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1군 감독 후보에서 퓨처스 감독 된 래리 서튼

-“강팀으로 가려면 기초가 튼튼해야…퓨처스 감독이 적합하다는 결론”

-“도미니카에서 쌓은 소통 경험, 피츠버그의 혁신 경험…롯데에서 도움 될 것”

-“매년 투수 1명, 타자 1명씩 1군에 올려보내는 게 장기 목표”

래리 서튼 롯데 퓨처스 감독이 구단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래리 서튼 롯데 퓨처스 감독이 구단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상동]

헤이, 나랑 같이 사진 한 장 찍읍시다. 거기 기자 친구, 사진 좀 찍어줘요.

래리 서튼 롯데 자이언츠 퓨처스 감독과 현역 시절 함께 뛰었던 야구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친절하고 호감을 주는 사람’이란 평가다.

“국적은 달랐지만, 마치 친형제처럼 지냈다. 편안한 친구이자 든든한 멘토였다. ‘네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KIA 타이거즈 선수로 서튼과 인연을 맺었던 성민규 롯데 단장의 말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김해 상동 롯데 2군야구장에서 만난 서튼은 소문 그대로였다. 서튼은 기자를 비롯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시간을 들여 인사를 건네고, 이름을 묻고, 멀리 상동까지 와준 데 대해 감사를 전했다. 이날 처음 만난 롯데 홍보팀 직원에겐 인사가 끝난 뒤 먼저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이어 사진을 찍어준 기자에게도 함께 찍자고 제안했다.

선수를 지도할 때도 적극적이다. 온갖 바디랭귀지와 표정을 풍부하게 사용해 메시지를 전한다. ‘웨이티드 볼’을 이용한 훈련 때는 모든 타자들에게 공을 직접 던져주며 호흡을 나눴다. 훈련을 마친 뒤엔 어떤 점이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했다. 현역 시절의 열정은 지도자가 돼서도 여전했다.

“강팀 롯데 되려면 기초부터 잘 닦아야…퓨처스 감독이 좋은 선택”

자신의 육성 철학을 설명하는 래리 서튼 퓨처스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자신의 육성 철학을 설명하는 래리 서튼 퓨처스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서튼 퓨처스 감독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1997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2004년까지 빅리거로 활약했다. KBO리그에선 데뷔 첫해인 2005년 홈런왕에 올랐다. 이후 캔자스시티와 피츠버그에서 12년간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로서 좋은 경력을 쌓았다. 미래 메이저리그 감독감이란 평가도 따랐다.

롯데와도 원래는 1군 감독 후보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리 로이스터, 스캇 쿨바 등 쟁쟁한 경쟁자와 함께 외국인 감독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이에 야구계 일각에선 롯데가 서튼을 1군 감독으로 임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롯데는 서튼을 ‘퓨처스 감독’으로 임명했다.

“성민규 단장과 인터뷰할 때 롯데의 비전, 미래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 11월 1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만난 서튼 감독이 기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롯데는 열정적인 팬들의 응원을 받는 구단이다. 반드시 팬들이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둬야 한다. 그러려면 기초부터 잘 닦아야 한다는 데 단장과 내 생각이 일치했다. 기초를 잘 만들어 1군까지 이어간다면, 오랫동안 좋은 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지닌 능력과 팀 내 역할 면에서 퓨처스 감독이 훨씬 좋은 선택이란 결론이 나왔다. 서튼이 ‘퓨처스 감독’ 보직을 받아들인 이유다.

1군 감독 후보였던 이에게 퓨처스 감독을 맡기는 건 KBO리그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모든 코치가 1군 감독을 목표로 삼고, 퓨처스 감독도 1군 감독의 잠재적 ‘경쟁자’로 취급받는 한국 문화에선 더 그렇다.

하지만 미국야구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은 서튼 감독에겐 전혀 어색할 게 없는 일이다. 메이저리그에선 어제까지 감독을 지낸 인사가 다른 팀 코치가 되기도 하고,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코치가 젊은 후배 감독과 함께 일하기도 한다. 일례로 올해까지 뉴욕 메츠 감독을 지낸 미키 캘러웨이는 해고당한 뒤 곧장 다른 구단 투수코치로 자릴 옮겼다. 대부분의 미국 지도자들은 메이저리그 감독이 되기 위해 코치 일을 하지 않는다. 주어진 자기 자리에서 전문성을 살려 제 역할을 할 뿐이다.

성민규 롯데 단장도 같은 생각이다. 성 단장은 “2군은 이기기 위한 곳이 아니라 선수 육성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데 과거 프로야구에선 일부 2군 감독이 1군 감독을 목표로 승리 위주의 경기 운영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2군 감독은 미래의 1군 감독 후보가 아닌, 선수 육성 전문가가 돼야 한다. 외국인 지도자를 퓨처스 감독으로 임명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서튼 감독은 1군 허문회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방향성을 잘 맞춰 나갈 것이라며 내가 어느 위치에 있든 간에 팀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롯데 구성원들을 먼저 생각한다면 얼마든 좋은 방향으로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도미니카에서 4년, 피츠버그에서 7년…서튼의 풍부한 경험, 롯데 2군을 바꾼다

롯데 타자들을 지도하는 래리 서튼 퓨처스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롯데 타자들을 지도하는 래리 서튼 퓨처스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롯데는 서튼 퓨처스 감독의 풍부한 지도자 경험이 롯데만의 육성 시스템을 만들고, 젊은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튼은 은퇴 후 2006년부터 캔자스시티 산하 도미니카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선수가 거의 없고, 아는 스페인어 단어 몇 개와 바디랭귀지로 소통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서튼 감독은 “처음 도미니카에 갔을 때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 힘든 점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스페인어 실력으로 선수들을 코칭하기 쉽지 않았다”며 “선수들에게 최대한 짧고 단순한 표현으로 중요한 포인트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내 생각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도미니카 출신인 아내의 도움도 받았다. 덕분에 나중엔 짧은 스페인어로도 선수들에게 원하는 바를 다 전달할 수 있었다. 당시 언어 장벽을 극복한 경험이 나중에 미국에서도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됐다. 분명 한국에서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서튼 감독의 말이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선 만년 약체팀이 빅데이터 혁명과 함께 강팀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경험했다. 당시 피츠버그는 수비 시프트 등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실험을 마이너리그 최하위 레벨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구단 내 모든 조직에 적용해 나갔다.

