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베테랑 내야수 이범호 은퇴 선언

-통산 2천경기 출전 눈앞에 둔 역대 최고 3루수

-KIA 구단, 통산 1995경기 이범호에 2천경기 선사할 예정

-모든 야구팬에게 즐거움과 행복 선사한 ‘꽃범호’

동갑내기 김주찬과 포옹하는 이범호(사진=KIA)
동갑내기 김주찬과 포옹하는 이범호(사진=KIA)

[엠스플뉴스]

KIA 타이거즈 베테랑 내야수 이범호는 ‘꽃길’ 같은 야구 인생을 살았다.

대구고를 졸업하고 2000 신인드래프트 2차 1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2009년까지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두 차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해 세계 야구팬에 이름을 알렸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으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해 국외 무대까지 경험했다. 2011년 KIA에 입단해 중심타자로 활약했고, 2017시즌엔 우승 반지까지 손에 넣었다.

이범호의 꽃길은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스스로가 개척해 만든 것이다. 이범호는 선수 생활 내내 누구보다 꾸준했고, 누구보다 건강했다. 풀타임 선수가 된 2002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한 시즌(2012년 42경기)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강철 체력을 자랑했다.

거의 매년 0.270 이상의 타율과 20개 이상의 홈런을 보장하는 ‘계산이 서는’ 선수이기도 했다. 중요한 상황에 이범호가 타석에 있으면 뭔가 한 방 터질 것 같은 기대가 생겼다. 타고난 체력과 신체 능력, 여기에 철저한 자기관리가 더해지면서 이범호의 꽃길은 30대 후반까지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범호도 세월의 무게를 피해갈 순 없었다. KIA는 6월 18일 “이범호가 구단과 면담을 통해 현역 은퇴 의사를 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시즌 전 찾아온 햄스트링 부상이 원인이다. 누구보다 건강하고 꾸준했던 이범호의 커리어가 부상 때문에 끝을 맺게 된 아이러니다.

2천경기, 3루수 최다홈런, 최다 만루포…이범호의 화려한 기록 꽃길

누구보다 꾸준하고 강했던 남자 이범호(사진=엠스플뉴스)
누구보다 꾸준하고 강했던 남자 이범호(사진=엠스플뉴스)

KIA 구단은 이범호에게 은퇴식 전까지 ‘2천경기 출전’ 기록 달성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6월 19일 기준 통산 1995경기에 출전한 이범호는 5경기만 더 채우면 역대 13번째 ‘2천경기’ 선수가 된다.

이범호는 2천경기 외에도 다양한 기록으로 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다. 통산 329개 홈런으로 역대 5위에 이름을 올렸고, 1125타점으로 역대 8위에 올라 있다. 3071루타도 KBO리그 역대 10위 기록이다. 역대 22위에 해당하는 통산 1726안타는 남은 경기 활약에 따라 21위(이숭용, 현 KT 단장)로 올라설 가능성도 있다.

이범호는 친정 한화에서 160홈런, KIA에서 169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KBO리그 역사상 2개 구단에서 각각 100홈런 이상을 때린 역대 4번째 선수다. 또 17개를 기록한 통산 만루홈런은 KBO리그 역대 1위 기록으로, 은퇴한 역대 2위 심정수(12개)를 멀찍이 앞서 있다. 당분간 깨기 힘든 기록이다.

KBO리그 역대 3루수 기록도 상당 부분 이범호의 차지다. 역대 3루수 최다홈런(329개)을 비롯해 최다 경기출전 2위(1위 정성훈 2223경기), 최다안타 2위(1위 정성훈 2159안타), 최다타점 1위(1125점)에 이름을 올렸다.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 기준으로는 57.35승으로 역대 타자 11위이자 3루수 3위(1위 김동주, 2위 최 정)다. 2000년대에는 김동주, 2010년대에는 최 정 때문에 정상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3루수로 역사에 남을 기록을 쌓아 올린 이범호다.

특히 이범호의 진가는 포스트시즌 큰 경기에서 빛을 발했다. 이범호의 통산 준플레이오프 홈런은 7개로 역대 최다 기록이다. 포스트시즌 통산 홈런은 10개. 이 가운데는 KIA가 우승을 차지한 2017 한국시리즈에서 기록한 만루홈런도 포함된다.

모든 야구팬이 사랑한 남자 ‘꽃범호’

꽃범호 비긴즈. 2007 준플레이오프 당시 방송 화면(사진=화면캡쳐)
꽃범호 비긴즈. 2007 준플레이오프 당시 방송 화면(사진=화면캡쳐)

이범호가 포스트시즌에서 날린 많은 홈런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있다. 한화 시절인 2007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오승환 상대로 때린 홈런이다. 당시 경기 중계방송사는 홈런을 때린 이범호를 클로즈업한 뒤, 화면 테두리를 ‘꽃’으로 장식해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엔 온통 ‘이범호’ ‘꽃범호’가 오르내렸고, ‘꽃범호’는 이범호 하면 떠오르는 공식 별명으로 굳어졌다. 이후 이범호가 2009 WBC에서 맹활약으로 ‘전국구 스타’가 되면서, 나중엔 야구팬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모두 꽃범호란 별명을 알 정도가 됐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에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그를 향한 팬들의 애정이 담긴 표현이다.

야구선수 대부분은 주로 소속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사랑과 환호를 받는다. 응원팀 불문 남녀노소 모든 야구팬의 사랑을 받는 선수는 ‘레전드급’ 스타 선수 중에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이범호는 달랐다. 한화와 KIA만이 아닌, 모든 야구팬의 애정을 듬뿍 받는 선수가 이범호였다. 응원팀 상대로 잘해도 왠지 밉지가 않았고, 잘하는 모습을 보면 응원하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었다.

이범호의 전성기는 프로야구가 2000년대 초 침체를 벗어나 도약의 시기를 맞이한 기간과 일치했다. 전 경기 중계방송 시대가 열린 뒤, 프로야구는 매일 새로운 이야깃거리와 화제를 쏟아내며 팬들을 끌어들였다. 팬들은 선수들의 영상과 사진을 갖고 재미난 별명을 붙이고, 기발한 ‘밈(meme)’을 만들며 놀았다.

그라운드에서 언제나 다채로운 표정과 재미난 행동을 보여주는 이범호는 ‘밈’ 제작자는 방송과 미디어 제작진에게도 고마운 존재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지켜보는 야구팬들을 즐겁게 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매력이 넘쳤다. 물론 장쾌한 홈런포와 클러치 타격으로 응원팀 팬들에게 선사한 행복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범호의 은퇴식은 7월 13일 광주에서 친정 한화전 때 열릴 예정이다. 꽃이 진 뒤에야 범호인 줄 안다고 했던가. 은퇴식이 끝나고 나면, 많은 야구팬이 이범호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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