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 중계 캐스터, 방송사에서 먼저 제안…“여성아나운서가 '꽃'인 시대는 지났다”

-스프링캠프 취재, 현장 리포팅, ‘베이스볼 투나잇’ 진행까지…1년 공백 무색한 활약

-일과 육아 병행하며 보낸 2019년…“나 자신에게 박수쳐 주고 싶은 한 해”

-이제는 여성 아나운서 후배들의 롤모델…“육아와 일 병행은 많은 여성이 겪는 것.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 ‘워킹맘’ 팬들 DM에 힘이 나요”

17개월 된 딸 수빈이와 엄마 김선신의 행복한 크리스마스(사진=김선신 아나운서 제공)
17개월 된 딸 수빈이와 엄마 김선신의 행복한 크리스마스(사진=김선신 아나운서 제공)

[엠스플뉴스]

지난해 12월 23일, ‘코리아 컬링리그’ 중계방송이 시작됐다. 보통 스포츠 중계하면 남성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로 시작하게 마련이지만, 이날은 여성 아나운서와 여성 해설위원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중계방송의 시작을 알렸다.

MBC 스포츠플러스의 '간판 아나운서' 김선신 아나운서와 신미성 컬링 해설위원의 조합이었다. 이색적인 장면은 이뿐이 아니었다. 경기 후 리포터 역할을 맡은 이는 남성 아나운서인 정용검 아나운서였다.

남성 캐스터의 경기 중계-여자 아나운서의 사이드 리포팅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겐 단순한 '역할 바꾸기' 이상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낯선 느낌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선신 아나운서는 이날 캐스터로서 뛰어난 능력을 과시했다. 더블 테이크아웃, 웨이트, 가드 등 일반 시청자에겐 생소한 컬링 용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고, 경기장 분위기와 컬링의 묘미를 안방까지 생생하게 전달했다.

중계 도중 신 해설위원이 (컬링을) 잘 아시네요"라고 칭찬할 정도로, 김 아나운서는 스포츠 캐스터의 전문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컬링 캐스터 역할 외에도, 김 아나운서에게 2019년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한 해였다. 1년간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다시 스포츠 방송 현장에 복귀해 스프링캠프 현장 취재부터 ‘베이스볼 투나잇’ 진행, 야구장 현장 리포팅은 물론 여자야구대회 중계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힘에 부칠 때면 자신을 롤모델로 바라보는 후배 여성 아나운서들과 ‘워킹맘’들의 응원 메시지에 힘을 얻었다. 그렇게 2019년 한 해 동안 ‘아나운서’ 김선신 역할과 ‘수빈이 엄마’ 역할을 둘 다 훌륭하게 해냈다. 행복한 한 해였고, 나 자신에게 박수쳐주고 싶은 한 해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과거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는 ‘여신’이나 ‘꽃’ 등의 남성 시청자 중심적인 언어로 묘사됐다. 방송인으로서 전문성보다는 외모에 초점이 맞춰졌고, 그만큼 소모되는 주기도 짧았다.

그러나 사회 변화와 맞물려 최근에는 여성 아나운서의 전문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김 아나운서는 데뷔한 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지만, 어쩌면 세상이 바뀐 게 아니라 그녀들이 세상을 바꿔 놨는지도 모를 일이다. 엠스플뉴스가 2020년 첫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김선신 아나운서를 선택한 이유다.

“이제는 여성 아나운서에게도 ‘전문성’ 강조…방송계도 시청자도 달라졌죠”

코리아 컬링리그 개막을 알리는 김선신 아나운서. 김 아나운서는 12월 23일 경기 중계방송에서 캐스터 역할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사진=엠스플뉴스)
코리아 컬링리그 개막을 알리는 김선신 아나운서. 김 아나운서는 12월 23일 경기 중계방송에서 캐스터 역할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사진=엠스플뉴스)

컬링 중계방송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예전에 컬링을 직접 했었나 싶을 정도로 경기 용어와 흐름을 완전히 꿰고 있더군요.

실은 저, 그전에 컬링을 해본 적이 있어요(웃음).

아, 정말요?

2016년 ‘연예인 컬링대회’에 아나운서팀 선수로 출전한 경험이 있거든요. 그때 저와 박지영, 배지현, 구새봄, 정순주 아나운서 5명이 팀을 만들어 출전했었죠.

컬링 매력에 빠진 게 그때부터였습니까.

솔직히 그때는 하기 싫었어요. ‘몸치’인 저한테 왜 이런 걸 시키나 싶었죠. 고교생 이후로 체육은 다시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체육을 하게 됐지 뭐예요(웃음). 게다가 경기장이 동두천이라, 매일 서울에서 동두천으로 훈련하러 다녀야 했고요. 이동하다가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어요.

