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다승 투수’ 배영수, KS 8번째 우승 반지와 함께 은퇴 결정
-“영화라도 욕먹을 멋진 마무리, 그래서 후련하게 현역 은퇴”
-“감독님과 코치진 및 후배들 덕분에 해낸 우승, 마음의 빚 갚았다.”
-“희로애락 함께한 모든 팬 덕분에 20년간 버텼다.”

배영수는 여덟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 뒤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사진=두산)
배영수는 여덟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 뒤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사진=두산)

[엠스플뉴스]

두산 베어스 투수 배영수가 20년간 정든 유니폼을 벗기로 했다. 한국시리즈 8번째 반지를 끼고 현역 은퇴를 결정한 배영수는 지도자로서 새 삶을 출발할 전망이다.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한 배영수는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앞세워 리그 정상급 투수로 성장했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비공인 10이닝 노히트 경기를 달성한 배영수는 2005년과 2006년 팀의 주축 투수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푸른 피의 에이스’라는 별명도 이때 탄생했다.

물론 배영수의 야구 인생에서 좌절의 시간도 있었다.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은 구속이 떨어진 배영수는 긴 부진의 시간에 빠졌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 부임 뒤 삼성 왕조가 열릴 때 배영수는 기교파 투수로 부활해 팀의 한국시리즈 4연패에 이바지했다.

2015년 한화 이글스로 FA(자유계약선수) 이적한 배영수는 2018시즌 종료 뒤 두산에서 현역 생활을 연장했다. 올 시즌 야구 인생 처음으로 불펜에서 시즌을 시작한 배영수는 37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평균자책 4.57을 기록했다. 무 투구 끝내기 보크 패배라는 아픔도 있었지만, 배영수는 시즌 막판 결정적인 NC 다이노스 원정 경기 무승부에 힘을 보탰다. 이는 팀의 극적인 뒤집기 우승에 큰 힘이 됐다.

20년 야구 인생의 엔딩은 더 극적이었다. 배영수는 한국시리즈 4차전 11대 9로 앞선 10회 말 1사 상황에서 구원 등판해 상대 중심 타자 박병호와 제리 샌즈를 완벽하게 틀어막고 ‘V6’의 마침표를 찍었다.

배영수는 한국시리즈 중간 이미 두산 김태형 감독에게 코치직 제의를 받았다. 배영수는 고심 끝에 현역 연장 대신 은퇴 뒤 지도자의 길을 택했다. 배영수는 KBO리그 통산 499경기(2,167.2이닝) 등판 138승 122패 평균자책 4.46 탈삼진 1,436개의 기록을 남겼다. 새로운 인생의 갈림길에 선 배영수의 마음을 엠스플뉴스가 들어봤다.

영화 시나리오라도 욕먹을 현역 배영수의 마지막 그림

한국시리즈 4차전 마무리 상황에서 등판하는 배영수. 현역 마지막 등판은 영화라도 욕먹을 극적인 상황에서 이뤄졌다(사진=두산)
한국시리즈 4차전 마무리 상황에서 등판하는 배영수. 현역 마지막 등판은 영화라도 욕먹을 극적인 상황에서 이뤄졌다(사진=두산)

20년 야구 인생을 이제 내려놨다.

이렇게 마음이 홀가분한 느낌은 처음이다(웃음). 이제 모든 걸 내려놨다. 20년 동안 참 치열하게 야구하고 살았다. 유니폼을 벗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웃어 다행이다.

현역 마지막 경기를 한국시리즈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여덟 번째 우승 반지를 낀다. 이런 결말이 나오리라 생각했나.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멋진 마무리다. 영화 시나리오라 해도 욕먹을 상황이다(웃음). 수많이 우승했지만, 이번 우승이 가장 짜릿했다. 감독님과 코치진, 그리고 후배들이 고생한 덕분에 내가 또 반지를 끼게 됐다. 한국시리즈 마무리 투수는 옛날부터 상상만 해오던 장면이었다. 그게 현역 마지막 등판이 됐기에 마음이 후련하게 글러브를 벗게 됐다.

은퇴를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이번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며 예감은 하고 있었다. 한국시리즈 합숙을 위해 집에서 나가며 아내에게 ‘이제 마지막일 듯싶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 단 한 번의 기회가 온다면 후회 없이 던질 자신이 있었다. 몸 상태도 정말 좋았다.

김태형 감독이 선을 넘은 덕분에 그 한 번의 기회가 극적으로 찾아왔다.

한 번 던지게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그 순간이 될 줄이야(웃음). 감독님이 올라와 ‘약속대로 한 번 기회 줬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박)병호를 삼진으로 잡은 뒤 나도 모르게 큰 세리모니가 나왔다. 샌즈의 타구가 눈앞에 오는 순간 ‘됐다’ 싶었다.

