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일정 약 40% 소화, 완연한 투고·타저 흐름 보인다
-현장은 공인구 반발계수 저하 체감, “타구가 확실히 안 뻗는다.”
-“떨어진 타격 지표에 타자들은 심리적 위축, 목표치 현실적으로 바꿔야”
-“최근 몇 년간 타자들이 큰 이득, 투수도 숨 쉬고 살아야 한다.”

올 시즌 KBO리그 공인구 반발계수 저하는 리그 타자들의 타격 지표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올 시즌 KBO리그 공인구 반발계수 저하는 리그 타자들의 타격 지표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공인구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있는 듯 없는 듯 애매했던 날카로운 발톱이 드러난 분위기다. 설마 했던 타자들은 아연실색에 빠졌다. 특히 거포들은 뻗지 않는 타구에 남몰래 속앓이를 한다. “좋았던 때는 다 갔네요.” 더그아웃에 앉아 그라운드를 응시하던 한 타자의 넋두리가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올 시즌을 앞두고 공인구 반발계수를 낮추는 변화에 나섰다. 반발계수는 충돌 뒤 상대 속도를 충돌 전 상대 속도로 나눈 숫자다. 공이 방망이에 맞은 뒤 얼마나 빨리 튕겨 나가는지를 계산한 숫자다.

지난해까지 KBO 공인구의 반발계수 허용 범위는 0.4134~0.4374였다. 하지만, 타고·투저 흐름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자 KBO는 공인구 반발계수 조정을 택했다. KBO는 올 시즌부터 공인구 반발계수 허용 범위를 일본프로야구(NPB)와 같은 수준인 0.4034~0.4234까지 줄였다.

달라진 공인구를 향한 올 시즌 초반 현장의 시선은 반신반의였다. 대부분 선수의 반응은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걸 못 느끼겠다”였다. 하지만, 선수들은 시즌이 진행될수록 달라진 공인구의 위력을 직접 체감하기 시작했다. 타구가 뻗지 않는 흐름이 이어지며 리그 전반적인 타격 지표가 지난해와 비교해 하락세로 돌아섰다.

공인구 반발계수 위력 확인할 수 있는 올 시즌 타격 지표들

최근 8시즌 동안 리그 총 홈런 개수. 올 시즌 리그 총 홈런 개수는 지금 흐름이 유지될 시 나올 수 있는 예상 숫자다(표=엠스플뉴스)
최근 8시즌 동안 리그 총 홈런 개수. 올 시즌 리그 총 홈런 개수는 지금 흐름이 유지될 시 나올 수 있는 예상 숫자다(표=엠스플뉴스)

최근 8시즌 동안 리그 전체 타석당 홈런 비율. 리그 총 홈런 개수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표=엠스플뉴스)
최근 8시즌 동안 리그 전체 타석당 홈런 비율. 리그 총 홈런 개수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표=엠스플뉴스)

최근 8시즌 동안 리그 장타율 변화 지표. 최근 타고·투저 흐름은 2014년부터 시작해 2018년까지 유지되는 분위기였다(표=엠스플뉴스)
최근 8시즌 동안 리그 장타율 변화 지표. 최근 타고·투저 흐름은 2014년부터 시작해 2018년까지 유지되는 분위기였다(표=엠스플뉴스)

올 시즌 인플레이 타구 비율의 하락은 더 극적이다. 6년 전 BABIP 숫자와 비슷해진 올 시즌 지표다(표=엠스플뉴스)
올 시즌 인플레이 타구 비율의 하락은 더 극적이다. 6년 전 BABIP 숫자와 비슷해진 올 시즌 지표다(표=엠스플뉴스)

위의 표와 같이 리그 총 홈런 개수·타석당 홈런 비율·장타율·인플레이 타구 비율(BABIP) 등 공인구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타격 지표들이 모두 올 시즌 하락세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타고·투저 흐름이 시작된 해로 꼽히는 2014시즌부터 시작해 2018시즌까지는 압도적인 타격의 시대였다. 타고·투저의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 기록과 비교하면 더 극적인 올 시즌 변화다.

2012시즌부터 2018시즌까지 공인구 반발계수 허용 수치가 똑같았단 점을 고려하면 2014시즌부터 공인구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단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다. 공인구 반발계수 허용 범위가 다소 줄어든 올 시즌 들어 리그 전체 타격 지표의 추락을 본다면 그 의심은 확신으로 바뀔 수 있다.

타자들의 어려움은 더 가중됐다. 지난해 시즌 3할 타자 ‘34명’이라는 숫자는 6월 3일 기준으로 올 시즌엔 ‘22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물론 지난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16명, NPB에선 20명에 불과했던 시즌 3할 타자 숫자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투·타 평준화가 이뤄졌단 시선도 존재한다.