처음엔 거부감을 보였던 선수와 코치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야구의 효과에 눈을 떴다. 이 선수들이 하나둘씩 빅리거로 성장하면서, 피츠버그만의 진보적이고 창의적인 야구 문화가 완성됐다. 피츠버그는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를 따낸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위닝 시즌을 기록하며 강팀의 대열에 올랐다.

“피츠버그에서 타격 코디네이터로 일했던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서튼 감독의 말이다. “피츠버그는 5년의 시간 동안 마이너리그 제일 아래 팀부터 트리플 A, 메이저 팀까지 한 방향으로 변화해 나갔다. 그 변화 속에서 함께하는 건 굉장히 기쁜 경험이었다.”

서튼 감독은 당시 피츠버그처럼, 지금의 롯데도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한 팀이라며 좋은 사람들을 모으고, 팀이 우승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를 만드는 단계를 밟는 중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엣지트로닉스 사의 초고속카메라와 랩소도를 사용해 이승헌의 불펜 피칭을 체크하는 롯데 코칭스태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엣지트로닉스 사의 초고속카메라와 랩소도를 사용해 이승헌의 불펜 피칭을 체크하는 롯데 코칭스태프(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롯데는 상동 2군야구장에 대대적인 변혁을 진행하는 중이다. 낡은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를 전부 최신 기구로 교체했고, 1층엔 야구 아카데미 스타일의 산뜻한 배팅 케이지를 만들었다. 블라스트모션, 핵어택, 랩소도, 엣지트로닉스 초고속카메라 등 최신 장비도 도입했다.

현재 진행 중인 가을캠프에선 불펜 피칭과 타격 훈련 때 랩소도로 측정한 데이터를 확인한 뒤 전문가와 코치, 선수가 함께 의견을 나눈다. 선수단 밥도 단백질과 곡물류, 채소 위주의 균형 잡힌 식단으로 개선했다. 마치 메이저리그 구단의 스프링 트레이닝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상동에 도입한 장비와 시설은 앞서 미국, 도미니카에서 코치 생활을 하면서 먼저 경험했다. 감독 인터뷰 때부터 이런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얘길 나눴다. 이미 구단 수뇌부가 새로운 장비와 시설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구단의 지원 덕분에 부임하자마자 곧장 선수들 훈련에 활용할 수 있었다.서튼 감독의 말이다.

서튼 감독은 “과거엔 코치들의 경험, 눈으로 본 것만 갖고 지도하다 보니 추상적인 면이 있었다. 최근엔 랩소도와 초고속카메라를 통해 정확한 회전수, 손목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게 좋은 피칭인지 나쁜 피칭인지 객관적인 수치를 통해 보여준다. 선수들도 이해하기 쉽고, 훈련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한국야구는 내가 선수로 뛰던 시절과 크게 달라졌다. 미국야구도 마찬가지다.” 서튼 감독의 말이다.

“지금 미국에선 야구와 관련 없는 분야의 인재들, 이를테면 경제학을 전공한 박사 같은 사람들이 야구단에 들어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야구도 미국처럼 변화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긍정적인 변화다.”

“매년 투수 1명, 야수 1명 1군 콜업 목표…위닝팀 롯데 만드는 데 힘 보태고 싶다”

래리 서튼은 열정적인 지도자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래리 서튼은 열정적인 지도자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서튼 퓨처스 감독은 선수들과 ‘신뢰’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코칭스태프와 내가 선수들과 신뢰를 쌓고,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게 먼저다. 감독이나 코치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수 본인을 위해 조언하고 도움을 주려 한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 신뢰가 쌓이면 그때는 소극적이었던 선수들도 먼저 다가와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누려 할 것이다.

서튼 감독은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능력이 있다. 내 경우엔 선수를 가르치는 면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선수 때 항상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지금은 내가 가진 열정을 다해 선수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선수가 자신이 지닌 100퍼센트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게 내 몫”이라 강조했다.

선수들에게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도 서튼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의 역할이다. 그는 “야구선수가 경기를 하다 보면 실수하고 실패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그런데 어린 선수들 중엔 실패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가 방향을 잘 잡아줘야 한다. 어린 선수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해도 이렇게 하면 훨씬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가이드를 제시해 줘야 한다. 나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퓨처스 감독으로서 서튼이 꿈꾸는 롯데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서튼 감독은 “각 선수별로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있다”며 “훈련을 통해 발견한 강점과 앞으로 보완할 부분들을 정리해 선수 지도에 활용할 것이다. 선수 맞춤형 지도로 좋은 선수를 만드는 게 단기 목표”라고 밝혔다.

장기적으론 해마다 2군에서 최소 투수 1명과 야수 1명을 1군에 보내는 게 목표다. 서튼 감독은 매년 좋은 선수를 잘 성장시켜 투수와 야수 1명씩 1군에 보내고 싶다. 계속 그러다 보면 몇 년 뒤엔 선발 5명을 채우고, 야수도 새로운 선수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오랫동안 롯데가 위닝팀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서튼 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피츠버그에서 그랬던 것처럼, 롯데에서도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될 것 같다. 느낌이 좋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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