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삼손’ 이상훈

-‘기대 반 걱정 반’ 이상훈 “올 한해 정신없이 흘러가길”

-“100세이브에 2세이프 앞두고 은퇴해 아쉽지 않으냐? 내가 100세이브 달성했으면 지금의 내가 달라져 있었을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횐 없다”

-“올 시즌 전망? 변수가 많은 야구에서 예측할 수 있는 건 오직 신뿐. 리그 전체가 상향 평준화됐으면”

‘삼손’ 이상훈(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삼손’ 이상훈(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

올 시즌 끝난 후에 평가받고 싶습니다.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삼손' 이상훈의 말이다.

이 위원은 한국(KBO), 일본(NPB), 미국(MLB) 프로야구를 선수로 모두 경험한 야구인이다. 2012년 고양 원더스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이 위원은 두산 베어스(2015년), LG 트윈스(2016~2018년)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런 그에게 프로야구 해설위원은 새로운 도전이다. 이 위원은 내심 ‘잘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올 시즌이 정신없이 흘러가길 바란다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야생마'란 별명답게 다짐만은 확실했다.

‘어떤 해설을 하느냐’가 중요하리라 봅니다. ‘해설 역시 이상훈’이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죽을 힘을 다해 잘 한번 준비해보겠습니다.이 위원의 다짐이다.

마운드 위 ‘긴 머리 휘날리며’ 거침없이 달렸던 ‘야생마’의 해설위원 변신

LG 트윈스 현역시절의 이상훈(사진=엠스플뉴스)
LG 트윈스 현역시절의 이상훈(사진=엠스플뉴스)

KBO 출신 투수 가운데 한·미·일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최초의 선수입니다.

21년 전(1998년) 일본(주니치 드래곤즈)에 진출했을 땐, 지금처럼 선수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어요. WBC(월드베이스볼), 프리미어12 같은 국제대회도 거의 없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전 행운아였어요.

MLB, NPB와 KBO 시스템이 많이 달랐을 듯합니다.

각 리그의 시스템을 비교하기엔 너무 광범위하고요. 미국,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하면서 느낀 건 ‘따뜻하면서도 냉정한 곳’이라는 거예요. 내가 야구를 잘하면 모든 사람이 절 잘 대해줘요. 반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내치죠. 미국, 일본 선수들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요. 한국하곤 야구문화가 다르죠.

프로 2년 차였던 1994년부터 1995년까지 2년 연속 KBO리그 다승왕을 차지했습니다. LG 팬들 사이에서 이 위원이 특별한 이유도 원체 잘했기 때문일 텐데요.

LG에서 선수 생활을 가장 오래 했어요.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제게 많은 성원을 보내주셨어요. 과분했죠. 지금도 LG 팬들을 떠올리면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원조 '좌완 파이어볼러'입니다.

에이, 아니에요(웃음). KBO리그에 얼마나 좋은 좌완이 많습니까. 김광현(SK), 양현종(KIA) 선수만 봐도 저보다 훨씬 낫죠(웃음).

현역시절 '좌완 파이어볼러'에 카리스마까지 돋보였는데요.

제가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고 만들었겠어요(웃음).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열정적인 행동들이 나온 거죠. 주최할 수 없는 열정이 폭발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전해드린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다른 팀 팬들께선 그게 보기 싫으셨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서 있던 곳이 마운드였고, 제가 이겨야 저와 제 팀 그리고 절 응원하는 팬들이 기뻐하실 수 있었기에, 지금 제가 마운드에 다시 올라가도 똑같이 던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1994년 18승 8패 평균자책 2.47로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LG의 최전성기 시절이었는데요.

당시 팀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투수 쪽 이야기를 하자면 이광환 감독님이 선발 로테이션 정립을 정확히 해주셨어요. 팀 내부적으로 확실한 시스템이 구축됐으니 선수들은 그 안에서 신나게 야구만 하면 됐었죠.

한동안 유일한 내국인 좌완 20승 선발투수였습니다.

지금은 양현종(KIA) 선수죠(웃음). 기특한 후배예요.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선수죠. 야구가 발전된 상태에서 20승을 올린 투수와 막무가내로 뛰던 시절의 저와는 비교하면 안 될 것 같아요(웃음).


통산 71승 40패 98세이브 평균자책 2.56을 기록하고서 2004년 갑작스럽게 그라운드를 떠났습니다. 후회한 적 없습니까.

다시 선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은 없어요. 마운드 위에 있을 땐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온 힘을 쏟았어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해요. "100세이브 달성을 눈앞에 두고 은퇴한 게 아쉽지 않냐"고. 제가 역으로 질문을 하고 싶어요. "제가 100세이브 달성에 성공했으면, 지금의 전 달라져 있을까요?"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고, 남는 건 기록밖에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기록은 평생 남죠. 하지만, 제겐 ‘어떻게 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마운드 위에 섰던 308경기 하나하나가 소중해요. 패한 40번의 순간도 마찬가지고요. 마운드 위에 있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어요(웃음). 전 최선을 다해 던졌어요. 그래서 후회가 없습니다.

