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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승의 박스아웃] 전태풍 “'나'를 잃어 ‘은퇴’ 결심했었다”

  • 기사입력 2019.05.24 10:19:53   |   최종수정 2019.05.24 10: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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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극적으로 SK에 합류한 전태풍 “문경은 감독께 감사. 신뢰에 보답할 것”

-“한국에서 뛴 10년, '나'를 잃어 '은퇴' 결심했었다”

-‘가족’이나 다름없던 KCC···“서운했던 건 사실. 지금은 다 잊었다”

-전태풍이 말하는 자율농구의 핵심 ‘프로페셔널’

-“마지막 시즌, 출전 시간보다 전태풍다운 농구 보여주고 싶어”

 

서울 SK 나이츠 전태풍(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서울 SK 나이츠 전태풍(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용인]

 

화려한 드리블로 수비를 제쳐낸 뒤 고급 기술인 플로터 슛으로 림을 갈랐던 유일한 선수. 2009년 KBL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 1순위로 전주 KCC 이지스 유니폼을 입었던 전태풍이다. 

 

전태풍은 고교 시절 미국 청소년 대표로 활약했을 정도로 남다른 재능이었다. 미국 프로농구 NBA 진출엔 실패했지만, 프랑스, 러시아, 터키, 그리스 등 유럽 리그에서 출중한 기량을 인정받았다. 2007년 폴란드 리그에서 뛸 땐 어시스트 상과 올스타 선정의 기쁨을 맛봤다. 

 

서른 살에 데뷔한 KBL에서도 승승장구했다. 2009-2010시즌 50경기에서 뛰며 경기당 평균 14.4득점, 4.7어시스트, 2.7리바운드를 올렸다. 포인트 가드가 외국인 선수 못잖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2010-2011시즌엔 팀(KCC)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이끌며 리그 최정상급 가드로 우뚝 섰다. 

 

하지만, 전태풍은 조금씩 자신의 색깔을 잃어갔다. 개인기보다 패스가 우선인 전형적인 한국 농구에 익숙해졌다. 골밑에서 자리 잡은 장신 외국인 선수에게 패스한 뒤 멀뚱멀뚱 서 있는 시간이 늘었다. 크로스오버 드리블로 수비수를 제쳐낸 뒤 과감한 슛을 구사하던 전태풍은 자취를 감췄다. 

 

2018-2019시즌을 마친 전태풍은 허무하게 선수 생활을 마감할 위기에 놓였다. 7시즌을 함께 한 KCC가 전태풍과의 재계약을 선택하지 않은 까닭이다. 코치 제안 역시 없었다. 다행히 FA(자유계약선수) 타 구단 영입의향서 제출 마지막 날 서울 SK 나이츠행이 결정됐지만, 전태풍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전태풍은 KCC에 서운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가족같이 생각했던 팀이라서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SK 문경은 감독께서 마지막 기회를 줬다. 지난 일은 잊고 SK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겠다고 했다.   

 

전태풍이 바라는 건 하나다. 10년간 KBL 코트를 누비며 잃어버린 ‘전태풍’을 되찾는 것. 1분을 뛰더라도 전태풍다운 농구를 보여주고 싶다. 엠스플뉴스는 5월 23일 경기도 SK 나이츠 양지 체육관에서 전태풍을 만났다. 지금부터 KBL에서 뛴 10년과 SK에서의 마지막 1년을 숨김없이 얘기한 전태풍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에서 뛴 10년, '나'를 잃어 '은퇴' 결심했었다”

 

서울 SK 나이츠 전태풍(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서울 SK 나이츠 전태풍(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서울 SK 나이츠 유니폼이 잘 어울립니다(웃음).  

 

기분이 아주 좋아요(하하). 문경은 감독이 날 살려줬어. 이해하고 믿어줘서 고마워요. (김)선형, (최)준용이 등 SK엔 훌륭한 선수가 많습니다. 그런 팀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SK나 서울 삼성 썬더스에 꼭 가고 싶어서 문경은, 이상민 감독에게 전화했었거든. FA 타 구단 영입의향서 제출 마지막 날(20일 오후 12시)까지 연락이 없어서 은퇴하나 싶었는데, 아주 기뻐.   

