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고사 위기 대학야구 부흥 위해 입단테스트 시행

-80명의 선수 참가해 성황리에 개최…1차 합격자 10명 중에 최종 합격자 뽑는다

-근본적 문제는 고교 선수의 대학야구 기피…얼리 드래프트 도입해야

-구단 단장들도, 대학 감독들도 ‘찬성’…대학교 반대 설득하는 게 과제

9일 열린 LG 입단 테스트에 참가한 대학 선수들(사진=LG)
9일 열린 LG 입단 테스트에 참가한 대학 선수들(사진=LG)

[엠스플뉴스]

프로 구단으로서 대학야구를 살리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학야구가 워낙 안 되고 있으니까,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한 끝에 입단테스트를 실시하게 됐습니다.

고사 위기에 놓인 한국 대학야구를 위해 LG 트윈스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LG는 9월 9일 경기 이천 LG 챔피언스파크에서 육성선수 공개 입단 테스트를 실시했다. 이날 테스트는 대학야구 선수와 독립리그 선수 등 총 80명이 참가해 성황리에 진행됐다. 퓨처스 코칭스태프와 구단 스카우트는 물론 랩소도, 트랙맨 등 첨단 장비까지 동원해 선수 기량 평가에 나섰다.

이날 테스트를 지켜본 LG 퓨처스 관계자는 “오전부터 비가 내려 실내연습장에서 테스트를 치렀다. 참가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진지했고 절실함이 느껴졌다. 대학야구 감독들과 부모들도 굉장히 고마워하더라”고 전했다. 야구계에서도 LG가 프로 구단으로서 야구 발전을 위해 훌륭한 시도를 했다는 긍정 평가가 많다.


류중일 감독의 반문 “김현수는 왜 지명 못 받았을까?” 진흙 속의 진주는 존재한다

9일 열린 LG 입단 테스트는 80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됐다(사진=LG)
9일 열린 LG 입단 테스트는 80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됐다(사진=LG)

현재 한국 대학야구는 고사를 넘어 공멸 위기에 놓여 있다. 야구 잘하는 고교 선수들은 모두가 프로 직행을 바란다. 고교 선수와 학부모들에게 대학은 프로 지명을 못 받은 선수들이 프로 재도전을 위해 거쳐 가는 ‘패자부활전’ 취급을 받는다. 최근 2년제 대학 야구부로 선수가 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야구는 ‘그들만의 리그’가 된 지 오래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외진 곳에서 대회가 열리고, 스카우트는 물론 취재진도 야구장을 찾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학야구 경기가 언제 열렸는지, 누가 뛰고 어느 팀이 우승했는지도 모른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팀의 선택을 받는 대학 선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 20명에 이어 올해는 대졸 의무지명 규정을 도입했는데도 18명이 지명받는 데 그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단한 선수는 군 복무를 마치고 퓨처스를 거쳐 1군에 올라오면 어느새 20대 후반이 된다. 프로 구단 입장에선 큰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지금의 추세라면 대학야구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LG 차명석 단장은 대학야구의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야구인 중에 한 사람이다. 차 단장은 “대학야구를 위해 구단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은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다 입단 테스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다행히 구단 이규홍 대표이사께서도 좋은 아이디어라며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며 입단 테스트를 진행한 배경을 설명했다.

차 단장은 대학 선수들의 기량이 부족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열심히 하는 선수와 장점이 있는 선수에겐 한 번이라도 기회를 주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래야 대학 선수들도 동기부여가 되고, 테스트라는 마지막 기회를 위해 끝까지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했다.

LG 류중일 감독도 이런 구단의 움직임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10일 청주 한화전을 앞두고 만난 류 감독은 “진흙 속의 진주가 있다. 프로야구에 보면 육성선수 출신으로 성공한 선수가 적지 않다”고 했다. LG만 해도 김현수, 채은성, 이천웅 등 상위타선 3명이 육성선수 출신이다.

류 감독은 “김현수는 왜 프로 지명을 못 받았을까?”라고 반문했다. 김현수는 신일고 시절 이영민 타격상까지 받은 좋은 타자였지만 여러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끝에 프로팀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스카우트의 평가라는 세밀한 채로 한번 걸러내도 여전히 재능있는 선수가 남아있을 수 있단 얘기다.

류 감독은 삼성 시절 애제자였던 박해민의 사례도 언급했다. 박해민은 한양대 시절 대학리그 최고의 ‘대도’였지만, 역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11년 말 테스트를 통해 삼성 유니폼을 입었고, 이후 도루왕와 국가대표를 지내는 스타 플레이어가 됐다.

LG는 1차 테스트를 통해 10명의 1차 합격자를 추린 상태다. 차 단장은 “1차 합격자를 대상으로 2차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선수 선발은 스카우트와 코칭스태프에 일임한 상태다. 아직 확정적인 건 아니지만 최종 합격자는 2, 3명 이상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또 앞으로도 이런 행사를 정기적으로 이어갈 뜻도 밝혔다.


