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투수 고영창, 올 시즌 필승조 깜짝 활약
-31살 늦깎이 투수로 첫 풀타임 시즌, 투심 패스트볼 ‘올인’ 통했다
-“이제야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된 듯싶어 뿌듯하다.”
-“거창한 기록 목표보단 내 이름을 팬들에게 더 알리고 싶다.”

31살의 나이에 첫 1군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KIA 투수 고영창. 조금 늦었기에 야구를 향한 고영창의 간절함은 더 커졌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31살의 나이에 첫 1군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KIA 투수 고영창. 조금 늦었기에 야구를 향한 고영창의 간절함은 더 커졌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지난해 7월 27일 대구 라이온즈파크. 2013년에 입단한 KIA 타이거즈 투수 고영창은 데뷔 7년 차에 처음으로 1군 마운드에 올랐다. 이날 고영창의 등판 결과는 아웃 카운트를 단 한 개도 잡지 못한 채 1피안타 1볼넷 2실점으로 부진했다. 고영창은 이틀 뒤 두 번째 등판에서도 0이닝 3피안타 1사구 4실점으로 무너지며 고갤 숙였다.

지난해 고영창의 1군 기록은 이렇게 두 차례 등판이 전부였다. 30살에서야 1군 데뷔전을 치른 고영창은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한 투수가 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KIA 서재응 투수코치는 당시 ‘라팍’ 불펜에서 몸을 풀던 고영창의 공을 언뜻 보며 영감이 떠올랐다. ‘이 공만 잘 가다듬으면 통하겠는데’라는 생각이었다.

서 코치의 눈을 사로잡은 고영창의 그 공은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그 이후 지난해 가을 마무리 캠프에 합류한 서 코치는 고영창에게 ‘투심볼러’로 전향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강속구를 자존심으로 생각하던 고영창은 고심 끝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투심볼러로 변화를 택했다.

그 변화의 결과는 놀라운 수준이다. 변변한 1군 활약이 없었던 31살 투수 고영창은 올 시즌 팀의 필승조로 순식간에 거듭났다. 올 시즌 고영창은 34경기(29.2이닝)에 등판해 2패 1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 4.55 14탈삼진 9볼넷을 기록 중이다. 서 코치의 권유로 더 강해진 고영창의 투심 패스트볼은 타자들의 빗맞은 땅볼 타구를 무수히 생산하는 상황이다. 올 시즌 고영창의 땅볼(42개)/뜬공(31개) 비율은 1.36이다. 고영창도 맞춰 잡는 재미를 이제야 깨달았다.

무엇보다 고영창이 가장 뿌듯해하는 건 부모의 반응이다. 이제 떳떳하게 ‘내 아들이 KIA 선수’라고 자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본 고영창의 얼굴엔 효심이 가득 차 있었다. 올 시즌 반짝이 아닌 꾸준한 활약으로 자리 잡아 챔피언스 필드에 자신의 대형 사진이 당당하게 걸릴 날을 기다린단 고영창의 얘길 엠스플뉴스가 직접 들어봤다.

이제야 맞춰 잡는 재미를 느낀 ‘투심볼러’ 고영창

서재응 코치(왼쪽)는 지난해 고영창의 1군 불펜 투구를 언뜻보고 투심 패스트볼의 성공 가능성을 느꼈다. 고영창(오른쪽)은 서 코치의 설득으로 투심볼러로 변신했다(사진=KIA)
서재응 코치(왼쪽)는 지난해 고영창의 1군 불펜 투구를 언뜻보고 투심 패스트볼의 성공 가능성을 느꼈다. 고영창(오른쪽)은 서 코치의 설득으로 투심볼러로 변신했다(사진=KIA)

10일 휴식(6월 10일~19일)이 보약이 된 느낌이다. 공에 다시 힘이 붙었다.

서재응 코치님이 10일 정도 쉬고 오라고 말씀하셔서 푹 쉬고 왔다. 확실히 쉬니까 구위가 다시 좋아졌다. 힘이 떨어진 걸 이번에 처음 느꼈는데 ‘이러면 맞는구나’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 전화위복이 됐다.

쉬는 동안 마음이 100% 편하진 않았겠다.

사실 무서웠다. 힘들게 잡은 기회인데 돌아오면 내 자리가 다시 없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다행히 서재응 코치님께서 긍정적인 말씀과 믿음을 주셔서 마음 편히 쉬다 왔다.

오랜 기간 2군 생활을 했기에 더 불안했던 면이 있었겠다.

이번에 (김)승범이도 2군에서 힘들게 연습하다가 1군에 왔는데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해 1군에서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못 잡은 나보단 낫다고 위로해줬다(웃음). 가끔 지난해 1군 데뷔전 투구 영상을 보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공을 던졌다. 타자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데 급급했다. 진짜 바보 같이 던졌다. 승범이도 사인을 제대로 못 보고 던지더라. 계속 1군에 적응하다 보면 잘 던질 거라고 위로해줬다. 아깝고 화도 날 텐데 다시 1군에 바로 올라오겠다고 씩씩하게 말해 보기 좋았다.