 

SK 이적 과정이 극적이었습니다. 

 

5월 20일 12시 30분에 문경은 감독에게 연락이 왔어. ‘(전)태풍아 우리 영입의향서 제출했어. 내일 선수단 인사하고 바로 연습 시작하자’고. 내가 얘기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진짜? 내일 바로? 날아갈 거 같았어. 바로 ‘네’ 했습니다. 새 시즌까지 시간이 많은 만큼 잘 준비할게요.    

 

KCC에서 나오고 SK나 삼성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있습니까. 

 

‘자유’를 원했습니다. 틀에 박힌 농구 말고, 관중들이 ‘돈 아깝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플레이 마음껏 하고 싶었어요. 여러 선수한테 알아보니 SK, 삼성이랑 스타일이 맞을 거라고 했죠. 바로 문경은, 이상민 감독에게 전화했어요(웃음). ‘감독님, 저 몸 상태 좋습니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죠. 

 

자율적인 농구를 원한 이유가 있을까요. 

 

올 시즌 마치고 은퇴를 결심했었습니다. 몸은 괜찮아요. 코트를 누비면서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죠. 하지만, 마음이 지쳤습니다.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어떤 게 힘들었습니까. 

 

2009년 한국에 처음 와서 뛴 세 시즌을 빼면, 내가 원하는 농구를 한 적이 없습니다. 공 없이 무작정 뛰고, 드리블이나 개인기 없이 패스만 해야 하고. 내 머리가 받아들이질 못했어요.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런 훈련과 플레이를 해본 적이 없는데’란 물음이 있으니까 열심히 못 했죠. 매일같이 혼났습니다. ‘전태풍’을 지우고 한국 농구에 맞췄던 거 같아요. 

 

2009-2010시즌 처음 KCC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볐을 때 ‘센세이셔널(sensational)’했습니다. 

 

솔직히 그때도 조금씩 바뀌고 있었어. 2009년부터 10년 동안 매일 똑같은 말 들었어요. 드리블로 2, 3명 제치고, 플로터 슛 쏘면 눈치 봤어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안 하게 됐죠. ‘하지마’ ‘빨리빨리’란 소리 제일 많이 들었으니까. 한국에서 ‘가드’는 패스 주고 무작정 뛰는 게 역할인지 궁금해요. 어휴. 

 

실제로 농구계가 기억하는 전태풍은 2009-2010시즌부터 KCC 유니폼을 입고 뛴 세 시즌입니다. 이후엔 성적도 아쉬웠지만 화려함도 사라졌어요. 

 

‘그런 거 하지마. 여긴 한국이야. 우리 스타일로 가야 해’란 말을 어느 팀을 가도 똑같이 들었습니다. 자신한테 물어봤죠. ‘그럼 나는 뭐야? 한국에 왜 왔어?’라고. 소원이었어요. 은퇴하기 전에 내가 원하는 농구 딱 한 번만 해보고 싶다. ‘전태풍’다운 농구. 패스 주고 뛰길 반복하는 게 아니라 관중들이 들썩일 수 있는 거요.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원래는 은퇴를 결심했어요. 

 

난 여기서 ‘다른’ 게 아니라 ‘틀린’ 사람이었어. 마음이 아팠어요. 솔직히 기술도 다 까먹었습니다. 몸 상태엔 자신감이 있는데, 그 부분이 불안해요. 한국 처음 왔을 땐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수비가 붙으면 크로스오버 드리블이 저절로 나왔어요. 장신 선수 앞에 있으면 플로터 슛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플로터 왜 쏴. 넌 점프슛하고 백보드만 노려’란 말을 매일 듣다 보니까 잊어버렸어. 슬퍼. 내 안에 나를 끊임없이 눌렀어요. 열정이 사라지니까 그만두고 싶었죠. 

 

대중은 적잖은 나이와 몸 상태 때문에 은퇴를 결심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일화를 들려줄게요. 2년 전에 미국에 가서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길거리 농구 하는 애들이죠. 같이 팀을 이뤄 시합하는데 다들 깜짝 놀랐어. ‘야, 너 한국가더니 어떻게 된 거야. 기술이 왜 그래. 패스주고 받아서 슛 던지는 거밖에 못해?’라고 묻더라고. 아무 말도 못 했죠.      