이런.

그래서 개인적으로 컬링에 대한 기억이 좋지만은 않았었는데...(웃음). 이번에 컬링 중계방송을 하면서 전화위복이 된 셈이죠. 그때 연습하면서 몸으로 익혔던 게 중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더라구요.

여성 아나운서가 중계석에서 진행하고, 남성 아나운서가 사이드 리포터로 나서는 건 그간 국내 스포츠 중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시청자 사이에서도 ‘신선하다’ ‘흥미로웠다’는 호평이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그렇게 봐주셨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죠.

어떤 계기로 컬링 중계석에 앉게 됐는지 궁금한데요.

이번에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코리아 컬링리그’ 중계방송을 하게 됐는데, 리그 개막을 앞두고 회사에서 먼저 제안하셨어요. ‘여성 아나운서들도 중계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죠. 아나운서 팀장님을 비롯한 방송사 윗분들 생각도 같았어요.

컬링 중계를 해보라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처음엔 ‘제가 어떻게’라고 생각했죠. 그랬는데, 주위에서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선배님들이 와서 좋은 말씀해 주시고, (정)용검 오빠도 많이 도와주고, 모니터링까지 해준 덕분에 무사히 첫 방송을 마칠 수 있었어요.

컬링리그 이전에도 이따금 중계석에 앉을 기회가 있던 것으로 압니다.

많이 해봤어요. 원래 한명재 선배 기조가 ‘여자 아나운서도 중계를 해야 한다’는 거에요. 평소에도 농담처럼 ‘(김)선신이가 농구 중계, 야구 중계 들어가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덕분에 LG배 여자야구대회 중계를 할 수 있었고, 리틀야구 중계도 경험했죠. 생각이 깨어 있는 선배들이 많고, 회사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끌어주고 있어요.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여성 아나운서를 ‘꽃’으로 평가하던 시대는 지났다

2000년대 초 안진희 아나운서(현 MBC 스포츠플러스 차장) 등 1세대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은 NBA나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에 참여하곤 했습니다. 앞으로 영역을 넓혀 야구 중계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습니까.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야구 중계가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가요?

야구 같은 경우 경기 시간만 3시간이 넘는데, 하이톤으로 샤우팅까지 하면서 그 시간 동안 중계하는 데 약간은 한계를 느꼈어요. 스스로 ‘내가 이 종목을 하는 게 맞는 건가?’ 되묻기도 했고요. 전 오히려 컬링이나 골프, 당구처럼 약간은 정적이고 부드러운 종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욕심도 생기고요.

아나운서로 데뷔한지 이제 10년째입니다. 그 사이 한국 사회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여성 아나운서 입장에서 느끼는 변화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스포츠 아나운서로 뽑힌 게 2011년이에요. 당시만 해도 여성 아나운서가 야구장에 드나드는 게 드문 일이었어요. 그 당시 고 송지선, 김민아(현 SBS 스포츠), 김석류 선배가 쓴 책에 보면 일부 선수나 감독님이 ‘더그아웃에 여자가 들어오면 승률 떨어진다’ ‘오늘 재수가 없다’고 했다는 경험담이 나올 정도였어요.

이제 와 생각하면 기막히지만, 그랬던 시절이 실제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내가 야구장에 가면 과연 선수들이 반겨줄까’하는 두려움을 갖고 일을 시작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시간이 지나 선수들이 우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친분도 쌓이면서 함께 늙어간다는 생각이 들어 좋아요(웃음).

시청자들이 여성 아나운서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고 생각합니까.

그럼요. 물론 여전히 인터넷에선 여성 아나운서의 외모에만 초점을 맞춘 시선이 남아있긴 해요. 저는 인터넷 댓글을 다 보거든요. 심지어 ‘아줌마, 저리 가라’ ‘결혼해서 삭았네’ 같은 댓글까지 다 읽어요. (쓴웃음을 지으며) 하지만 지극히 일부가 쓰는 댓글이라 생각하고, 사회 전반적으로는 많이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한국 사회, 10년 전보다 여성 아나운서가 일하기 더 좋은 곳이 됐습니까.

