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선수 팔아 운영하던 키움 히어로즈, 이제는 핵심 인력 유출이 더 문제

-허문회 롯데 감독 비롯해 몇몇 코치, 전력분석원 타 구단 이적 예정

-파격적 구단 운영 선보인 키움, 이제는 다른 구단들의 롤모델 됐다

-핵심 인력, 선수 유출에도 2020시즌 변함없는 우승 후보

왼쪽부터 오주원, 허문회 롯데 감독, 장정석 키움 감독, 이지영 순. 키움은 올 겨울 선수 유출은 물론 핵심 인력 유출까지 대비해야 한다(사진=엠스플뉴스)
왼쪽부터 오주원, 허문회 롯데 감독, 장정석 키움 감독, 이지영 순. 키움은 올 겨울 선수 유출은 물론 핵심 인력 유출까지 대비해야 한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키움 히어로즈의 창단 초기는 암울했다. 생존이 최우선과제였던 그 시절, 히어로즈는 살기 위해 주력 선수를 닥치는 대로 팔아치웠다.

정성훈, 이택근, 장원삼, 이현승, 황재균, 고원준 등이 줄줄이 팔려 갔다. 돈 많은 팀들은 재정난에 시달리는 히어로즈의 위기를 전력 강화 기회로 삼았다. 다른 7개 구단에게 히어로즈는 이름 그대로 ‘우리’ 히어로즈였다.

넥센으로 메인스폰서가 바뀌고, 구단 운영이 비교적 안정된 뒤에도 핵심 선수 유출은 계속됐다. 유한준, 손승락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뒤 다른 팀으로 향했다. 강정호와 박병호는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로 떠났다.

놀라운 건 히어로즈가 간 뺏기고, 콩팥을 내주면서도 2013년부터 올해까지 거의 매년(2017년 제외)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강팀의 자리를 유지했단 점이다. 간 빠진 자리엔 더 강하고 튼튼한 새 간이 돋아났고, 쓸개 내준 자리엔 젊고 싱싱한 쓸개가 새로 생겼다.

선수를 팔아 연명하는 ‘고난의 행군’을 무사히 넘기고, 비교적 구단 운영이 안정적인 단계로 접어든 지금 히어로즈 앞에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바로 코칭스태프와 프런트의 핵심 인력을 지키고, 야구계 ‘혁신 경쟁’에서 끊임없이 앞서나가는 일이다.

지도자도 잘 키우는 키움 “키움 출신 코치는 영입 1순위”

키움 장정석 감독은 처음 감독 선임 당시와 지금 평가가 180도 달라졌다(사진=엠스플뉴스)
키움 장정석 감독은 처음 감독 선임 당시와 지금 평가가 180도 달라졌다(사진=엠스플뉴스)

롯데 자이언츠는 10월 27일 허문회 키움 수석코치의 감독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10개 구단 사령탑 중에 4개 팀 감독이 히어로즈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강철 KT 위즈 감독과 허문회 롯데 감독은 히어로즈 수석코치 출신이다. 염경엽 SK 와이번스 감독은 히어로즈에서 명성을 쌓은 뒤, 리그 최고의 대우를 받은 감독으로 올라섰다. 장정석 감독은 은퇴후 매니저와 운영팀장을 거쳐 감독 자리에 올랐다.

아쉽다기보단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김치현 키움 단장의 말이다.그만큼 우리 키움 소속 지도자들이 야구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의미니까요.

실제 키움은 선수 육성은 물론 코치 육성에서도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좋은 코치를 키우는 키움만의 노하우가 있다는 평가다.

키움은 현역 시절 명성이나 연고보단 지도자로서 자질을 따진다. 출신 배경도 다양하다. 고교야구 코치 출신부터 미국 우편배달부, 관광업 종사자, 전력분석원 출신이 다들 프로 지도자로서 제 몫을 해낸다. 과연 다른 팀에서도 이들을 코치로 채용했을까 생각하면 선뜻 그렇다는 답을 하기가 어렵다.

키움 코치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훈련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염경엽 감독 재임 시절엔 훈련 보고서를 작성해 올리고, 코칭스태프가 모여 토의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보고서 내용이나 답변이 부실하면 날카로운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이제는 좀 더 자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긴 했지만, 공부하고 토의하는 문화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다른 구단에서 코칭스태프를 새로 구성할 때, 키움 출신 코치가 영입 1순위로 언급되는 이유다.

