탯티즈)
올 시즌 불펜 투구수 상위 10명의 144경기 환산 투구수와 2014~2018시즌 불펜 투구수 상위 10명의 기록 비교(통계=스탯티즈)

투구수 역시 NC 배재환은 144경기 기준 1739구, 장현식은 1484구를 던질 페이스다. 현재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KIA 김윤동도 1428구 페이스, 최지광도 1405구로 1400구를 넘길 기세다.

최근 5년간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공을 던진 2015 한화 권혁(2081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불펜 최다투구수 2위인 2016 한화 권혁(1646구)에는 비견할 만하다. 최근 5년간 불펜투수 최다투구수 10위는 2018 KIA 김윤동(1473구)이었다.

2015년 한화 김민우의 투구 일지. 구원과 선발을 오가는 마구잡이 기용은 어깨 관절와순 부상으로 이어졌다(사진=엠스플뉴스)
2015년 한화 김민우의 투구 일지. 구원과 선발을 오가는 마구잡이 기용은 어깨 관절와순 부상으로 이어졌다(사진=엠스플뉴스)

물론 어느 팀이나 나름의 사정은 있다. 144경기 장기레이스를 치르다 보면 피치 못할 ‘비상상황’도 나올 수 있다. 계획했던 마운드 구상이 예상 못한 변수로 엉망이 되는 상황도 생기곤 한다.

마운드 운영의 원칙과 매뉴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권 구단의 한 투수코치는 한번 원칙에서 벗어나고 타협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타협하고 뒤로 물러나게 된다구단마다 확실한 근거를 갖고, 뚜렷한 원칙과 매뉴얼을 정해 그 범위 안에서 투수를 운영해야 한다. 한번 정한 원칙은 가능하면 끝까지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4년부터 2018년 사이 불펜투수 최다투구수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투수들은 하나같이 부상 혹은 기량 저하를 경험했다. 권 혁과 송창식, 조상우는 수술대에 올랐고 박정진은 은퇴했다. 김강률과 김윤동은 부상으로 1군 전열에서 이탈한 상태다. SK 전유수와 NC 최금강도 구위 저하로 어려움을 겪었다.

투수 혹사는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원칙 없는 마구잡이식 투수기용도 나중에는 몇 배의 이자 폭탄으로 돌아온다. 과거 ‘혹사의 시대’가 지금의 프로야구에 남긴,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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