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이용훈 코치, 최신 기술과 데이터 분석 공부하는 얼리어답터

-롯데, 상동 2군 야구장에 각종 최신 장비 도입…선수 지도에 활용한다

-“열심히만 하는 게 능사 아니다”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훈련 시도하는 롯데

-데이터와 최신 기술이 코치 영역 뺏는다? “오히려 코치 영역 넓어진다”

롯데 상동 2군 야구장의 불펜피칭 장면. 랩소도와 초고속카메라를 사용해 코치와 컨설턴트가 실시간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롯데 상동 2군 야구장의 불펜피칭 장면. 랩소도와 초고속카메라를 사용해 코치와 컨설턴트가 실시간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롯데 자이언츠 이용훈 코치는 야구계 대표 ‘얼리어답터(early-adaptor)’다.

선수 은퇴 후 코치로 일하면서 일찌감치 ‘데이터 야구’에 눈을 떴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를 시작했고, 야구계 바깥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최신 기술과 데이터 활용 방법을 배웠다. 피치 디자인, 회전축, 유효회전 등 현장 야구인들은 잘 쓰지 않는 용어도 자연스럽게 술술 나온다.

세이버메트릭스에서 시작해서 트랙맨, 초고속카메라까지. 요새 워낙 ‘핫’하잖아요. 10월의 마지막 날 김해 상동 2군야구장에서 만난 이 코치의 말이다.

이전까지 우리 야구는 ‘느낌’에 근거한 티칭이 많았습니다. 어떤 투수의 팔 높이가 낮아지면 ‘이렇게 던져라, 팔을 올려라’는 식이었죠. 저는 좀 더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걸 좋아해서,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운 좋게도 주변에 트랙맨 회사에 일하는 분이나, 정보력 있는 비야구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남들보다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어요.

이 코치의 이런 노력을 롯데 구단도 높이 평가했다. 롯데 관계자는 “시즌 뒤 내부 평가에서 데이터와 신기술에 친화적인 지도자로 이용훈 코치를 꼽는 의견이 많았다”며 “첨단 장비를 동원한 육성 혁신에 이 코치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열심히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과학적 훈련 방식 도입한 롯데

상동 불펜에 설치된 초고속카메라와 랩소도 2.0(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상동 불펜에 설치된 초고속카메라와 랩소도 2.0(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상동 2군 야구장에서 진행 중인 롯데 ‘가을캠프’에선 운동장 곳곳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구경할 수 있다. 불펜피칭도 그냥 투수와 포수가 공을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투수 2명이 1조를 이룬다. 한 명은 왼쪽 마운드에서 몸을 풀고, 준비된 한 명은 가운데 투수판에서 공을 던진다.

투수와 포수 사이 바닥엔 랩소도 2.0 장비가 설치돼 있다. 투수의 어깨 뒤편에는 랩소도에서 전송된 투구 데이터를 보여주는 태블릿 PC와 엣지트로닉스 사에서 개발한 초고속카메라, 그리고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투수가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태블릿에는 스피드, 회전수, 회전축 등의 데이터가 전송돼 표시된다. 모니터를 통해선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팔 형태는 물론 손가락 관절까지 관측해 보여준다.

이를 보면서 미국에서 온 투수 컨설턴트(캔자스시티 싱글 A 투수코치 미치 스테터)와 R&D팀 데이터 분석가, 그리고 이용훈 코치가 함께 의견을 나눈다.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간다. 방금전 피칭과 뭐가 달라졌는지, 느낌은 어땠는지, 이렇게 던져보면 어떨지 수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피칭이 모두 끝난 뒤엔 이날 얻은 데이터를 종합해 의견을 전달하고 과제를 내준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이용훈 코치의 말이다.

과거 초고속 카메라가 없을 때는 느낌만을 갖고 얘기했습니다. 한계가 있었죠. 지금은 전부 객관적인 데이터로 보여줍니다. 공의 회전과 회전축은 물론 변화구의 떨어지는 폭도 보여주고, 공을 던질 때 투수가 회전을 제대로 걸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코치는 패스트볼 그립을 잡은 뒤, 손가락을 세워 지면과 수직으로 백스핀을 먹이는 투구폼 시범을 보였다. “패스트볼을 던져도 이렇게 던지면서 열심히 해야지 발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완벽하게 백스핀을 먹인 공은 타자 입장에서 마치 눈앞에서 공이 ‘떠오르는 듯한’ 착시현상을 준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저스틴 벌랜더, 게릿 콜이 던지는 포심이 이런 경우다.