‘얼리 드래프트’ 도입에 프로 단장들도, 대학 감독들도 ‘찬성’

한국 대학야구는 현재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사진=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한국 대학야구는 현재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사진=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물론 입단 테스트가 대학야구를 살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현재 대학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의 재능과 기량이 뛰어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테스트를 지켜본 LG 관계자도 “테스트 전체를 본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인상적인 선수는 없었다”고 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한 이사는 “LG의 좋은 시도를 칭찬하고 싶지만 현재 대학야구엔 입단 테스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주말리그, 투명해진 체육특기자 입시, 최저학력제 시행으로 대학 선수가 더는 과거만큼의 경쟁력을 갖긴 어렵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고교 선수들이 대학 진학을 기피한다는 게 제일 큰 문제 아니겠나”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대학 2, 3학년도 프로 지명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얼리 드래프트’를 비롯한 제도 개선이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재능있는 고교 선수들이 프로 하위 지명보단 대학 진학을 택할 가능성이 커지고, 그만큼 대학리그의 수준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프로 입장에서도 기량과 인성 면에서 좀 더 성숙한 선수를 받을 수 있단 점에서 나쁠 게 없다. 대학과 프로, 선수들이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차명석 단장도 우리의 시도는 대학야구를 살리는 하나의 방안이다. 입단 테스트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차츰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 했다. 얼리 드래프트에 대해서도 차 단장은 “대학에서만 괜찮다면 찬성하는 입장”이라 밝혔다.

복수의 프로구단 단장들도 얼리 드래프트 도입이 대학야구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데 동의했다. 다만 대학 쪽에서도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는 게 문제다. 과거에도 얼리 드래프트 제안이 나온 적 있지만, 당시엔 대학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대학 감독 중에서도 ‘우리 선수를 프로가 빼간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대학 감독들의 기류가 크게 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엠스플뉴스 취재에 응한 여러 대학 감독은 “예전엔 반대했지만 이제는 찬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학 감독들 사이에서 리더로 통하는 한 감독은 “감독들과 얘길 나눠보면 열에 아홉은 얼리 드래프트에 찬성하는 입장”이라 했다.

다만 대학 감독들은 얼리 드래프트 도입 관련 학교를 설득하려면 그만한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취재 결과 먼저 얼리 드래프트를 도입한 프로배구, 프로농구의 경우 얼리로 나온 선수를 영입할 때 대학에 장학금 형식의 지원금을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프로농구 관계자는 “얼리 엔트리 도입 이후 관행적으로 대학에 지원금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지방 모 대학 감독은 “우리 학교는 운동부원에 대한 장학금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 장학금은 물론 훈련비까지 전액 지원한다. 많은 투자를 하며 키운 선수를 그냥 프로에 내주려 하진 않을 것 같다”며 “프로에서 2, 3학년 선수를 데려갈 때 일정한 보상이 이뤄진다면 학교를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수도권 대학 한 감독은 “사실 학교 입장에서 야구부는 계륵 같은 존재다. 다른 구기 종목은 프로 진출 시 학교에 일정한 지원금을 낸다. 반면 야구는 선수를 데려가도 학교에 아무런 보상이 없어, 야구부가 더 찬밥 취급을 받는다. 만약 2, 3학년 선수를 데려간다고 하면 더 저항감이 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만약 프로에서 지명 선수가 속한 대학에 대해 지원을 해준다면 학교에서도 흔쾌히 동의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대학 측의 이런 주장에 대해 프로 단장들의 입장은 엇갈린다. A구단 단장은 “사실 지원금액이 그리 크진 않을 것이다.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면 지원을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대학 선수 영입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조금은 의문이 든다”고 했다.

반면 B구단 단장은 “어떤 보상을 원하는지 대학에서 구체적으로 제안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프로 입장에서도 검토해볼 수 있다. 얼마든지 유연성 있게 조율할 수 있다. 대학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프로에선 대학이 먼저 조건을 제시하길 바라고, 대학에선 프로가 먼저 보상을 약속해주길 바라는 셈이다.

이와 관련 대학야구 사정에 밝은 야구 관계자는 스카우트비 관행이 사라지고, 대부분의 대학 선수가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실정에서 프로 구단에 보상을 요구하는 건 대학 측의 지나친 욕심으로 보인다. 좋은 선수를 많이 받을 수 있다면 대학 입장에서도 좋은 제도 아닌가. 대학 쪽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대학에서 먼저 제도 개선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프로에서도 대학야구 활성화 차원에서 일정 수준 대학 리그에 대한 지원 방안을 논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개별 학교에 대한 보상보다는 그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생각을 밝혔다. 일단 프로와 아마 모두 ‘이대로는 죽는다’는 공감대가 이뤄진 만큼, 제도 개선책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것부터가 최우선 과제다.

죽어가는 대학야구를 살리기 위해 LG가 앞장서서 손을 내밀었다. 프로 구단으로서 야구 발전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선봉에 나섰다. 이제는 LG가 내민 손에 야구계가 응답해야 한다. 대학야구 살리기를 위해 다른 구단들과 KBO는 물론, 대학들의 적극적인 후속 움직임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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