 

미국에서 대학까지 농구를 했고, 다양한 리그를 거쳤습니다. 프랑스, 러시아, 그리스, 터키 등 유럽에서 프로 생활을 했죠. 이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으면, 다시 국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솔직히 많이 했죠. KCC에서 세 번째 시즌 마쳤을 때, 한국을 떠나려고 했어요. 그 룰도 엄청 싫었었거든요. 혼혈선수는 3시즌이 지나면 다른 팀으로 가야 하는 거. 우린 내국인 선수도 아니고, 외국인 선수도 아니고.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한국이란 나라를 아주 사랑하니까 못 가겠더라고. 우리 가족들도 한국 생활에 아주 만족합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떠났을 거예요.     

 

문경은 감독에게도 이런 걸 다 얘기했습니까. 

 

전부 다 했어요. 그리고 이거 딱 하나 부탁했습니다. ‘출전 시간 많이 없어도 좋다. 못 뛰는 날이 있어도 이해한다. SK엔 선형이를 비롯해 좋은 선수가 많으니까. 하지만, 1분을 뛰더라도 로봇처럼만 안 뛰면 된다. 전태풍이란 선수를 보여줄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감독께서 이러시더라고요.

 

어떤 답변을 들었습니까. 

 

‘태풍아, 네 장점은 공격이야. 수비 신경 쓰지 마. 다른 애가 할 거야(웃음). 네 장점 살려줄게. 마음껏 한 번 해봐’라고 했어요. 이거면 충분해요.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문경은 감독님, 정말 감사합니다(하하).   

 

‘가족’이나 다름없던 KCC···“서운했던 건 사실. 지금은 다 잊었다”

 

2009년 KBL에 데뷔한 전태풍(사진=KBL)

2009년 KBL에 데뷔한 전태풍(사진=KBL)

 

한국 사랑이 크고 정이 많은 선수입니다. KCC와의 협상 과정에서 서운함이 있었어요. 

 

사실입니다. KCC는 특별한 팀이었어요. 가족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동생이 무언가를 잘못하면 꾸짖을 때도 있지만 ‘괜찮다’고 격려해주잖아. 서로 이해하고 믿어주고. KCC 정상영 명예회장도 자주 만났어요. 결과와 관계없이 선수단 격려하고, 응원해줬습니다. 다른 구단에선 느끼지 못했던 ‘정’이 있었죠. 

 

그래서일까요. 2015-2016시즌을 앞두고 KCC로 복귀했습니다. 

 

의리죠. 고민도 안 했어요. KCC가 날 원하면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선 단 1초도 코트를 밟지 못했지만, 괜찮았어요. 가족 같은 팀을 위해서 ‘희생’도 감수했습니다. 이번 FA 협상에서 KCC가 날 ‘불편해한다’는 걸 알았을 때 서운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번 일로 배운 게 있어요.

 

어떤 거죠? 

 

앞으론 나를 먼저 챙겨야겠구나. ‘정’ 많이 주지 말고 영리하게 나부터 챙기자. 그다음에 나머지 사람 챙겨야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생각하지 않고 ‘KCC니까 괜찮아’란 마음이었어요. ‘KCC를 떠난다’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현실로 닥치니까 막막했습니다.

 

얼마 전 이슈가 됐던 SNS에 올린 글은 모두 사실이군요.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 KCC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하지만, 다 잊었어요. 문경은 감독께서 마지막 기회 주셨고, 좋은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KCC에 받은 상처보다 한국 농구 문화에 실망한 게 더 커요. 매일같이 ‘하지 마’ ‘틀렸어’ ‘넌 한국 농구를 몰라’ 소리를 들었으니까. 자신감 잃어버리고, 전태풍의 본 모습까지 잊어버린 거 같아요. 솔직히. 

 

말씀하세요. 

 

저 싸움 싫어해요. 사람하고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서로 대화하면서 이해하고, 인정해 나아가는 거. 제가 보기보다 ‘정’도 많아요. 그런데 한국에선 내 말은 허공의 메아리나 다름없었죠. 틀린 사람이었으니까. 한 가지 예를 들어줄게요. 참 웃깁니다.

