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구 반발계수 하향조정으로 ‘타자들의 시대’ 저물었다

-홈런 감소에도 예상과 달리 희생번트, 도루 개수는 오히려 줄거나 제자리

-도루 시도율은 그대로지만 성공률과 3루 도루는 증가했다

-이제는 도루도 ‘저비용 고효율’ 시대…성공률 높을 때만 뛴다

뛰는 야구의 대표주자 박해민(사진=엠스플뉴스)
뛰는 야구의 대표주자 박해민(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올 시즌을 KBO는 ‘덜 날아가는’ 공인구를 도입했다. 공인구 반발계수를 0.4134~0.4374에서 0.4034~0.4234로 낮췄다.

이에 야구계에선 시즌 개막을 앞두고 몇 가지 예언이 나왔다: 홈런이 예년보다 줄어들 것이다, 타구 비거리와 타구속도가 줄어들 것이다, 극심했던 타고투저가 한풀 꺾일 것이다, 그리고 희생번트와 도루 등 ‘작전’의 가치가 예전보다 커질 것이다 등등.

대부분의 예언은 들어맞았다. 올 시즌 5월 20일 현재까지 리그 타석당 홈런 비율은 1.98%로 2013시즌(1.78%) 이후 처음 2% 미만을 기록 중이다. 타구 비거리와 속도도 줄었다. 덕분에 그라운드볼이 안타가 되는 비율이 줄어들었고, 투수가 ‘외야플라이’ 수신호를 보낸 타구를 외야 관중이 잡는 장면도 거의 사라졌다. 리그 OPS도 0.735로 2013시즌(0.737)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스몰볼과 작전야구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올 시즌 리그 희생번트는 총 121개. 144경기로 환산하면 371개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최소 기록이자 역대 KBO리그 최소 4위 기록에 해당한다. 경기수도 적고 투고타저 경향이 강했던 1983시즌 리그 희생번트 개수는 393개였다. 홈런 감소에도 희생번트는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도루 역시 마찬가지. 올 시즌 리그 도루 합계는 313개로 144경기 959개 페이스다. 2017시즌(778개), 2018시즌(928개)보다는 많지만 1000개 이상을 기록했던 2014~2016시즌보다는 적다. 주루기회 대비 도루시도율은 6.4%로 홈런이 펑펑 쏟아져 나왔던 지난해와 같은 수치다.

도루는 실패하면 잃는 것이 많은 ‘고위험 저수익’ 플레이다. 도루 시도가 잦은 선수는 온갖 부상 위험에 항상 노출된다. 통계를 근거로 도루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세이버메트릭스의 시조새 빌 제임스는 아예 도루 성공률이 70% 이하라면 절대로 시도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구루’ 톰 탱고가 쓴 ‘The Book’에선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메이저리그 기록을 토대로 주자 1루에서 도루 성공시 기대득점이 평균 0.175점 추가되지만, 도루가 실패하면 0.467점이 깎인다고 봤다. 성공해서 얻는 것에 비해, 실패했을 때 손해가 막심한 게 도루다.

도루성공률은 향상됐는데, 3루 도루도 늘었다…이유는?

올 시즌 3루 도루를 적극적으로 시도 중인 고종욱(사진=SK)
올 시즌 3루 도루를 적극적으로 시도 중인 고종욱(사진=SK)

눈에 띄는 건 올 시즌 도루시도율은 제자리걸음인 데 비해, 리그 도루성공률은 예년보다 훨씬 향상됐다는 점이다. 올 시즌 리그 도루 성공률은 71.3%로 KBO리그 역대 2위 기록이다. 올 시즌보다 리그 도루 성공률이 높았던 시즌은 71.6%를 기록했던 2009년밖에 없었다. 2009년은 이대형(64도루), 정근우(53도루), 이택근(43도루), 이종욱(37도루) 김주찬(34도루) 등 ‘대도’들이 치열한 도루 경쟁을 펼쳤던 시즌이다.

공인구 교체에 따른 홈런과 장타율 감소가 더 많은 도루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구단들은 도루실패에 따르는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는 길을 찾아 나가고 있다. 무모한 도루 시도보다는 투수의 투구폼과 슬라이드 스텝, 포수의 팝타임, 볼배합 등을 철저하게 분석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만 도루를 시도하고 있다. 반면 죽을 위험이 높거나, 뛰면 안 될 상황에선 주자의 움직임을 억제한다.