이어 이 코치는 스리쿼터 팔각도에 손가락을 옆으로 눕힌 뒤, 공이 중지 옆으로 흘러나가는 동작을 선보였다. “이렇게 던지면, 슬라이더를 던져도 무늬만 슬라이더인 거죠. 공 회전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던져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좋은 선수가 될 가능성이 낮습니다.”

초고속카메라는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손가락 모양까지 프레임 단위로 포착해 보여준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초고속카메라는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손가락 모양까지 프레임 단위로 포착해 보여준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이 코치는 랩소도와 초고속카메라 등 최신 장비가 투수들의 문제점을 빠르게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랩소도는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장비입니다. 티칭할 때 바로 눈으로 확인이 되잖아요.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니까 선수들도 더 신뢰하게 되고, 코치 입장에서도 다양한 방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코치의 말이다.

박현우 부단장은 “초고속카메라를 이용하면 공이 손에서 빠져나가는 순간을 프레임 별로 확인 가능하다”고 했다. “변화구가 손에서 빨리 빠지는 경향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포심에 자꾸 싱커성 움직임이 생길 경우, 두 손가락의 중심이 잘못돼 있는건 아닌지도 보여주죠. 그걸 확인하고 잡아주는 데 활용 가능한 장비입니다.”

가령 초고속카메라를 통해 어떤 투수가 포심을 던지는 순간 손가락이 옆으로 눕혀지는 현상을 발견했다면, 피칭 스태프는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건 손의 모양을 조정해서 볼의 회전축을 바꾸고, 보다 효과적인 백스핀이 걸리게 만드는 것이다. 아니면 포심 대신 투심이나 싱커성 패스트볼을 던지는 쪽으로 전향하는 방법도 있다. 변화구 조합이나 로케이션으로 포심의 스피드와 회전수를 돋보이게 만드는 해결책도 있다. 포심이 맞아나가는 정확한 원인을 알면, 해결방법을 찾는 것도 한결 수월해진다.

공의 회전수도 중요하지만, 회전수가 낮은 투수도 성공할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회전수보다 중요한 건 타자에게 주는 직접적인 영향이죠. 그게 회전축일 수도 있고, 스피드일 수도, 무브먼트일 수도 있습니다. (초고속카메라를 통해) 피치 디자인을 하는 겁니다.이용훈 코치의 말이다.

데이터 분석과 최신 기술 “코치의 영역, 오히려 더 넓어진다”

이용훈 코치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사진=롯데)
이용훈 코치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사진=롯데)

난생 처음 보는 최신 기술에 롯데 선수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박세웅은 두 차례 랩소도를 사용해 불펜 피칭을 해봤는데, 좋은 점이 많다”며 “내 느낌보다는 확실한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했다. 서준원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코치님과 컨설턴트의 조언을 받기 때문에, 복잡하게 여겨졌던 많은 부분이 오히려 ‘쉬워진다’고 했다.

“불펜에서 투수들 표정 보셨나요?” 이용훈 코치가 웃으며 말했다. “신기해하기도 하고, 칭찬받아서 좋아하는 선수도 있죠. 고민하는 친구도 있지만, 결국은 자기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명확하게 안다는 거죠.”

이 코치는 “선수들이 호기심이 많아졌다”며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개선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숫자로만 얘기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영상으로 시각화해서 보여주니까 이해도 빠르다. 코칭하는 우리 역시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데이터 분석과 최신 기술의 도입으로 현장 지도자의 설 땅이 좁아지는 것은 아닐까. 이 코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코치의 영역이 더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코치의 말이다. “새 기술을 잘 활용하려면, 우선 선수들부터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선수들이 이해하는데 코치가 몰라선 안되잖아요. 선수보다 폭넓고 깊게 알아야 하니까, 저희들 역시 열심히 공부를 해야죠. 바이오메카닉도 알아야 하고 데이터도 알아야 하고…바쁘지만 재미있습니다.”

만약 이 코치의 현역 시절에도 이런 기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 코치는 잠시 생각한 뒤 “만약 있었다면, 조금 더 건강하게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 같아요. 그래도 선수들이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니까요. 선수들 표정만 봐도, 그저 기분이 좋습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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