고영창 선수도 이렇게 다시 1군으로 올라와 필승조 자리를 차지했지 않나.

지난해 다시 2군으로 내려갔을 때 정말 답답했다. ‘내가 다시 1군에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시즌에 이렇게 중요한 상황에 올라가는 역할을 맡을지 생각도 못 했다. 추격조라도 맡고 싶은 바람뿐이었다. 그저 1군에 있는 게 즐겁고 마운드에 올라가는 게 재밌다. 위기 상황에서 등판이라도 나에겐 기회라는 생각이 더 크다. 이제 위기를 막고 싶단 생각이 더 간절하다.

투심 패스트볼이 반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어떻게 투심 패스트볼을 주 무기로 결정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마무리 캠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그런 투수라고 자신을 스스로 생각했다. 최고 구속 147~148km/h까지 나왔던 포심 패스트볼 구속을 더 올려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150km/h가 안 나오면 실패한단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재응 코치님께서 마무리 캠프 때 나를 설득하셨다.

어떤 설득?

코치님께서 ‘최근엔 150km/h 포심 패스트볼을 던진다고 타자들에게 안 맞는 게 아니다. 150km/h 포심 패스트볼을 잘 던질 수 있는 투수들은 따로 있다. 차라리 투심 패스트볼을 활용한 다른 방향으로 가보자’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처음엔 자존심도 상했다. 구속을 포기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투심 패스트볼은 내가 잘 던진 게 아니라 타자들이 잘 못 쳐서 아웃 카운트를 잡는 구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코치님 말을 믿고 투심 패스트볼에 ‘올인’하기로 했다.

그 말대로 투심 패스트볼 비중(78.6%)이 확 늘었다.

이제 타자들이 투심 패스트볼만 노리고 있더라. 그래서 최근엔 슬라이더나 커브 등 다른 변화구를 더 섞어 던지려고 노력한다. 특히 (송)은범이 형이 지난해 투심 패스트볼을 사용하는 걸 보며 많이 배웠다. 은범이 형은 슬라이더를 더 던지며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더라. 나는 커브까지 더해 타자들의 타이밍을 흔들리게 하려고 한다.

맞춰 잡는 재미를 이제 느끼는 듯싶다.

(고갤 끄덕이며)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고 나니까 이제 삼진이 아니라 땅볼로 타자들을 잡는 결과가 더 좋다. 올 시즌 한화 이글스 원정 경기에서 노아웃 만루 위기에서 올라가 병살타 뒤 땅볼 범타로 위기를 탈출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예전엔 땅볼이 나오면 ‘타자가 내 공을 쳤구나’라는 생각이었는데 이젠 ‘타자가 내 공에 당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게 달라진 점인 듯싶다. 물론 아직도 이 자리가 내 자리라고 확실하게 생각 안 한다. 후배 투수들이 치고 올라올 수 있기에 항상 좋은 공을 던지고자 최선을 다하겠다.

“첫 풀타임 시즌에 투수조 NO. 2, 오히려 내가 더 배운다.”

고영창은 지난해 대구 원정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아웃 카운트를 단 한 개도 잡지 못한 채 2군으로 다시 내려갔지만, 고영창에겐 자양분이 된 실패의 경험이었다(사진=KIA)
고영창은 지난해 대구 원정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아웃 카운트를 단 한 개도 잡지 못한 채 2군으로 다시 내려갔지만, 고영창에겐 자양분이 된 실패의 경험이었다(사진=KIA)

뒤늦게 1군 무대에 올라온 게 이유지만, 첫 풀타임 시즌인데 투수조에서 양현종 선수에 이어 ‘NO. 2’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솔직히 지금 이런 위치에 있는 게 나는 어렵다. 사실상 올 시즌이 1군 첫 풀타임 시즌인데 동생들이 1군 경험이 더 많은 상황이다. 그래서 동생들에게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운다. 이렇게 1군의 빡빡한 일정 속에서 매일 대기하는 불펜 투수로서 팔 관리하는 방법도 동생들에게 조언을 얻었다.

투수조 최선참인 양현종 선수도 많이 도와주겠다.

(양)현종이 형은 평소 정신무장을 강조한다. ‘이럴 땐 네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공을 던져야 한다’고 종종 조언해주는데 그때 힘이 저절로 나더라. 사실 현종이 형을 지금 볼 때마다 신기하다. 해마다 현종이 형은 스프링 캠프에서만 볼 수 있었던 존재였다(웃음). 올 시즌 개막전 때 현종이 형 다음 순서로 마운드에 올라갔는데 그게 안 믿기더라. 1군에서 현종이 형이랑 같이 야구하니까 뿌듯하다.

가장 말을 잘 듣거나 챙겨주는 후배가 누군지 궁금하다.