2014년부터 올 시즌까지 도루 관련 기록(통계=스탯티즈)
2014년부터 올 시즌까지 도루 관련 기록(통계=스탯티즈)

흥미로운 건 이처럼 도루성공률을 중시하는 흐름 속에 3루 도루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단 점이다. 20일 현재까지 시즌 3루 도루 수는 38개. 144경기로 환산하면 116개로, 121개를 기록한 2015시즌 이후 최고치를 기록할 기세다. 언뜻 생각하면 ‘확률 높은 도루’와 ‘3루 도루’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원래 3루 도루의 성공률이 꽤 좋은 편입니다.키움 조재영 주루코치의 말이다. 투수 중에서도 3루 도루가 가능한 투수가 있고, 안되는 투수가 있습니다. 쉬운 투수의 경우엔 2루 도루보다 오히려 3루를 가는 게 더 쉬울 수도 있어요. 투수 습관을 포착해서 뛰면 되거든요.

조 코치의 말대로 올 시즌 3루 도루 성공률은 무려 84.4%로 2015시즌(77.1%)보다도 높다. NC와 삼성, 한화는 3루 도루 100% 성공률을 기록했고 롯데(75%)를 제외한 모든 구단이 80% 이상의 3루 도루 성공률을 기록 중이다.

한 야구인은 이를 ‘견제의 까다로움’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1루 견제는 1루수가 베이스를 지키고 있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다. 좌완투수라면 셋포지션에서 1루 주자를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주자를 묶어두기가 매우 용이하다. 하지만 2루로 견제를 하려면 투수와 유격수 간의 호흡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데다, 견제 동작 자체도 1루보다 까다로운 편이다.” 수비 시프트의 증가로 키스톤 콤비가 2루 베이스를 사수하기 어려워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또 하나의 원인은 좌완투수의 증가다. ESPN의 팀 커크쟌(Tim Kurkjian)은 과거 칼럼에서 “좌완투수의 증가가 3루 도루의 증가를 낳는다. 보통 좌완투수는 3루 도루에 취약한 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같은 칼럼에서 래리 보와는 “좌투수 상대 3루 도루가 훨씬 쉽다”며 “주자가 리드할 때 투수는 머리를 돌려서 주자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올 시즌 2개 이상 3루 도루를 허용한 선수 6명 가운데 5명이 좌완(브룩스 레일리, 차우찬, 김범수, 임준섭, 김기훈)이다. 지난 시즌에도 차우찬이 4개로 3루 도루 최다허용을 기록했고, 라이언 피어밴드와 펠릭스 듀브론트가 3개의 3루 도루를 허용한 바 있다.

최근 포수들 중에는 주자 1, 2루 상황에서 더블 스틸이 나오면 3루 대신 2루로 던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조재영 코치의 말이다.3루는 투수 폼만 뺏어도 살 확률이 높거든요. 반면 1루 주자는 2루 주자 움직임을 보고 늦게 출발할 때가 많아서 오히려 죽을 위험성이 있죠. 그래서인지 포수들이 요새는 3루를 버리고 2루에 던져요.

도루성공률 향상+3루 도루 증가=도루도 ‘저비용 고효율’ 시대

이제 주자들은 성공률이 높은 상황에서만 뛴다. 한편으로는 3루 도루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이제 주자들은 성공률이 높은 상황에서만 뛴다. 한편으로는 3루 도루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조재영 코치는 “지난 시즌까지는 타고투저 경향이 강해 굳이 3루까지 도루를 시도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주자 2루 득점 찬스를 굳이 아웃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3루로 바꿀 이유가 없었단 얘기다.

하지만 올 시즌엔 상황이 달라졌다. 조 코치는 올 시즌엔 3루로 갈 수 있는 선수들은 시도를 많이 하는 것 같다. 1사 2루와 1사 3루는 상대에게 주는 압박감이 전혀 다르다. 능력 있는 주자들은 2루를 넘어 3루까지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노아웃 상황에서 뛰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퀄리티 높은 도루의 효과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5월 1일 SK와 키움의 경기에서 나왔다. 이날 SK는 0대 0으로 맞선 8회말 무사 2루 찬스에서 고종욱에게 과감한 3루 도루를 지시했다. 무사 2루는 무사 3루 상황이 됐고, SK는 선취점에 이어 추가점까지 뽑아내며 승리를 거뒀다. 염경엽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 “상대 투수 김상수가 변화구를 던질 타이밍이라 보고 도루 사인을 냈다”고 밝혔다.

SK는 상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도루 성공률이 높은 상황을 포착했고, 통념상 금기로 여겨지는 무사 2루에서 3루 도루를 과감하게 시도해 성공을 거뒀다. 도루의 ‘퀄리티’를 중시하는 올 시즌 야구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많이만 뛰면 많이 죽어도 잘 뛴다고 인정받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발야구도 ‘저비용 고효율’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