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민철과 유희관, 리그 대표 '느린공' 투수들의 맞대결에서 유희관이 판정승을 거뒀다(사진=KT, 두산)
금민철과 유희관, 리그 대표 '느린공' 투수들의 맞대결에서 유희관이 판정승을 거뒀다(사진=KT, 두산)

[엠스플뉴스=수원]

두산 베어스 좌완 유희관은 리그에서 가장 느린 공을 던지는 투수로 통한다. 올 시즌 패스트볼 평균구속 128.4km/h로 리그 규정이닝 투수 가운데 구속 최하위. 패스트볼 구속이 같은 좌완인 KIA 양현종의 체인지업(128.7km/h)보다도 느리다. 하지만 활약만큼은 강속구 투수들 못지 않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6시즌 연속 두자리 승수에 두산 프랜차이즈 좌완 역대 최다승(78승)의 주인공이다.

KT 위즈 좌완 금민철도 공 느리기론 둘째라면 서러운 투수다. 금민철은 일반적인 포심 패스트볼이 아닌, 자연 커터성 공을 던진다. 통계사이트에서 슬라이더로 분류하는 이 공이 지난 시즌엔 평균 131.5km/h를 기록했고, 올해는 평균 129.1km/h에 그쳤다. 그러나 이렇게 느린 공을 갖고서도, 지난해와 올 시즌 2년 연속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 중인 금민철이다.

리그에서 가장 느린 공을 던지는 두 ‘흑마구’ 투수가 5월 23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최근 상승세인 유희관의 판정승. 지난 16일 잠실 삼성전에서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거둔 유희관은 이날도 무실점 호투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좀처럼 130km/h를 넘는 법이 없는 유희관의 공을 KT 타자들은 좀처럼 공략하지 못했다. 유희관은 느린 포심을 던진 뒤 커브 등 더 느린 공을 던져 효과구속을 활용했고, 몸쪽 바짝 붙는 공 뒤에 바깥쪽 멀리 달아나는 공을 이어던지며 스트라이크존 전체를 넓게 활용했다.

위기는 몇 차례 있었다. 2회엔 1사후 연속안타로 1, 2루 위기를 맞았고 3회에도 1사 1루와 2사 1, 2루 위기가 찾아왔다. 4회에도 선두타자 유한준에 2루타를 맞고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냈다. 그러나 고비 때마다 패스트볼 뒤에 더 느린 커브와 체인지업을 적재적소에 던져서 타자 배트를 이끌어냈고, 범타로 위기를 모면했다.

가장 큰 위기는 6회에 찾아왔다. 유희관은 선두타자 강백호의 잘 맞은 타구에 왼쪽 발등을 정통으로 맞고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발등에 맞고 튄 공이 1루수 뒤쪽까지 굴러갈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은 유희관은 한동안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유희관은 트레이너 도움으로 발목과 발등을 테이핑한 뒤 계속해서 공을 던지는 투혼을 발휘했다. 3루쪽 두산 관중석은 물론 1루쪽 KT 응원석에서도 큰 박수가 터져나온 순간이다. 여기서 행운도 따랐다. 강타자 멜 로하스가 초구에 친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2루수 정면으로 향하며 1아웃. 이어 앞서 안타 2개를 맞았던 유한준을 유격수쪽 병살타로 잡아내며 실점 없이 위기를 넘겼다.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유희관은 6번부터 8번까지 세 타자를 모두 뜬공으로 처리하며 이날의 임무를 마쳤다. 7이닝 5피안타 1볼넷 무실점. 삼성전 2회부터 이날 7회까지 15이닝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아웃카운트 21개를 잡을 동안 삼진이 하나도 없는 궁극의 ‘맞혀잡기’도 인상적이었다. 총 투구수는 107구. 패스트볼 최고구속은 132m/h를 기록했다.

금민철의 호투도 만만치 않았다. 금민철은 1회 2사후 김재환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내준 뒤 만루 위기에 몰렸지만, 오재일 상대로 느린 브레이킹 볼을 던져 외야 뜬공으로 잡고 피해를 최소화한 가운데 1회를 마쳤다. 이후 6회까지 무실점 행진을 펼쳐 이날 승리조 가동이 어려운 불펜진의 소모를 최소화했다.

특유의 커터성 빠른볼이 이날은 스트라이크 존 안에서 효과적으로 구사되면서, 5구 이내 빠른 카운트에서 승부가 이뤄졌다. 4회 들어 투구수가 갑자기 늘어났지만 실점 없이 잘 넘어갔고, 6회엔 2사후 볼넷과 안타로 득점권에 주자를 내보냈지만 오재일을 내야 땅볼로 잡고 실점하지 않았다. 6이닝 4피안타 1볼넷 4탈삼진 1실점. 지난 17일 삼성전 1.2이닝 4실점 조기강판의 아쉬움을 말끔히 씻는 호투였다.

그러나 유희관도, 금민철도 이날 투수전의 승리자가 되진 못했다. 9회까지 0대 2로 끌려가던 KT는 2사 1, 2루에서 터진 황재균의 우중간 동점 2루타로 경기를 2대 2 원점으로 되돌렸다. 황재균의 한 방으로 유희관의 시즌 3승은 허공으로 날아났고, 금민철은 시즌 4패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경기는 2대 2 동점인 가운데 연장전에 돌입했다.

배지헌 기자 jhap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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