“우승 뒤에 함께 고생했던 치국이가 떠올랐다.”

우승 확정 뒤 김태형 감독에게 안기려고 달려가는 배영수(사진=두산)
우승 확정 뒤 김태형 감독에게 안기려고 달려가는 배영수(사진=두산)

결국, 후배 포수 박세혁과 우승 배터리가 됐다. 얼싸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박)세혁이가 주전 포수 첫해 정말 고생했다. 베테랑 투수로서 내가 더 도와주지 못해 아쉬웠다. 좋아하는 세혁이를 보니까 뭉클하더라. 세혁이는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다. 양의지와 항상 비교돼 스트레스가 컸을 텐데 이제 우승으로 한국 포수 일인자가 된 거 아닌가. 열심히 잘 준비하면 내년 시즌엔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줄 거다. 후배 투수들을 잘 이끌어주길 바란다.

한 시즌 내내 고생한 후배 투수들에게도 해줄 말이 있겠다.

(함)덕주, (최)원준, (윤)명준, (이)형범, (이)용찬, (유)희관이 등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정말 고생했고 잘해줬다. 특히 (이)영하는 이번 한국시리즈 결과로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언컨대 영하가 없었다면 우리 팀이 정규시즌 우승을 할 수 없었다. 나도 어릴 적 한국시리즈 때 아쉬운 패배를 맛본 기억이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내년 한국시리즈에선 더 멋진 투구를 보여줄 거로 믿는다. 한 명 더 얘기하고 싶은 후배가 있다면.

누구인가.

(박)치국이다. 우승하고 나니까 치국이가 가장 마음에 걸리더라. 시즌 처음부터 같이 고생했는데 막판에 안 좋아 한국시리즈에서 함께하지 못했다. (김)강률이도 그렇고 올 시즌 함께 하지 못한 투수들이 내년엔 꼭 잘 풀리길 바란다.

끝까지 믿어준 김태형 감독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궁금하다.

나이 많은 베테랑 투수를 이렇게까지 믿어주셔서 감사하다. 색안경을 안 끼시고 오로지 팀만 바라보시는 분이다. 핑계 없이 선수들을 감싸주시고. 그런 부분에서 내가 정말 많이 배웠다. 무엇보다 내가 본 감독님들 가운데 촉이 가장 좋다(웃음).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야구는 사람이 하는 거다. 경기 흐름을 본능적으로 잘 파악하는 능력을 나도 배우고 싶다. 감독님과 함께 해피엔딩이 나와 다행이다.

“희로애락 함께한 모든 팬 덕분에 20년 버텼다.”

두산 투수 배영수가 한국시리즈 4차전 승리로 우승 확정 뒤 포효하고 있다(사진=두산)
두산 투수 배영수가 한국시리즈 4차전 승리로 우승 확정 뒤 포효하고 있다(사진=두산)

20년 야구 인생에서 고마운 은사가 정말 많겠다.

정말 셀 수가 없다. 학창 시절 은사님부터 시작해 나를 선발 투수로 기용해주신 김응용 감독님, 그리고 투구 자세를 완성하게 해주신 선동열 감독님이 먼저 떠오른다. 양일환 코치님과 김태한 코치님도 정신적으로 나를 성숙하게 도와주셨다. 한화 이글스에서 손을 내밀어주신 김성근 감독님도 많이 생각난다. 오치아이 코치님에게도 참 많이 배웠다.

향후 진로 계획을 확실히 세운 건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정하지 않았다. 우선 지도자의 길을 간다면 멋있게 마무리하게 해준 두산이 첫 번째지 않을까. 구단과 얘길 나눠보고 확실한 결정을 내릴 듯싶다.

배영수를 20년 동안 응원해준 팬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나.

친정인 삼성 팬들에게 먼저 감사드린다. 삼성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다. 삼성을 떠날 때 말하지 못한 많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푸른 피의 에이스’라는 별명을 지어준 삼성 팬들의 사랑을 잊지 못할 듯싶다. 내가 어려울 때 손을 잡고 응원해주신 한화 팬들에게도 감사드리고 죄송하다. 더 좋은 투구를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그게 아쉽다.

마지막으로 굴러들어온 돌임에도 1년 동안 정말 큰 응원을 해주신 두산 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시즌 막판 안 좋은 사건으로 큰 빚을 졌다. 그래도 한국시리즈 마지막 순간 힘을 불어넣은 두산 팬들의 응원을 영원히 못 잊을 거다. 나에게 욕을 하신 팬들도 다 애증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희로애락을 함께한 모든 팬 덕분에 내가 20년을 버틸 수 있었다. 정말 감사드린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