야구와 떨어져 8년을 살다 다시 야구계로 돌아온 '삼손'

2016년 10월 8일 잠실구장에서 시구하는 이상훈(사진=LG)
2016년 10월 8일 잠실구장에서 시구하는 이상훈(사진=LG)

은퇴 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야구와는 떨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약 8년 정도 야구와 떨어져 있었죠. 현장이 그리워질 때면 개인코치 활동을 했어요(웃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회인 야구도 봐주고, 여자야구 선수들도 가르쳤어요. 그러다가 김성근 감독님이 연락을 주셔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코치로 갔죠.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전 그 팀에 있을 겁니다.

2015년 LG 라이벌인 두산 베어스 코치로 갔습니다.

두산 김태룡 단장님이 전화를 주셨어요. "투수코치로 합류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고양 원더스가 해체된 상태여서 "가겠다"고 말씀드렸죠. 김태형 감독님과도 친분이 있었고.

당시 결정에 서운한 감정을 느꼈던 LG 팬들도 있었습니다.

알죠. 하지만, 연락이 온 건 LG가 아닌 두산이었어요. 당시에 인터뷰를 많이 했었어요. 지금은 서운함이 다 풀리시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두산의 재능 많은 좌완투수들이 이상훈을 만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선수들이 알아서 잘한 거죠. 솔직히 코치로서 그런 칭찬 들으면 기분 나쁠 이유는 없어요. 아주 좋죠(웃음). 하지만, 명확한 건 두산 선수들이 잘해서 제가 그런 칭찬을 듣게 됐다는 겁니다.

2016년 드디어 LG로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지도자로요.

"피칭 아카데미에서 젊은 선수 육성에 힘쓰는 역할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LG 연락을 받고서 고민 끝에 두산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두산에서 흔쾌히 보내주셨어요.

2016년 10월 8일 잠실구장에서 등번호 47번이 새겨진 LG 유니폼을 입고 시구자로 나섰습니다.

아마 그해 잠실 마지막 홈경기였을 거예요. 구단에서 좋은 이벤트를 기획해주셨어요.

시구 전, 갑자기 1루 견제를 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정)성훈이와 눈이 마주친 뒤에 ‘아, 이거다’ 싶었죠. 가끔 오해하시는 분들에 있는데, 사전에 약속된 건 없었어요(웃음).

“한 시즌은 지나봐야 해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듯”

올 시즌부터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야구팬과 만나는 이상훈(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부터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야구팬과 만나는 이상훈(사진=엠스플뉴스)

해설위원으로서 불리고 싶은 별명이 있습니까.

‘삼손’, ‘야생마’로 충분합니다. 특히나 '삼손'이란 별명에 애착이 가요.

왜죠?

교훈을 전하잖아요. 삼손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지배했지만, 여색에 빠져 괴력의 원천인 긴 머리를 싹둑 자릅니다. 두 눈까지 잃고. 하지만, 최후의 기적을 기원하면서 힘을 회복하고, 뜻 깊은 마무리를 합니다. 삼손의 인생엔 ‘무슨 일이든 함부로 행하지 말라’는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삼손’ 이상훈은 어떤 야구해설위원이 되길 바랍니까. 많은 야구팬은 몇 십년째 똑같은 해설을 반복하는 '올드한 해설'보단 현장감이 느껴지는 생동감 넘치는 '젊은 해설'을 바라고 있습니다.

아직은 새하얀 도화지 상태입니다. 색깔을 만들어가야죠. '해설'이란 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방송사가 원하는 방향이 있을 테고, 시청자가 바라는 해설이 또 있을 거예요. 지금은 ‘이런 해설위원이 되겠다’는 뚜렷한 방향 설정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요. (잠시 생각하다가) 20승은 투수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20승을 거뒀으니까 '20승 투수'로 불리는 거지. 한 시즌은 지나 봐야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시즌 개막을 누구보다 기다렸을 듯합니다.

정신없이 한 시즌이 흘러갔으면 좋겠어요. 배우는 입장이다 보니 내심 ‘잘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눈앞의 순간을 시청자에게 말로 설명해드려야 하잖아요. 재미도 필요하고. 야구팬들의 눈높이도 높아져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많은 분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입니다(웃음).

여기저기서 올 시즌 전망을 묻지 않습니까.

전망은 의미가 없어요. 변수가 무수히 많은 야구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건 오직 '신'뿐이에요. 바라는 게 있다면, 한 팀의 독주가 아닌 많은 팀이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경쟁력 있는 여러 팀이 리그 전체를 상향 평준화시켰으면 해요. 마운드 위에 섰을 때처럼 마이크 앞에서도 온 힘을 다해 좋은 해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재학,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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