“허문회 롯데 신임 감독은 타격코치 시절 국내 최고 타격 전문가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히어로즈 출신 타 구단 코치의 말이다.

“2군 코치 시절엔 다른 팀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지도를 받고 싶다고 연락할 정도로 야구계에선 잘 알려진 실력자입니다. 다른 구단에서도 여러 차례 영입을 시도했었고, 지난 시즌 뒤에도 모 지방구단의 러브콜이 있었습니다. 롯데에서 감독으로 영입한 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허문회 롯데 감독을 시작으로 올 겨울 키움 몇몇 코치와 구단 핵심 인력의 타 구단 이적이 예정돼 있다. 키움 관계자는 고양 2군 소속 코치 한 명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해 1군 코치진에 합류할 예정이다. 전력분석원 중에서도 한 명이 다른 구단에서 코치직을 맡을 예정이라 전했다.

‘롤모델’ 된 키움의 전략, 파격에서 표준으로

스프링캠프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키움 선수단(사진=엠스플뉴스)
스프링캠프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키움 선수단(사진=엠스플뉴스)

핵심 코칭스태프와 인력의 타 구단 이동은 곧 키움만의 ‘지적재산권’이 다른 구단으로 옮겨간다는 의미도 된다.

창단 초기만 해도 키움은 약간의 차이만으로 다른 구단보다 큰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었다. 다른 구단이 헛돈을 허공에 날리고, 어이없는 선수를 영입하는 데서 반사이익을 취했다. 이제는 모든 구단이 좀 더 영리해지고, 합리적으로 돈을 쓰려고 한다. 키움으로선 다른 구단보다 앞서나갈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내야 우위를 지킬 수 있다.

처음 키움이 시도했을 때 파격 혹은 ‘일탈’ 소리를 들었던 전략이 지금 KBO리그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생각해 보자. 스토브리그에서 80억, 100억대 계약이 펑펑 터질 때 키움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망주 지키기에 주력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팀이 외부 영입 대신 육성을 외친다.

대스타 출신 감독과 ‘야구의 신’들이 줄줄이 실패를 맛볼 동안 키움은 통산 타율 1할타자 출신, 운영팀장 출신을 감독으로 임명했고 성공을 거뒀다. 이제는 어느 팀도 현역 시절 이름값을 보고 감독을 고르지 않는다. 10개 구단 중에 어느 팀도 ‘야구의 신’을 찾는 팀이 없다. 히어로즈의 성공이 가져온 변화다.

키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벌크업과 웨이트 트레이닝도 이제는 상식이 됐다.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는 KT에서 지난 2년간 부상 방지와 홈런 수 증가에 큰 성과를 낸 뒤, 이번에 SK로 이적해 염 감독과 다시 만났다. 시즌 후반 체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은 SK 선수들의 부상 방지와 웨이트 트레이닝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스프링캠프 사흘 훈련-하루 휴식 스케쥴도 키움이 처음 도입해 보편화 됐다. 국외 대규모 마무리 훈련을 없앤 것도 키움이 최초다. 키움은 3년 전부터 마무리 훈련을 국내에서 했다. 기술훈련 비중을 줄이고, 컨디셔닝과 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로 ‘간소하게’ 진행했다. 올 겨울엔 KT, NC, SK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팀이 국내에서 마무리 훈련을 한다. 몇몇 팀은 마무리 훈련에서 기술훈련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였다.

차라리 어떤 면에선, 선수가 빠져나가는 편이 키움에게 익숙한 일인지 모른다. 2016년 WAR 30승(4번타자, 5번타자, 마무리투수, 1호 셋업맨, 2호 셋업맨)이 빠져나간 와중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키움이다. 2018시즌에도 조상우-박동원 배터리 없이 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간 경험이 있다.

올 겨울에도 이지영과 오주원이 FA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항상 그랬듯이, 100% 계약한다는 보장은 없다. 2차 드래프트에서 유망주 유출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다만 이번 겨울엔 선수뿐만 아니라 ‘두뇌’ 유출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게 이전과 달라진 점이다.

또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죠.키움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육성이 중요하고 데이터 활용이 필요하다는 건 모두가 알지만, 그걸 실제로 팀에 적용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선수를 데려가고, 사람을 데려가도 우리 구단만의 문화까지 가져가긴 어려울 겁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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