솔직히 투수인 나도 공인구 반발계수 영향을 시즌 초반엔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선 공인구가 바뀌며 야구의 투·타 평준화가 이뤄진 듯싶다. 사실 지난해 시즌 3할 이상을 기록한 KBO리그 타자들이 엄청나게 많았지 않나. 메이저리그 3할 타자 숫자와 비교하면 더 도드라진 숫자였다. 새 공인구가 KBO리그에서 투·타 평준화로 이끄는 역할을 맡은 느낌이다. 두산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의 말이다.

공인구 반발계수 하락에 울상 짓는 거포들

지난해 시즌 43홈런을 기록한 SK 외국인 타자 로맥은 공인구 반발계수 저하로 올 시즌 타구가 잘 뻗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시즌 43홈런을 기록한 SK 외국인 타자 로맥은 공인구 반발계수 저하로 올 시즌 타구가 잘 뻗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무엇보다 홈런을 노리는 거포 타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치는 순간 넘어갔다 싶은 타구들이 다 펜스 앞에서 잡힌다”며 입을 모은다. 먼저 올 시즌 12홈런을 기록 중인 SK 와이번스 로맥은 지난해 시즌 43홈런 기록을 생각하면 홈런 생산 흐름이 다소 처진 상황이다.

로맥은 공인구가 가장 큰 변화를 준 게 맞다. 공격 지표가 뚝 떨어지는 것도 있고, 공이 멀리 날아가지 않는 느낌이 분명히 있다. 올 시즌 특히 펜스 앞에서 잡히는 타구 자주 나온다. 공인구가 바뀌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 타자들이 인정하고 적응해야 한다며 고갤 끄덕였다.

중장거리 타자인 KT WIZ 주장 유한준도 지난해 시즌 20홈런 기록을 생각하면 올 시즌 3홈런에 여전히 머무르는 점이 아쉽다. 유한준은 공인구 변화 효과를 확실히 느낀다. 이건 넘어갔다 싶은 게 잡히더라. 그래서 시즌 초반에 더 강하게 치려다가 타격 밸런스까지 흔들렸다. 다른 타자들도 똑같은 환경이니까 그냥 인정하고 타구가 안 날아가면 이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두산 외야수 김재환과 키움 외야수 제리 샌즈도 “올 시즌 타구가 뻗질 않는다. 지난해보다 홈런 페이스가 확실히 느리다”며 입을 모았다.

뻗지 않는 타구로 발생한 홈런 감소는 거포들에게 큰 심리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두산 이도형 타격코치는 타자들은 지난해까지 타고·투저 흐름에서 나온 성적을 토대로 올 시즌 목표치를 설정했을 거다. 그런데 공인구 변화로 확연히 떨어진 성적이 나오니까 타자들은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 굳이 무언가 바꿔보려고 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면도 있다. 시즌 중반 타격 자세나 스윙 궤도에 큰 변화를 주는 것도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타자들이 투고·타저 흐름에 맞게 목표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KT 이강철 감독은 공인구 변화와 더불어 리그 투수진의 자신감도 높아지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이 감독은 투수들이 맞아도 홈런이 덜 나온다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공을 던지니까 타자들을 이길 힘이 나온다. 또 전체 구단의 외국인 투수진 수준이 올 시즌 상당히 높아졌다. 대부분 외국인 투수의 구위가 상대 타자들을 압도한다. 물론 여름이 다가오며 투수들의 힘이 조금 떨어질 때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한 가지 변수는 공인구 효과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단 점이다. 이미 KBO리그 공인구 제조사인 ‘스카이라인’은 올 시즌 두 차례 KBO 불시 공인구 반발계수 검사에서 모두 반발계수 불량 공이 적발됐다. 새롭게 정해진 반발계수 범위를 초과한 일부 시료가 나왔는데 ‘제재금 징계’를 받은 스카이라인은 향후 만들어지는 공인구의 반발계수를 더 줄이고자 노력해야 한다. 결국, 앞으로 나올 공인구는 지금 사용되는 공인구보다 조금이라도 더 반발계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타자들이 겪는 고난이 더 커질 수도 있단 뜻이다.

물론 이렇게 타자들이 울상을 짓더라도 반대로 투수들은 ‘방긋’ 웃을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올 시즌 전 한 감독은 “최근 몇 년간 타고·투저 흐름에서 타자들이 이득을 많이 본 건 사실이지 않나. 이제 투수들도 숨을 쉬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투고·타저 흐름이 올 시즌 끝까지 유지될지, 그리고 타자들이 생존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마련할지 궁금해진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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