좋아졌죠.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과연 내가 스포츠 아나운서를 5년 이상 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갖고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스포츠 아나운서는 비정규직에다 안정성이 낮은 직업이란 인식이 강했거든요. 하지만 최근엔 방송 잘하고, 열심히 하면 방송사에서도 전문인으로 인정을 해주는 분위기에요. 과거처럼 여성 아나운서를 ‘꽃’으로만 여기고, 빠르게 새 얼굴로 교체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최근엔 현장에 나가도 PD나 제작진에서 여성 아나운서에게 외모보다는 방송적인 부분을 더 많이 요구하고, 모니터해주신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저 역시 후배들을 교육하거나 모니터할 때 그쪽에 신경을 쓰고 있고요. 시청자들 역시도 외모가 특출나진 않아도 자기만의 개성을 잘 살리고 방송 잘하는 아나운서가 있으면 좋아해 주시는 분위기에요. 확실히 이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워킹맘’ 김선신의 하루는 쉴 틈이 없다

누구보다 바쁘고 보람찬 2019년을 보낸 김선신 아나운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누구보다 바쁘고 보람찬 2019년을 보낸 김선신 아나운서(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지난해 2월,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방송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송에선 밝고 화려한 모습만 비추기 때문에 잘 모를 수 있지만, 사실 육아와 방송을 병행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맞아요. 육아와 방송을 병행하는 건 솔직히 정말 힘든 일이에요. 육체적으로 힘든 점이 많아요.

결혼 전엔 방송 마치고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그냥 잠들면 그만이었어요. 약간은 늦잠을 잘 수 있었죠. 이제 늦잠은 꿈도 못 꿔요(웃음). 몸이 아파도 안 돼요. 엄마가 아프면 애기한테 바로 옮더라고요.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젠 알듯 싶어요.

수빈이가 지금은 많이 자랐겠지만, 복귀 당시만 해도 한 살이 안 됐을 때잖아요. 육아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힘들었을 듯싶습니다.

그렇죠. 그래도 지금은 17개월째니까 많이 컸어요. ‘베이스볼 투나잇(이하 베투)’ 막 복귀했을 때는 1년 전이니까 5, 6개월째였죠. 밤에도 두세 시간에 한번씩은 울고, 혼자서는 잠도 안 자고 그럴 때였어요.

남편도 방송사 스포츠 PD입니다. 아기를 키우는 방송인 부부는 보통 일과가 어떻게 됩니까.

회사 출근하는 날엔 신랑도 저도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야 해요. 중계방송이 있는 날엔 잠깐이지만 오전엔 집에서 시간을 보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반찬 만들고, 아침 식사 준비도 하고, 애기랑도 놀아주고요. 저는 메이크업을 해야 해서 신랑보다 좀 더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제가 출근 준비를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신랑이 애기를 봐요. 남편이 출근하면 그때부터는 상주하시는 이모님(베이비시터)이 애기를 봐주세요.

컬링뿐만 아니라 스포츠 중계방송이 대개 밤늦게 끝나지 않습니까.

거의 자정이나 새벽 1시에 끝나죠. 그러다 보니, 주중에 제가 집에 들어갔을 땐 이미 애기는 자고 있어요. 잠들기 전에 얼굴을 못 볼 때가 많아 아쉬워요. 그래도 ‘베투’ 방송이 없는 주말엔 제가 애기를 보는 시간이 많아요.

한창 프로야구 시즌 때는 더 바쁘겠습니다.

올해는 지방 출장은 거의 못 갔지만, 그래도 현장에는 꾸준히 나갔거든요. 힘들었죠. 퇴근 시간이 예정보다 늦어지면 이모님이 집에 가셔야 해서 시부모님께 부탁드리고, 무슨 일 생기면 친정엄마께 부탁하고, 정말 안 되면 이모님께 다시 부탁드리고. 그렇게 시간을 맞추는 게 여간 어렵지가 않더라고요.

많은 '워킹맘'이 동감할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힘들 때마다 주위에 도와주는 분들 덕분에, 다행히 아직까진 한계에 봉착하지 않고 잘 버티고 있어요. 남편도 집에 있을 땐 많이 도와주는 편이고요. 물론 스포츠 중계방송 특성상 출장이 잦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요.

그래도 남편이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게 도움 되는 측면이 많을 듯합니다.

그럼요. 많은 힘이 되죠. 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제가 걱정하는 게 어떤 부분인지 정확하게 알아요. 회사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땐 객관적인 눈으로 봐주기도 하고요.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일과 육아, 많은 여성이 겪는 일. 워킹맘과 경력단절 여성들이 보내주는 메시지 받고 큰 힘 얻어.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

김선신 아나운서는 특유의 하이톤과 쾌활함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선신 아나운서는 특유의 하이톤과 쾌활함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선신 아나운서 이전까지만 해도 결혼과 출산은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에게 ‘은퇴’를 의미했습니다.

맞아요. 제가 데뷔하기 전에도 안진희 선배를 비롯해 이정민 선배, 김수한 선배처럼 전문성을 인정받는 훌륭한 여성 아나운서 선배가 많았어요. 다들 NBA 중계부터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까지 거뜬히 소화하고, 스포츠에 대한 지식도 저보다 해박한 분들이셨어요. 그런데도 당시엔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결국엔 아나운서 일을 그만두신 분이 많았죠.