 

뭐죠? 

 

단신 외국인 선수한테는 ‘하지 마’란 소리 절대 안 해요. 어떤 팀이든 똑같습니다. 외국인 선수는 오랜 시간 볼 소유하고, 마음껏 드리블 쳐도 괜찮아요. 플로터 슛을 쏘든 훅슛을 하든 자기들이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하지만, 저는 안 돼요. 내국인 선수들 다 똑같잖아요. 외국인 선수처럼 볼 소유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면 큰일 나요. 우린 빨리 패스 주고 무작정 뛰어야 해요.  

 

내국인 선수들은 ‘농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란 말 많이 듣지 않습니까. 

 

인정해요. 전 개인 득점과 개인기만 하겠다는 게 아니었어요. 패스 중요하죠. 하지만, 개인기가 필요할 때도 있어요. 정규리그 54경기 내내 골밑에서 자리 잡은 장신 선수한테 패스하고, 아무런 의미 없이 뛰어 들어가는 게 뭐예요. 외국인 선수 1:1 공격 하는 거 구경이나 하고. 농구도 플레이메이커가 있습니다.

 

플레이메이커요?

 

준비한 패턴이 먹히지 않았을 때 플레이메이커가 필요합니다. 흐름을 바꾸는 선수죠. KBL은 외국인 선수만 그 역할 해야 한다는 법 있습니까. 솔직히 저 말고도 이 역할 할 수 있는 선수 많아요. 우리 팀 선형이,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이대성, 서울 삼성 썬더스 이관희 등 외국인 선수 못잖게 플레이메이커 역할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예요. 그런데 KBL 내국인 선수는 하나같이 똑같아. 로봇처럼. 

 

전태풍이 말하는 자율농구의 핵심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서울 SK 나이츠 전태풍(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서울 SK 나이츠 전태풍(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자율’을 굉장히 중시합니다. 하지만,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어요. 선수들을 풀어주면 프로선수의 자격을 갖추지 못할 수 있다. 현재 선수들은 자율적인 환경에서 커오지 않은 까닭에 그런 문화가 낯설거든요.  

 

우리는 ‘학생’ 아니고 ‘프로’야. 구단에서 월급 받아. SK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SK는 야간훈련이 자율적으로 이뤄져요. 그런데 선수들이 다 나와. 동생들이 ‘형 우리 기술 좀 가르쳐줘요’라고 먼저 다가와. 이게 ‘프로페셔널’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다 나타납니다. 누가 훈련을 열심히 하고, 소홀하게 했는지. 감독은 누가 ‘프로페셔널’ 했는지 평가하면 됩니다. 

 

전태풍은 언제부터 프로페셔널 한 자세를 갖췄습니까(웃음). 

 

솔직히 젊었을 땐 프로페셔널 하지 못했습니다(웃음). 화려한 기술만 연마했죠. 다른 건 조금씩만 했어요. 그런데 유럽에서 뛸 때 뒤꿈치를 다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꼈죠. ‘몸 관리해야겠구나’라고. 웨이트 트레이닝 꾸준히 하고, 스트레칭 빼먹지 않아야 유연성이 유지된다는 걸 배웠어요. 그때부터 시즌 때나 휴식기에나 알아서 몸 관리를 했습니다. 그게 프로페셔널이죠. 

 

KBL뿐 아니라 다양한 리그를 거쳤습니다. 국외 선수들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NBA도 똑같아요. 제 친구들 보면 비시즌 때 기술 훈련 엄청나게 합니다. 철저하게 준비 안 하면 경기에 뛸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유럽도 마찬가지예요. 체력은 프로선수라면 당연히 갖춰야 하는 거고요. 

 

한국에서 미국 프로농구 NBA는 익숙하지만, 유럽 리그는 굉장히 낯섭니다. 

 

유럽 선수들은 덩치가 진짜 커요(하하). 근육이 장난 아닙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거든요. 미국 농구와 스타일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은 화려해요. 드리블로 선수 제치고, 화끈한 덩크슛 터뜨리고. 유럽은 심플합니다. 수비 제치면 훼이크 한 번 하고 레이업. 기본을 아주 중시하죠. 하지만, 유럽 역시 선수 개성은 지켜줘요. 로봇처럼 안 합니다. 개인기, 슛, 패스 등 서로의 개성과 장점을 존중해주죠.     