가장 말을 잘 듣는 동생은 룸메이트인 하준영이다. 평소에 너무 말이 없다(웃음). (박)준표와 (문)경찬이와도 친하게 지낸다. (임)기준이는 이종사촌 관계라 서로 은근히 많이 생각해주는 게 있다.

이종사촌이 같은 팀 1군 불펜에서 함께 활약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기준이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야구했으니까 서로 너무 잘 안다. 저번에 기준이가 남기고 간 주자를 내가 실점했는데 자책점이 늘어났다고 나를 째려보고 있더라(웃음). 기준이가 다음엔 내 자책점을 올려주겠다고 엄포했는데 다음 등판에선 내가 남기고 간 주자들을 잘 막아줬다. 그래서 곧바로 고맙다고 인사했다.

무엇보다 올 시즌 고영창의 활약을 가장 기뻐할 사람들은 부모가 아닐까.

(짧은 한숨을 내쉰 뒤) 내가 KIA 선수인데 주위 사람들이나 팬들이 잘 모르니까 그런 면에서 부모님께 정말 죄송했다. ‘우리 아들이 KIA 선수’라고 떳떳하게 얘길 못 하셨다. 집에 들어가도 괜히 부모님과 얘기도 피하고 거리가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올 시즌에 잘 풀리니까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신다. 특히 아버지께서 주위에 자랑을 너무 많이 하셔서 약간 부담스럽다(웃음).

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선 야구를 더 잘해야겠다.

‘영창이가 KIA 선수던데’라는 말만 들어도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신다. 기록적인 욕심보단 조금이라도 내 이름을 팬들에게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고영창’이라는 KIA 투수가 있단 걸 더 각인하고 싶다.

‘챔필’에 자기 사진이 크게 걸리는 날을 기다리는 고영창

고영창은 올 시즌 자신의 등번호 60번이 적힌 KIA 팬들을 보면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올 시즌 고영창의 활약상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사진=KIA)
고영창은 올 시즌 자신의 등번호 60번이 적힌 KIA 팬들을 보면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올 시즌 고영창의 활약상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사진=KIA)

시즌 9홀드를 기록 중인데 두 자릿수 홀드를 달성하면 더 이름을 알리지 않을까.

팀이 최근 상승세니까 시즌 10홀드도 자연스럽게 달성하지 않겠나. 데뷔 첫 홀드와 첫 세이브 공을 집 진열장에 고이 모셨다. 내가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싶어 얼떨떨하다. 1군에 이렇게 있는 모든 순간이 감사할 뿐이다. 아직 내가 야구를 잘한단 생각은 안 든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다고 생각해야 한다.

친구들이 ‘영창아 이제 너 FA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데 나는 38살이 돼야 FA가 된다(웃음). 그냥 1년 1년 열심히 야구하다가 KIA에서 현역 생활 마지막 순간까지 뛰고 싶다. 앞으로 보여드릴 게 더 많다. 1군에 계속 있으면서 한국시리즈 마운드에서 팀 우승을 위해 공을 던져보고 싶다.

2년 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할 당시엔 그저 지켜봐야 하는 위치였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다가 제대하고 나오니까 팀이 우승하더라. 그때 (임)기준이는 1군에 있었는데 정말 부러웠다.

야구를 향한 간절함이 더 커졌겠다.

(잠시 침묵 뒤) 팔꿈치 문제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고 모교 행정실에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근무했다. 집에서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챔피언스 필드를 지나가야 했다. 퇴근할 때마다 ‘챔필’에 불이 켜져 있고 기준이 사진이 야구장에 크게 걸려 있는 걸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큰 사진이 걸릴 날이 올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슬프기도 하고 화도 났다. 그래서 야구를 더 잘하고 싶단 욕심까지 생겼다.

올 시즌 활약만 보면 ‘챔필’에 고영창 선수의 큰 사진이 걸릴 만하다.

최근에 야구장을 한 바퀴 돌아봤는데 아직도 내 사진은 안 걸렸더라(웃음). 올 시즌에 자리 잡고 야구를 더 잘해야 걸리지 않을까. 얼른 내 사진이 ‘챔필’에 크게 걸릴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사진을 떠나 고영창 선수의 인기가 실감 나는 올 시즌이다. 고영창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KIA 팬들도 확 늘었다.

예전엔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만 팬들이 계셨는데 올 시즌 갑자기 팬들이 확 늘었다(웃음). 내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보면 정말 감사하고 신기할 뿐이다. ‘내 유니폼을 왜 사셨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최근에 잠실구장 원정 경기에서 KIA 팬들이 정말 많이 오셔서 뿌듯했다. 1군 복귀전이라 괜히 긴장되는 게 있었는데 팬들의 응원으로 힘을 얻었다.

그런 KIA 팬들에게 야구로 보답해야겠다.

거창한 목표를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본다. 올 시즌 홈경기에서 수훈 선수 인터뷰를 아직 못 했다. 우선 수훈 선수로 활약한 뒤 인터뷰 자리에서 KIA 팬들에게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항상 감사드린단 말씀을 팬들에게 드리고 싶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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