스포츠 팬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은 그분들의 방송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맞아요, 정말 아쉽죠. 굳이 방송 분야가 아니라도, 여성들이 결혼하고 출산하면 그때부터 난관이 시작돼요. 아무리 자기 분야에 전문성이 있어도 육아와 일, 둘을 모두 하기가 힘드니까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함께 일을 시작한 남성 사원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고요. 아이가 하나인 지금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만약 나중에 혹시 아이가 또 생기면 과연 그때도 방송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마음 한쪽에선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에요.

‘대체불가’인 김선신 아나운서도 그런 걱정을 하는군요.

방송일을 하고 출장도 가고 하면서, 아이를 돌본다는 게 물리적으로 쉽지 않아요. 올해만 해도 ‘베투’ 진행과 수도권 경기만 주로 맡았고, 출장을 가야 하는 지방 경기는 거의 못 갔거든요. 회사와 동료들이 배려해준 덕분에 가능했던 건데, 언제까지나 제 편의만 생각해서 ‘출장 안 된다’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싶어요. 나중엔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올지 몰라요. 그러다 보면 서서히 뒤처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런 고민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도 후배 여성 아나운서들은 김선신 아나운서의 활약을 보면서 많은 힘과 용기를 얻을 겁니다.

예전엔 제가 누군가의 선배가 되고, 후배들이 저를 바라본다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다른 방송사에서 일하는 후배나 아나운서 지망생 중에도 저더러’ 선배가 제 롤모델’이라고 말해주는 후배들이 있거든요. 그 친구들 생각엔 결혼하고 아이 낳은 뒤에도 커리어를 이어가는 게 대단하게 보이나 봐요. 김민아 선배가 결혼하고도 방송을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희망을 준 것처럼, 저도 아이를 낳고도 아나운서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됐으면 해요.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군요.

어릴 땐 저 하나만 생각하면 됐어요. 하다 힘들면 그만둬야겠다는 식으로 생각도 했죠. 이제는 제가 버텨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어요. 저도 지금까지 안진희 선배 등 많은 선배가 노력해서 잘 닦아놓은 길을 편하게 걸어온 사람이잖아요. 저도 후배들을 위해 한 걸음씩 길을 개척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요즘 와서 들어요.

얼마 전 한 야구 미디어가 김선신 아나운서와 김세연 SBS 아나운서를 놓고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 선호도 1위’를 뽑는 설문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투표 결과 김세연 아나운서가 1위를 차지했는데요.

정말요? 전 몰랐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세연이가 SNS에 ‘선호도 1위’ 했다는 게시물을 올렸길래, 축하한다고 댓글도 썼는데 상대가 저였다니(웃음). 댓글 다 지워야겠다(웃음).

그래서 하는 질문입니다. 결혼 전보다 남성 팬이 줄어든 게 아쉽진 않습니까.

대신 새로운 팬층이 생겼어요(웃음). 요즘 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아기를 키우면서 일하는 엄마들, 경력이 단절된 분들이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힘내라’ ‘너무 힘들 것 같은데 정말 잘하고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에요. 사실 결혼 전까진 제 팬이 주로 남성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워킹맘들로 팬층이 바뀐 거죠. 방송에서 제 모습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단 생각을 하면 절로 힘이 나요. 제가 오히려 그분들에게서 힘을 얻고 있는 셈이죠. 정말 든든해요(웃음).

데뷔 10주년인 2020년, 어떻게 보낼 계획입니까.

그동안 제가 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도전해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제 모토가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그러다 보면 길이 생긴다’거든요. 개인방송인 ‘김선신 티비’를 시작한 것도 스포츠라는 한정된 영역을 벗어나 먹방, 여행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취지였어요. 1인 방송이라 직접 만들고, 찍고, 편집하고 다 혼자서 하거든요. 최근엔 당구 중계방송을 하러 나갔다가 당구의 매력에 빠져서, 내년에는 당구를 배워볼까 생각 중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2019년이 가고 2020년을 맞이한 지금, 행복합니까.

너무너무 행복해요. 지난핸 그 어떤 해보다 스스로 박수쳐주고 싶은 한해고, 행복한 한 해였어요. 물론 힘든 점도 있었지만, 아기를 키우면서 얻는 행복이 더 크니까요. 또 방송에 다시 복귀해서 저 김선신의 정체성도 확인할 수 있었고, 직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행복했습니다.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일 년이었다고 생각해요. 무탈하게 행복하게 잘 보낸 듯싶어요. 앞으로도 쭉 이대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웃음)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