 

‘심플하다’는 건 결국 ‘조직력이 강하다’는 거 아닙니까.

 

비슷하죠. 미국보단 유럽이 조직력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개인기를 중시한다고 혼나진 않아요. 상상조차 할 수 없죠. 관중이 만족할 플레이라면, 실책이 나와도 괜찮습니다. 한국 농구와 큰 차이죠. 그리고 미국과 유럽 농구 선수들은 ‘여유’가 있어요.

 

여유요?  

 

예를 들어줄게요. 내가 골밑에서 자리 잡은 (최)준용이한테 패스했어. 여기선 무작정 뛰어 들어가야 해. 어디로 뛰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일단 뛰고 상황을 파악합니다. 국외는 달라요. 패스를 줬으면 상황부터 봅니다. 상대 수비 형태는 어떤지, 어느 쪽에서 기회가 생길지 파악하고 움직이는 거죠. 여유가 있어요. 

 

국외에선 실책이나 실수가 반복될 때 지도자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음. 속공 상황에서 관중이 좋아할 만한 화려한 패스를 했어. 그게 실책으로 이어졌어. 그럼 감독은 딱 한 마디 해. ‘잘했어. 뒤로 가서 수비하자’고. 실수가 반복되면 뺍니다. 그걸로 끝이야. 선수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줘. 질책이나 잔소리는 없습니다. 선수가 잘못했으면 스스로 느껴야죠. 다음 경기에선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만약 10년 전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이런 말 해주고 싶어. 

 

어떤 말이요?   

 

‘너 자신을 잃지 말라’고. 농구는 팀 스포츠라는 거 인정합니다. 한국 문화 존중하고 녹아들려는 노력 필요해요. 하지만,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면 내가 사라져요. 선수 마음대로 제 기량을 뽐낼 수 있는 순간도 필요해요. 과거 제 영상을 보면 ‘내가 저런 플레이를 했었나’란 생각이 들어요. 안타깝죠. 

 

SK에서 잡은 마지막 기회···“몇 분을 뛰든 전태풍을 보여주고 싶다”

 

서울 SK 나이츠 전태풍(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서울 SK 나이츠 전태풍(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자율을 중시하는 SK에서 마지막 기회를 잡았습니다. 

 

크게 바라는 거 없습니다. 1분을 뛰어도 옛날 태풍이처럼 플레이하고 싶어요. 크로스오버 드리블로 수비수 제치고, 자신 있게 플로터 슛 시도해서 골 넣고. 팬들에 ‘우리가 알던 전태풍이 돌아왔다’란 소리 듣고 싶습니다. 물론 저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팀이 우선이에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제 본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팬들은 최준용과의 호흡을 아주 기대합니다(웃음). 

 

오 마이 갓. 하하. 벌써 장난치고 난리도 아니야. 사람 성격이 남달라. 재밌어요. 저도 기대가 커요. 준용이는 재능이 많습니다. 1번(포인트 가드)부터 4번(파워 포워드)까지 맡을 수 있죠. 창의적인 플레이에도 능합니다. 실책을 두려워하지 않고 관중이 즐거워할 수 있는 걸 보여주죠. 아주 좋아요. 

 

SK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만족감이 커 보입니다.

 

느낌이 달라. 문경은 감독께서 선수들과 얘기할 때도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져요. 놀랐어요. 한국에서도 선수들이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구나. 이번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죠?

 

최근 제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엔진이 고장 났습니다. 국외 차다 보니까 고치는 데 석 달 정도 걸린 데요. 아내 차가 있지만, 아이들 때문에 제가 쓸 순 없거든요. 그래서 오토바이를 타요. 처음엔 고민했죠. 차를 새로 사야 하나. 문경은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감독님, 차가 고장 나서 오토바이 타야 할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라고. 

 

문경은 감독은 뭐라고 답했습니까. 

 

‘안전하게 타’란 말이 끝이었어요. 솔직히 문경은 감독께 여쭙기 전에 긴장했습니다. 답변 듣고선 아주 놀랐죠. 속으로 ‘이게 말이 돼?’ 하면서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하고 나왔습니다(웃음).     

 

한국 사람 다 됐습니다. 팬들이 원하는 토니 애킨스(전태풍의 미국 이름), 다시 볼 수 있는 겁니까.  

 

혼자선 힘들어. 기술 다 까먹었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준비할 거지만, 동료들이 도와줘야 해요. 감독, 코치님도 전태풍이 원하는 농구를 후회 없이 할 수 있게 자신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나이로 마흔입니다. 베테랑이 되면서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있습니까.   

 

후배들 시선을 신경 쓰죠. 코트 안팎에서 모범을 보이려고 해요. 훈련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땀 흘리고, 끝나면 동료들 챙기죠. 약속이나 예의도 중요시합니다. 솔직히 한국 처음 왔을 땐 그러지 않았어요. 저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옳은 거고 좋은 거구나 느꼈죠. 변했습니다. 한국 처음 왔을 때 생각나네요.

 

당시 KBL은 잘 몰랐죠?

 

유럽에서만 뛰어왔으니까. 한국에 오기 직전에 조금 봤어요. 솔직히 KBL을 살짝 무시했습니다. 미안해요. 비디오 보는데 포인트 가드가 림을 안 보는 겁니다. 공격은 하나도 안 하고 외국인 선수한테 볼만 주고 멀뚱멀뚱 있어요. 이유 없이 뛰기만 하고. 골밑 앞에서 볼 잡으면 슛이 아니라 패스해요. 그거 보고 ‘이게 뭐지? 내가 가면 다 죽었어’ 했죠(하하). 그런데. 

 

예. 

 

뛰어보니까 알겠더라고. 왜 골밑 앞에서 볼 잡고 패스를 하는지. 하나같이 플레이하고, 개성 있는 선수가 적은지 이해합니다. 그래서인지 후배들을 더 챙기게 돼요. 먼저 다가가서 이런 말 많이 했습니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나도 네 마음 알아’ ‘자신감 잃지 마’라고. 

 

지도자로도 대성할 거 같습니다(웃음).

 

욕심 있어요(웃음). 솔직히 지도자 꿈 때문에 KCC에 남고 싶었죠. 전 앞으로 사람들 만날 때마다 얘기할 거예요. 내가 지도자 하면 ‘결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결과보다 선수 개인 존중하고, 그들의 색깔 살릴 수 있는 농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코트 위에서 즐거워야 관중들도 들썩이지 않겠어요?

 

현실적으로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한국에선 결과를 내지 못하는 지도자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알죠. 문제입니다. 고쳐야 해요. 농구인은 한국 농구 사랑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억 원으로 내달 1,000만 원의 수익을 목표로 하기보단 10년 후 10억 원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게 어떨까요. 많은 준비와 인내가 필요하지만, 그런 계획이 한국 농구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지 않나요. 

 

한국 농구에 대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전태풍을 오래 보고 싶어 하는 팬이 많아요. 2019-2020시즌 활약이 좋으면 선수 생활 연장을 기대해도 됩니까. 

 

하하. 지금은 생각이 없어. 솔직히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요. 한국에서 보낸 10년간 나를 잃어버려서 가슴이 아픕니다. 일단 마지막 기회를 준 SK를 위해 뛰고 싶어요. 감독, 코치, 동료, 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전태풍의 플레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어느 때보다 철저히 준비해야죠. 

 

차기 시즌은 어떤 의미입니까. 

 

체육관에 들어섰을 때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걸 느껴보고 싶어요. 그 느낌도 잊어버렸어. 코트에서 많이 웃고 재미있게 즐기고 싶어. 관중들이 결과와 관계없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잠실학생체육관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습니다.  

 

한국 사랑뿐 아니라 팬을 생각하는 마음도 큽니다. 

 

팬이 있어서 우리가 있는 거니까. 잊어선 안 됩니다. KBL이 존재할 수 있는 건 팬 때문이에요. KCC에 서운한 게 사실이지만, 팬들은 구단 입장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때론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 나올 때도 있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농구 끝까지 응원합시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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